2021년 6월호

“이준석은 실패한 청년들 보듬지 못할 유능한 청년”

[90년생 용접공이 본 이준석] “그럼에도 당대표 되길 원했다”

  • 천현우 용접공 serinblade@naver.com

    입력2021-06-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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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 기성 정치인과 달라 지지

    • 반칙 않고 ‘험지 도전’도 인기 한 몫

    • “당 대표가 되고 싶습니다” 화룡점정

    • ‘능력주의 가치관’은 우려스런 대목

    • 고시, 취업에 목숨 거는 청년의 경쟁 옹호

    • 유력 정치인 된들 청년 삶 살필까 의문

    • 정치판 새 캐릭터 등장, 여당 자극제 기대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당대표가 6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이준석 신임 국민의힘 당대표가 6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이제 뭐 묵고 사노….”

    이직한 직장에서 급여명세서가 나왔다. 현장 ‘사수 형님’이 받아 든 종이의 ‘잔업란’이 빼곡하다. 다음 달부터 50인 미만 사업장도 52시간제가 적용된다. 주 68시간 용접은 불가능해졌다. 1990년생, 미혼인 내겐 주 52시간도 과하지만, 아이가 한참 커가는 1987년생 사수 형님의 사정은 다르다. 아이 다니는 학원 하나 줄이고, 보험 해약하고, 적금 깨는 것도 모자라, 유일한 낙인 자동차 튜닝도 관둬야 한다. 담배 연기를 뻑뻑 내뿜는 형님의 입에서는 나라 욕도 같이 나온다. 피우던 담배를 끄며 돌아서더니, 혼잣말을 내뱉는다.

    “이준슥이 같이 똘똘한 아가 대통령 돼야 할 낀데….”

    사수 형님은 이준석이 말을 시원시원하게 해서 좋다고 한다. 그 동안 여자한테 기죽고, 더불어민주당의 ‘내로남불’에 지쳤는데 이준석은 그렇지 않단다. 나도 그의 말과 글에서 가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그 ‘사이다’ 같은 쾌감이 가시고 나면, 허탈한 감정만 남아 입안을 바짝 말린다. 이준석은 우리 같은 ‘쇳밥’의 상황개선에 별 관심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자신의 저서인 ‘공정한 경쟁’에서 “엘리트주의자라 비난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능력주의에 따라 위아래로 나누어진 사회계층을 개선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비난하고 싶지 않다. 생각이란 결국 삶에서 얻은 경험을 차곡차곡 모아 둔 창고일 뿐. 명문대 나온 주류의 삶을 산 그가 고만고만한 비주류의 삶을 이해하기 힘든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1990년생 ‘비주류’ 용접공이 본 ‘주류’ 이준석이란 인물은 어떨까. 철저히 내 시각으로 그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왜 청년 남성들은 그에게 열광하나

    이준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6년. 김광진 전 민주당 의원과의 TV 토론 때였다. 현란한 말솜씨와 탄탄한 논리, 확신에 가득 찬 당당한 시선이 기억난다. 그간 내 머릿속 정치인의 토론은 윽박지르고, 남의 말 끊고,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 모습이었다. ‘내 편견을 깨뜨린 저 정치인은 분명 다음 선거에서 배지 달겠지’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당시엔 정치 또한 능력 따라 자리를 찾아가는 줄만 알았다.



    예상과 달리 이준석은 지금의 신드롬을 일으키기까지 한참을 헤맸다. ‘박근혜 키즈’로 화려하게 정치에 입문했지만 그뿐. 비례의원을 거치지 않고 지역구로 직행했다가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이후 따스한 거대당의 품을 떠나 소수 정당으로 향했다. 그동안 방송 활동도 하고, 택시 운전도 하면서, 게임 업계도 기웃거렸지만 눈에 띄는 정치적 소득은 없었다. 도리어 총선 부정선거 설을 반박하다 극렬지지자들에게서 미움까지 샀다.

    그러다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조국 사태’와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로 입시와 취업난에 시달리던 청년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여기에 젠더 갈등 문제까지 겹치면서 청년 남성을 주축으로 한 중도층이 민주당에 등을 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민주당을 향해 ‘말로만 공정을 외치는 위선자들’이라며 야유를 퍼부었다.

    반면 이준석은 기성 정치인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신뢰를 얻었다. 우선 그는 특혜나 반칙 논란에서 꽤나 벗어나있다. 과학고 입학부터 하버드대 졸업까지 어떠한 잡음도 없다. 정치 시작 과정에서 인맥 동원이 없진 않았으나, 그 후엔 논객 생활로 생계를 이어가며 꾸준히 험지에 도전했다. 줄서기가 횡행하는 정치판에서 결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3선 중진’이라는 조롱이 지지자들에겐 도리어 값진 경험으로 비치며 그의 인기에 보탬이 되었다.

    태극기 부대나 극우 유튜버들과 철저히 선을 그은 점도 호감요소였다. 당내 선배들과 달리 집토끼들에게 잘 보이겠다고 아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편한 길을 고사하고 또 고사해 마침내 ‘합리적 보수’ 이미지를 쟁취했다. 특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당 대표가 되고 싶습니다”로 시작하는 출마선언문에서 보인 가식 없는 모습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신분상승의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낸 그 도입부는 공정을 외친 20대 남성 지지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이준석 핵심 가치관, 공정과 능력주의

    이러한 이준석의 행보는 능력주의가 칭송하는 모델에 딱 들어맞는다. 본인 역시 능력주의를 전면에 내세운다. 능력주의를 요약하자면, 공정한 룰은 오로지 하나다, 룰 내에서 승자는 능력을 입증하고 패자는 무능해서 진다. 룰 이외의 방식을 통해 승자의 몫을 빼앗으려 하는 행위는 반칙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각종 할당제, 비정규직 정규직화, 고시 이외의 등용문은 모두 반칙이다.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한바탕 난리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기간제 교사는 임용고시라는 ‘공정하며 하나뿐인 룰’의 승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명문대에서 지방 캠퍼스를 만든다고 하면 왜 본 캠퍼스 학생들이 거리로 나올까. 입시라는 ‘공정하며 하나뿐인 룰’의 패자들이, 승자인 자신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려 한다고 생각해서다.

    능력주의의 핵심은 경쟁이다. 문제는 승자가 후광을 모두 가져가고, 패자는 굴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준석은 6월 4일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경쟁의 확대는 공정성을 위한 필연이지만 경쟁이라는 것이 결국 누군가를 도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취를 위한 욕망과 목표 달성의 희열이 골고루 조합된 건설적인 노력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문해보자. 도태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경쟁이 있을까. 이준석이 도태를 바라지 않았다면 ‘경쟁’보다 ‘협동’을 강조했을 것이다.

    이준석 지지자들은 말한다. ‘노력한 만큼 성과를 받겠다는데 뭐가 잘못이냐.’ 하지만 과연 능력주의가 정말로 공정하며, 자기 능력만큼의 대우를 받게 해줄까. 우리 집엔 엄마 친구들이 자주 온다. 커피 한 잔의 디저트로는 늘 자식 이야기가 올라온다. 자식이 명문대나 전문직, 대기업 다니면 최고 효자다. 저 자리에서만큼은 나는 불효자다. 내 직업을 소개하면 “힘든 일 하네, 고생 많다.”라는 동정 어린 반응이 돌아온다. 내 연봉이나 기술의 숙련도는 의미 없다. 엄마 친구들, 나아가 현재 공정을 외치는 청년들에게 필자가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뻔하다. 공부 못 해서 전문대를 나왔고, 노력 안 해서 용접불이나 떼고 있는 실패자. 학벌과 노동이 계급인 사회에서 내 위치는 이렇듯 초라하다.학벌과 노동의 계급화는 이준석을 지지하는 청년 남성들이 공유하는 핵심 가치관이다. 이들에게 명문대의 학과 잠바는 계급 입증을 위한 훈장이다. 과반이 넘는 ‘스카이(SKY)’ 재학생의 부모가 억대 소득을 올린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이 세계에서 필자뿐만 아니라, 그림 그리는 게 좋아서 대학교 자퇴한 친구. 집이 어려워 대학 안 가고 주야(晝夜)공장 일하면서 돈 버는 친구. 전문대 게임학과 나와서 중소기업 전전하는 친구. 각자 다른 삶이 모두 실패사례들로 뭉뚱그려져 조소거리 내지는 반면교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이준석은 청년 남성을 대의 할 수 있는가

    ‘이준석은 유능한가?’라는 물음은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 ‘이준석이 과연 유능한 보수 정치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는 대답하기 어렵다. 이준석이 표방하는 가치로는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청년이 고시와 취업에 목숨 걸어야 하는 현실에서 해방돼야 하는데, 이준석은 오히려 그러한 경쟁이 정당하다고 옹호한다. 그가 말한 교육 정책 또한 그 가치관의 일환이다. 다음은 이준석이 6월 4일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어 한 말이다.

    “대한민국이 단 하나의 어린 학생도 낙오시키지 않도록, 한국형 낙오방지법과 공교육 강화에 대한 해법을 우리 당이 앞장서서 만들어 내겠다.”

    낙오라니, 공부 좀 못 하는 학생은 곧 낙오자라는 소리 아닌가. 이러한 정책으로는 청년 문제를 둘러싼 본질을 바꿀 수 없다. 어른들은 말했다. 꿈을 가지는 청년이 되라고. 청년들은 깨달았다. 그 말이 위선임을. ‘꿈을 가지는 청년’이란 말을 뜯어보면, 겉면엔 성공사례가 번들거리고 있지만, 바닥엔 그보다 훨씬 많은 실패사례가 포장재가 되어 깔려 있다. 어른들은 성공의 포장재가 되어버린 삶에 대해 결코 말하지 않는다. 용접면 너머로 본 이준석 또한 아직까지는 그 어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그가 당대표가 되길 기원한다. 어쨌건 낡은 정치판에 새로운 캐릭터의 유입은 좋은 일이다. 여당의 긴장의 끈을 조일 자극제가 되어줄 수도 있다. 지금 민주당에는 몸을 사리지 않고 자기 뜻을 관철하는 젊은 정치인이 없다. 지지자들이 몰려와서 조금만 야단치면 목소리가 쪼그라들기 일쑤다. 태극기 부대의 공세를 코웃음으로 넘겨버린 이준석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그의 세계관까지 찬성하는 건 아니다. 대한민국은 조금 더 따뜻해져도 된다. 작금의 한국은 청년에게 너무도 냉혹하다. 그 차가운 세계를 그대로 내버려두자는 이준석은 결코 ‘청년을 위한 정치인’이 아니다.

    #천현우 #이준석 #능력주의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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