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호

mRNA, 코로나로 검증 시작한 만병통치의 꿈

컴퓨터 프로그래밍처럼 질병 맞춤형 대응 가능

  • 박원익 더밀크코리아부대표 wonick@themilk.com

    입력2021-06-0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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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RNA, AZ·얀센 비해 예방률 20%p 높아

    • 새 질병 발생해도 한 달이면 대응 가능

    • 백신 아닌 암 치료제 개발하던 기술

    • “암 치료 초석, 2년 후엔 암 넘어서고 싶다”

    • “AI, IT기술과 합쳐져 생명 신비 풀 열쇠”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린 카운티의 화이자 백신 접종 현장. [조슈아 라우 제공]

    미국 샌프란시스코 마린 카운티의 화이자 백신 접종 현장. [조슈아 라우 제공]

    “사진 찍게 해줄게요. 지금 찍으세요!”

    4월 2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시티 인근 마린 카운티. 대형 페리 선착장인 ‘라크스퍼 페리 터미널(Larkspur Ferry Terminal)’이 수십 대의 승용차로 가득 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접종 장소였다. 이날 백신 1차 접종을 예약한 홍콩계 미국인 조슈아 라우(31) 씨와 동행해 현장을 살펴봤다.

    터미널에서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방식으로 코로나19 백신접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생각보다 체계적이고 밝은 분위기였다. 현장 직원 및 자원봉사자들은 승용차로 다가와 대기자가 긴장하지 않도록 친절하게 접종 절차를 안내했고, 접종 담당 의료진 역시 사진 촬영을 허용할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접종 대기, 예약자 신원 확인, 접종, 2차 접종 예약까지 모든 절차가 30여 분 만에 끝났다.

    코로나19 백신에서 폭발한 mRNA의 위력

    이날 라우 씨가 맞은 주사는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Pfizer)가 개발한 mRNA(메신저 리보핵산·전령RNA) 기술 기반 백신이다. 그는 운전석에 앉은 상태에서 차량 문만 열어 주사를 맞았고, 접종은 5초 정도 만에 간단히 끝났다. 라우 씨는 “팔이 살짝 뻐근하긴 했지만, 크게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접종 후엔 그에게 곧바로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는 접종 확인증이 제공됐다. 스마트폰으로 2차 접종 예약을 완료하자 그 자리에서 e메일과 문자로 예약 확인 메시지가 날아왔다.

    한때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미국은 최근 백신 접종에 집중, 빠르게 상황을 개선시키고 있다. 백신을 바탕으로 ‘집단 면역’을 형성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5월 1일 기준으로 미국 성인의 55%가 코로나19 백신을 1회 이상 접종했다.



    이런 전략을 뒷받침한 것은 화이자, 모더나(Moderna) 같은 제약기업이다. 이들이 가진 mRNA 백신 개발 기술 덕분에 빠른 속도로 백신 생산에 성공하면서 대대적인 백신 배포 및 접종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화이자는 독일 바이오엔테크(BioNTech)와 손잡고 작년 말 mRNA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약 1년 만의 일로, 역대 주요 바이러스 백신 가운데 가장 단기간에 개발된 것으로 손꼽힌다. mRNA 백신을 상용화한 최초 사례이기도 하다.

    바이오엔테크는 지난해 9월 중순 스위스 기업 노바티스로부터 독일 서부 마부르크에 있는 백신 생산시설을 인수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 결과 미국은 작년 12월 mRNA 백신접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화이자와 함께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부터 코로나19 백신 승인을 받은 모더나 역시 mRNA 백신 개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2010년 매사추세츠주에 설립된 이후 줄곧 mRNA 연구에 집중하고 있으며 관련 업계 대표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모더나는 내부적으로 mRNA를 “생명의 소프트웨어(software of life)”라고 한다.

    mRNA란 무엇인가… 전령과 가짜 바이러스

    mRNA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이용해 체내에서 이와 유사한 단백질을 만든다. 가짜 바이러스에 대응하며 면역체계가 생긴다. [모더나 제공]

    mRNA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이용해 체내에서 이와 유사한 단백질을 만든다. 가짜 바이러스에 대응하며 면역체계가 생긴다. [모더나 제공]

    세포 속 DNA(데옥시리보핵산)는 개인의 고유한 유전정보를 보관, 보존하는 데 이용된다. 우리 몸은 이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생명 활동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든다. 이 과정에 RNA가 개입하는데, 여러 RNA 중에서도 mRNA는 특정 단백질을 만들어내도록 전달하는 구실을 한다. ‘전령(messenger) RNA’라고 불리는 이유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이런 mRNA의 특징을 활용한다. 코로나19 병원체를 둘러싼 스파이크(Spike·돌기 모양) 단백질과 똑같은 형태의 단백질을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mRNA로 명령하는 것이다.

    이 백신을 인체에 주입하면 mRNA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 코로나19 병원체의 핵심인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고 우리 면역체계는 이를 침입자(항원)로 인식해 스스로 항체를 형성한다. 추후 실제 코로나19에 노출될 경우 우리 몸 면역체계가 스파이크 단백질을 기억해 더 빠르고 정확하게 바이러스를 공격할 수 있다. 가짜 바이러스를 만들어 미리 훈련하고, 실전 대응 체계를 갖추는 셈이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예방률은 94~95%에 달한다. 존슨앤드존슨(얀센), 아스트라제네카 등이 개발한 백신보다 예방률이 최대 20%포인트 가량 높다.

    지금까지 백신은 바이러스의 독성을 약하게 만들어 사람 몸에 주입하는 형태로 개발돼 왔다. 약한 바이러스를 우리 몸에 침투시켜 자연스러운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방법이다. 이러면 나중에 실제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우리 몸 면역체계가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천연두가 크게 유행한 18세기 말 영국에서 우두(소의 천연두) 균을 투입해 천연두를 극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까지 백신은 독성은 약하지만 살아 있는 바이러스로 만드는 ‘생백신’, 열을 가하거나 약물 처리해 죽은 바이러스로 만드는 ‘사백신’ 등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뉘었다. 이 통념을 깨고 등장한 것이 바로 mRNA 백신이다.

    mRNA는 병원체의 독성을 약화하거나 아예 죽인 기존 백신보다 제조 과정이 훨씬 단순한 게 장점이다. 기존 방식을 이용할 때는 병원체 단백질 원료 성분을 배양하는 등 단계별로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2020년 1월 개발이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백신이 1년도 안 돼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mRNA에 기반을 뒀기 때문이다.

    mRNA 백신, 빠른 개발 속도·안전성이 강점

    백신에 사용하는 mRNA는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모방해 만든 인공 RNA라 비교적 합성이 쉽다. 죽은 바이러스를 사용하는 사백신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면역반응을 장기간 유도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병원체를 인체에 직접 투여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mRNA 기반 백신 연구는 약 1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됐으나 코로나19 유행 이전에는 실제 현장에 적용된 사례가 없다. 코로나19 백신 성공으로 mRNA 백신 및 관련 기술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mRNA 백신은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날 경우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신종 병원체가 등장하더라도 유전자 정보만 알면 한 달 이내 백신을 제조, 임상시험에 돌입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초기 모더나가 동물 임상시험을 위한 백신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6주에 불과했다.

    물론 제약도 존재한다. 화이자 mRNA 백신의 경우 영하 70도 상태에서 유통해야 하고 모더나 백신 역시 냉동고에 보관하는 것이 필수다. mRNA 자체는 안정적이나 mRNA를 감싸 인체 세포 내부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하는 지방 덩어리 ‘지질나노입자(liquid nanoparticle)’가 열에 약하기 때문이다.

    mRNA을 활용해 질병을 퇴치하려는 시도는 코로나19를 넘어 다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집트숲모기를 매개로 사람에게 전파되는 ‘지카바이러스’, 독감으로 알려진 바이러스성 호흡기 질환 ‘인플루엔자’,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돼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 ‘말라리아’ 등에 대한 mRNA 백신 임상시험이 현재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암 정복하려 만든 기술, 코로나부터 잡는다

    바이오엔테크를 공동 창업한 우구르 샤힌(왼쪽)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 바이오엔테크는 화이자와 함께 mRNA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기업이다. [바이오엔테크 홈페이지]

    바이오엔테크를 공동 창업한 우구르 샤힌(왼쪽)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 바이오엔테크는 화이자와 함께 mRNA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기업이다. [바이오엔테크 홈페이지]

    스테판 반셀(Stephane Bancel) 모더나 CEO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mRNA 백신은 소프트웨어처럼 빠르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mRNA 기반 코로나19 백신, 지카바이러스 백신, 독감백신의 차이는 뉴클레오티드(DNA, RNA 같은 핵산 구성 단위)의 순서뿐”이라고 했다. mRNA가 의약품 개발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식을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mRNA를 활용해 백신이 아닌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시도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특히 암 치료 분야에 대한 기대가 크다. 암세포는 비정상적인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다. mRNA 기반 암 치료제를 투여해 특이한 단백질을 체내에서 생성하면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이를 기억해 암세포만 골라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화이자와 함께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한 바이오엔테크는 애초에 암 치료제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다. mRNA를 활용한 항암 면역 치료법을 연구하던 중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강타하자 백신 개발에 뛰어든 것이다. 남편과 함께 바이오엔테크를 설립한 외즐렘 튀레지 바이오엔테크 공동설립자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하면서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면역 과학자의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튀레지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으로 우리는 암 치료제 개발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됐다”며 “암 치료제는 백신처럼 예방이 목적이 아니라 이미 암에 걸린 사람을 위한 약이다. 개별 암 환자를 위한 고도의 맞춤형 치료제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튀레지 공동설립자에 따르면 개별 환자를 위한 mRNA 암 치료제 제조에는 평균 4~5주가 걸릴 전망이다. 다만 암은 매우 복잡한 질병이기 때문에 환자의 면역체계, 암세포 인식력, 효능 등 데이터를 계속 축적해야 한다. 튀레지는 “mRNA 요법은 암 치료의 초석이 될 것이다. 2년 후엔 암을 넘어서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계 mRNA 기업도 주목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 외에도 ‘그린라이트 바이오사이언스(GreenLight Biosciences)’, ‘스트랜드 테라퓨틱스(Strand Therapeutics)’ 등을 주요 mRNA 기술 보유 업체로 꼽았다. 그린라이트 바이오사이언스는 2008년 미국 보스턴 지역에 설립된 바이오 스타트업이다. 현재까지 2억1500만달러(약 2400억 원)의 투자금을 조달했다. 스트랜드 테라퓨틱스 역시 미국 보스턴 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다. 2017년 설립된 신생 기업으로 현재까지 600만 달러(약 67억 원)를 투자받았다.

    2015년 실리콘밸리로 본사를 옮긴 후 활발하게 활동 중인 한국계 유전자 진단·치료 기업 ‘아벨리노랩(Avellino Labs)’도 있다. 이진(Gene Lee) 회장이 2008년 설립한 아벨리노랩은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자 가장 빠르게 진단 키트를 개발해 캘리포니아주에 공급하며 주목받았다. 이 회장은 “장기적인 부작용을 관찰해야겠지만, 이번 코로나19 백신으로 mRNA 관련 의약품 개발에 전망이 밝아졌다”며 “암 등 주요 질병 및 유전병과 분야에서 ‘RNA 테라피’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본다. 여기에 빅테이터, 인공지능(AI) 등 정보기술(IT)이 합쳐지면 인류는 생명 신비의 문을 열 수 있는 초입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이자 #mRNA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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