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에는 ‘참된 봄을 부르며’

• 참 절묘한 타이밍에 죽은 김일성

• 巨與, 왜 국가보안법 폐지 안 하나

• 공안 당국이 팔아준 수만 권의 책

• 생계형 혹은 순수한(?) 종북 인사들

• 지능적인 반북(反北) 활동가?

• 개방이 가장 효과적인 안보 교육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가 국내에 출판됐다가 교보문고를 비롯한 온·오프라인 대형 서점에서 판매를 중단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출간 즉시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이 일었고, 서점 측에서 ‘고객 보호’를 이유로 판매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책을 펴낸 출판사는 민족사랑방이다. 이 출판사 대표 김승균 씨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세기와 더불어’는 김 주석 생전에도 널리 알려진 책이고, 이걸 남북이 공유한다고 하면 북측도 무엇보다 큰 선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출간 취지를 밝혔다.

그런데 김승균 씨가 이런 사실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기와 더불어’는 이미 국내에 출판·유통된 적이 있다. 김일성 회고록은 1990년대에 ‘참된 봄을 부르며’라는 제목으로 대학가에서 ‘널리’ 읽혔다. ‘널리’라는 수식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1990년대 NL(민족해방) 진영에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 가운데 만약 그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핵심 그룹에 속하지 않았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개인적으로는 1만~2만 명은 족히 읽었으리라 추정한다. 하루에도 수백 종의 책이 쏟아지고 그 가운데 중쇄를 찍지 못하는 책이 태반인 국내 출판 환경에서 30년 전 그 정도 판매 부수는 거의 베스트셀러급이다.(게다가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은 ‘이적표현물’이!) 최근에도 중고서점을 통해 유통되는 것 같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검색해 찾아보시라.

김승균 씨가 과연 어떤 독자층을 바라고 ‘세기와 더불어’를 출간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북한에 관심 있는 운동권 출신 4050 독자층’을 염두에 뒀다면 크게 오판한 것이다. 혹시 추억을 기리는 차원에서 소장용으로 구입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웬만한 운동권 출신이라면 이미 다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참, 이번 ‘세기와 더불어’는 영인본으로 출판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소장 가치(?)를 염두에 뒀는지도 모르겠다.

돈이 남아도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단순 소장용으로 구입하기에도 가격이 꽤 비싸다. 여덟 권 가격이 무려 28만 원이나 한다.(참고로 과거 출판 당시에는 1권당 5000원 수준이었다.) 도서의 가치를 놓고 가타부타 평가하는 일은 감히 무엄하지만, 타깃(target) 독자층을 설정하는 측면에서나 적정한 가격 책정에서나 실패한 출판이 아닐까 싶다. 북한과 저작권 문제도 전혀 협의한 것 같지 않고.

생전 황장엽과의 대화

‘세기와 더불어’는 모두 8권으로 된 시리즈물이다. 1권부터 6권까지가 김일성 생전에 쓴 회고록이고 7~8권은 이른바 ‘계승본’이라 해 김일성 사후 유고를 모아 작가들이 만든 책이라고 북한 당국은 주장한다.

이 책을 둘러싼 논점 가운데 하나는 ‘김일성이 직접 썼느냐’ 하는 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총장과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를 지내다 남한으로 망명한 고(故) 황장엽 씨는 노동당 선전부 소속 작가들이 집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유명인의 회고록을 대필하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흔하니 그것을 이유로 가치를 깎을 수는 없다. 문제는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필자는 황장엽 비서 생전에 그를 여러 번 만났다. 한번은 김일성 회고록이 화제에 올랐는데, 김일성은 참 절묘한 시기에 죽었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함께 웃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일성 회고록은 1992년 1권이 나왔고, 김일성 사망 직후인 1995년 6권이 나왔다. 김일성 회고록은 6권까지를 ‘김일성 육성’으로 친다. 7~8권은 사후에 타인이 쓴 글이니 사실 여부에 논란이 있더라도 ‘작가들의 실수’로 치부하면 되는 일이다.

김일성 회고록은 참 절묘하게도 1945년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만약 김일성이 오래 살아 1945년 이후 역사를 서술했다면 해방 전후사의 내막을 직접 육성으로 고백해야 했을 것이고, 상당한 정치·외교적 문제를 낳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45년 이전 역사야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든, 백마 타고 일제를 타도했다고 서술하든, 광복은 오롯이 김일성의 공로라고 주장하든 특별히 누가 거들 필요 없는 ‘판타지 영웅 서사’에 불과하다. 역사학자들이 주목할 이유도 별로 없고, 주변국에서 상관할 이유 또한 없다.

하지만 광복 이후 역사는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6·25전쟁 준비 과정을 김일성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중국이 지원군을 보낸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는? 북한 정권 수립과 전후 복구 과정은? ‘모든 역사는 장군님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역사관은 1945년 이전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1945년 이후로는 전혀 불가능하다. 정치적 상대방과 국제 상호관계, 게다가 사료(史料)가 존재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일성은 아주 절묘할 때 죽은 것이다. 계속 살아 있었으면 북한 정권으로서도 위험할 뻔했다. 추측건대 살았더라도 1945년 이후 역사는 감히 회고록을 내지 못했을 테고, 대충 1945년 선에서 마무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상적인 정치 외교 감각을 갖춘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김정일이 김일성 회고록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마조마하지 않았을까 싶다. ‘늘그막에 기분 좋으라고 작가들 붙여 회고록 만들어줬더니 영감님이 선을 넘으려고 하네?’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1945년을 경계로 ‘선을 넘는’ 일이 된다.

더 깊게 들어가자면 김일성 회고록은 1937년까지가 육성본이고, 거기서 1945년까지가 계승본이다. 계승본은 김일성 부대가 이른바 대부대 선회작전을 하면서 중국에서 소련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사실은 여기서부터 외교 혹은 역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일성이 소련공산당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하는 논점들이 본인의 육성을 통해 드러나고, 김일성의 귀국 과정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김일성 회고록이 출간된 당시에는 소련이 이미 멸망했다.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지적할 상대가 없음에도 계승본에는 이런 모든 문제가 두루뭉수리 처리돼 있다. 비록 계승본이라고 하지만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김일성은 기막힌 타이밍에 숨을 잘 거둔 셈이다.

PD에서 NL로 전향(?)한 계기

대명천지 21세기 대한민국에 김일성 회고록이 재출간된 날, 어느 언론사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김일성 회고록을 읽었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읽었다고 앞의 이야기를 해줬다. 어떤 내용이냐고 묻기에 “민족 영웅 SF 판타지”라고 했고, 이번 출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허용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약간 어리둥절한 기색이기에 “만약 그것을 판금 조치한다면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를 황당하다는 이유로 판매 금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하고 물었다.

이적성 문제를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판매 금지하는 행위가 오히려 이적(利敵)이 아닐까 싶다. 그 책을 읽고 “김일성 장군 만세!”를 외칠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해리 포터’를 읽고 얄미운 사람 앞에서 “아바다 케다브라!”를 외치면 정말 죽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의 비율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꾸 그것을 금지함으로써 호기심만 잔뜩 높이는 역효과를 발휘한다. 금지에 저항하는 사람에게 자유의 수호자, 인권운동가 혹은 민주투사라는 투명 망토를 씌워주는 역효과는 물론이고. 마침 서울서부지법은 5월 14일 김일성 회고록의 판매·배포를 금지해달라는 일부 시민단체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원래 학생운동을 시작할 때 PD(민중민주) 계열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NL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1989년 운동권이 대학 교내에서 ‘꽃 파는 처녀’를 공연하려다 경찰이 진입하고 관련자가 구속되는 등 한창 언론에 화제가 됐다. 알다시피 ‘꽃 파는 처녀’는 북한 3대 혁명가극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어느 날 서점에 갔더니 소설 ‘꽃 파는 처녀’가 있지 않은가. 대체 얼마나 ‘이적’ 표현물이기에 그 난리를 피우는지 싶어 구입했다. 그날 밤을 꼴딱 세워 읽었다. 이런 책을 보지 못하게 기어이 가로막는 정권에 오히려 의구심이 생겼다.

상당히 작위적인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설’ 자체로 보자면 ‘꽃 파는 처녀’는 제법 감동적인 문학작품이다.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내용도 있지만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일이다. 그걸 읽고 “북한 만세!”를 외칠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물론 1989년 당시 상황은 달랐다 하더라도, 굳이 그렇게 과민 대응할 일도 아니었다고 본다. 어쨌든 그리하여 노태우 정부는 PD계열로 갈 수 있었던 초보 운동권 한 명을 NL로 인도해 준 셈이다.

‘강철서신’ 또한 그렇다. NL의 교과서라 불리는 ‘강철서신’도 공안 당국이 작성자를 지명수배하고 거물급 간첩이라도 포착한 것처럼 유난을 떨더니 더 유명해졌다. 복사본을 구하지 못해 운동권 내부에서 난리였고, 결국 책으로 묶여 나왔다. 족히 수만 권 정도를 공안 당국이 팔아주지 않았을까 싶다. ‘미제침략사’니 ‘자본론’이니 ‘피바다’니 하는 책들이 다 그렇게 팔려나갔다.

평양방송을 종편 채널로 시청할 날

화제를 돌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개헌까지 시도할 수 있는 충분한 의석을 갖고 있음에도 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자신이 국보법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제는 줄줄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는데도 말이다. 국보법 폐지를 민주주의자의 징표처럼 앞세우던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정당에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국보법을 당장 폐지할 수는 없어도) 여야 의견이 모이는 범위에서 개정하자”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집권 5년차가 되도록, 이토록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갖고도 국보법 개정을 위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민생’이 우선이라 그러는 것일까? 그렇다면 민생과는 전혀 관련 없는 검찰개혁에는 왜 그리 열성인 걸까? 이른바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이 지금은 국보법 개폐에 그리 열성을 보이지 않는 이유 또한 꽤 아리송하다.

차제에 북한에 대한 모든 것을 활짝 열었으면 좋겠다. 김수영 시인이 ‘김일성 만세’라는 시에서 “김일성 만세 / 한국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 인정하는데” 있다고 노래했는데, 정말 광화문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치는 사람이 있더라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김일성 회고록은 물론이고 노동신문도 자유롭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평양방송도 안방에서 종합편성채널처럼 시청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릴 것 같은가? 우리 사회의 사상적 토대가 그리 허술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아니 이건 사상의 문제도 아니다. 북한의 우상화가 어디 ‘사상’과 관련한 일인가. 판타지 소설을 현실로 착각하느냐 하는 문제이고, 우리 국민이 그 정도로 우매하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물론 과거 필자처럼 ‘빠져드는’ 일부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차라리 공론의 장으로 끌어냄으로써 우리는 그들을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을 지하에 숨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 지하에서 자기들끼리 양심의 자유를 지키고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옹호하는 민주주의자인 양 착각하도록 만들지 말자. 상대에게 피해자, 희생자, 순교자 프리미엄을 안겨주는 것이야말로 토론에 있어 가장 어리석은 전제 아닐까.

김승균과 정세현

김일성 회고록 해프닝을 겪으며 눈여겨본 인물은 이 책을 펴낸 출판사 대표 김승균 씨다. 인터넷 댓글을 보니 그를 종북(從北)이라 비난하던데, 과연 그럴까? 그의 이력을 보니 4·19혁명 직후 돌출적 통일 주장이 난무할 때 운동단체 간부를 맡은 적 있고, 1970년대에는 김지하 오적(五賊) 필화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렀으며, 1980~90년대에는 유명 사회과학 출판사 일월서각을 운영하다가, 2000년대에는 평양에 돼지농장을 지어 기증한 흔적 등이 보인다. 그냥 낭만적 민족주의자 정도 아닐까 싶다. 이번에 언론 인터뷰에서도 “(김일성 회고록) 출판을 남북이 화해할 수 있는 계기로 잘 활용하기 바란다”고 하는 것을 보니 무척 순수한 분인 것 같다. 정치와 역사를 둘러보면 이렇게 ‘순수해서 안타까운’ 사람을 여럿 만난다.

북한 관련 NGO(비정부기구)에서 일한 때 필자는 통일운동이나 남북교류 사업을 하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은 크게 세 방향으로 분화했다. 첫째, 관성에 의해 그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북한의 현실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 없고 어쨌든 젊을 때부터 해온 일이니 그것을 유지하는 행위 자체를 신념이나 지조로 착각하며 무비판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죄송한 표현이지만, 자기만의 꿈나라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둘째, 북한을 상대하다가 완전히 밑바닥을 경험하고 치를 떨면서 떠난 사람들. 그리고 셋째 유형이 있는데, 운동권과 특별한 관련이 없고 별로 이념 지향적인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하리만큼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계형 종북이라고나 할까. 혹은 순수한(?) 종북.

특히 대북 인도지원 사업을 하는 파트에서 그런 분들을 종종 만났다. 어쨌든 지원은 해야겠고 ― 그것이 자기 사업의 성과니까 ― 그러려면 북한 정권에 밉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니 유난스러울 만큼 비굴하게 처신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북한 인민이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숭고한 의지를 밝히는 분도 만났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와 분수가 있는 법이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마치 무협지에서 주화입마(走火入魔·자신의 힘에 취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하는 것처럼 북한 정권에 몰입하며 어설픈 찬양을 하는 사람을 보면 가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북한 정권이 알아주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통일 멘토처럼 행세하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그런 전형적 인물 아닐까. 처음 정세현 씨가 햇볕정책의 수호자처럼 나서는 것을 보았을 때 개인적으로는 좀 의아했다. 내 기억으로는 1993~1994년 우리 정부가 북한 원자로 폭격까지 옵션에 포함하며 이른바 제1차 북핵 위기 당시 가장 강경파에 속했던 인물이 정세현 씨다. (정세현 씨는 당시 실무협상 담당자였다.) 물론 정씨는 ‘그때의 경험을 거치며 생각이 바뀌었다’는 식으로 변명하겠지만 그의 인생행로를 살펴보면 어떤 거창한 이념보다는 출세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는 영혼 없는 공무원의 전형으로만 보인다. 얼치기 초보 운동권처럼 정제되지 않은 말과 행동을 보면서 측은함마저 느낀다.

사실 북한 정권 입장에서는 남한의 이른바 생계형, 순수형 종북주의자들을 오히려 불편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다. 종북도 적당히 해야지, 이런 사람들 때문에 남북의 접촉면이 넓어지면 북한 주민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게 분명하고, 북한 체제로서도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 개인적으로는 어떤 종북주의자들은 지능적인 반북(反北) 활동가 아닐까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 정도다.

북한이 월북자들을 받지 않고 과거와 같이 체제 홍보용으로 내세우지 않는 것, 대남방송을 송출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 잇닿아 있다. 북한 정권 입장에서도 남북 간 경쟁은 이미 깨끗이 끝났다고 보는데 낯간지럽게 월북자를 체제 홍보에 동원할 이유가 없다. 또 이제는 그런 비용을 감당할 여력조차 없을 만큼 북한 경제가 심각한 것이다. 차라리 남북 합의 이행을 명분으로 남한으로 돌려보내면서 “남한도 탈북자를 받지 말라”거나 “남한도 대북방송을 송출하지 말라”고 하는 편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자, 우리는 거리낄 것 없다”

각설하고, 북한에 대한 모든 것을 활짝 열어놓고 “자, 우리는 거리낄 것 없다”는 태도로 나가는 것이 오히려 북한 정권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그깟 회고록 가로막고 인터넷 선전매체 접속 차단한다고 무에 얻을 것이 있겠는가. ‘우리가 열었으니 너희도 다 열라’고 하는 편이 더 낫다. 아니, 북한이 열든 말든 그것도 상관 말자. 우리는 다 열어놓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북한 주민들에게는 그 어떤 대북 방송 못지않은 사상적 충격이 될 것이다.

그러니 김일성 회고록을 허하라, 우리 집 안방에 평양방송을 허하라, 광화문광장에 “북조선 만세”가 울리게 하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그 어떤 안보 교육보다 효과적인 교육이 될 것이다. 혹시 이런 점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 정부도 ‘적당한 통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보안법도 그래서 개정조차 않는 것 아닐까? 민주당 관계자들이 그리 전략적인 사고 능력을 갖춘 분들 같지는 않지만, 나름의 음모론을 꺼내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음모론이 교통방송의 전매특허만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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