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호

왜 김종인은 文과 대화할 때 녹음기 켜라고 했을까

[노정태의 뷰파인더㊱] 대통령 말에 ‘공신력’이 사라졌다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입력2021-05-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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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황 따라 둘러대는 정권의 습속

    • 대통령이 꺼낸 ‘원전’ 가짜뉴스?

    • 백신 받아놓고 “군사훈련은 어렵다”

    • ‘악의의 거짓말’ 가까운 언어 구사

    • 누구도 진지하게 듣지 않고 믿지 않는…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5당 대표 초청 오찬간담회에 앞서 각 당 대표들과의 환담 후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왼쪽부터 정의당 여영국, 열린민주당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문 대통령,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5당 대표 초청 오찬간담회에 앞서 각 당 대표들과의 환담 후 오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대규모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왼쪽부터 정의당 여영국, 열린민주당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 문 대통령,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다. 명암이 갈렸다는 말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 대단히 깊고 심각한 상처를 남겼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권 4년을 겪으며, 우리는 ‘대통령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됐으니 말이다.

    이것은 어쩌면 문 정권의 출범을 앞둔 시점부터 예견된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2016년 4월 8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둔다면 미련 없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선거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호남 표심만 놓고 보면 사정이 달랐다. 광주와 호남 지역 23석 중 3석만을 얻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은 약속했던 정계 은퇴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해 11월 15일 “광주와 호남에서 우리 당이 지지받기 위한 그런 여러 가지 전략적인 판단으로 했던 발언”이라고 정당화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어땠을까. 취임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던 2017년 5월 30일의 일이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의 개수를 놓고 사달이 벌어졌다. 국방부 보고에 따르면, 사드 발사대는 총 두 대였는데 알고 보니 네 기가 더 있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안 문 대통령은 국방부에 진노했다. 윤영찬 당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의 언론 브리핑에 따르면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사드 발사대가 총 여섯 기 들어와 있던 것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밀반입’된 것 마냥 문제 삼았던 사드 발사대 4기는 경북 칠곡 왜관의 캠프 캐럴에 보관돼 있었다. 이는 2017년 4월 28일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게다가 사드란 본디 1개 포대가 6기의 발사대를 갖추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국내에 1개 포대가 들어와 있다면 발사대가 총 6기 들어와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마치 완전히 장전된 리볼버 권총 한 자루가 있다면 총알이 여섯 발 들어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1368명이 사망했다?

    이 간단한 사실관계를 청와대가 몰랐을까? 몰라서 그런 논란을 벌였을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상황에 따라 아무렇게나 말하고 둘러대는 문재인 정권의 습속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후로도 계속 같은 패턴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의 최대 관심사업 중 하나인 ‘탈원전’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19일 경북 월성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행사에 참석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2016년 3월 기준으로 총 1368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사고 후 방사능 영향으로 인한 사망자나 암 환자 발생 수는 파악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사실관계부터 명확히 밝혀보자.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총 몇 명일까?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만 명을 떠올리는 이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명이 사망했다. 그들은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죽은 것도 아니다. 대지진과 쓰나미가 닥쳐왔던 3월 11일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원전 내 방사성 물질이 유출된 것은 3월 12일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두 명의 사망자마저도 방사능이 아니라 지진과 해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1368명이라는 사망자 숫자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2016년 3월 6일자 ‘도쿄신문’의 보도를 오역한 것이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그 주변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9만9000여 피난민은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하여 건강이 나빠지고 기존 질병이 악화돼 죽은 이가 그 시점에 1368명이었다.

    방사능 영향으로 인한 사망자는 아예 없다. 암 환자 발생 수 역시 집계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암 발생을 유발할 정도로 많은 방사능이 인구 밀집 지역을 향해 유출되는 일이 애초에 벌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놓고 볼 때 “사고 후 방사능 영향으로 인한 사망자나 암 환자 발생 수는 파악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틀린 말이 아니었지만 맞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악의적인 가짜뉴스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일국의 대통령 입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수많은 ‘가짜뉴스’ 중 단연 최악이었다.

    청와대 “‘관련’ 자가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현지 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 야외 테라스에서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가 메뉴로 오른 오찬을 겸한 단독 회담을 갖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1일(현지 시간) 백악관 오벌 오피스 야외 테라스에서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가 메뉴로 오른 오찬을 겸한 단독 회담을 갖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트위터]

    일본 정부에서 진지하게 항의한 것은 당연한 일. 청와대로서도 끝내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었기에 2017년 6월 28일 정정보도를 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원전 관련 사망자 수인데, ‘관련’ 자가 빠졌다”며 “일본에서도 발표할 때 원전 관련 사망자 수였는데, 저희 연설팀의 착오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퍼뜨리고, 방사능 공포를 조장하여 국내의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당시는 문 대통령이 취임한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주변 강대국이 결부돼 있는 사안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잘못된 정보를 유포했다. 이유와 동기를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드 반대 여론을 부추겨 임기 초 야당의 공세를 무마하고자 했고, 거짓에 기반한 방사능 공포를 들쑤셔 탈원전 정책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집권 중반부의 사건들은 지면 관계상 건너뛰고, 최근의 사례로 넘어와 보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도 그러한 패턴은 똑같이 확인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군 55만 장병 전원에게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의 가치를 재확인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한국군에게 코로나 백신을 제공하고, 한미동맹을 굳건히 한다. 두 전제를 합치면 나올 수 있는 결론은 단 하나다. 계속 연기되어왔던 한미연합훈련을 올해는 기동훈련까지 포함하여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 가 있을 때는 미국의 말에 모두 동의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정상회담을 마친 문 대통령은, 한국에 돌아오더니 여야 5당 대표를 초청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로 대규모 군사훈련이 어렵지 않겠느냐.”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이 이렇게 정확하게 어울리는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코로나 걱정하지 말고 한미연합훈련 하자는 뜻에서 백신을 제공하는데, 그걸 덥석 받아놓고 안방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코로나 때문에 군사훈련 어려워’라고 하다니. 미국이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아닐까? 문 대통령에게 미국 측이 대접한 ‘크랩 케이크(crab cake)’가 미국 속어로 무슨 뜻이냐를 놓고 인터넷에서 작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에 돌아와 말을 바꾼 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왠지 그 해석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녹음기와 ‘딴 소리’

    현실 속에서 정치하는 정치인이 자신의 말을 100% 지킬 수는 없다. 정치인은 세상 온갖 이슈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선거를 앞둔 시점에는 당선되기만 하면 이런 저런 것을 해내겠노라는 공약을 해야 한다. 그 모든 공약을 다 지키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정치인은 때로 ‘팩트’를 거스르는 발언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 그 시점에는 다소 허황될지라도 대범한 제안을 할 필요도 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거나,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를 2년 안에 극복하겠다던 김대중의 약속 등이 그런 경우다. ‘객관적’으로 ‘팩트’만 놓고 보자면 불가능한 것 같았지만 그런 ‘선의의 거짓말’은 국민에게 힘을 불어넣었고 결과적으로는 거짓말이 아닌 게 됐다.

    하지만 그간 문 대통령이 보여준 언어 구사 행태는 그런 ‘선의의 거짓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악의의 거짓말’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약 뿐 아니라 극히 민감한 외교 안보 사안에 있어서까지 청와대와 대통령이 앞장서서 가짜뉴스를 유포하거나 타국 정상과 한 말을 손바닥처럼 뒤집어버리는 등의 행태가 임기 내내 이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문재인 대표와 대화할 때는 녹음기를 켜놔야 한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이다. 어디 한국인뿐일까. 문 대통령의 오락가락 화법에 심지어 북한도 진저리를 낼 지경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15일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남북 협력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꺼낸 표현을 보면 분노와 짜증을 동시에 묻어난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신의와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사람이다.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남조선(남한) 당국이 이행해야 할 내용을 제대로 실행한 것이 한 조항이라도 있느냐.”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한미정상회담처럼, 한국에 와서는 딴 소리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대북관계에서마저도 ‘왜 너는 말이 달라지냐, 왜 말을 지키지 않냐’는 비난을 듣고 있다는 소리다.

    이 글은 문재인이라는 사람의 언어 습관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온 나라와 국민을 대표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에는 ‘공신력’이 사라졌다. 한국 대통령의 말을 누구도 진지하게 듣지 않고 믿지 않게 됐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 정권 5년이 아니라 5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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