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생애 그대로 담은 소 聯作
1950년대 소 그림들이 가장 유명
한 점당 최고 47억 원에 팔리기도
소 연작은 20세기 우리 민족의 자화상
작품 인수戰이 매력적인 일화 만든다
2021년 4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미술품 중 하나인 이중섭의 ‘황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들의 공통점은 우리가 좋아하는 이중섭의 소 그림이라는 점과 최근 10여 년 사이 이런저런 이유로 소장처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소장처가 바뀌었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이는 해당 미술품의 일생에서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35억6000만 원짜리 황소, 47억 원짜리 황소
2010년 35억6000만 원에 낙찰된 이중섭의 ‘황소’(1953~1954년경)는 현재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 걸려 있다. 그림 앞에 서면 무언가 꿈틀거림이 느껴지고 그림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명작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동시에 자꾸만 어떤 이야기가 떠오른다. 소장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의 주인은 안병광 유니온제약 회장이자 서울미술관의 설립자. 그는 미술품 컬렉터이기도 하다.그는 젊은 시절 제약회사 말단 영업사원이었다. 너무 힘들어 “영업을 그만둬야겠다”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고 다니던 1983년 여름 어느 날 오후. 영업 도중 갑작스레 쏟아진 비를 피하려 어느 액자가게의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그때 우연히 진열대에 전시된 그림 한 점과 눈이 마주쳤다. 황소의 강렬한 눈빛과 육중한 몸짓. 그는 순식간에 그림에 빨려들었고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의 꿈틀거림을 느꼈다. 그는 그 그림을 갖고 싶어졌다. 액자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그건 복제품이라고 했다. 그러곤 “원작을 사려면 좋은 집 한 채는 팔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 그는 복제품을 구입하고 돌아서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23년이 흘렀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유니온제약의 회장이 됐다. 안 회장은 2010년 그 황소 그림 원작이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내면이 또다시 꿈틀거렸고 기꺼이 거액을 준비했다. 안 회장은 그렇게 이중섭 ‘황소’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서울미술관의 ‘황소’ 앞에서 이 비화를 떠올리면 이 그림이 더 좋아진다. 내게도 무언가 꿈틀거림이 찾아올 것 같다.
2018년 3월 서울옥션에서 47억 원에 거래된 이중섭의 그림 ‘황소’. [동아DB]
그런데 이 작품을 경매에 내놓은 사람은 35억6000만 원짜리 ‘황소’를 구입했던 안 회장이었다. 이 작품은 이보다 2년 앞서 2016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중섭 탄생 100년 특별전에 출품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안 회장이 이 작품을 언제 어떻게 소장하게 됐는지, 이 작품을 47억 원에 구입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정도 지나면 어느 정도 알려질 것이다. 하나하나 알려질 때마다 우리는 47억 원짜리 ‘황소’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나게 될 것이다. 명작은 이런 것이다. 한 점 한 점에 이런 이야기들이 덧붙여질 때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더 오래 기억하고 더 멋지게 감상하며 감동을 받는다.
1950년대 작품이 가장 각광받아
이중섭의 소 연작 중 대표 격으로 꼽히는 ‘흰 소’. [홍익대박물관 제공]
우리에게 익숙한 이중섭의 소 그림은 대부분 1950년대에 그린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이 시기의 소 그림은 20여 점. 특히 1953~1954년 무렵 경남 통영에 머물 때 황소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35억6000만 원짜리 ‘황소’, 47억 원짜리 ‘황소’, 이건희 컬렉션 ‘황소’와 ‘흰 소’ 모두 이 시기에 그린 것이다.
이중섭의 소 그림 연작을 보면, 비슷한 구도의 그림이 여러 점씩 있다. 홀로 서 있거나 어딘가로 향하는 소를 그린 작품, 서로 싸우는 두 마리의 소를 그린 작품, 어딘가를 응시하는 황소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작품, 가족이나 아이들과 함께 등장하는 소를 그린 작품 등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그림은 홀로 서 있는 소를 그린 작품일 것이다. 홍익대 박물관 소장품인 ‘흰 소’(1953~1954년경)가 대표적이다. 35억6000만 원, 47억 원에 낙찰된 ‘황소’도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외에 이건희 컬렉션과 기타 개인의 소장품도 있다.
홍익대 박물관의 ‘흰 소’는 소 연작의 간판급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구도와 붓 터치, 동세(動勢) 등에서 황소의 역동성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황소의 얼굴 표정 또한 우직하면서도 은근히 정겹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역시 붓 터치가 아닐 수 없다. “흰 소를 표상하는 밝고 붉은 기운의 우윳빛을 사용해 소의 형태와 동세 그리고 골격을 강한 터치로 살려놓았다. 소머리 부분의 뿔과 눈 주변의 흰 선도 가히 일품으로, 일필휘지를 통해 소의 특징과 상태를 잘 드러내 준다. 게다가 흰 소의 앞 뒷발을 신체와 연결하는 견갑골(肩胛骨)을 표현한 붓 터치는 이 작품의 백미이다.”(정준모, ‘한국 근대 미술을 빛낸 그림들’, 컬처북스, 2014)
소 그림에 녹아 있는 이중섭의 모든 순간
황소 얼굴을 클로즈업한 그림도 인상적이다. ‘울부짖는 소’(1953~1954년, 개인 소장)가 대표적이다. 그림 속의 소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무언가를 하소연하듯 고개를 살짝 들어 저 먼 데를 응시하고 있다. 소는 다소 어려 보이고 눈망울은 약간 슬퍼 보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저 황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번에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증받은 이건희 컬렉션 ‘황소’도 이와 비슷하다. 이 황소 또한 눈망울이 슬퍼 보인다. 이중섭은 황소 그림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싸우는 소를 그린 작품은 때론 처절해 보이기도 한다. 서로 머리를 부딪치며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도 있고, 패배한 소가 땅에 쓰러진 모습도 있다. 47억 원에 낙찰된 ‘황소’는 홀로 있는 소를 표현했지만 격렬한 싸움의 흔적이 역력하다. 불쑥 솟아오른 어깨, 쫙 벌어진 다리, 솟구친 꼬리에서 싸움의 기세가 등등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싸움을 마친 소의 지친 모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볼 경우, 이마와 몸통, 바닥에 보이는 붉은 물감은 소의 핏자국이 된다. 다시 보니 이 황소는 다소 지친 모습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중섭이 좌절에 빠져 정신병원을 드나들던 말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중섭이 소 연작을 열심히 그리던 1953~1954년 무렵. 1953년이면 전쟁이 끝나고 제주와 부산 피란 생활도 끝났을 때다. 하지만 전쟁으로 가난이 찾아왔고 결국 이중섭은 일본인 부인과 어린 자식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다. 예상치 못한 가족과의 이별, 계속되는 가난. 어려운 시기였지만 이중섭은 1953~1954년 풍광 좋은 통영에서 그림에 전념할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다시 소를 만났다.
1940년대에 다소 초현실적, 신화적이던 소 그림은 1950년대 중반에 완숙한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림 자체도 능숙해졌지만 전쟁을 거치며 많은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전쟁과 죽음, 고독과 가난, 가족과의 이별, 지독한 그리움, 재회에 대한 갈망…. 이것이 그림에 대한 열망과 한데 어우러져 황소 그림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소 그림은 이중섭에게 자화상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황소는 결국 이중섭에게 사랑과 그리움 같은 것이다.
어딘가로 향하는 소, 몸부림치는 소, 싸우는 소, 울부짖는 소…. 이중섭은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그럴 것이다. 그런데 많은 평론가는 이중섭의 소에서 우리 민족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황소의 상징성이다. 이중섭의 소 연작은 그래서 20세기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러한 특징과 의미는 이중섭 특유의 강렬한 붓 터치에 힘입은 바 크다. 그의 붓 터치는 힘이 넘치고 거침이 없으며 그 덕분에 독특한 조형미가 꿈틀거린다. 우리나라 소 그림 가운데 단연 독보적이며 반 고흐를 떠올리게 한다.
끝나버린 이건희 ‘황소’ 이야기
1955년 미도파화랑 개인전 당시의 이중섭. [동아DB]
그런데 여기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들어가게 되면 앞으로 더는 소장처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일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니 보존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스토리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도 있다. 문화재나 미술품은 종종 주인이 바뀌면서 세간의 화제가 된다. 그런데 이번에 기증된 작품 2만3000여 점은 ‘소장처 이동’이라는 스토리를 축적할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국내 최고 수준의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들어가는데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햐느냐”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렇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계속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 작품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전시를 통해 대중과 만날 수만 있다면, 주인이 한두 번 더 바뀌고 나서 국공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들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훗날 이건희 컬렉션을 놓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더 진한 감동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일본의 미술학자 사이토 다카시는 저서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뜨인돌, 2010)에서 명작(명화)의 기준으로 표현력, 스타일, 자기 세계, 아이디어, 몰입을 꼽았다. 적절한 판단 기준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작품 내적인 측면에 해당한다. 즉 작가의 역량과 노력에서 명작이 탄생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다른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작품의 이동 즉 소장처의 변화다. 이를 달리 말하면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주인이 바뀌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화가 담기게 된다. 그 사연은 때론 드라마틱하고 때론 논쟁적이며 때론 감동적이다.
명작의 조건
대표적 사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다. ‘모나리자’가 처음부터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작품이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1911년 도난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예상치 못했던 도난 사건으로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을 떠나 이탈리아로 넘어갔고 이후 2년 4개월 만인 1913년 12월 31일 루브르로 돌아왔다. 도난, 불법적 무단 점유였지만 어쨌든 주인이 바뀐 것이었고 그 과정이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내 지금과 같은 최고의 인기작으로 부상한 것이다.우리가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작품성만으로 우리가 ‘세한도’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탄생하고 난 뒤 170여 년 동안 중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10명의 주인을 거쳐온 드라마틱한 과정이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주인이 바뀌는 과정은 작품의 중요한 내력이다.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는 다양한 측면이 담기게 된다. 작품의 미학에 대한 감동, 미술품을 소장하고픈 열정은 물론이고 과도한 탐욕까지 개입한다. 또한 문화재와 미술을 바라보는 시대상도 반영된다. 이것은 문화재와 미술품 소장처 이동의 사회·문화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은 2만3000여 점이 한꺼번에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렇다보니 개별 작품의 스토리 하나하나에는 주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어쨌든 우리가 좋아하는 이중섭의 ‘황소’와 ‘흰 소’가 이제 새로운 길을 떠났다. 그 행보 하나하나는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이건희 컬렉션 ‘황소’에도 분명 흥미로운 스토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 스토리를 확인하고 축적해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명작은 그렇게 태어난다.
#이중섭 #이건희컬렉션 #황소 #신동아
이광표
● 1965년 충남 예산 출생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 대학원 문화유산학협동과정 졸업(박사)
●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 저서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박물관’ ‘한국의 국보’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