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11월로 경선 연기” vs 이재명계 “원칙대로”
‘룰의 전쟁’ 스타트…친문 견제구에 강력 항의한 李
‘윤나땡’(尹 나오면 땡큐) 이은 ‘이나땡’…친문 비토 정서
‘제3후보론’ ‘이재명 탈당’ 대혈투…李 ‘통 큰 결단’ 관측도
여론은 ‘경선 연기 불가’…文心이 변수
이재명 경기도지사. [동아DB]
(왼쪽부터)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윤석열 전 검찰총장. [동아DB]
‘룰의 전쟁’ 스타트…與 ‘경선 연기론과 이재명의 선택
‘경선 연기’를 공론화한 전재수 의원(왼쪽)과 ‘경선 연기 불가’를 주장한 정성호 의원. [동아DB]
또 ‘이재명 대항마’를 자처하며 대권 레이스에 뛰어든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지지율 정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오는 9월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이 지사의 승리가 유력하다. 갈 길 바쁜 쪽은 친문 진영이다. 당장 대선판을 뒤흔들 변수가 없다면 시간이라도 벌어야 한다. 이른바 ‘제3후보론’을 띄워서 이 지사 측에 역전승을 거둔 뒤 대선 본선에서 나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는 시나리오다. 다만 대선 경선 연기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당 안팎에서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하다. 반대로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재명 지사가 친문 포용과 본선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른바 ‘통 큰 결단’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민주당 당헌 88조 2항에는 “대선후보 선출은 선거일 180일 전까지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다만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뒀다. 대선 경선 연기는 유력 주자 간 유·불리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만큼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당 지도부는 “당 차원에서 전혀 논의된 바 없는 사실무근”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뜨거운 감자’였던 ‘대선 경선 연기론’이 또다시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론화한 이는 친문 재선인 전재수 의원이다. 전 의원은 지난 6일 경선 흥행과 차기 대권 전략 차원에서 대선후보 경선 연기를 고민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전 의원은 “국민들이 코로나로 1년 이상 지쳐 있는 상황에서 경선을 진행한다면 민주당만의 리그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대선 180일 전에 이미 후보를 만들어놓고 국민의힘이 진행하는 역동적인 후보 경선 과정을 멀뚱멀뚱 쳐다봐야 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적절한 경선 시기로 코로나 집단면역이 가시권에 접어드는 11월을 제시했다. 친문 다크호스 주자인 김두관 의원 역시 “대선 승리 전략 차원에서 경선을 연기하는 게 좋겠다”고 거들었다.
요약하면 경선 일정을 두 달 연기해서 국민의힘과 비슷한 시기인 11월에 실시하자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코로나 피로감과 무더위가 한창일 때 경선을 치르면 국민적 주목도가 떨어지는 만큼 컨벤션효과를 고려해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사 측을 제외한 대부분의 캠프에서는 “지도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공을 돌리면서도 내심 공감대를 나타내고 있다. 물론 경선연기론이 제기된 건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월에도 친문 진영을 중심으로 물밑에서 제기된 바 있다.
다만 이재명 지사 측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일정을 수정하면 파열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재명계 좌장 격인 정성호 의원이 나섰다. 정 의원은 “특정인을 배제하고 다른 후보를 키우기 위한 시간벌기 아니냐는 프레임은 본선에서 굉장히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호남 지역구 의원 최초로 ‘이재명 공개 지지’를 선언했던 민형배 의원도 “패배를 앞당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공개 반발했다. 급기야는 이 지사까지 나섰다. 이 지사는 5월 12일 대선 조직인 ‘민주평화광장’ 출범식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이 안 그래도 삶이 버거운데 민생이나 생활개혁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원칙대로 하면 제일 조용하고 원만하고 합당하지 않나”라고 밝혔다. 표현은 부드러웠지만 현행 당헌당규를 준수해서 예정대로 대선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단호한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이나땡’과 ‘윤나땡’, 친문 진영 李 비토 정서
친문의 진짜 속내는 거칠게 이야기하면 ‘이재명 견제’다. 이른바 친문 제3후보론을 띄우기 위해 부족한 시간을 벌자는 것이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친노·친문 적자인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선 등판을 위한 스케줄의 일환’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구체적 방식도 거론된다. 4·7 재보선 무공천 원칙을 뒤집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전당원 투표로 신속하게 결정하면 아주 간단한 문제라는 설명이다.또 친문 주류에서는 이 지사의 본선 경쟁력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상당하다.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의제 설정 능력과 ‘사이다 발언’, 과감한 돌파력이 강점이지만 치명적 약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야가 총력전 체제를 벌이는 대선 국면에서 이 지사가 야당과 언론의 검증 공세를 극복하는 게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여권에서 ‘윤나땡(윤석열이 야권 대선후보로 나와주면 땡큐)’을 속삭이듯이 야권에서도 ‘이나땡(이재명이 여권 대선후보로 결정되면 땡큐)’을 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지사 주변과 과거 개인사가 대선 쟁점이나 악재로 떠오를 경우 지지율 하락은 불가피하고, ‘플랜B 전략’도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 밖에 이 지사에 대한 친문 진영의 광범위한 비토 정서도 무시하지 못할 요소다. 지난 2017년 5월 19대 대선 과정에서 이 지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과도하게 비판한 점과 2018년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언행을 문제 삼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당 주류인 친문 진영에서는 여전히 신뢰할 수 없는 후보라는 점과 언제라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꾀할 것이라는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사 측은 이러한 관측에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예정된 경선 일정을 4개월 남겨둔 상황에서 일방적인 힘의 논리로 게임의 룰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경선 연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은 부담이다. 앞서 민주당은 4·7 재보선을 앞두고 여론의 비난에도 기존의 무공천 규정을 뒤집은 바 있다. 민주당 대주주로 압도적인 파워를 자랑하는 친문 진영이 무력시위에 나선다면 당헌 개정은 일사천리로 이뤄질 수도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당이 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지사의 ‘민주당 탈당’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물론 이 지사는 재보선 이후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탈당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경선 연기 수용으로 ‘통 큰 정치인’ 승부수
당 안팎에서는 이 지사의 승부사적 기질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친문진영의 경선 연기론을 전격 수용하면서 ‘통 큰 정치인’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지사의 전국 지지 모임인 ‘민주평화광장’에 친노·친문 진영의 좌장 격인 이해찬 전 대표가 참여한 것도 친문 끌어안기 노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대목이다.한마디로 경선을 예정대로 하든, 연기하든 이 지사로서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이 지사는 과거 경선연기론과 관련해 “상식과 원칙에 따라서 하지 않겠느냐”며 원칙론을 강조하면서도 “당이 정하면 따라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표면적인 불가 방침에도 정치 지형 변화에 따라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적잖다. 9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 지사가 선출된다 해도 경선 연기를 둘러싼 앙금을 해소하지 못하면 본선에서 친문 진영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는 곧 본선 경쟁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아울러 민주당이 야권과 마찬가지로 11월에 대선후보를 선출할 경우 ‘여야 대선후보 동시 선출’이라는 정치 이벤트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경선 흥행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밖에 이 지사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먼저 선출될 경우 야권의 융단폭격이 두 달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선을 늦추면 검증 공세의 칼날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는 복안이다.
대선 경선 연기를 둘러싼 당 안팎의 논란이 지속되면서 예측 불허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경선 일정을 연기하려면 전당원 투표를 통한 ‘원 포인트 당헌 개정’이 필수적이다. 다만 이재명·이낙연·정세균 등 ‘빅3’ 주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9월 경선을 치를 수밖에 없을 거라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무공천 원칙을 훼손하면서 참패를 기록했던 4·7 재보선 학습효과를 고려하면 경선연기론은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거라는 진단이다.
여론은 ‘경선 연기 불가’ 우세…文心이 변수
여론 또한 예정대로 대선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5월 12일 여론조사기관 ‘에스티아이’가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민주당 대선경선 연기론’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결과, ‘특정 주자가 불리할 수 있으므로 당헌·당규에 따라 9월에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39.9%로 나타났다. 반면 ‘코로나19 상황과 경선 흥행 등을 고려해 경선 일정을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은 16.9%에 그쳤다. ‘경선 시기는 상관없다’는 의견은 35.2%였다.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경선연기론은 실체가 없다”면서 과거 이명박(MB) 정부 말기 MB와 친이계가 적대적 관계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미래권력으로 인정한 상황과 유사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친문 진영이 이대로 차기 권력을 넘겨줄 수 없다는 상황 탓에 답답해서 하는 이야기로 별 효과는 없을 거다. 송영길 대표도 비주류인 상황에서 친문 손을 들어줘서 굳이 당내 분란을 일으킬 것 같지 않다. 친문이 지지하기는 힘들어도 제3의 후보가 뜨지 않고 이재명 지사가 차기 지지율 30%를 넘어서면서 독주한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실상 차기 주자 관리의 영향력을 잃은 문 대통령도 이 지사가 독주할 경우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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