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멸치 국물에 할랑하게 말아 내는 ‘엄마표 잔치국수’는 우리 외삼촌들에게 추억의 음식이다. [GettyImage]
달무리만하게 놓이던 어머니의 흰 땅
뻔한 푸성귀를 ‘지지고, 다듬고, 다지고, 버무리는’ 일도 엄마가 하면 ‘연금술’이 된다. [김도균]
어머니, 여름날 저녁 칼국수 반죽을 밀었다/ 둥글게 둥글게 어둠을 밀어내면/ 달무리만하게 놓이던 어머니의 부드러운 흰 땅,/ 나는 거기 살평상에 누워 별 돋는 거 보았는데 (중략) 솥 열면 자욱한 김 마당에 깔려...... 아 구름 구름밭,/ 부연 기와 추녀 끝 삐죽히 날아 오른다 _문인수 詩‘ 칼국수’
배추는 굵은 소금으로 숨을 죽인다/ 미나리는 뜨거운 국물에 데치고/ 이월 냉이는 잘 씻어 고추장에 무친다/ 기장멸치는 달달 볶고/ 도토리묵은 푹 쑤고/ 갈빗살은 살짝 구워내고/ 아가미젓갈은 굴 속에서 곰삭힌다/ 세발낙지는 한 손으로 주욱 훑고// 안치고, 뜸들이고, 묵히고, 한소끔 끓이고/ 익히고, 삶고, 찌고, 지지고, 다듬고, 다지고, 버무리고/ 비비고, 푹 고고, 빻고, 찧고, 잘게 찢고/ 썰고, 까고, 갈고, 짜고, 까불고, 우려내고, 덖고(후략) _이문재 詩 ‘연금술’
엄마가 부엌에서 피워내던 밥 냄새
지금도 엄마 집에 가면 엄마 품에 안겨 철부지처럼 웃고 떠든다. 그런 자식 모습을 보는 게 엄마도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GettyImage]
흔하디흔한 밀가루 반죽이라도 엄마가 칼국수를 밀면 ‘부드러운 흰 땅’이 되고, 멸치를 달달 볶는 일도 ‘연금술’이 돼 입에는 맛이 되고, 마음에는 안정과 행복이 됐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를 마냥 피워내는 게 철없이 좋기만 했다.
땅거미가 져서야 들어온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는다/ 뛰노느라 하루를 다 보내고/ 종일 일한 애비보다 더 밥을 맛나게 먹는다/ 오늘 하루가, 저 반그릇의 밥이/ 다 아이들의 몸이 되어가는 순간이다 (중략) 아이들의 밥 위에 구운 갈치 한토막씩 올려놓는다/ 잘 크거라, 나의 몸 나의 生/ 죽는 일이 하나도 억울할 것 같지 않은/ 시간이 맴돌이를 하는 어느 저녁 때다 –황규관 詩 ‘어느 저녁 때’
엄마 생일이라고 모인 아들, 딸, 며느리와 사위는 남의 손으로 차린 저녁 한 끼 같이 하고 돌아와서는 다음날 점심까지 엄마 밥을 얻어먹었다. 당신 생일인데 당신은 먹지도 않는 온갖 밑반찬을 만들어두고, 미역국도 아닌 해장국거리 장만하고, 생김치 빨갛게 담가두고, 데친 오징어에 절인 무 섞어 칼칼하게 무쳐두고, 다 큰 손주 먹일 우유에 갖가지 과일까지 사두셨다. 엄마 냉장고를 열어보고 기막혀하는 나를 보고 “에미가 다 그렇다”고만 하신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중략)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_ 안도현 詩 ‘스며드는 것’
냉장고는 우리가 떠날 때 엄마 집처럼 다시 텅 비었다. 돌아오는 길에, 겨우 하룻밤이지만 당신 품에서 철부지처럼 웃고 떠드는 나이 많은 자식들 보는 게 엄마는 기뻤을 거라고. 내 멋대로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도 텅 빈 냉장고와 함께 텅 빈 집에 앉아 TV와 친구할 엄마를 떠올리니 ‘꽃게 뱃속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싶어하는 알’ 같은 나의 무력함과 무심함에 속이 되게 쓰리다.
#집밥 #엄마밥 #스며드는것 #안도현 #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