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네트워크 중심, 대선 실무 꿰뚫어
文 대통령과 이해찬 전 대표의 신뢰
끈 떨어져? 여전히 핵심 실세
지역 맹주 출마 ‘13룡 등판론’ 진원
이재명과의 만남과 ‘원팀’ 기조
친문의 반감과 호랑이 등에 탄 ‘키맨’
지난해 4월 17일 양정철 당시 민주연구원장이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를 나서고 있다. 그는 이날 “야인(野人)으로 돌아가겠다”며 사직 의사를 밝혔다. [뉴스1]
“그를 중심으로 실무 그룹 움직여”
양 전 원장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양정철의 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그는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킨 ‘광흥창팀’의 핵심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실무 그룹이 움직였고 정권 핵심부에 그와 일을 같이 했던 이들이 다수 진출했다. 한마디로 여권 내 네트워킹의 중심에 그가 있다. 그러나 집권 이후 그는 공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할 말을 할 수 있는 힘이 더 생겼다. 한마디로 ‘너희들은 자리라도 하나 차지하지 않았느냐. 나는 빈털터리다. 정권 재창출 외에 사심이 없다’는 식이다. 양 전 원장은 실무적으로 어떤 인물이, 무슨 일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꿰뚫고 있다. 아마 여권 내에서 대선판을 그만큼 실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광흥창팀은 2017년 대선 당시 서울 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인근에 사무실을 뒀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양 전 원장을 필두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더불어민주당 윤건영(전 국정상황실장), 한병도 의원(전 정무수석), 이진석 국정상황실장, 오종식 기획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탁현민 의전비서관, 김종천 전 의전비서관,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 송인배 전 제1부속비서관 등이 광흥창팀 핵심 멤버다. 13명 가운데 양 전 원장과 안 사장을 빼고 모두 청와대로 갔다. ‘광흥창팀’은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고갱이다. 그 광흥창팀의 중심에 양정철이 있다. 고갱이의 고갱이인 셈이다.
그러나 ‘양정철의 힘’이 ‘광흥창팀’과 관련해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다. 누구와의 신뢰 관계일까. 문재인 대통령과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다. 여권의 최고 수뇌부인 두 사람과 신뢰 관계가 있기에 정치적으로 힘을 쓸 수 있다. 문 대통령과는 2016년 히말라야 트레킹을 같이 갔고 책 ‘운명’을 기획한 것은 물론 광흥창팀을 이끌며 대통령선거를 진두지휘했다. 이해찬 전 대표와의 관계는 지난해 총선 때 이 전 대표가 비례위성정당 창당을 앞두고 관련 협상을 양 전 원장과 이근형 당시 전략기획위원장에게 일임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웬만한 신뢰 관계가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양 전 원장은 지난해 총선에서 사령탑 역할을 했고 대승을 이끌었다.
‘윤석열 추천설’로 힘 빠졌다?
2019년 10월 28일 양정철 당시 민주연구원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가 경기 수원시 모처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주연구원 제공]
“대통령은 2017년 5월 양정철과의 연을 끊었다. 그 뒤로 한 번도 그를 곁에 두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걸로 안다. (양정철이 문재인 대통령 측근이라는 말에) 속으면 안 된다. 양정철은 총무비서관까지 기다렸지만 이름이 나오지 않으니 마치 자신이 모든 자리를 고사하고 대통령을 멀리하는 것처럼 생쇼를 했다. 이 사람이 미국에 간다면 ‘자의 반 타의 반’이 아니라 순전히 ‘자의’로 가는 것이고, 조용히 있다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들어 올 것이다.”
양 전 원장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보는 이들은 몇 가지 이유를 든다. 우선 ‘윤석열 검찰총장 추천설’이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강하게 주장했던 인물 중 한 명으로 양 전 원장을 꼽는다. 양 전 원장 주변에서도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권과 계속 갈등을 빚다가 윤 전 총장이 결국 사퇴했고, 야권의 강력한 대선후보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양 전 원장이 비판받고 있다.
올해 초 이낙연 전 대표가 주장한 ‘전직 대통령 사면설’과 관련해서도 그가 눈총을 받고 있다. 이 전 대표가 사면설과 관련해 얘기를 주고받은 인물이 양 전 원장이라는 점에서다. 그는 또 지난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국정 기조를 통합적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변에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혁’을 내세운 ‘몰아치기 법안 통과’ 등 여권의 기조는 그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양 전 원장은) 청와대 인사 개편과 관련해서도 최재성 전 정무수석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밀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등용된 사람은 유영민 비서실장이었다.
그러나 양 전 원장이 영향력을 잃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손 전 의원의 주장은 말 그대로 주장이다. 문 대통령이 양 전 원장을 버렸다는 근거가 될 만한 사실이 드러난 바도 없다. 손 전 의원이 양 전 원장을 비판하는 배경에는 지난 총선 당시의 앙금이 남아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양 전 원장은 손 전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 등이 이끌던 열린민주당과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손 전 의원은 “많이 컸다”며 양 전 원장에 대한 불편함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손 전 의원이 대통령 영부인 김정숙 여사와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것에 착안해 김정숙-양정철 불화설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양 전 원장이 ‘윤석열 추천’ ‘이낙연 사면론’과 관련해 관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양 전 원장이 곤혹스럽기는 하겠지만 끈이 떨어졌다고 볼 근거는 아니다. 그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의 핵심 실세다.
오히려 눈길을 끄는 것은 양 전 원장의 구상이다. 정치권에 퍼져 있는 이른바 ‘13룡 등판론’의 진원지는 양 전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별로 인지도가 있는 인물들이 모두 대선에 출사표를 던져 박진감 넘치는 경선을 벌여야 내년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이낙연, 정세균 등 이른바 빅3 외에 호남 인물로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영남에서는 김두관 의원과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충남에서는 양승조 충남지사가, 강원에서는 이광재 의원이, 서울에서는 박용진 의원 등이 출사표를 던지는 구상이다.
이재명과의 만남과 이해찬 역할론
한편으로 보면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를 견제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런 경선 과정 자체가 여권 전체의 파이와 경쟁력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 뜻이 있는 사람은 다 나와서 한판 신나게 놀아보자는 것이다. 양 전 원장의 한 지인은 “양 전 원장은 대선이 여야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이런 측면에서 양 전 원장과 이재명 지사의 만남은 여러 의미가 있다. 친문 세력과 이 지사의 접점은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현실적으로 이재명의 힘을 인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전선에 서 있는 인물은 이해찬 전 대표다. 이 전 대표는 진작부터 이 지사를 정치적으로 옹호해 왔다. 지난 2018년 말 강성 친문 당원들이 “이재명 출당!”을 외칠 때 이를 막아준 것도 이 전 대표였다.
5월 12일 5선 조정식 의원이 주도해 출범한 ‘민주평화광장’이 이 전 대표가 운영했던 연구재단 ‘광장’의 이름을 계승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민주평화광장은 이 지사를 지원하는 전국 조직 성격을 갖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이 지사 측은 우원식 의원을 밀었다. 이 전 대표가 역할을 했다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여권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최근에는 이 전 대표에 더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이 지사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전 대표와 양 전 원장의 관계에서 유추해 본다면 이 지사와 친문 핵심 일부는 이미 상당히 간격을 좁힌 것으로 봐도 될 듯하다. 현실적으로 ‘지지율 1위 이재명’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정치적인 연결 다리를 놓는 것으로 해석된다. 혹 중간에 다른 변수가 돌출해도 이 지사를 제어할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해놓는 셈도 된다. 이 중심에 양 전 원장이 있다. 이런 구상대로라면 이른바 ‘원팀’ 기조를 유지하며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양 전 원장은 여권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책사이자 키맨의 역할
그러나 친문 일각에서 갖고 있는 이 지사에 대한 반감은 상당하다. ‘(양 전 원장이) 실세인 것처럼 움직이는 게 대통령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글이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배경이다. 이들은 양 전 원장이 이 지사를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한다. 자칫하면 양 전 원장이 여권 내 갈등의 핵이 될 수 있다. 친문 일각이 갖고 있는 이 지사에 대한 불안감은 정서적 측면의 반감(이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때 이른바 ‘혜경궁 홍씨’ 사건을 통해 표면화했다)도 있고 과연 이 지사로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이들은 이 지사가 검증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형수 녹음파일’ 등이 대선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공개될 경우 파장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등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본다. ‘제3후보론’이 식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책사이자 전략가인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여권 대선 정국을 움직이는 ‘키맨’이다. ‘이재명 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여권 대선 정국의 화두와 관련해 그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그는 친문과 이 지사를 아우르는 ‘원팀’ 기조를 구축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갈등의 핵이 돼 논란의 불씨를 키우며 희생양이 될 것인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그의 미래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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