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호

전쟁범죄 증거 명확하지만 푸틴 기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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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22-04-2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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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CC 39개 회원국 수사 개시 요청

    • 러시아 2016년 ICC 탈퇴, 사법권 인정 안 해

    • 권오곤 前 ICTY 재판관 “푸틴 관여 입증해야”

    ICC는 3월 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전쟁범죄 등의 혐의에 대해 수사를 착수했다. 사진은 4월 5일 관료 회의를 주재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모습. [AP/뉴시스 ]

    ICC는 3월 2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전쟁범죄 등의 혐의에 대해 수사를 착수했다. 사진은 4월 5일 관료 회의를 주재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모습. [AP/뉴시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당초 예상과 달리 장기화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군이 저지른 잔혹한 전쟁범죄에 책임이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기소해야 한다는 국제사회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美 바이든 “푸틴은 전범, 재판에 회부해야”

    러시아는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하고 수도 키이우로 진군하는 과정에서 남부 마리우폴과 헤르손 등 주요 도시를 장악했다. 러시아의 무차별 공습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무수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4월 6일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의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이 최소 1500여 명 사망하고, 220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국제법상 사용이 금지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한 정황도 포착됐다. 3월 2일 유엔 총회 긴급회의에서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러시아군이 제네바 협약에서 금지한 집속탄과 열압력탄 등을 우크라이나로 옮기는 영상을 봤다”고 증언했다. 집속탄은 작은 알갱이를 넣은 폭탄으로 터질 때 알갱이가 사방으로 튀어 나가 살상을 일으키며, 열압력탄은 주변을 진공상태로 만들어 살상을 일으키는 폭탄이다.

    전쟁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군은 격렬한 저항 끝에 4월 초 수도 키이우 등 일부 지역 탈환에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 영토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민간인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증거와 대량살상무기 사용 증거 등 전쟁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해 국제사회에 알리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6일 워싱턴에서 열린 북미건설조합 입법 회의에 참석해 연설하는 도중 러시아의 부차 집단 학살 의혹을 중대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월 6일 워싱턴에서 열린 북미건설조합 입법 회의에 참석해 연설하는 도중 러시아의 부차 집단 학살 의혹을 중대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AP/뉴시스]

    우크라이나의 피해 상황이 낱낱이 전해지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푸틴 대통령을 기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월 4일 AP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겨냥해 “그는 전범”이라고 지적하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와 관련해 그를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국제형사재판소(이하 ICC)도 회원국의 요청으로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3월 2일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회원국 중 39개국이 수사 개시를 요청해 증거 수집 작업을 개시했다”며 “예비 조사에서 관할 지역 내 범죄가 일어났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이미 찾았고, 인정할 수 있는 잠재적 사건들을 확인했다”고 알렸다.

    2002년 로마규정에 따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된 ICC는 △집단학살 △반인도 범죄 △전쟁범죄 △침략 범죄 등 네 가지 범죄 행위만을 다루는 상설 국제 재판소다. 관련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해당 국가가 기소하지 않으면 보완적으로 ICC가 관할권을 행사한다. 개인에 대한 형사책임만을 다룬다는 점에서 국가 간 법적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는 차이가 있다. 다만 보편적 영토 관할권이 없어 회원국 안에서 벌어진 범죄, 회원국 국민이 저지른 범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가 회부한 범죄만 수사하고 기소한다.

    현재 러시아는 ICC 회원국이 아니다. 러시아가 2014년 3월 무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를 병합한 이후 2016년 11월 15일 유엔 총회 인권분과위원회가 이를 비난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자 러시아는 이튿날 곧바로 ICC 회원국에서 탈퇴했다.

    우크라이나도 ICC 회원국은 아니지만 2013년 말 ICC의 관할권을 받아들였다. 이후 ICC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충돌했던 돈바스 전쟁을 비롯해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당시 전쟁범죄 행위에 대해 사전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4월 5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전쟁범죄 혐의를 거듭 주장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재판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AP/뉴시스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4월 5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전쟁범죄 혐의를 거듭 주장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재판에 넘길 것을 요구했다. [AP/뉴시스 ]

    “전쟁범죄 시효 없어, 핵심 증거 확보가 우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정황 증거는 나오고 있지만 실제로 푸틴 대통령을 기소하기에는 여러 제약이 존재한다. 국제법에 정통한 전문가들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2001년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 재판관에 선출돼 2016년까지 15년간 유고 전범들을 재판했던 권오곤 전 ICTY 상임재판관에게 푸틴 대통령 기소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물었다.

    권오곤 전 ICTY 재판관은 “현실적으로 ICC가 푸틴 대통령을 기소하기는 어려우나 명백한 증거를 확보한다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동아DB ]

    권오곤 전 ICTY 재판관은 “현실적으로 ICC가 푸틴 대통령을 기소하기는 어려우나 명백한 증거를 확보한다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동아DB ]

    권오곤 전 재판관은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산하 국제기구 소속 재판관이다.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사법시험 수석 합격 후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로 시작해 청와대, 서울형사지법, 법원행정처,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에서 근무했다. 1999년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뒤 대구 고등법원에서 근무하던 중 ICTY 재판관으로 선출됐다. 그는 2016년 3월 보스니아 내전 당시 민간인 25만 명을 학살한 혐의를 받은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에게 40년형을 선고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ICC가 3월 2일 러시아군이 자행한 전쟁범죄 증거 수집에 나섰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처벌을 위해 정부 차원의 ICC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푸틴 대통령을 헤이그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미국은 2002년 조지 부시 행정부 때 (미군보호법에 의거해) ICC 회원국에서 탈퇴했다. 미국이 기존에는 ICC에 적대적이었으나 지금은 달라진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다. 우선적으로 푸틴 대통령 기소 여부는 ‘얼마나 증거를 모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푸틴 대통령의 유죄 입증은 막연한 증거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범죄행위를 면밀히 밝혀야 하는데, 핵심 증거 없이는 기소하기가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집단학살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생존 증인을 확보해 증언도 공개하고 있는데 이것으로는 불충분한가.

    “물론 러시아군이 부차 학살을 행했다는 증거는 명확하다. 해외 언론을 통해 잔인한 학살의 결과가 보도됐다. 비인간적이고, 반인도적 범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부차 학살을 직접 명령했는지, 살상 행위를 알면서도 묵인한 것인지 등 구체적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을 전쟁범죄자로 기소하려면 그가 러시아군의 집단학살 행위를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명확한 증거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실한 증거를 모으기가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모두 ICC 비회원국이다. 비회원국은 유엔 안보리가 수사를 요구하면 되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분명해 절차상으로도 푸틴 대통령 기소는 어려워 보인다.

    “양국이 비회원국이지만 ICC에 관할권은 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하기 직전 2013년 말 우크라이나가 ‘우리는 ICC 관할권을 수락하겠다’고 하면서 우크라이나 내에서 벌어진 ICC 관할권 아래의 범죄에 대해서는 기소할 수 있게 됐다. 이번과 같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영토로 들어가 민간인을 상대로 범죄를 벌이면 ICC 관할권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ICC 관할권을 수락했으므로 수사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러시아는 ICC에 협조할 의무가 전혀 없다. 이런 이유로 앞서 말했듯 현실적으로 푸틴 대통령이 전쟁범죄에 관여했다는 증거 확보 없이는 기소가 어렵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은 임시 국제전범재판소를 통해 재판을 받았다. 푸틴 대통령도 전쟁 종료 이후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일단 ICC에 관할권은 있으니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국제범죄에는 시효가 없다. 따라서 전쟁이 종료된 이후에도 언제든 ICC에서 여건만 마련되면 기소는 할 수 있다.”

    푸틴이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도 걸림돌인데, 권좌에서 물러나면 기소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 아닌가.

    “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ICC 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법정에서는 현직 대통령에 대해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면책특권을 준다. 그러나 국제 법정은 국가원수라고 해서 면책특권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당국의 협조 없이 국가원수를 체포해 강제로 헤이그 법정에 데려올 수 있느냐는 것인데,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다.”

    ICC 이외 특별법정을 설립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시에라리온특별재판소, 국제유고전범재판소 등 특정 전쟁범죄와 관련해 특별법정을 세운 전례가 있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도 특별법정을 신설해 푸틴 대통령을 법정에 세울 수는 없나.

    “특별법정을 세우려면 당사국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러시아가 특별법정을 세우는 데 합의를 하든지, 유엔 안보리에서 의결해 세워야 한다. 그런데 두 가지 경우 모두 푸틴 대통령이 반발할 것이 분명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혜연 차장

    정혜연 차장

    2007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여성동아, 주간동아, 채널A 국제부 등을 거쳐 2022년부터 신동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동산, 재태크, 유통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미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가 되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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