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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 살아가기

임금격차 줄이고 일자리 나누자

‘헬조선 열정페이’ 없애려면…

  • 김용기 |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임금격차 줄이고 일자리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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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년 고용지표 줄줄이 하락
  • ● 올가을 대기업 신규채용도 감소
  • ● 3포세대→5포세대→7포세대→N포세대
  • ● 청년 일자리 위한 사회적 타협 시급
저성장 시대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 집단은 한국의 청년층이다. 이들은 노동과 가족 구성, 그리고 출산이라는 사회적 재생산 기능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있다. 청년세대에게 한국 사회는 오래전부터 ‘헬조선’이었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김모(24·여) 씨는 9월부터 시작된 하반기 입사 시즌에 대기업 및 중견기업 30개 사에 지원서를 제출했으나 서류심사를 통과한 곳은 중견기업 3곳에 불과했다. 그는 “지난해 겨울 대기업 인턴에 선발돼 마케팅 부문 직무경험도 쌓고 영어 스펙도 보강했지만, 서류심사 결과는 지난해보다 못하다”며 답답해했다.   



취업시장에도 수저계급론

입사 과정은 지난하다. 서류심사를 통과하면 인·적성 검사가 기다린다. 난도가 높아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최소 3단계의 면접이 기다린다. 대리, 과장급으로 이뤄진 실무자 면접, 임원 면접, 직무면접을 거쳐야 한다. 직무면접에선 30분 이상의 준비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며, ‘북미시장 확대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같은 까다로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아주 소수만이 몇 개월에 걸친 이 과정을 통과해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과정의 어딘가에서 탈락한 뒤 자괴감에 빠져 방황한다. 그리고 다시 스펙 쌓기, 영어 학원 다니기에 몰두하며 4〜5개월을 보낸다. 그러면 상반기 공채 시즌이 돌아온다. 3, 4월부터 자기소개서를 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서류심사조차 통과하기 어렵게 된다. 겨우 면접 기회라도 얻게 되면 “졸업 후 뭘 했나” “왜 졸업을 유예했나”… 하면서 꼬투리를 잡는 면접위원에게 시달린다.



취업시장에서도 ‘수저계급론’이 맹위를 떨친다. 부유한 집 자녀들은 해외 연수나 유학을 통해 높은 어학 점수를 확보한다. 알바(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취업 준비에만 집중한다. 내부자 정보도 확보할 수 있다. 이른바 ‘금수저’ ‘은수저’ 집안은 여러 경로를 통해 면접에 관한 유리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 같다고 보통 청년들은 생각한다.

올가을 대기업의 신규 채용(신입·경력)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9월 발표한 ‘2016년 500대 기업 신규채용 계획’에 따르면 응답 기업(210개 사) 중 48.6%가 지난해보다 채용 규모를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응답하지 않은 기업 중 상당수는 아예 신규 채용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렇게 청년층은 노동시장에 첫발을 내디디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더욱이 ‘괜찮은’ 일자리로 꼽히는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으로 진입하려면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1〜2년 졸업을 유예하면서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2015년 청년실업률은 9.2%로 2003년(8.0%)보다 더 악화됐고 청년고용률도 하락했다(2003년 44.4% → 2015년 41.5%). 질적 지표는 더욱 암울하다. 청년층의 첫 일자리 중 ‘계약기간 1년 이하’의 비중은 같은 기간(2003〜 2015년) 두 배로 상승(11.2% → 20.3%)했다. 비정규직 비율 또한 3.3%포인트(31.7% → 35.0%) 높아졌고, 청년층의 상대적 임금 수준은 비정규직의 경우 30세 이상 비정규직에 비해서도 심각하게 악화(80.6% → 69.5%)됐다(표 참조).

공식 실업률은 9.2%라고 하지만 청년층의 실질 체감 실업률은 최고34.2%에 달한다. 주당 근무시간이 짧아 전일제 근무를 원하는 경우, 비자발적 비정규직, 그리고 구직을 포기함으로써 실업자로 잡히지 않은 경우를 모두 합치면 그러하다. 공식 실업률의 4배에 달한다.

그 결과 청년 취업준비생 65만2000명 중 39.3%에 해당하는 26만6000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 대열에 합류한다. 4120명을 뽑은 올해 국가직 9급 공채시험엔 22만2650명이 지원했다. 사정 모르는 중장년들은 청년들이 안정된 직장만 선호한다고 비판하지만, 이들은 학력과 스펙보다 시험 하나로 승부를 가르는 공무원 시험이 공정하다고 여긴다.


체감 실업률 34.2%

이른바 ‘열정 페이’(무급이나 아주 적은 월급으로 취업준비생을 착취하는 것)는 사회적 지탄 속에서 오히려 증가했다. 2011년 44만9000명이던 것이 2015년엔 63만5000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청년고용의 17.0%다. 이들의 평균 시급은 2015년의 경우 최저임금 5580원(2017년 최저임금은 6470원)에도 못 미치는 4515원이다. 월평균 임금으로 계산하면 71만 원이다. ‘88만 원 세대’도 못되는 것이다.

괜찮은 일자리는 꾸준히 줄고 있다.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경제활동인구가 늘면서 일자리도 늘어났다. 하지만 늘어난 일자리의 대부분이 중소규모 서비스업과 자영업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2004년 이후 2014년까지 10년간 괜찮은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 일자리는 417만 개에서 433만 개로 4%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서비스업 일자리는 1472만 개에서 1800만 개로 22% 늘어났다.  

괜찮은 일자리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저성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활동 방식의 구조적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경제활동에서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승하는 ‘경제의 서비스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산업 내 도·소매업과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늘어나는 서비스업은 생산적 서비스보다는 생계형 서비스가 대부분이다. 생산성이 낮기에 임금 수준도 낮다.

기업은 핵심 직무 이외의 직무를 사내 및 사외 하청과 도급 계약으로 돌린다. 기존에 제조업에서 관리 및 사무를 담당하던 업무는 외주화했다. 제조업에 속한 일자리가 이젠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면서 질 낮은 일자리로 전락한다. 청년들이 그토록 원하는, 대기업의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는 지난 10년간 한국 제조 대기업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에도 정체되거나 줄어들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노동부 산하 근로기준분과 종신 행정관으로 발탁된 경제학자 데이비드 와일은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부터 기업이 핵심 비즈니스 모델에 직결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경제활동 영역을 과감히 털어버렸다고 지적한다. 일터가 이른바 ‘균열 일터(fissured workplace)’로 변했다는 것이다.

기존 기업에서 떨어져 나온 직종은 청소부, 경비원, 경리, IT 기술자 등이다. 한때 핵심적이라 생각되던 영역들도 이러한 추세를 거스르기 어렵다. 호텔 체크인을 담당하는 프런트데스크 직원, 가정이나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는 택배기사 등은 더 이상 해당 호텔이나 물류 회사와 고용-피고용 관계를 맺지 않는다. 업무상 연관성이 높은 기업과 개인이 독립적인 관계를 맺게 되면서 기업은 직접 고용에 따른 ‘괜찮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부담과 근로자의 안전을 포함한 법적 책무로부터 해방된다.  

인구 구조 변화도 청년층에게 불리하다. 한국 사회의 최대 인구그룹이자 이미 기존 일자리에서 퇴직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자영업과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주변부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하고 있다. 값싸고 인내심이 많은 이들 예비 노동력의 존재로 인해 노동시장 내에서 청년층의 가치는 더욱 하락하고 있다.  



니트족 163만 명

노동시장이 이런 상황이니 학교도 안 다니고, 직장에 다니지도 않으며,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청년층(15~29세) 약 950만 명(2014년 기준) 중 17.2%인 163만 명에 달한다.

2010년 3월, 그러니까 6년 전 서울대 커뮤니티 포털사이트 ‘스누라이프(SNU Life)’에 ‘20대들아, 대한민국의 미래는 필리핀이다’라는 글이 화제를 모았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지금은 빚을 내서 어떻게든 스펙 올리겠다고 수백만 원을 투자해서 어학연수까지 갔다 오지? 하지만 이게 다 무의미하고 노력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사회를 지배한다. 애초 출발선에서 내가 가진 현금이 없으면 어차피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사람들은 상위 1%가 되지 않으면 결국 노예일 뿐이란 걸 자각한다. 그런데 노예가 노예 위치에 있어야 사회가 안정되게 유지되는데, 노예들이 “난 노예 짓 안 할 거야” 하면서 하급 노동을 거부한다. 죽어라 일해서 노동력을 제공해줘야 할 세대가 노동을 하지 않고 니트족이 된다. 그리고 애를 낳지 않는다. “잉여 인생, 나로서 충분하다. 자식에게까지 고통을 줄 순 없다”며 출산을 거부하고 인간의 종족번식 본능까지 스스로 죽이는 놀라운 상황이 벌어진다. 여자들은, 어떻게든 돈 많은 선진국 사람들과 결혼하기 위해 혈안이 될 거고, 유흥업의 주 고객은 외국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산층 한국 남자들은 그냥 병신 취급 받기 시작하는 거고. 이게 필리핀의 현재이자 우리나라의 미래다.’

지난 7월엔 ‘43살 고시생이 알려주는 행복한 신림동 생활’이란 글이 SNS에서 눈길을 끌었다. 니트족의 일상에 관한 얘기인데, 이 43세 고시생은 생활비를 노모나 누나에게 의존한다. 과거엔 월 100만 원씩 받았지만 지금은 생활에 적응해 20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고시원비 15만 원만 있으면 된다. 전기료, 잡비 안 내니 달달한 인생이다. 돈 떨어지면 막노동 10번 해서 50만 원 벌고 그중 6만 원으로 수영장에 등록한다. 그러면 고시원 공동화장실이 아닌 수영장에서 샤워할 수 있고, 식당에서 알바하면 남은 반찬을 싸와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도서관에 책 펴놓고 사시(司試) 코스프레하며 어차피 결혼 생각도 없으니 편하게 수영하고 식당 가고 방에서 컴퓨터하며 지낸다. 날씨가 좋으면 관악산에도 올라간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청년 남성이 가족의 생계를 감당할 만한 안정된 일자리와 적정한 임금 수준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혼하기 어렵다는 실증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소득기준 10분위(상위 10%)에 속한 남성의 경우 기혼자 비율이 82.5%에 달하는 반면, 1분위(최하위 10%) 남성의 기혼자 비율은 6.9%에 불과했다. 여성 또한 9분위와 10분위의 기혼 비율이 각각 68.1%와 76.7%로 가장 높았다(그래프 참조).


N포세대

청년층은 좋은 일자리 부족에 따른 저소득으로 결혼과 출산 등 사회 재생산을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추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2016년은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40만 명 이하의 저출산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전의 청년세대는 취업과 승진의 기회를 그리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민주화를 통한 노조활동을 통해 임금소득 분배율을 높임으로써 기업 성장의 성과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특히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제외한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기업 성장에 따른 낙수효과를 전혀 못 누리고 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의 경우 임금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결코 낮지 않지만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그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다.

이제 한국의 청년층은 노인층과 함께 한국 사회의 새로운 빈곤계층으로 등장할 전망이다. 희망의 탈출구를 쉽게 찾을 수 없기에 청년층은 한국 사회를 ‘헬조선’ ‘지옥불반도’ ‘망한민국’으로 부른다.

빈곤계층으로 전락하는 이들 청년세대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에서 내 집 마련과 대인관계를 추가한 ‘5포세대’, 거기에 꿈과 희망 직장까지 더한 ‘7포세대’가 되고 있다. 포기할 것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는 점에서 ‘N포세대’가 됐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학기당 400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에 더해 주거비 부담까지 해결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은 청년이 많지만, 졸업 후 불안정하고 소득이 높지 않은 일자리를 얻으면서 청년의 상당수는 부채에 시달린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최근 20대 청년의 평균 부채가 2203만 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들은 최근 비은행 금융권의 공격적 영업 확대 대상이다. 30일 무이자대출 마케팅이 겨냥하는 층이 바로 청년이다. 이들은 안정적 소득을 확보하지 못하면 저소득 → 저신용 → 고금리 → 채무 악순환 → 신용불량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청년 고용의무 할당제 강화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청년층이 개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맞벌이일 것이다. 맞벌이를 안 하면 결혼하기 어렵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과거 남성 외벌이 시대의 사회제도가 온존하기에 예비부부의 맞벌이는 결혼 후, 출산 후 맞벌이로 이어지기 어렵다. 장시간 노동,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부족, 노동시간의 유연성 부족으로 인해 기혼 여성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은 지난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20~30대 청년들은 엄청난 인적 투자를 했지만 이들의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국가들보다 눈에 띄게 낮다.

획기적인 청년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일을 찾는 청년에게 괜찮은 일자리를 줘야 한다는 공동체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정규-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줄여 좋지 않은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청년층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대기업 노사, 공히 청년고용을 외면해온 무책임한 태도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맞벌이 시대에 맞는 기업문화 정비가 시급하다.

공공부문에서 획기적인 청년고용을 가능케 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한시적 목적세를 도입할 수도 있다. 기존의 청년고용 의무할당제를 강화하고,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청년수당과 지원금을 확대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김 용 기
● 1960년 강원 거진 출생
● 영국 런던정경대(LSE) 석사(경제학), 동 대학원 박사(국제정치경제학·금융)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 現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 저서 : ‘한국경제가 사라진다’,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금융위기 이후를 논하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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