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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비극으로 끝난 광해군 父子의 운명 |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에 대비하라

폐세자 이지의 ‘쇼생크 탈출’ | 을묘왜변과 조정의 대응

  • 허윤만 |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최두헌 |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비극으로 끝난 광해군 父子의 운명 |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에 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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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듀프레인이 탈옥에 성공해 벅찬 기쁨을 맛본 것과 달리, 이지의 탈출 기도는 허무한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는 낯선 땅 강화도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다 도와주기로 한 자들이 준비한 배를 찾지 못해 군졸들에게 붙잡혔고, 남편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폐빈 박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비통한 생을 마감했다.

이지가 탈출하다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정 신하들은 일제히 그를 죽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지만, 인조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일단 신하들의 청을 물리쳤다. 하지만 광해군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던 인목대비가 나서서 채근하자 인조는 더 이상 그의 죽음을 막기 어려웠다. 몇몇 대간도 처음에는 이지를 죽이라고 청했다가 나중에는 태도를 바꿔 오히려 성덕(聖德)을 그르칠 뻔했다고 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태도를 보였다. 당시 사관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그저 개인적인 처신에만 골몰한 조정 신하들의 작태를 이렇게 꼬집었다.



폐인 이지가 땅굴을 파고 도망치려 한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재촉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성상께서는 끝까지 목숨을 보전해주려고 하여 말씀에 간절하고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으니 그 지극한 덕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신하로서는 그 미덕을 받들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신하들은 법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구실로 분분하게 논쟁을 벌였다. 옥당(玉堂)의 신하들도 몇 번이나 말을 바꾸며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는 데 급급했으니, 임금을 덕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의리에 부끄러움이 있다 하겠다.

  -인조실록 1년 6월 25일




살아야 할 이유


꼼짝없이 죽음을 맞게 된 폐세자의 태도는 오히려 덤덤해 보였다. 의금부 도사 이유형이 와서 자진(自盡)하라는 왕명을 전하자 이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작 자결했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태껏 구차히 살아 있었던 것은 부모의 안부를 알고 나서 조용히 자결하려고 해서였다. 지난번 땅굴을 파고 탈출한 것도 이 때문이었으니 어찌 다른 생각이 있었겠는가.”(인조실록 1년 6월 25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목욕하고 의관을 정제한 이지는 문득 손발톱이 긴 것을 보고 깎고자 했으나 의금부 도사는 매몰차게 청을 거절했다. 죽고 난 뒤에라도 손발톱을 깎아달라고 도사에게 청한 이지는 부왕의 배소(配所)가 있는 서쪽 방향을 향해 네 번 절한 뒤, 원나라에 굴복하지 않은 송나라의 충신 문천상 이야기로 유언을 끝맺었다.

“문천상이 8년간 북경의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어떤 이는 그가 죽지 않은 것을 책망했으니, 어찌 그의 마음을 안 자이겠는가. 그가 죽은 뒤에 후대의 사람이 시를 지어 ‘원나라가 문 승상을 죽이지 않아서 임금의 의리와 신하의 충성 둘 다 이루었네’라 하였지.”(인조실록 1년 6월 25일)

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간 이지는 허리끈으로 스스로 목을 매었으나 줄이 끊어져버리자 이번에는 질긴 명주실 끈으로 다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아들 내외의 비참한 죽음이 전해지자 폐비 유씨는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뒤 세상을 떠났다. 광해군은 하루아침에 임금 자리와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다 잃어버렸다. 하지만 광해군은 이러한 처참한 처지에도 신세를 지나치게 비관하지 않고 모진 삶을 꿋꿋이 이어갔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낙망해 이내 세상을 떠난 연산군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후 그는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 나라에 변란이 계속되자 왕위 보전에 신경이 곤두선 인조에 의해 저 멀리 제주도까지 내쳐지는 신세가 됐다. 그리고 폐위되고 18년이 지난 인조 19년(1641)에 머나먼 남쪽 섬에서 임종을 지키는 이도 하나 없는 가운데 파란만장한 생을 마쳤다.

반정이라는 크나큰 정치적 사건 이후 폐출된 한 왕가의 삶은 이토록 처절하고 비극적이었다. 스스로를 문천상에 빗대며 죽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남기고도 죽음의 구렁텅이로 기꺼이 뛰어든 폐세자 이지, 그리고 숱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생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간 폐주 광해군. 같은 고난에 처한 두 부자의 선택이 다소 엇갈리는 듯 보이지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어디에 뒀는지를 두고 굳이 시비곡직을 가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오늘날 광해군은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것으로 한 많은 폐주 일가의 원혼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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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만 |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최두헌 |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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