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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추악한 권력욕 그 뒤에 숨은 인간

사랑하라, 오페라처럼

  •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맥베스-추악한 권력욕 그 뒤에 숨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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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익스피어는 맥베스 부인이 단순히 악행의 조력자가 아니라 악행의 지휘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왕이 된 맥베스가 신기(神氣) 있는 마녀들의 예언에 의지한다는 주술적 상황이 어딘지 낯익다.
작곡가 베르디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Macbeth)’를 통해 드러내려고 한 것은 매우 성찰적이다. 단순한 권선징악은 아니다. 살다 보면 우리가 예기치 않은 호랑이굴에 들어가거나, 악(惡)한 사람도 약(弱)한 사람이 되어 두려움에 떨 수 있으니 세상 잣대를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기보다는 조금 여유를 갖고 사색해보자는 것 아닐까 한다.

온 나라가 최순실이라는 여인 때문에 들끓고 있다. 언론에 보도되는 그의 전횡과 국정농단 사연들로 민심은 실망을 넘어 절망의 공황상태다. 2년 전 그의 남편 정윤회 씨가 검찰 포토라인에 선 이후 그간 의혹투성이로 남아 있던 퍼즐이 이제야 하나 둘씩 맞춰지는 느낌이다. 정씨의 뒤에 최씨가 있다는 소문이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 부부가 권력을 손에 넣기까지는 찰떡궁합이었지만 막상 권력을 손에 쥔 후에는 마음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남편조차 자신의 앞길에 걸림돌이라고 여겼을까. 최씨는 남편이 비선 실세로 의심을 받던 무렵 정씨와 이혼한다.

이들 부부 못지않게 권력욕이 강한 부부를 오페라에서도 볼 수 있다. 맥베스 부부다. 이들은 권력에 대한 탐욕의 불씨를 살리기 전까지만 해도 ‘금수저’답게 우아하고 명예로운 인생을 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맥베스는 11세기 스코틀랜드에 실존한 인물이다. 던컨 왕의 사촌인 맥베스 장군은 위험에 빠진 조국의 최전방에서 용맹을 떨친 애국자다. 그런 그가 탐욕에 현혹돼 급기야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좌에 앉아 18년간 스코틀랜드를 통치한다. 그러다 결국에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세력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고 권력도 잃는다. 역사엔 ‘반역자’ ‘공포통치자’로 기록된다.





다양한 해석의 場

셰익스피어는 이 인물을 연극 소재로 택해 사건보다는 인간의 이중적이고 다면적인 내면 심리를 탁월하게 그렸다. 덕분에 탁월한 문학작품으로 많은 이의 가슴에 남았다. 요즘 TV 사극에서도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 인물들의 활동에 극적 요소를 가미해 인기를 끄는데, 이런 형식의 원조가 바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의 아내가 단순히 악행의 조력자가 아니라 악행의 지휘자라는 점을 강조했고, 맥베스가 신기(神氣)가 있는 마녀들의 예언에 의지한다는 주술적 상황을 설정했다. 지금 우리의 현실정치에서 이런 상황을 다시 보는 것 같아 섬뜩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문학으로서의 ‘맥베스’는 언어 자체가 매우 수려하다. 예컨대 1막 1장에서 마녀들은 “고운 것은 더럽고, 더러운 것은 곱다(Fair is foul, foul is fair)”고 말한다. 안개 속 더러운 공기를 뚫고 날아가자며 마녀들이 하는 말이지만 다양한 해석의 장을 열어준다. 11월 말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오페라단 제작 오페라 ‘맥베드’를 무대에 올릴 연출가 고선웅은 이 말을 ‘빈 것은 차 있고, 찬 것은 비어 있다’는 동양의 노장사상에 비유했다. 그는 “맥베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결국 무상함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연극적 요소가 빼어나다고 해도 이를 음악에 어떻게 담아내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작곡가 베르디는 어릴 때부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읽을 정도로 셰익스피어의 문체를 탐독했다. 셰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예민한 인물들의 섬세한 묘사를 읽으며 소년 베르디는 악상을 계속 떠올렸을 것이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인간의 고뇌를 더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이미지를 고심했을 것이다.


복잡한 감정체계

1842년 오페라 ‘나부코’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무명 작곡가의 굴레를 벗어나게 된 베르디는 이후 쉬지 않고 작품에 매달렸다. 강대국의 이권으로 조각조각 분할통치되던 이탈리아 반도에 통일의 염원을 불러일으킬 애국주의적 작품이 쏟아지던 시절이었다. 정치적인 계산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관객들이 그런 작품을 간절하게 요구했다.

당시 베르디는 피렌체에서 실러의 ‘군도’를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베르디가 점찍어둔 테너 프라스키니가 그 시즌에 이미 다른 극장과 계약돼 자신의 오페라에 기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맥베스’의 주역으로 바리톤을 기용할 계획을 세운다. 변화무쌍한 심경의 맥베스를 표현하는 데는 저음의 바리톤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맥베스 장군은 적들도 두려워할 정도로 용맹하고 강한 권력욕을 지녔지만, 안으로는 매우 나약할뿐더러 섬세한 시적 감수성까지 갖춘 감정적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도 출세가도를 달리던 고위층들이 복잡한 감정을 못 다스려 몰락하는 일화가 종종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그들이 바로 맥베스형 인간이 아닐까 싶다.

당시 이탈리아 국민은 작곡가 베르디가 조국을 빛낼 위대한 예술가로 거듭날 것이며, 비탄에 빠진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에 이바지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들의 애정 어린 기대 덕분에 1847년 피렌체에서 가진 ‘맥베스’ 초연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베르디는 장인이자 후원자인 바레치에게 영광을 바친다.

그로부터 18년 후 세계적 명성을 얻은 52세의 베르디는 아쉬움이 남은 ‘맥베스’를 수정, 보완해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하기로 마음먹는다.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파리는 외견상 화려했다. 빈부격차는 날로 벌어졌지만 오페라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고 공연장은 연일 만석이었다.

독설이 난무하던 파리 평단의 공격성은 점입가경이었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작곡가 베르디에게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파리 리릭극장에 도착한 베르디는 무척 고무됐고, 어린 시절부터 구상하던 셰익스피어적인 음악을 담았다. 파리의 관객을 위해 발레를 삽입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공연 후 평단의 서슬 퍼런 칼날은 일제히 베르디의 ‘맥베스’로 향했다. 베르디가 셰익스피어적인 요소를 모두 생략했다고 비난했다. 객석을 메운 파리 상류층 관객의 눈들은 혹여 자신도 맥베스처럼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결국 그의 작품은  관객으로부터 외면받으면서 사장되고 말았다.



테너 대신 바리톤

이번엔 베르디 관점에서 작품을 살펴보자. 셰익스피어의 주옥같은 구절이 일부 생략되기는 했지만 그 내용을 모두 음악으로 담아낼 순 없었다. 오페라는 음악적 요소가 우선이다 보니 스토리가 잘 연결되지 않고 극적 개연성이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간극을 메우며 관객을 위로해주는 것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하늘을 찌르는 고음이다.

그런데 베르디는 이런 관객의 요구와 반대로 간 것이다. 오페라 ‘맥베스’에서 테너의 고음은 조역으로 4막에 잠깐 나오는 데 그친다. 맥베스 부인 역은 소프라노가 맡는데, 베르디는 파리 초연에서 맥베스 부인 역의 소프라노 타돌리니를 교체했다. 이유는 그녀의 음색이 천사의 그것처럼 너무 맑고 밝다는 것이었다. 그는 맥베스 부인의 강렬하고 포악한 성격을 잘 표현할 악마처럼 어둡고 음침한 소리의 빛깔을 원했다.

오페라 ‘맥베스’에서 합창단은 스토리 진행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합창단인 마녀들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합창으로 끝낸다. 우연히 만난 마녀들은 맥베스는 왕이 되고 방코는 왕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소식에 고취된 맥베스 부인은 왕을 살해하기 위해 남편을 조종한다. 거사를 치른 뒤 칼을 갖고 온 남편에게서 칼을 빼앗아 살해 현장에 다시 갖다놓는 치밀함을 보인다. 그러나 맥베스는 처참한 살해 현장을 계속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2막에서 맥베스 부부는 방코에 대한 마녀들의 예언에 신경이 쓰인다. 결국 자객을 보내 방코를 죽이지만 그의 아들 플리언스는 놓치고 만다. 그런데 맥베스는 허공에서 방코의 환영을 보고 반쯤 넋이 나가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만인이 맥베스의 죄상을 알게 되고 그는 점점 미쳐간다.

3막에서 괴로워하던 맥베스는 마녀들을 찾아가고 마녀들은 또 예언을 한다. 고작 마녀들의 주술에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맥베스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맥베스 부인이 자꾸만 손을 씻는 행동을 하며 반쯤 미쳐 있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았지만 실상 그녀도 죄의식, 불안, 공포에 휩싸여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맥베스는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동요하지 않는다. 불쌍한 사람들의 군색한 이야기들이라며 탄식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권력의 욕망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4막에선 맥베스의 전횡으로 고통받고 도망친 망명자들이 탄식하며 조국애를 다짐한다. 막두프 장군이라는 영웅의 인도로 잉글랜드 군대와 스코틀랜드 망명부대는 맥베스의 스코틀랜드 군대와 마주한다. 마녀들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맥베스를 절대 못 해친다”고 예언했지만, 제왕절개로 태어난 막두프는 이를 비웃듯 맥베스를 살해한다. 그리고 마녀들의 예언대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방코의 아들 플리언스가 훗날 왕위를 이어받는다.

궁극적으로 오페라 ‘맥베스’가 시사하는 바는,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악에 중독된 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는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다. 그런 악의 이면에 두려움과 죄책감이 있을 수도 있고, 선이라고 믿는 것도 나의 기대만큼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틀린 것을 바로잡았다고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오페라 ‘맥베스’를 보면서, ‘정답’을 만들려고 세상의 이치를 억지로 가두려드는 나도 누군가에게 맥베스가 아닐까 하고 자문해보면 좋을 듯하다. 요즘 한국 사회가 어지럽고 불안하다. 그래서 더욱 ‘맥베스’를 추천한다.  



나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아리아맥베스의 마지막 절규

Mal per me che m’affidai                    
Ne’ presagi dell’inferno!                   
Tutto il sangue ch’io versai            
Grida in faccia dell’Eterno!            
Sulla fronte maledetta            
Sflgor? la sua vendetta!        
Muoio al cielo al mondo in ira,        
Vil corona! e sul per te!

악마의 예언에 눈이 멀어서
내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다니!
내가 흘리게 한 피는 하늘로 흘러서
영원의 얼굴로 흐느끼는구나!
저주받은 자의 이마에는 이제
복수로 그의 번개가 내리치고!
하늘의 눈과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나,
저주받은 왕관 때문에 이렇게 죽는구나!

*맥베스가 죽으면서 하는 대사이지만, 공연에서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권력무상을 실감케 한다.

추천 영상(유튜브)

■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공연(2009년)
https://www.youtube.com/watch?v=Ze_W5PR5MMw
디미트리스 틸리아코스(맥베스)
주목받는 오페라 연출가 드미트리 체르냐코프가 새롭게 해석한 오페라 ‘맥베스’의 3막이다. 방코의 환영을 보고 과거의 악행을 떠올리며 두려움에 떨던 맥베스가 마녀들의 주술에 안심하는 장면이다. 현대적 감각의 연출이 만들어내는 인물들의 내면 심리 표출이 일품이다. 그의 터치로 오페라가 이렇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 함부르크 마리아 칼라스 콘서트 실황(1959년)  
https://www.youtube.com/watch?v=4fsOVCnE_WY
오페라 1막에서 나오는 맥베스 부인의 아리아 ‘Vieni t`affretta’이다.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을 받은 남편의 편지를 읽고서 왕위 찬탈의 욕망을 불러오는 아리아다. 콘서트이지만 마리아 칼라스의 표정과 손동작 등의 표현만으로도 레이디 맥베스의 강렬한 악의적 탐욕을 느낄 수 있다. 과연 칼라스답다.

■ 이탈리아 스칼라극장 공연(1997년)
https://www.youtube.com/watch?v=dZcRzNpRHPI
레나타 브루손(맥베스), 마리아 굴레기나(맥베스 부인)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의 정확하고 심오한 음악이 일품이다. 백전노장 바리톤 브루손의 농익은 맥베스 연기와 당시 떠오르는 차세대 드라마틱 소프라노 마리아 굴레기나의 맥베스 부인은 정통 이탈리아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준다. 다만 음악에 너무 치우친 전통적인 해석 방식이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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