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맥베스-추악한 권력욕 그 뒤에 숨은 인간

사랑하라, 오페라처럼

  •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맥베스-추악한 권력욕 그 뒤에 숨은 인간

2/3

복잡한 감정체계

1842년 오페라 ‘나부코’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무명 작곡가의 굴레를 벗어나게 된 베르디는 이후 쉬지 않고 작품에 매달렸다. 강대국의 이권으로 조각조각 분할통치되던 이탈리아 반도에 통일의 염원을 불러일으킬 애국주의적 작품이 쏟아지던 시절이었다. 정치적인 계산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관객들이 그런 작품을 간절하게 요구했다.

당시 베르디는 피렌체에서 실러의 ‘군도’를 공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베르디가 점찍어둔 테너 프라스키니가 그 시즌에 이미 다른 극장과 계약돼 자신의 오페라에 기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맥베스’의 주역으로 바리톤을 기용할 계획을 세운다. 변화무쌍한 심경의 맥베스를 표현하는 데는 저음의 바리톤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맥베스 장군은 적들도 두려워할 정도로 용맹하고 강한 권력욕을 지녔지만, 안으로는 매우 나약할뿐더러 섬세한 시적 감수성까지 갖춘 감정적 인물이다. 우리 사회에도 출세가도를 달리던 고위층들이 복잡한 감정을 못 다스려 몰락하는 일화가 종종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그들이 바로 맥베스형 인간이 아닐까 싶다.

당시 이탈리아 국민은 작곡가 베르디가 조국을 빛낼 위대한 예술가로 거듭날 것이며, 비탄에 빠진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에 이바지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들의 애정 어린 기대 덕분에 1847년 피렌체에서 가진 ‘맥베스’ 초연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베르디는 장인이자 후원자인 바레치에게 영광을 바친다.

그로부터 18년 후 세계적 명성을 얻은 52세의 베르디는 아쉬움이 남은 ‘맥베스’를 수정, 보완해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하기로 마음먹는다.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파리는 외견상 화려했다. 빈부격차는 날로 벌어졌지만 오페라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고 공연장은 연일 만석이었다.



독설이 난무하던 파리 평단의 공격성은 점입가경이었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작곡가 베르디에게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파리 리릭극장에 도착한 베르디는 무척 고무됐고, 어린 시절부터 구상하던 셰익스피어적인 음악을 담았다. 파리의 관객을 위해 발레를 삽입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공연 후 평단의 서슬 퍼런 칼날은 일제히 베르디의 ‘맥베스’로 향했다. 베르디가 셰익스피어적인 요소를 모두 생략했다고 비난했다. 객석을 메운 파리 상류층 관객의 눈들은 혹여 자신도 맥베스처럼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그림자로 가득했다. 결국 그의 작품은  관객으로부터 외면받으면서 사장되고 말았다.



테너 대신 바리톤

맥베스-추악한 권력욕 그 뒤에 숨은 인간

맥베스가 세 마녀를 만나는 장면을 그린 요제프 안톤 코흐의 그림 ‘맥베스와 마녀들’.

이번엔 베르디 관점에서 작품을 살펴보자. 셰익스피어의 주옥같은 구절이 일부 생략되기는 했지만 그 내용을 모두 음악으로 담아낼 순 없었다. 오페라는 음악적 요소가 우선이다 보니 스토리가 잘 연결되지 않고 극적 개연성이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간극을 메우며 관객을 위로해주는 것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하늘을 찌르는 고음이다.

그런데 베르디는 이런 관객의 요구와 반대로 간 것이다. 오페라 ‘맥베스’에서 테너의 고음은 조역으로 4막에 잠깐 나오는 데 그친다. 맥베스 부인 역은 소프라노가 맡는데, 베르디는 파리 초연에서 맥베스 부인 역의 소프라노 타돌리니를 교체했다. 이유는 그녀의 음색이 천사의 그것처럼 너무 맑고 밝다는 것이었다. 그는 맥베스 부인의 강렬하고 포악한 성격을 잘 표현할 악마처럼 어둡고 음침한 소리의 빛깔을 원했다.

오페라 ‘맥베스’에서 합창단은 스토리 진행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합창단인 마녀들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합창으로 끝낸다. 우연히 만난 마녀들은 맥베스는 왕이 되고 방코는 왕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 소식에 고취된 맥베스 부인은 왕을 살해하기 위해 남편을 조종한다. 거사를 치른 뒤 칼을 갖고 온 남편에게서 칼을 빼앗아 살해 현장에 다시 갖다놓는 치밀함을 보인다. 그러나 맥베스는 처참한 살해 현장을 계속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2막에서 맥베스 부부는 방코에 대한 마녀들의 예언에 신경이 쓰인다. 결국 자객을 보내 방코를 죽이지만 그의 아들 플리언스는 놓치고 만다. 그런데 맥베스는 허공에서 방코의 환영을 보고 반쯤 넋이 나가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만인이 맥베스의 죄상을 알게 되고 그는 점점 미쳐간다.

3막에서 괴로워하던 맥베스는 마녀들을 찾아가고 마녀들은 또 예언을 한다. 고작 마녀들의 주술에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맥베스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맥베스 부인이 자꾸만 손을 씻는 행동을 하며 반쯤 미쳐 있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았지만 실상 그녀도 죄의식, 불안, 공포에 휩싸여 엉뚱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맥베스는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동요하지 않는다. 불쌍한 사람들의 군색한 이야기들이라며 탄식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권력의 욕망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4막에선 맥베스의 전횡으로 고통받고 도망친 망명자들이 탄식하며 조국애를 다짐한다. 막두프 장군이라는 영웅의 인도로 잉글랜드 군대와 스코틀랜드 망명부대는 맥베스의 스코틀랜드 군대와 마주한다. 마녀들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은 맥베스를 절대 못 해친다”고 예언했지만, 제왕절개로 태어난 막두프는 이를 비웃듯 맥베스를 살해한다. 그리고 마녀들의 예언대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방코의 아들 플리언스가 훗날 왕위를 이어받는다.

궁극적으로 오페라 ‘맥베스’가 시사하는 바는,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악에 중독된 자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는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다. 그런 악의 이면에 두려움과 죄책감이 있을 수도 있고, 선이라고 믿는 것도 나의 기대만큼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틀린 것을 바로잡았다고 반드시 정답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오페라 ‘맥베스’를 보면서, ‘정답’을 만들려고 세상의 이치를 억지로 가두려드는 나도 누군가에게 맥베스가 아닐까 하고 자문해보면 좋을 듯하다. 요즘 한국 사회가 어지럽고 불안하다. 그래서 더욱 ‘맥베스’를 추천한다.  




2/3
황승경 | 국제오페라단 단장, 공연예술학 박사
목록 닫기

맥베스-추악한 권력욕 그 뒤에 숨은 인간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