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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2012년에 인수위 때부터 대북 접촉 준비”

돈과 목숨 오간 남북 내교·내통史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文, 2012년에 인수위 때부터 대북 접촉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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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은 내통(內通)이란 낱말을 ‘외부의 조직이나 사람과 남몰래 관계를 가지고 통함’이라고 정의한다. 내통에는 부정적 의미가 담겼으나 비선 접촉 등 남북관계에서 내통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남북 간 소통을 외교(外交)에 빗대 내교(內交)라고 적는다. 헌법상 북한은 대한민국 영토, 북한 정권은 괴뢰 집단이기에 국어사전에 없는 내교라는 낱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남북 간 내교·내통 역사에는 알려지지 않은 비화(秘話)가 가득하다.   



 평양 방문 앞두고 유서 써

“유서를 써놓고 평양에 갔다.”

2010년 가을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한 김숙 전 유엔대사가 사석에서 했다는 말이다. 김 전 대사는 국가정보원 1차장으로 일할 때 북한을 찾아 천안함 폭침 이후 대결 국면으로 치닫던 남북관계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도모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숙 전 대사의 북측 카운터파트는 류경 국가안전보위성 부부장. 두 사람은 ‘과거 불행한 사태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수준에서 천안함 사태 출구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류경 부부장은 김숙 1차장 평양 방문 연장선상에서 2010년 12월 서울을 극비리에 방문했다. 국정원-보위성 라인이 숨 가쁘게 움직인 것이다. 류 부부장은 서울을 방문하고 평양에 돌아간 직후 총살됐다. 안보 당국은 류 부부장 숙청 이유를 파악하는 데 정보력을 모았다. 표면적 혐의는 수뢰, 부정축재지만 ‘대남 전략을 남측에 노출했다’는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국정원과 내통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쓴 것이다. 류 부부장 자택에서 거액의 달러도 발견됐다고 한다.



류경 부부장은 김정은(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장 계급장을 단 2010년 9월 27일 상장(국군 중장에 해당)으로 진급했다. 김정일과 독대할 만큼 충성심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보위성에서 간첩 및 반체제 인사를 색출하는 반탐(反探) 업무를 총괄했다. 간첩 잡던 보위성 부부장이 비밀접촉 과정에서 국정원과 내통해 반역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재일교포 출신 며느리를 제외한 일가족이 숙청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듯 한국 국정원 1차장은 유서를 썼고, 북한 보위성 부부장은 총살을 당했다. 남북 간 비밀 접촉은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인 것이다. 특히 북측 인사에게 그렇다.



서울 호텔에서 러브샷 

“합의문 없이 돌아가면 내가 죽는다.”

김양건 전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비밀 접촉하면서 한 말이다. 2009년 10월 북한 고위 인사 두 명이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에 투숙했다. 김양건 전 부장과 원동연 당시 통일전선부 부부장. 두 사람은 10월 15~20일 5박6일간 싱가포르에 체류했다. 접촉 장소로 싱가포르를 선택한 것은 북한 인사가 관광객처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어 보안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2016년 1월 북한 4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대북제재 이후 싱가포르는 북한인 무비자 입국 제도를 없앴다.

임태희 전 실장과 김양건 전 부장은 구면(舊面)이었다. 두 사람은 두 달 전(8월 21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양주잔을 기울였다. 김 전 부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조문 사절로 서울을 찾았을 때 일이다. 싱가포르 접촉에 앞서 9월에도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임 전 실장은 김 전 부장과 △정상회담 △국군포로 및 납북자 고향 방문 △한반도 비핵화 △이산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 △인도적 지원(쌀 비료) △국군 유해 발굴 등 6개 항목에서 의견 접근을 봤다.

김양건 전 부장은 합의문 작성을 요구했으나 임태희 전 실장은 난색을 표했다. 임 전 실장이 특사로서 받은 훈령 범위를 넘는 사안이었다. 청와대는 싱가포르 접촉에서 합의 내용을 결론짓지 말고 통일부-통일전선부 공식 라인에서 논의를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부장이 “이대로 돌아가면 죽는다.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 확인만 해 달라”고 요청해 임 전 실장은 협의한 내용을 서면으로 정리했다. 같은 해 11월 7일, 14일 개성에서 열린 통일부-통일전선부 접촉에서 북측은 싱가포르에서 서면으로 작성한 문서를 합의문이라고 내놓았으나 통일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정상회담 추진은 무산됐다. 정상회담을 두고 이명박 정부 내 대화파(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등), 원칙파(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등)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CJ그룹이 윤활유 노릇

김양건 전 부장은 2015년 12월 29일 평양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TV조선이 지난해 12월 2일 “대남노선을 놓고 북한 내 강경파들과 갈등을 빚다 사고사로 위장돼 암살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으나 진실은 알 수 없다.

임태희-김양건의 만남은 북한 군부와 비선 접촉에서 시작됐다. 임태희 전 실장 측과 현철해 북한군 원수 측근 장수길 승리무역총회사 총사장(전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 채널이 형성됐다. CJ그룹이 윤활유 노릇을 했다. CJ그룹은 승리무역총회사와 북한 내 대두유 공장과 관련한 경제 협력을 논의했다. CJ그룹은 CJ대한통운 북한 지역 물류 사업에도 관심을 가졌다. CJ그룹과 승리무역총회사 협의 때 김양건 전 부장의 아들이 장수길 전 부부장을 수행했다. 임태희-김양건 라인은 이 같은 인연으로 구축된 것이다. 이렇듯 남북관계에선 공식 라인보다 비선이 일을 만들어낸 예가 적지 않다.

정상회담 논의로까지 이어진 비선 형성의 단초 구실을 한 장수길 전 부부장은 2013년 11월 말 이용하 노동당 행정부 전 부부장과 함께 반당종파분자, 간첩, 부정부패자로 지목돼 공개처형됐다. 장수길은 이전에도 부정부패로 구설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장수길, 이용하 전 부부장이 총살된 것은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전 행정부장 숙청의 서막이었다. 장 전 행정부장은 그해 12월 12일 총살됐다. 이명박 정부 때 잘나가던 CJ는 박근혜 정부에서 수난을 겪는다.

남북 비선 접촉 때 소요되는 비용은 남측이 제공하는 게 관례처럼 돼 있다. 임태희-김양건이 만날 때 북측 수행원에게 싱가포르 체류 시 사용하라고 신용카드를 주는 등 편의를 제공했다고 전해진다. 북측 인사들이 신용카드 사용법을 모르는 등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 남측 인사들이 놀랐다고 한다.


北에 돈 주는 게 관례

최승철 전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한국 정세 분석 실패와 한국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숙청된 것으로 전해진다. 남측이 제공한 행사 비용(남북 접촉 시 소요되는 비용) 중 일부를 개인적으로 착복한 게 드러났다고 한다. 최 전 부부장은 김양건 전 부장과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둔 2007년 9월 26일 청와대를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남북협상 시 북한에 소요 비용을 주는 관례는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2011년 5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베를린 연설에서 이듬해 3월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한 것을 계기로 남북이 베이징, 선양 등지에서 비밀리에 접촉한 일이 있다. 2011년 6월 9일자 조선중앙통신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그(김천식 당시 통일부 정책실장)는 우리와 만나자마자 이번 비밀접촉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와 인준에 의해 마련됐다고 하면서 그 의미를 부각시켰다. (김태효 당시 대통령대외전략비서관이) 시간이 매우 급하다고 하면서 대통령의 의견을 반영해 작성했다는 일정계획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접촉이 결렬 상태에 이르자 김태효의 지시에 따라 홍창화(국정원 국장)가 트렁크에서 돈봉투를 꺼내들자 김태효는 그것을 받아 우리 손에 쥐여주려고 하였다. 우리가 즉시 쳐던지자 김태효는 얼굴이 벌게져 안절부절못했으며, 홍창화는 어색한 동작으로 트렁크에 황급히 돈봉투를 걷어 넣고 우리 대표들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북한 언론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베이징, 선양 접촉에 참여한 남측 인사들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신동아는 2008년 2월호에서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北 현금 지원說’ 제하 기사를 보도했다. “탈레반 피랍 사태를 활용해 정상회담 대가 조로 평양에 1000만 달러를 건넸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 인질 석방 대가로 탈레반에게 주려고 준비한 자금 중 일부가 북한으로 흘러갔다는 게 신동아 기사의 요지다. 당시 청와대는 “대북 현금 지원설은 근거 없는 엉터리 기사”라면서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국정원-탈레반-북한

2007년 7월 19일 샘물교회 선교봉사단원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피랍됐다. 인질 중 두 명이 살해된 후 8월 29일 열아홉 명이 석방됐다. 같은 해 9월 1일 로이터는 “한국 정부로부터 몸값으로 2000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는 탈레반 지도자위원회 고위 인사의 발언을 보도했다. 10월 14일자 영국 선데이 텔레그래프는 “한국 정부가 인질 석방 대가로 탈레반에 1000만 달러를 지급했으며, 탈레반은 이 자금으로 무기를 사들이고 지원자를 훈련시켰다”고 보도했다.

2000년 6월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북한은 5억 달러를 받아갔다. 현대그룹이 대북사업을 30년간 독점하는 대가로 북측에 돈을 건넸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대북송금 특검이 열린 까닭이다. 2차 정상회담 때 북측에 건넸다는 1000만 달러는 상대적으로 소액인 데다 앞서 언급했듯 행사 비용을 남측이 부담하는 전례가 있던 만큼 용인할 측면도 있으나 현대그룹 사례와 달리 국민 혈세가 북측에 건너갔다는 점에서 위중한 측면도 있다.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말 신동아에 “그해 8월 국정원 고위 인사가 카불로, 평양으로 뛰어다녔다”면서 “국정원 예비비로 아프가니스탄 인질 석방 몸값과 정상회담 행사 비용을 북측에 건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차 정상회담 때 북측에 1000만 달러를 건넸다는 정황은 최근 출간된 ‘시크릿파일 국정원’이라는 책에서도 확인된다. 이 책 저자는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 김당 씨다. ‘시크릿파일 국정원’ 192~194쪽에 서술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7년 국정원 예산팀은 돈을 만들어 아프가니스탄 인질 협상 TF팀에 몸값을 제공한 사실에 대해 2008년 감찰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인질 몸값은 ○○○씨 지시로 3000만 달러를 만들어 외교 행낭을 통해 ○○○씨에게 직접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씨가 그 가운데서 인질 몸값으로 2000만 달러를 지급하고 남은 1000만 달러를 국고에 반납하지 않고 비밀 방북할 때 북한에 가져갔다는 의혹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에서 이와 관련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10·4선언이 돈을 주고 산 것처럼 매도당한 것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필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 예산팀은 예비비에서 3000만 달러를 만들어 두바이의 국정원 해외 비밀계좌에 예치한 자금에 대해 지출을 승인해 2000만 달러를 인질 석방 몸값으로 지불하고 남은 1000만 달러를 수해 위로 및 성의 표시로 북측에 건넸다.”



종횡무진 北 공작원 이호남

2차 정상회담이 북한에 돈을 주고 이뤄진 것일 소지가 큰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대검 중수부 관련 수사 기록은 봉인됐으나 1000만 달러 제공과 관련한 진실은 언젠가 드러날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2006년 10월 20일 베이징에서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참사 명함을 들고 나온 이호남을 만났다. 안 지사가 노무현 정부에서 아무런 공식 직책을 갖고 있지 않을 때다. 꽉 막힌 남북 관계를 비선으로 뚫고 대북 특사 파견, 정상회담 문제를 논의하는 게 목적이었다. 안 지사가 만난 이호남은 북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 정찰총국은 천안함 폭침 사건을 일으킨 곳이다. 이호남은 1997년 이른바 북풍 공작(국가안전기획부가 북한을 이용해 대선에 개입한 사건)에도 개입했다.

2010년 북한에 ‘작전계획 5027-04’의 일부 내용을 알려주고 군사교범 다수를 제공한 혐의(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로 구속·기소된 박채서 씨를 포섭한 것도 이호남이다. 1990년대 안기부에서 암호명 ‘흑금성’으로 활동하며 대북 공작업무를 해온 박씨는 2005년부터 2007년 사이 군사 비밀을 이호남에게 전달한 혐의로 2010년 6월 구속 수감돼 이듬해 징역 6년형이 확정됐다.

이호남이 소속한 정찰총국은 북한 정보·공작기관이다.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35호실), 작전부와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이 2009년 2월 정찰총국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정찰국은 대남 공작을 주업으로 한 군 소속 공작부대다. 35호실은 국정원 해외파트와 업무가 유사하다. 1987년 KAL기 폭파 사건이 35호실 작품이다. 유고급 잠수함을 보유한 작전부도 공작기관이다.

안희정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이었다. 그런 그가 이호남이 북한 공작원인 줄 모르고 만난 것이다. 이렇듯 비선 접촉은 때로는 성과를 내기도 하지만 북한이 수행하는 공작에 휘말리기도 있다.  


국정원의 이간책

한국 정보기관도 당연히 공작을 한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은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한국 인사 명부를 구하는 공작을 했다. 국정원과 내통한 북측 고위 인사는 명부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에서 일한 전직 고위 인사 증언이다.

“북측 인사가 꽤 많은 돈을 요구했다. 한국인 노동당원 명부를 실제로 제공할지, 명부가 정확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다. 명부 일부를 먼저 보여주면 그때 돈을 지급하고 일을 진행하겠다고 북측 인사에게 제안했다. 그 인사가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국정원은 2013년 장성택 비리 목록을 작성해 공식·비공식 경로로 북측에 전달했다. 김정은, 장성택을 분리하는 이간책(離間策)을 쓴 것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장성택 판결문에 재정 사용 문제점, 비자금 유용 등 돈 문제가 등장한다. 우리가 넘겨준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우리 정보를 이용한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이 같은 공작이 장성택 실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이 공작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남재준 원장 성격이 원래 그렇다”(앞서의 관계자)고 한다.(신동아 2014년 11월호 “朴 정부 1기 국정원 북한 붕괴공작 내막 ‘장성택 비리 목록 공식·비공식 통로로 北에 전달’” 제하 기사 참조 및 사실 추가)

국정원은 중국에 나와 있는 장성택 측근들과도 은밀하게 접촉했다. 또한 한국 언론에 ‘김정은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장성택이 대안’이라는 보도가 나오게 해 김정은과 장성택을 이간했다. 전직 국정원 고위 인사 설명이다.

“황병서(북한군 정치국장)도 엄청나게 분석했다. 돈 문제를 비롯해 약점이 없어 공격할 곳을 찾지 못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황병서가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이었다. 황병서가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 관람차 한국에 왔을 때 공작을 하려고 했으나 잘 안 됐다.”

주간경향이 2016년 12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2005년 7월께 김정일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원장님을 뵌 지도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위원장님의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보천보전자악단 남측 공연 및 평양에서 건립을 추진하던 경제인양성소 등이 아직까지 실천되지 못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재단과 북측 관계기관들이 잘 협력해 사업을 잘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위원장님의 지시를 부탁드립니다. 북남이 하나 돼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도록 저와 유럽-코리아재단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위원장님의 건강을 기원하며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입장료 받는 평양

박근혜 대통령 명의로 작성된 편지 내용 중 ‘주체 91년’ ‘북남’ 등의 표현을 두고 여론의 질타가 있었다. 이 편지를 북측에 전한 프랑스인 장 자크 그로하는 2002년 박근혜-김정일 면담을 성사시킨 인물이다. 복수의 소식통은 그로하에 대해 “북한에 10년 넘게 체류하면서 노동당 출판사에서 김일성, 김정일 저작물을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한 인사”라고 전했다. 그로하는 한국에서 남북경협을 돕는 중개인으로 활동했다. 박 대통령이 정체가 의심스러운 인사의 주선으로 방북해 김정일을 만난 꼴이다.

김정일을 면담한 외부 인사가 답례 형식 편지를 보내는 것은 평양이 관례로 여기는 것이다. 그로하가 보천보전자악단 남측 공연 등을 성사시키기 위해 박 대통령 모르게 명의를 도용해 편지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김정일을 만나고 온 다음 답례 편지를 북한에 보냈다. 평양은 남측 인사들의 이 같은 편지를 ‘충성 편지’라고 일컫는다.  

북한 최고지도자를 만난 외국 정상이 돈을 내놓는 것도 일종의 관례였다. 흔히 거론되는 인물이 메가와티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다. 수하르토 초대 대통령의 딸인 그는 김일성 생전에 부친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적도 있는 대표적 친북 인물이다. 그런 그도 2005년 김정일을 만날 때 입장료를 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보다 북한에 먼저 가겠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월간중앙’(2017년 1월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캠프에서 일한 학계 인사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인수위 단계부터 북한과 접촉하려 했다”고 전했다. 신동아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북한 보위성 소속 이○○은 당시 문재인 캠프 측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보냈다.  



“(…) 당선자가 북한을 협력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선소감, 신년사, 취임사에 상기 내용이 적절하게 사전 협의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북 문제 언급 수위를 조절해 잘못된 문구 하나로 파탄 나는 결과를 초래하면 안 된다. 천안함 문제는 인정 못하며, 5·24조치는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민주당의 취임식 (북측 인사 초정) 관련 사전 발표는 불쾌하다. 협의도 없이 발표하는 일방적 행태는 인정 못한다. 초청하면 참석하지만 선물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핫라인 구성이 필요하다. 대선 2~3일 전부터 가동해 취임식까지 운영하자. 특사는 당선자의 신임장을 지참해야 한다.”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대북 관여론자,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대북 포용론자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북한 관련 성과물을 내려다 북한의 공작에 휘말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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