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호

新東亞-미래硏 연중기획 中·國·通

“中 반대로 사드 배치 못하면 국가로서 치명적인 일”

현인택 前 통일부 장관

  • 이문기 |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7-01-20 10: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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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한국에 美中 사이에서 선택 요구
    • 韓 정치권에까지 손 뻗친 中의 ‘강압 외교’
    • 핀란드化? 내정간섭 단호하게 거부해야
    • 韓 때리기는 제국주의적 패권외교 형태
    한반도는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조중(朝中·북한과 중국)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이 병립하는 정전(停戰) 상태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퇴조하고 중국이 부상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도 요동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적자 해소 및 제조업 부흥을 위해 중국과의 일전도 불사하겠다고 공언해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에 도전하면서 패권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트럼프 시대의 탄생 배경

    트럼프 시대의 미중관계는 어떻게 펼쳐질까. 북한 및 북핵 문제를 해결해 통일로 나아가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中·國·通’ 2회 주제는 ‘트럼프 시대의 미중관계와 한국의 길’. 1월 5일 서울 광화문 미래전략연구원에서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고려대 교수)을 만났다. 

    ▼ 그간 어떻게 지냈습니까. 언론 지면에서 뵙기가 어려웠습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건과 이슈가 많습니다. 장관을 지낸 학자로서 목소리를 지나치게 아낀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2년 8개월간 맡았습니다. 장관을 마친 후에는 대통령통일정책특별보좌관으로 이명박 정부 임기 말까지 정책을 다뤘고요. 성과는 역사가 판단할 일이겠으나 에너지를 모두 쏟아 열심히 일했습니다.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에서 대학에 돌아왔습니다. 지적 에너지를 채웠다고 할까요. 못 읽은 책, 논문을 읽으면서 본업에 충실하다 보니 수년간 외부와 소통 못한 부분이 있죠.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게 ‘신동아’가 처음입니다.”



    ▼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대(對)중국 정책과 관련해 강경 매파로 내각이 꾸려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아시아 정책, 특히 대중 정책은 어떤 모습일까요.

    “대중 정책을 전망하기에 앞서 트럼프 시대가 탄생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대외 및 대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 같은 환경이 트럼프 시대를 탄생시킨 것이고요. 트럼프가 물려받은 유산을 5갈래로 나눠보겠습니다. 첫째, 퇴조하는 미국. 둘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중국. 셋째, 신(新)개입주의 경향을 나타내는 러시아. 넷째, 아주 복잡해진 유럽. 다섯째, 다소 약화된 테러리즘입니다.  

    그중 퇴조하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이 글로벌 차원에서 부딪치는 현상은 미국에 위협 요인이 될 것입니다. 유럽의 몰락이라고까지는 표현할 수 없으나 복잡한 유럽도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고요. 유럽은 경제가 바닥이며 정치적으로 복잡한 데다 난민 문제로 갈등을 빚습니다. 러시아의 신개입주의 경향도 미국이 다루기에 복잡한 문제고요. 다만 테러리즘은 부시나 오바마 행정부 때보다는 덜 심각합니다.”     



    개입주의, 고립주의의 혼거

    ▼ 난제가 적지 않겠군요.

    “그럼에도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때보다는 대외 환경이 나아졌습니다. 부시 행정부 말기 금융위기를 겪을 때는 미국의 퇴조가 도드라졌죠. 오바마가 굉장히 나쁜 환경을 물려받은 겁니다. 미국의 상대적 퇴조가 심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합니다. 미국 경제 또한 상승 국면에 들어선 듯하고요. 평가를 박하게 해도 게걸음 치는 정도의 환경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했다고 하겠습니다.”  

    ▼ 트럼프의 고립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중국에 있었습니다. 트럼프 당선이 베이징의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라는 시각도 적지 않았는데요. 이 같은 중국의 기대와는 다르게 지난해 말 트럼프가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해 미중관계의 토대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취임도 하기 전에 중국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겁니다. 외교·안보 진영도 대중 강경파로 구축했고요. 고립주의의 길을 걷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판을 새로 짜려는 것 아니냐는 전망마저 중국에서 나옵니다.

    “트럼프의 고립주의가 어떤 고립주의인지 파악하는 게 먼저입니다. 국제정치학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고립주의는 아닐 것이라고 봐요. 동맹국에 비용 분담을 요구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경제와 관련해선 굉장히 강한 보호무역 색채를 나타내고요. 전략적 복잡성(strategic complexity)이 핵심이 될 것 같습니다. 개입주의, 고립주의의 혼거가 나타날 거예요. 특히 대중 정책에 전략적 복잡성이 집중적으로 투사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점 찍고 내려오는 중국”

    고립주의는 미국 안보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세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사고를 가리킨다. 국제기구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나 지원을 줄이고 군대의 해외 파견 등을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는 앞으로도 이어질까요.

    “중국이 오바마 시대 때보다는 주춤거리는 모습입니다. 경제성장률이 6%대로 내려앉았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중국의 경착륙, 연착륙을 두고 논쟁을 벌이더군요. 주식으로 치면 고점을 찍고 내려온다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시진핑 정권이 출범한 후 베이징이 워싱턴에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요구합니다. 핵심 이익을 건드리지 않으면 우리도 안 건드리겠다는 게 골자잖아요. 그때는 중국의 부상이 강력할 때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힘을 못 쓰는 것을 보고는 코끼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고 판단한 것이죠. 중국이 미국에 대놓고 신형대국관계를 말한 것은 국제정치에서 함의가 상당합니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도하는 그룹이 이 표현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 기분이 상했겠죠.

    “공화당, 민주당 구분 없이 워싱턴 조야(朝野)가 겉으로는 점잖게 대응했으나 ‘이게 뭐하자는 태도냐’는 공통된 생각을 가졌을 겁니다. 오바마는 지적인 사람이기에 정제된 말로 대응했고요. 트럼프는 워싱턴 정치를 안 해본 사람입니다. 그러니 중국을 향해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고요.”

    ▼ 트럼프의 입에서 나온 말이 미국의 본심이다?

    “그렇죠. 트럼프 집권기에 벌어질 미중 무역전쟁은 벌써 시작됐습니다. 트럼프는 전쟁에 나서기 전에 배수진부터 쳐놓았어요.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려면 중국과의 무역에서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환율과 무역을 두고 중국을 강하게 압박할 겁니다.”



    대만 총통과 통화한 까닭

    트럼프는 “중국 상품에 4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규정했다. 징벌적 관세 부과를 위한 법안을 준비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탈퇴마저 고려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 미중 갈등의 주전선이 통상이 될 공산이 크다는 말씀이군요. 차이잉원과의 전화 통화는 어떻게 해석합니까.

    “미국 대통령과 대만 총통의 전화 통화는 중요한 시그널이겠으나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무시하기에는 굉장히 큰 부담이 있을 겁니다. 하나의 중국은 미국의 전통적 현실주의자들이 미중 수교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확립한 미중관계의 토대거든요. 중요한 대목은 ‘야! 그것도 건드릴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준 데 있습니다.”
     
    ▼ 한반도 정세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트럼프가 줄곧 언급해온 주한미군 주둔 비용 문제가 현실화하면 힘겨운 협상이 불가피합니다. 한미동맹 유지를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앞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전략적 복잡성을 특징으로 개입주의와 고립주의가 혼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방향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동맹의 비용 분담 문제예요. 동맹을 깨겠다거나 동맹 없이 가겠다는 게 아니라 동맹은 좋은데 힘이 부치니 비용을 더 내라는 것이죠.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해선 안 되겠으나 지나치게 놀랄 것도 없습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동맹에서 후퇴하는 쪽으로 가진 않을 겁니다. ‘동맹을 유지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니 후퇴하는 게 미국에 좋은 것인가’ ‘동맹으로부터의 후퇴는 퇴조하는 미국의 헤게모니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분명합니다.

    트럼프는 대통령선거 때 ‘미국을 더 위대하게, 더 강하게 만들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동맹에서 후퇴하면? 미국은 더 약하게, 더 초라하게 됩니다. 동맹은 손해(cost)가 아니라 이득(benefit)이란 생각은 확고할 거예요. 비용 문제는 근본이 아닌 방법론이기에 심각하게 다뤄야 하지만 허둥지둥할(panic) 필요는 없습니다.

    비용 분담 문제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을 때 ‘더 내라’ ‘못 낸다’ 다투기만 하면 윈-윈(win-win)이 아니라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 돼버립니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일정 부분 더 부담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한국 방위와 관련해 얻어낼 게 무엇인지 전략적으로 검토해야 해요.”



    ‘햄버거 담판’ 가능할까

    ▼ 핵우산을 더욱 확실히 한다든지….

    “그렇죠. 그래야 더 내는 돈이 아깝지 않죠. 거꾸로 한 가지 묻겠습니다. 한국에 가장 큰 외부 위협이 뭔가요?”

    ▼ 북한 핵이죠.

    “북한 핵무장 이후를 가정해 군사전략을 짜야 합니다. 한미동맹 미래구상, 신전략 같은 형식의 합의를 진행하면서 비용 문제를 하위의 기술적 문제로 다룰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비용(cost)이 아깝지 않은 굉장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 미국의 대북정책은 어떨까요. 북한 핵 개발을 막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를 듣는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을 철회하고 북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까요. 미국이 개입한다면 두 갈래 상반된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겨냥한 강경한 대북 압박 및 봉쇄입니다. 극단적으로는 대북 선제 타격을 옵션으로 삼을 수도 있겠고요. 다른 하나는 트럼프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언급했듯 김정은과의 ‘햄버거 담판’ 등을 통해 북미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하는 상황이겠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관장한 사람으로서 ‘전략적 인내’가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바마도 후보 시절에는 김정일과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분입니다. 오바마 행정부 첫해인 2009년 4월로 시곗바늘을 돌려봅시다. 오바마가 재임 중 펼칠 정책 중 하나인 ‘핵 없는 세상’과 관련해 연설하는 그날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합니다. 오바마의 기분이 어땠겠습니까. 그해 5월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가 의회 인준 절차를 끝내고 방한합니다. 캠벨과는 오랫동안 대북정책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차관보급이지만 동아시아 지역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책임자예요. 캠벨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 2009년 6월 내놓은 정책이 전략적 인내입니다.


    “북중 교역이 평양의 생명줄”

    전략적 인내는 오바마 행정부가 깊은 생각과 치밀한 전략으로 한국 정부와도 조율해 만들어낸 정책입니다. ‘단순히 기다리는 정책 아니냐’는 비판은 사실과 다릅니다. 북한에 인센티브를 주는 식의 정책은 구사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인 것입니다.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이 ‘우리는 같은 말(same horse)을 두 번 사지 않는다’고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오바마 행정부는 8년 동안 북한과 엉뚱한 딜을 하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 이명박 정부의 대북 압박정책은 미국의 전략적 인내에 조응해 이뤄졌다고 평가하면 됩니까. 

    “거꾸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견해에 오바마 행정부가 조응해왔다고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전략적 인내는 하지 않겠죠. 전임 정부의 정책을 후임 정부가 따르지 않으려는 경향은 미국도 똑같아요. 내용이 비슷하면 겉포장이라도 바꾸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트럼프가 가진 선택지가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앞서 인용한 ‘우리는 같은 말을 두 번 사지 않는다’는 말의 함의는 북한에 당하고 속았기에 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대외정책 과제에서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 둔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완성 단계라고 밝히자 트럼프가 ‘그런 일은 없다’고 단정 짓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아, 웃겨.’ 식으로 대응한 겁니다. 후보 때 언급한 ‘햄버거 담판’은 물 건너갔다고 봐요.



    “핵실험으로 깨진 한중 밀월”

    사업가로서 일하던 사람이니 햄버거 담판이란 용어를 떠올렸겠지만 그것은 상대를 존중하면서 주고받기를 할 때 이뤄지는 거예요. 트럼프가 북핵 문제 보고를 상세하게 받았을 겁니다. 김정은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파악하겠죠. 20년 넘는 북핵 스토리를 브리핑 받는 순간 낭만적 생각은 사라질 겁니다.” 

    ▼ 북한 및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중국 학자 다수가 남북관계, 북미관계에서 비롯한 핵 문제, 한반도 정세 위기의 책임을 왜 중국에 묻느냐고 말하더군요. 왜 중국에 해결사 노릇까지 요구하느냐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고요.

    “중국이 나서줘야 해결됩니다. 비토하면 해결난망이에요. 중국 정부와 베이징의 전문가들은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오래된 레코드판 틀 듯 얘기합니다만, 북핵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습니다. 우리도 알고, 중국도 알고, 미국도 알아요. 다만 중국이 안 할 뿐이죠. 북중 교역이 평양의 생명줄 아닙니까. 생명줄을 끊으면 어떻게 버팁니까. 왜 책임을 묻느냐, 왜 해결사 노릇을 채근하느냐고 묻는다는데 그간 어떤 구실을 했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 중국이 6자회담 개최국을 맡기는 했습니다.  

    “6자회담의 좌장 구실을 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6자회담 좌장을 맡아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니 중국에 기대를 건 거죠. 그런데 상황이 어떻습니까. 중국은 결정적 한 수를 내놓지 않았어요.”

    ▼ 박근혜 정부는 초기 3년 동안 한중관계 개선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섰습니다.

    “속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밖에서 보기엔 친중 행보를 보인 게 사실입니다. 2015년 9월 3일 중국의 항일전승 70주년 열병식 때 한국 정상이 톈안먼 망루에 오른 게 정점이었고요. 미국의 따가운 시선에도 톈안먼 망루에 오른 것은 상징적 의미가 상당합니다.

    잘했다, 못했다, 평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통령뿐 아니라 외교·안보 당국자가 중국의 힘을 빌리거나 중국을 좀 더 끌어들여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환상을 가졌던 것이죠.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면서 한중 밀월이 깨지고요.

    한국이 3년을 투자했는데도 4차 핵실험에 대한 베이징의 반응은 미온적이었습니다. 대통령도 실망했을 거예요. 시진핑과 전화 통화도 못했잖아요. 친중정책을 구사한 결과가 도대체 뭐냐는 반응이 나온 까닭입니다.”



    어느 쪽에 설 것인가

    ▼ 한반도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이후 한중 간 갈등이 심화합니다. 베이징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해 한국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면 경제, 외교 측면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대(對)한국 외교를 기존의 ‘포용외교’에서 ‘강압외교’로 전환할 것으로 내다봅니까.



    “사드 문제는 한국이 철회하거나 포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보다 대국인 중국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방어무기를 배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로서 치명적인 일입니다. 차기 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을 번복하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봐요.

    중국이 강압외교를 시작했습니다. 한국 정치권에까지 손을 뻗칩니다. 중국 외교가 사드 배치를 막고자 전방위로 뛴다고 보면 될 듯싶습니다. 중국의 반응이 굉장히 감정적이에요. 북한 미사일을 막는 방어무기에 중국이 왜 이렇듯 심하게 집착하면서 격한 반응을 보이는지 의문입니다. 사드 배치가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게 아니거든요.

    추론해봅시다. 시진핑 주석이 반대 의사를 표명해 번복이 어렵다는 얘기가 있는데, 베이징의 감정적 대응을 설명하기에는 미흡합니다. 배치 결정을 한 시기가 나빴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가 중국-필리핀 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직후 한국 정부가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합니다. 발표 시기가 좋지는 않았으나 한국 정부가 일부러 그런 상황에서 발표한 것은 아니죠. 미사일 방어(MD) 체계에 한국을 편입하려는 미국의 공작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음모론에 가까운 데다 사드는 중국의 안보에 위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은 딱 하나가 남습니다. 중국이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본다는 겁니다.”

    ▼ 어느 쪽에 설 것인지 묻는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하는 겁니다. ‘경제적으로 의존하면서 일을 이렇게 처리해, 어느 편에 설 거야’라고 묻는 거죠. 현재 수준의 강압외교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칩시다. 그러나 더 나아가 본격적인 한국 때리기에 나서면 그것은 강압외교 수준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패권외교 형태의 성격을 가진다고 봐야 해요.”



    한국의 핀란드化?

    ▼ 베이징이 미국에 비판적이면서 중국에 친화적인 한국의 정치세력이나 개인이 집권하는 것을 지원하는 등 ‘한국의 핀란드화’를 도모할 소지도 있을까요.

    “가능성이 있다, 없다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죠. 특정 정치세력을 유리 혹은 불리하게 하는 행동은 내정간섭입니다. 누구든 내정에 간섭하려고 시도한다면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핀란드화(핀란다이제이션·finlandi zation)는 1960년대 서독에서 생겨난 말로 냉전 시기 소련과 핀란드의 관계를 빗댄 표현이다. 특정 국가가 자주 독립을 유지하면서 대외정책에서 이웃한 대국을 건드리지 않는 것을 뜻한다. 냉전 시기 미국의 대외정책 전문가들은 일본과 서유럽 일부 국가가 핀란드화해 반(反)소련 정책을 취하지 않는 것을 우려했다. 소련은 핀란드의 내정에도 개입했다.

    ▼ 중국은 ‘내정불간섭’ 원칙을 견지해왔습니다. 우리도 개입하지 않을 테니 너희도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죠. 인권 등 중국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명분이기도 했습니다. 1월 초 야당 국회의원들이 중국을 방문해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대담한 것이 바람직한 행동이었느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사드 배치 문제로 불거진 중국과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힘을 과시하는 제국주의적 외교 행태를 보인다는 인상을 주는 게 중국에 도움이 안 됩니다. 한중은 경제, 문화에서 함께 설계할 미래가 있습니다. 서로 다투면서 2000년 역사를 되새겨서야 되겠습니까. 21세기잖아요.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서 벌어집니다. 미래지향적으로 갈등을 풀고 협력해야죠. 

    중국보다 소국이기에 한국이 더 많이 다칠 수 있으나 한중관계가 심각한 국면으로 흐르면 중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과도 충돌하면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 동아시아 전역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국가가 됩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세계의 리더가 되겠습니까.

    해결 방법은 대화밖에 없습니다. 한국 정부가 정비된 후 정상회담에서 대승적 타협을 이뤄야죠. 사드 배치가 중국 안보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해줘야 합니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배치를 철회하겠다고 또 한 번 강조해야 합니다. 안보 문제에 관해 앞으로 심도 있게 대화한다는 내용도 덧붙여야 하겠고요.” 



    “남북경협 재개는 시기상조”

    ▼ ‘중국통(中國通)’이라는 간판을 내건 이 대담의 주제와는 맞지 않으나 남북경협 재개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2010년 5·24 조치(천안함 폭침에 대응한 대북 제재) 때 주무장관이었습니다. 5·24 조치와 지난해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 결정으로 남북경협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남북경협은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요.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고서는 풀기가 어렵습니다. 5·24 조치의 큰 덩어리가 남북교역 중단입니다. 북한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 제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남북교역을 전면적으로 허용한다? 우리가 그렇게 결정할 수 있나요.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남북교역을 하면서 미국과 중국에는 제재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5·24 조치에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5월 23일 밤까지 개성공단을 5·24 조치에 넣을지 대통령과 토의했습니다. 결론은 결과로 나타났듯 포함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나쁜 행동을 꾸짖는 옵션을 한 바구니에 담아 털어 써버리는 것은 상책이 아니라고 봤어요.”

    ▼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쉬운 결정이 아니었겠죠. 속사정은 알 수 없습니다만 개성공단 가동 중단 외에는 북한에 충격(impact)을 줄 카드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천안함 폭침 때 비슷한 고민을 한 처지에서 박근혜 정부의 결정을 이해합니다.”

    ▼ 경제협력이 북핵 문제 해결의 또 다른 통로 구실을 하지 않을까요. 보수, 진보 어느 쪽이 집권하든 고민할 문제입니다.

    “남북경협을 재개하자고 말하는 것은 시기상으로 무리라고 봅니다. 북핵 문제가 엄중한 상황에서 경협에 나서면 제재 국면을 주도하지 못합니다. 정치적 위험(risk)이 크기에 교역하는 분들에게도 고통을 주고요. 기반과 환경이 조성된 후에 경협이 이뤄져야 해요. 북핵 문제에 획기적 전환점이 마련되면 협력이 활성화할 겁니다. 조급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기상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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