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호

특집 | 유력 대선 후보 반기문 vs 문재인 총력검증

너무 성급한 대북유화책 비극적 재앙 부를 수도

문재인의 불안한 국가관

  • 윤평중 | 한신대 철학과 교수 pjyoon@hs.ac.kr

    입력2017-01-26 09:3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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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의 아바타’ 이미지 못 벗어, 친문 패권주의 심각
    • ‘운명’과 ‘신념윤리’에 사로잡힌 진실한 아마추어
    • 폭력과 갈등이 폭주하는 남북관계, 선한 의도보다 결과가 중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이하 문재인)가 대세(大勢)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다. 엎치락뒤치락하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하 반기문)과의 격차도 조금 벌어지고 있다. 물론 반기문의 대선 행보가 본격화하면 이런 흐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보수가 반기문을 중심으로 급속히 결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선 판세는 그만큼 역동적이며 불확실하다. 하지만 2017년의 특징인 ‘초(超)불확실성’의 와중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문재인이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라는 사실이다.



    몰려드는 부나방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헌재 결정이 3월 말 이내 내려지면 대통령 궐위 후 60일 안에 치러질 차기 대선은 벚꽃 대선이 된다. 차기 대선의 흐름을 판단할 때 이는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차기 대선 과정 자체가 뜨거운 촛불혁명의 자장(磁場) 안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자초한 희대의 국헌문란과 국정농단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총체적 환멸을 감안하면 차기 대선의 틀이 ‘Anything but Park(박근혜적인 것에 대한 전면 거부)’이 되는 건 불가피하다. ‘대통령 박근혜’를 가능케 한 배경인 박정희 모델을 넘어서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는 게 단적인 증거다. 역대 대통령 지지도에서 부동의 1위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밀어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자리를 차지한 최근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국가의 틀을 파괴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게 나라냐’라는 비탄을 홍수처럼 쏟아지게 만들었다. 따라서 박정희와 그 기형적 후계자인 박근혜를 넘어서려는 정치인은 ‘이게 제대로 된 나라다’라는 대안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권력구조 개편에 초점을 맞춘 문재인의 제1성(聲)은 ‘박근혜적인 것’의 전복을 겨냥한다.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를 시민 품에 돌려주고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출근해 인사를 비롯한 모든 정책 결정 과정과 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는 공약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이 궤멸 직전이고 바른정당이 보수의 대체 세력으로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반기문이 예열(豫熱) 상태인 현실, 그리고 민주당 내 위협적인 경쟁자가 눈에 띄지 않는 작금의 정치적 진공 상태가 문재인의 독주(獨走)를 가능케 했다.

    문재인 대세론의 배경은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 박근혜가 남긴 그늘이 너무나 커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을 교체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나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여론이 팽배하다. 게다가 급박한 차기 대선 일정은 촛불의 직접적 영향 아래 있다. 박근혜의 가장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우선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8대 대선에서 역대 최강의 보수 주자였던 박근혜에게 분패한 문재인이 바로 그런 존재다.

    나아가 문재인은 원내 제1당이자 정당지지율 1위인 민주당을 거의 완벽히 장악하고 있다. 문재인은 2017년 1월 현재, 청와대 문턱에 가장 근접한 대선 주자로 떠올랐다. 그의 주위에 권력을 좇는 부나방들이 구름같이 몰려들고 있는 게 모든 걸 말해준다.  



    개혁적 보수까지 껴안아야

    하지만 ‘문재인 대세론’은 허점투성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대세론이 행복한 결말로 끝난 경우는 거의 없다. 이회창은 9년 반 동안 ‘거의 대통령’이었음에도 막상 대권 고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18대 대선 때 최강의 콘크리트 지지 기반과 박정희의 후광에도 박근혜는 몇 번의 실족 위기에 직면했다. 2012년 박근혜의 승리조차 천신만고 끝에 얻어진 것이다. 지금의 문재인 대세론은 한시적인 정치적 진공상태의 산물이라는 한계를 갖는다. 사상 최초의 진보 다수정권 출현에 대한 기대는 안이한 낙관론에 불과하다. 본 게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결국 대세론처럼 문재인에게 위태로운 것도 드물다.

    문재인에겐 열렬 지지층만큼 강력한 비토층이 있다. 박빙의 게임인 대선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정권교체에 공감하면서도 문재인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선택이다. 역대 대선에서 제3주자가 등장했음에도 내용적으론 여야 1대 1 박빙 대결인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에 비춰봐도 중간층의 향배가 중요하다.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철옹성 같은 고정 지지층이 있었음에도 과거사 사과와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중도층과 합리적 진보의 마음까지 움직임으로써 ‘비로소’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적 진공상태 속의 독주에도 문재인의 지지도는 20%대 박스권이거나 30% 초반이다. 물론 본선이 시작되면 지지도가 더 상승하겠지만 ‘정치인 문재인’은 지금 같은 호기(好期)에조차 압도적 흡인력을 보여주고 있진 못하다. 그가 아직 ‘노무현 아바타’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는 요인이 큰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 문재인은 정치인 노무현을 넘어서겠다”고 한 문재인의 약속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문재인을 둘러싼 친문 패권주의도 심각하다. 친박 패권주의가 초래한 국가적 재앙이 현재진행형인 터에 또 다른 패권주의적 당파의 집권이 악몽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지극히 정당하다. 결국 ‘대통령 문재인’이 현실화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문재인의 확장성에 달렸다. 문재인은 중도층과 개혁적 보수까지 껴안는 유연함과 개방성을 증명해야만 역사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정치인의 국가관은 대선주자로서의 강·약점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지도자는 국가의 본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국가의 본질인 공공성과 사적 이해관계를 뒤섞어버려 나라를 망가뜨린 박근혜는 처참한 몰락을 맞고 있다. 문재인은 박근혜가 파괴한 공공성을 되살려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지평에서 이런 출발이 성공적인 마무리를 반드시 보장하는 건 아니다.

    국가는 정의 실현의 주체이면서 특정 영토 안에서 폭력을 독점한 권력기구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정치 지도자는 때로 ‘권력과 폭력에 깃든 악마적인 힘과’ 제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는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 적나라한 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치자가 정의와 폭력의 평행선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하는 점은 국가철학과 리더십의 영원한 주제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의 2인자였음에도 운동권 지식인의 자화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2년 대선의 문재인은 ‘직업(소명)으로서의 정치’를 확신하지 못한 채 급조된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 이후 그가 ‘운명’을 거론했던 이유다. 문재인이 정치를 호명한 게 아니라 정치가 그를 호명했던 것이다. 결국 2012년 문재인은 프로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의 이러한 수동성이 18대 대선 패배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도덕 근본주의·포퓰리즘 언명들

    그렇다면 2017년의 문재인은 프로 정치인인가. 주어진 운명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소명(직업)으로서 현실정치를 다룰 자세를 갖추었는가. 그러나 그가 정의 실현과 상극 관계에 놓이기도 하는 폭력 주체인 국가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작금의 정치적 진공상태에서 그가 쏟아내는 도덕 근본주의적·포퓰리즘적 언명들이 이런 우려를 입증한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백번 지당한 당위명제지만 벌거벗은 힘의 충돌로 소용돌이치는 국제정치의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는지 실천방법론이 진짜 관건이다. 문재인은 이에 대해 침묵한다.

    당선된다면 가장 먼저 북한을 방문할 것이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즉각 재개할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유일체제 옹위의 절대무기인 핵미사일로 대한민국의 실존을 위협하는 김정은과의 평화공존이 제2의 햇볕정책 같은 유화정책만으로 가능한지 문재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유화정책과 압박정책 모두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했고 북 핵무장을 막지 못한 게 북한 문제의 진실이다. 북한체제의 내구성과 제국 중국의 북한 거들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유화책과 압박정책의 단순 대립을 넘어 제3의 접근법을 찾아야 할 시점에 문재인은 유화정책으로의 복귀만 너무 성급하게 설파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드 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말도 단선적이다. 사드의 함의는 방어용 미사일 배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의 밀어내기와 미국의 버티기’라는 세계사적 패권 게임에 관한 문명사적 인식이 필수적이다. 제국 중국의 대륙문명 대(對) 제국 미국의 해양문명의 각축전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으며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선택해야 하는지와 직결된 21세기 국가 대전략의 문제다. 사드 배치는 민족주의적 감성과 이념적 접근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국제정치적 난제이므로 철저히 베버적인 힘의 쟁투라는 국가철학의 지평에서 냉철하게 다뤄져야 마땅하다.



    “더 신중해야”

    문재인이 재협상하겠다는 한일 위안부 합의 문제도 더 신중해야 한다. 진정한 리더십은 민심에 영합하는 것만으론 창출되지 않는다.     

    문재인은 내면의 믿음을 의무감으로 실천하는 ‘신념윤리’의 인간형이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의 가치에 충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프로 정치인은 백척간두의 지평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신념윤리가 때로 비극적 재앙을 낳기도 하는 게 정치의 장(場)이기 때문이다. 프로 정치인의 소명은 ‘어떻게 나의 정치적 목표를 이뤄 현실적 결과를 창출할 수 있겠는가’로 확장돼야 한다. 이것이 ‘책임윤리’의 지평이다. 객관적 상황을 살펴 자신의 선택이 초래할 결과를 예상한 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능력이 책임윤리다.

    진실하지만 아마추어적인 정치인 문재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정치적 책임윤리다. 특히 남북관계는 권력과 폭력이 교차하며 온갖 물리적 갈등이 폭주하는 아수라(阿修羅)의 현장 그 자체다. 정치인 노무현이 자신의 진보적 신념윤리라는 좁은 틀을 넘어 책임윤리 차원에서 추구한 정책이 제주 해군기지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었다. 제국 중국의 군사적 팽창과 한미 FTA의 성과는 노무현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무현은 열렬 지지층의 이반(離反)을 감수하고 민심을 거스르면서까지 국가백년대계에 충실하고자 했다. 현실정치에서 선한 의도보다 중요한 게 결과다. 이처럼 정치적 책임윤리에 입각한 확장성을 증명해야만 정치인은 지도자로 우뚝 선다. 국가의 본질에 대한 명철한 인식을 가져야만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 2017년의 문재인이 과연 그런 담대한 역량을 보여줄 수 있을지 대한민국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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