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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 살아가기

일자리 나누기와 연대임금

獨 고생산성, 저실업률 비결

  • 김용기 |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일자리 나누기와 연대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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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6년 통독 이후 최저실업률 4.3%
  • ● 정규·비정규직 임금 차이 없어
  • ● 특유의 근면함과 효율적인 작업환경
  • ● 한국인 독일인보다 1.5배 더 일해
저성장과 고실업 시대를 맞아 각국이 독일을 주목하고 있다. 독일은 제조업 중심 국가로 높은 생산성을 기록하면서도 낮은 실업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있다. 2016년 독일의 실업률은 4.3%로 1990년 통독 이래 최저 수준이다. 이에 따라 독일의 기업문화, 노동시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 국가이긴 하지만 독일과 달리 ‘고용 없는 성장’에 신음하고 있다. 성장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비해 국내총생산(GDP) 1%포인트 증가 시 고용창출력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2016년에 15조 원이 넘는 일자리 예산이 투입됐음에도 질 낮은 단기 일자리 중심으로 고용률이 다소 상승한 정도에 그쳤다. 박근혜 정부 내내 실업률은 꾸준히 상승했다.



시간당 평균 소득 한국의 2배

독일의 기업문화, 노동시장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것은 근무시간이다. 독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단시간 근로를 자랑한다. OECD의 2016년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에 따르면 독일 근로자는 평균 1371시간을 일한다(2014년 기준). 한국의 2124시간에 비하면 1년에 753시간을 덜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당 평균 소득은 한국의 2배가 넘는다. 주당 40시간 근무로 환산할 때 독일인은 한국인보다 1년에 4개월이나 덜 일하는 것이고 주당 35시간 근무로 계산하면 5개월을 덜 일한다.

독일이 원래 근무시간이 가장 짧았던 나라는 아니다. 1990년만 하더라도 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 등이 모두 1인당 연 1500시간 이내의 근로시간을 기록해서 최단시간 근로 국가였다. 독일의 당시 근로시간은 연 1600시간 수준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했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려면 그만큼 시간당 생산성이 높아야 하며,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손실(노동자 측)과 추가 고용에 따른 비용부담(사용자 측)이란 부정적 효과를 조절할 수 있는 노사 간 합의나 이를 도울 수 있는 노동시장 제도가 필요하다.

독일은 주당 35시간 근로가 정착돼 있을 뿐 아니라 유급 연차휴가도 연평균 30일에 달한다. 매년 공휴일을 포함하면 40일간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 매년 1개월 이상의 안식월을 향유하는 셈이다. 대·중소기업 간, 정규·비정규직 간(전일제와 시간제 간) 임금격차도 거의 없다.

2013년 8월 영국 공영방송 BBC는 ‘독일 사람 되어보기(Make Me a German)’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산업혁명을 처음 시작한 나라지만 이제는 자국 제조업의 쇠퇴를 경험하고 있는 영국이, 후발공업국에서 올라섰지만 여전히 제조업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독일의 비결을 찾고자 하는 게 이 다큐의 기획 의도였다. 당시 영국 총리이던 데이비드 캐머런조차 독일인 특유의 근면함과 효율적인 작업환경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던 때였다. BBC 기자인 저스틴 로렛과 그의 부인이자 작가인 비 로렛이 직접 자녀를 데리고 독일에서 단기 체류하면서 독일 기업과 사회를 경험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이 다큐는 현재 유튜브에 올라와 있어 언제든지 시청이 가능하다. 1시간 분량이다.

다큐의 무대는 독일의 바이에른 주 뉘른베르크다. 이곳에서 1934년 나치(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제6차 전당대회가 열린 바 있다. 공산주의자와 반동주의자를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인종청소를 단행한 나치는 1933년 집권해 1945년까지 12년간 권력을 유지했다. 영화나 다큐에 종종 등장하는, 나치가 만든 선전 영상을 보면 제6차 전당대회의 정경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전당대회 마지막 날인 1934년 9월 14일 나치 부총통 루돌프 헤스가 단상에 올라 “당은 곧 히틀러다. 독일은 히틀러다”라고 주창하며 총통 히틀러에 대한 만세삼창을 끌어내는 장면은 매우 선동적이다.



독일 사람 되어보기

아무튼 나치의 고장 뉘른베르크는 지멘스, 아디다스, 퓨마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연필회사인 파버 카스텔(Faber Castell)의 고장이기도 하다. 독일의 주거비용은 파격적으로 저렴하다. 월세 비용이 영국에 비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절반 이상의 독일인은 월세 형태의 임대주택에 거주한다. 한번 집을 빌리면 대부분 10∼20년씩 안정적인 거주를 보장받는다. 영국의 경우 많은 사람이 집을 소유하기 위해 조바심을 갖고 주택 보유를 통해 가계 재산을 증식하려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월세로 안정적 주거를 누릴 수 있는 독일인은 주택 소유를 위해 짊어져야 할 빚이 덜한 탓에 가계부채 규모도 영국인의 절반에 불과하다.

독일인 중 가장 흔한 남성 이름은 토마스 뮬러(Müller)다. 평균적 독일남성인 뮬러는 6시 23분에 기상해, 7시 49분이면 직장에 도착한다. 8시부터 일과를 시작해 4시에 퇴근한다. 출근 차량은 독일산이다. 런던을 포함한 유럽 대부분의 도시에서 다양한 국가의 차량이 섞여 운행되고 있지만 독일에선 3분의 2가 독일산이다. 독일 직장인의 3분의 2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 중견·중소기업)로 출근한다. 미텔슈탄트의 상당수는 이른바 ‘히든챔피언’이다. 아주 좁고 특정한 시장을 겨냥하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함으로써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는 전략을 취한다. 저스틴 로렛이 일하게 된 파버카스텔의 사장은 창업주의 자손이다. 사장은 연필이라는 특별하지 않은 이 시장을 지속적으로 공략하는 전략이 향후에도 계속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다큐에서 읽히는 독일 기업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근무시간은 근무시간이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클릭한다거나, 다른 동료들과 직장 내 가십을 얘기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 행위가 발각될 때 상사에게 혼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주변 동료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임금보다 고용 안정성

다큐가 제작된 2013년 당시 독일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802유로(월 356만 원)이다. 보너스를 제외하면 산업별로 대·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임금 수준은 거의 유사하다. 기업 내 사용자와 노조가 임금협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산업별로 산별노조와 경영자협의회가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연대임금이다. 노조조차 임금 인상보다는 고용의 안정성을 더 중시한다. 보너스는 팀별 성과에 따라 지급된다. 성과를 철저하게 팀 베이스로 측정한다는 것도 특징적이다.

미국의 인터넷 언론 허핑턴포스트도 2015년 초에 ‘왜 독일인은 적게 일하면서도 많이 생산하는가: 문화적 연구’라는 블로그를 게재해 BBC 다큐와 동일한 의문에 접근하고 있다. 여기서는 독일 근로자들이 지닌 높은 생산성을 임직원의 목적지향성과 직접적 의사소통 방식으로 설명한다. 미국인들은 잡담을 중시하고 가급적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반면, 독일인들은 핵심을 바로 건드린다는 것이다.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거나 정치적 수사를 담지 않는다. 근로자들은 감독자에게 직접적으로 업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감독자 또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상사가 직원에게 “3시까지 처리하면 좋을 것”이라 말한다면, 독일 상사는 “나는 이게 3시까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할 때는 집중하고 열심히 한다. 이것이 짧은 시간에 높은 생산성을 가져오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독일 기업문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긴 유급휴가다. 2015년 독일 바이에른 주 고용주연합 의뢰로 실시된 자동차 등 금속·전기산업 분야 휴무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일 근로자들은 유급휴가 30일에 법정 공휴일 10일을 더해 연 40일을 쉬는 것으로 파악됐다.



OECD 최저 청년실업률

독일은 모든 사업장에 법정 공휴일이 적용되지만 한국은 공무원과 대기업을 제외한 많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법정 공휴일에도 쉬지 못한다. 온라인 여행 사이트 익스피디아의 ‘유급휴가 국제비교 2015’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이 사용한 유급휴가는 6일이었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경우 5인 이상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15일의 유급휴가를 보장받지만 업무 부담으로 사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현금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휴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독일의 양육휴가(Elternzeit)는 환상적인 수준이다. 독일에서 12개월 이상 직장생활을 한 부모는 부모양육휴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자녀 출생 이후 3년간 무급휴직이 가능하고, 휴직 기간 중 파트타임으로 30시간 이내 일하는 것이 가능하다. 무급양육휴직이 끝난 이후에 기업은 반드시 부모에게 전일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어린이의 나이가 여덟 살 생일에 이르기 전까지 추가적으로 양육 휴직을 1년 더 연장할 수 있다. 부모 중 누구도 휴직이 가능하다. 휴직 기간 중 국가는 1800유로(228만 원 상당) 한도 내에서 14개월간 봉급의 67%를 지불한다.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도 독일에선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니다. 직장에 첫발을 내딛는 독일 청년의 절반은 열다섯 살 때부터 도제학교에서 훈련된 인력들이다. 졸업 후 어렵지 않게 해당 업종 일터로 출근한다. 그 결과 OECD 최저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20년 전인 1997년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5.7%였고 독일은 10.2%였다. 이것이 2013년부터 역전됐고(한국 8%, 독일 7.8%), 2016년 독일의 청년실업률은 7% 초반까지 떨어졌지만, 한국은 9.9%까지 치솟았다. 대부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자로 처리조차 되지 않는 163만 명에 달하는 한국 청년니트(NEET族, 취업·교육·직업훈련 어느 것도 안 하는 이들)의 존재를 감안하면 양국 간 실업률 격차는 2∼3%포인트를 훨씬 초과할 것이다.

오후 4시까지의 집중근무시간이 끝난 이후 독일 근로자들은 철저하게 사생활 모드로 전환한다. 직원들끼리 어울리거나 회식하는 일은 찾기 어렵다. 독일의 많은 기업은 근무시간 외 직원의 e메일 접속 자체를 차단한다.


여가 활용에서 큰 차이

서울연구원이 1월 9일 발표한 서울인포그래픽스 ‘서울시민은 쉬는 날 무얼 할까’에 따르면 서울시민 10명 가운데 4명은 주말이나 휴일을 TV 시청에 소비한다. 스포츠(8.2%), 사회 및 기타 활동(7.8%), 취미와 자기개발(7.5%)을 모두 합쳐도 23.5%에 불과하다.

반면 독일 근로자 대부분은 직장생활만큼 열심히 클럽활동에 매진한다. 클럽활동을 통해 독일 사회공동체의 일원임을 느낀다. 이곳에서 간식을 나누고 술잔도 기울인다. 스포츠, 합창이나 악기 등 음악, 하이킹, 토끼나 비둘기와 같은 동물 사육, 그리고 온갖 종류의 물건을 수집하는 모임 등 클럽의 성격은 다양하다. 아무리 작은 동네라도 주민들의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5∼6개의 클럽이 반드시 존재한다. 퇴근 후나 주말 내내 집 안에 머물며 부부가 TV 리모컨을 놓고 갈등을 벌이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독일 사회에서 나타나는 짧은 근로와 긴 여가는 서구에서 아주 오랫동안 행복의 조건으로 지적돼왔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행복의 정복’으로 유명한 영국의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의 또 다른 중요한 저작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이다. 러셀은 1935년 발간한 이 책에서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 확립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잘 운영된다면 평균인들은 하루에 4시간만 일하면 기초적인 의식주와 생필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머지 여가시간은 과학적 탐구와 그림, 그리고 글쓰기 등 문화 활동을 위해 사용한다. 기술 진보를 통한 생산력의 발전이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철학자 러셀만이 아니다. 러셀의 책이 나오기 5년 전인 1930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우리 손자들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란 글을 통해 주당 15시간 노동 시대를 전망했다. 케인스는 자신의 손자들은 주당 15시간 이상 일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전망했다. 케인스가 생각한 손자들이 일하는 시대는 2030년이다.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현실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인류의 생산성은 아마도 러셀이나 케인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했을지 모르지만 근로시간 단축이나 넉넉한 여가시간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OECD 선진국들은 러셀이 생각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주당 최저 35시간에 근접한 시간만큼 일하고 있다.



1990년대 일벌레 일본 직장인처럼

한국은 주 5일 근무제가 2004년 도입된 이후 이전까지 2600시간이 넘던 살인적 노동시간을 거의 500시간이나 줄였다. 주 5일제가 도입될 당시 경제성장은 멈추고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고 우리의 삶은 개선됐다. 하지만 2013년 이후 근로시간은 더는 줄어들지 않은 채 정체돼 있다. 우리는 2017년에 살고 있음에도 1990년대 일벌레로 불리던 일본 직장인이 일하던 양만큼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있다. 유럽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70년 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인들은 지금 우리만큼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었다.

재벌 기업의 CEO와 고위 임원들은 한 해만 버티면 최대 수십억 원 이상의 보상이 보장돼 있는 터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회사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 반면 상당수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거나, 생계 때문에 60시간 이상 과로사 수준으로 일하면서 ‘이것만도 어디냐’ 하는 마음을 갖는다. 독일에서 진행 중인 근무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연대임금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일하는 시간을 골고루 나누고 임금격차를 줄이는 것은 저성장시대에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방법일 뿐 아니라 사회적 정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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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 seriykim@aj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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