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온라인 커뮤니티 ‘받아쓰는’ 언론에 책임 물어야

[이동수의 투시경]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3-09-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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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증 없는 인용이 ‘가짜 뉴스’ 온상

    • 젠더 갈등 폭발시킨 ‘이수역 사건’

    • 장난삼아 쓴 거짓말, 실재가 되다

    [Gettyimage]

    [Gettyimage]

    다이내믹한 밤이었다. 7월 19일,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오후 8시경이었다. 첫 보도는 건조했다. 생을 마감한 교사가 1학년 담임이었고 저연차에 속했다는 사실만 간략히 담았다. 자살 이유나 유족·학교 측 태도는 전해지지 않았다. 기사의 파급력은 컸다. 이내 다른 언론이 따라붙었다. 각종 맘 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젊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를 놓고 온갖 추측과 해석이 이어졌다.

    오후 9시 20분,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이 페이스북에 입장문을 올렸다. 그는 “현재 경찰이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수사 중에 있다”며 “사망 원인에 대한 파악이 끝나지 않았으니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학교 구성원이 받을 충격을 감안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 교육감의 요청은 분노한 여론을 잠재울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는 교내 학교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학부모 갑질이 있었다는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됐다. 그 학부모가 정치인이라는 설도 나돌았다.

    오후 9시 42분, 한 언론이 “정치인 부모 ‘갑질’ 논란”이라는 문구를 제목에 넣은 기사를 내보냈다. ‘네티즌 수사대’가 이내 범인 색출에 나섰다. 처음 지목된 인물은 서초구의 한 구의원이었다. 그러던 중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학부모 아빠가 정치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교육청에서 일한다”는 그의 글은 삽시간에 다른 인터넷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3선 의원’ ‘할아버지가 군인 출신’ 등의 내용이 덧붙여졌다. ‘익명의 형사’들이 완성한 표적은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이었다. 오후 11시 전후로는 “학폭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있었고, 그 학부모 부친이 한기호 의원인 까닭에 담당 교사의 죽음이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정치인’ ‘갑질’ ‘안타까운 죽음’까지 국민이 분노할 만한 요소가 모두 갖춰지자 표적이 된 한기호 의원 블로그에는 해명을 요구하는 이들의 비난이 쇄도했다. 다음 날 오전에는 방송인 김어준 씨도 유튜브 방송을 통해 “현직 정치인이 연루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국민의힘 소속 3선으로 저는 알고 있는데 전혀 보도가 없다”고 거들었다.

    이 사건은 한기호 의원이 “외손녀는 중학생이고 외손자는 다른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해명하면서 일단락됐다. 서이초등학교 측도 숨진 교사는 학폭 담당이 아니었고, 인터넷에서 제기된 것처럼 해당 학급의 담임이 교체된 사실도 없으며, 이 학급에 정치인의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밝혔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말마따나 “교장이 목숨 걸고 거짓말하는 건 아니라는 가정하에 인터넷에서 나온 말 중에 사실인 것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하룻밤 만에 종결된 ‘의원 연루설’은 한국형 루머의 기승전결을 두루 갖췄다. 공분을 살만한 사건이 발생하면 맘 카페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그 배경과 가해자 신상을 찾는 목소리가 커진다. 여기서 그 사건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들은 기본적으로 익명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신변이 노출될 일은 거의 없다. 남녀노소 구분도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러니 온갖 거짓 폭로와 ‘카더라’가 난무한다. 게시 글은 캡처돼 여타 커뮤니티로 전파된다. 많이 퍼진 글을 중심으로 다수 의견이 형성된다. 인터넷 매체가 이를 재빠르게 포착해 ‘논란’ ‘의혹’ 등의 단어를 붙여 기사를 내보낸다. 기사화되는 순간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일은 사람들 뇌리 속에 이미 사실로 자리 잡는다.

    거짓말이 실재가 되는 초현실

    언론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주요 뉴스 소재로 삼기 시작한 건 2010년대 들어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빅카인즈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키워드가 온전히 포함된 기사는 2008년 398건, 2009년 509건에 머물렀다. 그 내용도 기업이 행사에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를 초청했다든지, 관련 서비스를 새로 출시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었다. 그랬던 게 2010년 1414건으로 껑충 뛰더니 2012년엔 2만 건을 넘어선다.

    극우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가 사회문제로 대두하면서 기사가 급증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뉴스 생산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낯선 이름의 인터넷 매체뿐 아니라 빅카인즈에 등록될 정도로 저명한 종합일간지·경제지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논란과 이슈를 뉴스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는 매년 1만∼2만 건 정도 생산되고 있다. 이건 순전히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에 한해서다. 개별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다룬 기사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증가한다. 에브리타임(에타)·블라인드 등 전에 없던 대형 커뮤니티가 등장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언론은 왜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앞다퉈 보도하는가. 그런 콘텐츠가 많이 읽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많이 읽히는 정도가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지난해 ‘미디어오늘’이 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와 함께 네이버 콘텐츠 제휴 언론 30곳의 조회수 상위 기사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온라인 커뮤니티를 소재로 한 기사의 조회수가 그렇지 않은 기사보다 평균 5만7000여 회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협회보’ 역시 2021년 네이버 제휴 언론 73곳을 대상으로 페이지뷰(PV) 상위 기사를 분석했는데, 대부분 연예인·유명인사의 논란과 더불어 온라인 커뮤니티발(發) 기사였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믿고 쓰는 언론의 취재원이 된 셈이다.

    언론의 ‘커뮤니티 받아쓰기’가 위험한 건 그 내용의 폭발력에 반해 책임성은 ‘제로’에 수렴한다는 점에서다. 커뮤니티에서 이슈들은 대개 사람들의 분노와 갈등을 먹고산다. 자극적 주장이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그게 여타 커뮤니티와 언론으로 확산하며 엄청난 갈등을 낳는다. 그 갈등은 때로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 등장할 만큼 중대 사안으로 번지지만, 누군가 그 갈등에 책임을 지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최초 주장이 거짓이라도 그렇다.

    2018년 청년층 남녀를 둘로 나눈 ‘이수역 사건’이 대표적 예다. 2018년 11월, 한 여성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지인과 함께 이수역 근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중 3명의 남성으로부터 “머리가 짧고 화장을 하지 않았단 이유로 메갈년 등의 욕설과 함께 머리뼈가 드러날 만큼 폭행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30분이나 늦게 왔고 조사 과정에서 여성 경찰도 없이 가해자와 분리하지 않아 두려웠다고도 했다. 2명의 여성이 3명의 남성으로부터 “뼈가 보일 만큼” 폭행당했다는 주장에 여론은 들끓었다. 남성들을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 글은 하루 만에 30만 명 넘는 사람들의 동의를 얻었다.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정치인들도 적극적으로 가세했다. 신지예 당시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를 “여성에 대한 명백한 증오 범죄”라고 규정했고,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피해 여성들이 공권력의 편파성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경찰을 질타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같은 단체들은 “폭행의 정도가 살인미수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이슈가 발생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슈에 편승하는 이른바 ‘사이버 렉카’들도 각자의 논리로 이 사건을 다루며 적잖은 조회수를 챙겼다. 언론은 이런 주장을 기본적 사실 관계 확인도 하지 않고 ‘의혹’ ‘논란’만 붙인 채 앞다투어 보도했다.

    “극단적 선택도 생각했다”

    최초 제보자 얘기는 대부분 거짓이었다. 경찰은 신고 접수 후 4분 만에 도착했고, 남녀 쌍방을 분리해 조사를 진행했다. 심지어 먼저 시비를 건 것도 여성 측이었다. 이들은 이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최초 피해 게시 글을 직접 올린 적이 없다”고 정정하기도 했다. 남녀 양측은 공동폭행, 상해, 모욕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2021년 5월 여성 200만 원, 남성 100만 원의 벌금을 확정했다. 술자리에서 빚어진 가벼운 시비 정도로 넘어갔어야 할 이 사건은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맹목적 분노와 수준 낮은 정치인들의 설레발, 무책임한 언론의 황색 보도가 결합되면서 한국 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갈등은 여전히 봉합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갈등 조장에 기여한 이들 중 이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반성을 표명한 이는 없었다. 우리는 지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장난삼아 쓴 거짓말이 정치와 언론이라는 틀을 거쳐 실재하는 갈등으로 둔갑하는 초현실적인 세상을 살고 있다.

    올해 4월, 미국 폭스뉴스가 투·개표기 업체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도미니언)에 한국 돈으로 1조 원(7억8750만 달러) 넘는 배상금을 물어주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폭스뉴스는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패배한 것에 대해 “도미니언이 조 바이든에 유리한 쪽으로 투표기를 조작했다”는 식의 주장을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그 과정에 트럼프 전 대통령 측과 평론가들의 입을 빌렸다. 대선 투표 조작과 관련해 미국 언론사에서 전례 없던 규모의 배상금이 나오게 된 것은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삼는 미국에서조차 그러한 가짜 뉴스의 해악을 경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한국 사회는 가짜 뉴스에 지나친 관용을 베풀고 있다. 비단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익명을 기반으로 한 ‘카더라’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언론은 기본적인 취재조차 하지 않은 채 이를 기사화하며 상당한 조회수와 이득을 챙기고 있다. 그런 뉴스가 언론사의 주요 뉴스로 선정(Pick)되는 것도 다반사다. 그 기사들의 조회수가 상승하는 만큼 갈등 소지는 더욱 커진다. 정치권의 보수·진보 스피커들이 생산하는 가짜 뉴스가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고 정치 양극화를 부추기는 정도의 기능을 하고 있다면, 온라인 커뮤니티와 언론이 합작해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들은 보편적 시민들 사이의 갈등을 심화하고 더러는 무고한 사람에 대한 마녀사냥을 선동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2017년 9월 “아이가 혼자 내려 엄마가 울부짖으며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도 운전기사가 무시하고 가더라”라던 게시 글이 발단이 된 ‘건대 240번 버스’ 사건이 그랬다. 차고지 방향, 차량 번호, 시간 등이 구체적으로 기재된 까닭에 여론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였고, 운전기사에 대한 강력 처벌을 요구했다. 서울시 진상 조사 결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처음 올라간 글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운전기사는 “억울해서 극단적 선택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누군가 장난으로 쓴 글이 죄 없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 뻔했다.

    하룻밤 새 뜨겁게 진행된 ‘3선 의원 연루설’은 그 표적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고,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지 않은 일이었던 까닭에 하루 만에 종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 정비로 이어지지 않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가 띄우고 언론이 가담하는 ‘환장의 콜라보’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글을 쓰는 커뮤니티 이용자와 조회 수를 위해 이를 맹목적으로 받아쓰는 언론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만큼 사회적 발언의 무게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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