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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뤄 ‘나’에게 선물하는 게 삶에 대한 예의

[에세이]

  • 신광철 작가·한국학연구소장

    입력2023-09-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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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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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는 거인이 살고 있다. 내 안에 꿈이 있어서다. 내 안에 있는 거인의 잠을 깨우고, 내 안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내 안에 있을 때는 꿈이지만 세상 밖으로 가지고 나오면 거인의 꿈이 된다. 꿈을 선물하라, 자신에게. 그것도 꿈을 이루어서 선물하라. 지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인 나 자신에게 선물하라. 꿈은 이루어서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이 인생에 대한 예의다. 나는 나 자신에게 주문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고, 글을 썼다. 글 쓰기 지루했고, 막막했다. 그럼에도 지루하고 막막한 길을 선택했다.

    나는 인생을 세 단계로 나눈다. 인생을 90년으로 봤을 때 첫 번째 단계는 부모의 가족으로 사는 단계다. 태어나서 30세까지로 결혼 전까지의 기간이다.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가족으로 배우고 익히는 단계다. 준비하는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내가 만든 가족을 위해 사는 단계다. 30세에서 60세까지의 기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기간이다. 부모에게 받은 것을 자식에게 내려주는 기간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는 60세 이후다. 오롯이 나를 위한 인생을 살아야 할 단계다. 아이도 결혼해서 독립했을 나이다. 부부 사이도 느슨해져서 사랑보다 우정으로 사는 느낌이 든다. 30년을 같이 살았으니 함께하되 독립된 인생을 살 필요가 있다. 인생은 분명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세 번째 단계가 바로 독립된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는 단계다. 사람은 태어난 이유가 있다. 태어난 이유를 실현하는 기간이다.

    첫 번째 단계는 부모의 가족으로 살고, 두 번째 단계는 내가 만든 가족을 위해 살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나를 위해 살아야 할 단계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사람을 가만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인생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봐도 알 수 있다. 사람은 길게 생겼다. 사람인 내가 사람을 바라보니 정상이지 다른 동물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기형적 존재로 보일 수 있다. 대부분의 동물은 몸을 옆으로 눕혀서 이동한다. 사람은 길게 생긴 몸을 세워서 걷는다. 거기에 가분수다. 사람 모형을 만들어서 세워보라. 세워지지 않는다. 가분수에 사람의 중심축이 사람의 두 발 밖에 존재한다. 결국 사람 모양을 만들어 세우면 넘어지게 돼 있다. 발을 고정시켜야 마네킹이 세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자연 상태에서 넘어지게 만들어진 구조를 가진 동물이다. 사람의 몸이 이야기하는 것은 넘어지게 만들어졌으니 일어나는 것만 배우라는 선언이다. 넘어지게 만들어졌으니 인생은 일어나는 것만 반복하면 된다.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사람의 걷는 모양을 살펴봐도 인생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사람이 걷는 모습을 살펴보라. 한 발이 앞으로 나갈 때 발이 엇갈린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걸을 때, 한 손이 앞으로 나가면 한 손은 뒤로 간다. 두 발과 두 손이 엇갈린다. 인생은 엇갈리면서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성공·웃음·행복·기쁨이 정상적인 것이고, 실패·고난·슬픔·외로움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성공만 하라고 태어나지 않고, 실패만 하라고 태어나지 않는다. 또한 사람은 행복하라고만 태어나지 않고, 슬프라고만 태어나지 않는다. 인생은 대하는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성공과 실패는 하나의 엇갈리는 짝이다. 행복과 슬픔도 교차하는 하나의 짝이다. 인생은 성공으로 행복을 배우고, 실패로 깨달음을 배운다. 한쪽만을 가지고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면 답이 나온다. 실패, 고난, 슬픔, 외로움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힘들어하거나 아파하지 말고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누리고 즐겨야 한다. 실패와 고난에 당당하고, 슬픔과 외로움을 즐겨라. 나는 나에게 주문한다.

    인생은 엇갈리면서 목표 향해 가는 것

    나는 세 번째 단계를 조금 미리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고, 글을 썼다. 출발은 그리 쉽지 않았다. 인생에 어려움이 닥쳤다.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빚만을 떠안았을 때 나는 선언했다. 전문 작가로 살아보겠다고. 무모한 짓이었지만 가족의 동의를 얻어 출발했다. 대한민국에서 글로 먹고 산다는 것이 무책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밀고 나갔다. 빚을 진 사람이 시작한 전문 글쓰기였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도전했다. 우선 좋아하는 시를 접어두고 전문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출판사에서 원하는 글과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을 함께 썼다.

    글이 노동인 것을 확실하게 깨우친 시기였다. 나중에는 지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눈이 따가워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얼굴에 개기름이 흘러서 눈에 들어가면 눈이 따가웠다. 머리를 감고 다시 시작하면 한 시간도 안 돼 다시 눈이 따가웠다. 지쳐서 그랬다. 하루에 16시간씩 쓰곤 했다. 책 한 권이 나오려면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목차를 만들고, 전문가 수준으로 공부해야 한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공력이 필요하다. 땀이 필요하다. 그렇게 시작한 지 3년 반 만에 15권의 책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많은 책을 썼다. 힘들면서 즐거웠고, 아프면서 의미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힘들고 몸이 쑤셨고, 즐거우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글쓰기를 할 때 생각이 난다. 출판사 대표가 내게 주문했다. “책 한 권 써주시지요.” 내게 필요한 주문이었다. “어떤 책을 써드릴까요?” “한옥이요.” “한옥은 모르는 분야입니다. 한옥은 제가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예? 한옥은 모른다니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아는 만큼만 쓰시면 됩니다.”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몰라도 되고 아는 만큼만 써달라니. 하지만 분명 농담이 아니었다. “몰라서 못 쓴다는데 굳이 내게 써달라는 이유가 뭡니까?” 나의 높아진 억양의 반문에 대한 답이 나를 흔들었다. “대한민국에 한옥을 짓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한옥을 한국인의 정신으로, 한국의 전통으로 책을 쓰는 사람이 없습니다. 신 작가님이 한옥 책을 쓰면 한국인의 정신으로 쓴 한국 최초의 책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한옥마을을 돌면서 한옥마을을 소개하는 책을 냈다. 판매 성적이 좋았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서 의미 있는 한옥을 찾아 단독으로 된 ‘소형한옥’이라는 책을 썼다.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고, 대사관 비치 도서로도 선정돼 우리나라 대사관이 있는 곳에 비치돼 전 세계에 나가 있다. 그렇게 5권의 한옥 책을 썼다. 꿈이 다소 무모하더라도 일으켜 세우면 현실이 된다.

    나의 전문 글쓰기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자유롭다. 더구나 진정 쓰고 싶었던 책이 있었다. ‘환단고기’의 소설화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환단고기’를 한민족 역사학계의 축복이라고 한다. 10년 공부했고, 3년여의 시간을 들여 ‘소설환단고기’ 5권을 완간했다. 이제 나의 꿈을 이루었다. 나는 작았지만 내 안에는 거인이 들어 있음을 알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다시 말한다. 꿈은 이루어서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이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하지만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꿈은 땀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요구했다. 배는 안전한 항구에 매어 두려고 만들지 않는다고. 배는 바다를 꿈꾼다고.

    신광철
    ● 1959년 충북 진천 출생
    ● 1994년 시 ‘탄생, 그 언저리’로 삼오문학상(불교문예 전신) 수상
    ● 저서 : ‘소설환단고기’ ‘꼬마철학자 두발로’ ‘칭기즈칸리더십’ ‘사는 것도 중독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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