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학생·학부모에 당하고도 선생은 신고조차 못 해”

초등학교 교사 출신 1호 교총 회장 정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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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3-09-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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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보다 학부모 교권 침해 잦아

    • 학생 권한만 강조 학생인권조례 후유증 심각

    • 아동학대법 악용 ‘기분상해죄’ 민원 빈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학생이 같은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를 구타하거나 학부모가 교사를 모욕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7월 25일과 26일 이틀 동안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교권 침해 수준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선생님이 유산되면 좋겠다”는 악담부터 “선생님을 임신시키고 싶다”는 성희롱까지 사례도 다양하다.

    교권 침해로 접수된 1만1627건 가운데 ‘아동학대 등 악성 민원’이 6720건(57.8%)으로 가장 많았고, 폭언·욕설 2304건(19.8%), 업무·수업 방해 1731건(14.9%), 폭행 733건(6.3%), 성희롱·성추행 140건(1.2%)이 뒤를 이었다. 가해자는 학생만이 아니다. 학부모의 교권 침해는 8344건(71.8%)으로 학생(3284건, 28.2%)보다 2.5배가 많았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월 1일부터 올해 6월까지 공립 초·중·고교 교사 100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가운데 초등학교 교사가 57명으로 가장 많았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의 1학년 담임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도 무너진 교권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역대 최초로 초등학교 교사 신분으로 교총의 수장이 된 정성국 회장. [조영철 기자]

    역대 최초로 초등학교 교사 신분으로 교총의 수장이 된 정성국 회장. [조영철 기자]

    학습권과 교권 보호 시급

    교사라면 누구나 사태의 심각성을 공감하지만 현행법이나 지금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교권 침해를 막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학생의 폭행이나 학부모의 ‘갑질’을 당한 선생님은 피해자가 분명함에도 고소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도리어 학생을 관리·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추궁당하거나 아이를 학대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기 일쑤죠. 아이의 문제적 행동에 합당한 생활지도를 해도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고소하면 속수무책이에요.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직위해제가 되기도 해요.”

    8월 2일 서울 서초구 교총회관에서 만난 정성국 교총 38대 회장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정 회장은 역대 최초의 초등학교 교사 출신 교총 회장이다. 교총 회원들이 대학교수가 주로 맡던 회장직에 그를 추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 회장은 “현장의 요구와 염원을 적극 반영할 리더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답했다.



    “대학교수의 비율이 전체 회원의 2.5%에 불과해요. 관행을 따르기보다 변화를 주도하며 새 시대를 이끌 리더가 필요했죠.”

    그가 현직 초등학교 교사라는 녹록하지 않은 여건을 감내하며 교총 회장에 도전한 이유도 “이제는 젊고 역동적이고 현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교총을 이끌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난해 7월 취임 후 “도를 넘어선 교권 침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학생의 학습권과 교원의 교권을 보호하는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해 왔다.

    학생들 앞에서 교사가 구타당한 사건을 접하고 충격 받았다는 이가 적지 않다. 교권 침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대한민국 모든 교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례로 학생 23명이 짝지어 앉으면 혼자 앉는 아이가 생긴다. 그러면 학부모가 교사에게 우리 아이만 차별한다고 항의한다. 학생인권조례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어서다. 그 때문에 아이가 마음이 너무 아파 괴로워한다고 아동학대로 신고하면 교사는 조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제재를 받는다. 최악의 경우 면직될 수도 있다. 교사가 고소를 당하면 혼자 싸워야 한다. 학교도, 교육청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 이게 대한민국 교사의 현실이다 보니 교사가 제대로 된 생활지도를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부터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교사가 직접 악성 민원에 시달리게 해선 안 돼

    교권 침해의 근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원인은 학생인권조례에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2010년 처음 시행될 때는 교사의 교육권이 강해 학생의 인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학생의 권한만 강조하고 책임과 의무는 약하게 담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선생님이 소지품 검사를 하지 못한다. 수업을 방해하는 휴대전화도 수거할 수 없다. 그런 환경에 익숙해져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아동학대법도 교권 침해를 유발하는 원인이다. 2017년 부모가 아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한 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아동학대법이 생겼다. 가정폭력과 학대를 막기 위해서였는데 그게 지금은 선생님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학부모가 걸핏하면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기분상해죄를 아동학대로 몰아 악성 민원을 넣고 있다. 또 다른 교권 침해의 원인은 자식을 금쪽같이 여기는 ‘금쪽이 문화’에 있다. 내 아이는 완전히 보호받아야 하고, 어떤 압력도 받아선 안 된다고 여기는 문화가 퍼져 있다.”

    악성 민원 등으로 교권을 침해한 학부모에 대응할 방법은 없나.

    “학부모가 교육청에 악의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 교사는 이력에 치명타를 입는다. 그 때문에 억울해도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권을 침해한 학부모를 고발해 과태료를 부과하게 하는 등 엄중 조치할 수 있도록 교원지위법을 개정해야 한다. 폭행, 폭언, 협박 같은 형사사건 수준의 교권침해는 교육감이 고발하도록 이행력을 담보해야 실효를 볼 수 있다. 지금처럼 교사가 직접 민원에 시달리게 둬선 안 된다. 교내 민원 창구를 단일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문제 행동으로 교사의 교육활동을 방해하거나 폭언·폭력을 행사한 학생은 어떻게 제지하나.

    “교사에게는 문제 학생을 가르치지 않을 권리가 없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는 심각한 학교폭력이 있었을 때 퇴학이나 전학이 가능하지만 초등학교에는 퇴학이라는 제도가 없다. 문제 학생이 전학 오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 교사는 거부할 권한이 없다. 그 아이를 보통 아이들과 분리할 권한도 없다.”

    그 때문에 보통의 생각을 가진 아이들과 교사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 같다. 해법이 있나.

    “문제 학생을 제지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을 교사에게 줘야 한다. 수업방해 등 문제 행동을 하는 경우 교실에서 나가게 하거나 별도 공간에 가 있게 하거나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아이가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고 바람직한 생각과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학교와 교사가 도울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건 차별이 아닌 교육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다. 교권 침해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도록 하는 교원지위법 개정안도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 학부모도 가정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아이가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교육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 회장은 “교원이 학교폭력 사안 처리 과정에서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학교폭력예방법을 개정하고, 주관식 교원평가제도는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주관식 평가를 악용해 선생님을 성희롱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인에게도 일침을 놨다.

    “교육에 여당, 야당이 있을 수 없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초당적 협력에 힘써야 할 때다.”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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