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우상향 주식’ 민주당 ‘악재 이재명’ 만나 조정 겪는 중

[이동수의 투시경]

  •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입력2024-03-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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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정치, 지역→ 세대→성별로 균열

    • ‘호재 한동훈’ 덕분 보수정당 잠시 반등

    • 국민의힘 골든타임, 10년도 안 남았다

    • 지지기반 넓히지 못하면 보수 미래 암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영상] 여의도 고수



    이제는 굳이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밀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세대별로 정치 성향이 엇갈리는 현실 말이다. 2020년대 한국 정치 지형은 ‘국민의힘 지지 성향이 강한 60대 이상과 더불어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4050, 무당층 성향이 강한 2030’으로 요약된다. 2030세대 무당층 비율이 높다고 해서 이들이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건 아니다.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났듯 이 세대 남성은 주로 보수적 성향을 띤다.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다. 실제로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18∼29세에서는 남녀 모두 민주당을 이탈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남성들은 익히 알려진 대로 72.5%가 국민의힘을 선택한 반면 여성들은 15.1%가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정당에 표를 주었다(출구조사 기준). 같은 나이대, 같은 무당층이라고 하더라도 성향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해 초 ‘성별 격차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Z세대 안에서 여성은 더 진보적이고 남성은 덜 진보적이라는 게 핵심이다. FT에 따르면 Z세대 남녀의 정치적 성향 격차는 미국이 40%포인트, 독일이 30%포인트, 영국이 25%포인트다. 한국은 50%포인트가 넘었다.

    2030 한국 남성들은 정확히 말하면 보수화했다기보다 탈(脫)진보화했다고 보는 게 맞다.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 상당수가 진보 진영으로부터 이탈한 건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보수를 항구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 2023년 연간 통합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8∼29세 남성의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2%, 더불어민주당 17%, 정의당 2%였고 무당층은 48%에 달했다.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서도 29%만이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51%였다. 정리하자면 2030 남성은 대체로 ‘중간과 오른쪽을 오가는’ 집단쯤으로 정의할 수 있다. 여성은 그 반대다.

    국민의힘이 2021년 재보궐선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잇따라 승리를 거둔 것은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과 새롭게 합류한 2030 남성층 사이의 일시적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뿔난 진보 진영은 2030 남성을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국민의힘에 투표하는 청년을 비하하는 단어인 ‘2찍’이라는 단어가 진보 진영에서 유행한 것만 봐도 그들이 가진 분노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에 감사해야 한다. 진보 진영이 2030 남성을 내치지 않았더라면 보수의 암흑기는 더욱 길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22대 총선에서도 2030이 캐스팅보트를 쥐리라는 건 자명하다. 이들의 선택에 따라 균형추는 기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도도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변화하는 인구구조가 진보의 장기 집권을 예고하는 까닭에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보수가 진보에 맞설 수 있는 골든타임은 앞으로 10년도 남지 않았다.



    세대·성별, 지역 뛰어넘는 균열 요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동아DB]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동아DB]

    2030 남성의 진보 이탈은 분명 새로운 균열이다.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이 집단의 정체성과 결부돼 조직적으로 표출될 때, 정치적 균열(cleavage)은 발생한다. 정당은 이러한 균열 구조 속에서 지지자를 결속하고 정치적 자양분을 얻는다. 미국 정치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과 노르웨이 사회학자 스테인 로칸은 이 균열이 오늘날 서구 정당 체제의 근간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중심부와 주변부, 국가와 교회, 도시와 농촌, 자본과 노동이 바로 그 축이다.

    한국 정치에서 균열은 주로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 민주화 이전에는 권위주의 정권과 민주화 세력 간 경쟁이 여촌야도 현상으로 나타났고, 1987년 이후에는 ‘1노 3김’의 출신지를 중심으로 지역 대결 구도가 짜였다. 영호남이 대립하는 구도 속에서 유동적 표심을 가진 충청권이 대권 향방을 결정짓는다는 견해는 지역을 중심으로 균열이 형성된 한국 정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용어다. 재미있는 건 지난 대선에서 ‘충청대망론’이 예전처럼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3·9 대선의 화두는 단연 이대남과 이대녀였다. 이것은 곧 세대와 성별이 지역을 뛰어넘는 균열 요인으로 작동하게 됐음을 시사한다.

    성별이 선거 결과를 가르는 주요인으로 부상한 건 3∼4년에 지나지 않지만, 세대는 이미 2000년대부터 중요한 균열 요인으로 작동했다. 2002년 대선은 세대 대결이 펼쳐진 첫 선거였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2030세대의 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승리를 거머쥔다. 예나 지금이나 2030의 투표율은 50대 이상보다 훨씬 낮지만, 그 시절만 해도 2030 인구수가 50대 이상을 압도해 낮은 투표율을 만회할 수 있었다. 이때 노무현을 지지한 청년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양극화가 심화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한때 진보 진영에서 이탈하기도 했다. 그들이 투표를 포기한 덕분에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일례로 2008년 제18대 총선 투표율은 46.1%에 불과했는데 그중에서도 20대 투표율은 28.1%로 압도적으로 낮았다. 30대는 35.5%. 그에 반해 50대는 60.3%, 60대 이상은 65.5%로 2030세대보다 훨씬 높았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진보 진영에선 20대의 낮은 투표율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2030세대가 보수로 돌아선 건 아니었다. 이들은 단지 민주당에 실망했을 뿐, 여전히 진보적 스탠스를 견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런 2030을 다시 결집하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세상을 향한 청년들의 분노가 꿈틀댔다. 서점가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사회과학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나는 꼼수다’로 대표되는 진보 팟캐스트들은 나날이 세를 확장했다. 조국·안철수·혜민 등이 청년들의 우상으로 떠오른 것도 이 시기였다. 그 결과 2012년 대선에서 10년 전보다 강한 세대 대결이 펼쳐졌다. 이런 경향은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거치며 한층 더 강화됐다. 문재인 정부가 처음 출범했을 때만 해도 청년들의 지지는 남녀 불문 절대적이었다.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거대한 세대 연합군은 60대 이상의 전통적 보수 지지층을 사면초가로 몰아넣었다. 만일 민주당이 이 구도를 계속 유지했더라면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말마따나 “20년 집권”도 가능했을 것이다.

    영원할 것 같던 민주당 우위 구도를 흔든 건 젠더갈등이었다. 20대 청년들 사이의 남녀 갈등은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기점으로 고조되더니 2018년 젠더갈등을 거치며 들불처럼 타올랐다. 당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일방적으로 여성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것이 2030 남성들의 이탈을 심화했다. 혹자는 부동산을 가장 큰 문제로 지목하지만 그렇다면 집값 상승의 영향에서 비교적 먼 20대 남성들이 30대 남성들보다 강한 반(反)민주당 성향을 보이는 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 전장이 주로 온라인 공간이었던 까닭에 정치권이 감지하지 못했을 뿐, ‘20년 집권’이라는 누각은 젠더갈등으로 인해 안에서부터 썩고 있었다.

    연령 효과와 세대 효과

    최근 수년간 일어난 2030 남성들의 진보 진영 이탈은 과거와 성격이 다르다. 2007∼2008년 당시 청년들의 이탈이 그저 진보에 투표하는 걸 포기한 정도였다면, 최근에는 아예 반대편에 서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양당 구도를 믿고 ‘배짱 장사’를 해온 거대 정당에 대한 반감도 스며 있다. 이들이 예전처럼 진보 진영의 열정적 지지자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갈등의 골이 너무도 깊어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법인세 인하나 복지 확충 등의 문제들과 달리 성별 갈등에는 중간이 없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타협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향후 2030세대 표심을 가를 것이다.

    투표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자주 쓰이는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연령 효과와 세대 효과 이론이다. 연령 효과는 사람이 나이가 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보수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청년은 진보, 노년은 보수’라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그렇다. 반면 세대 효과는 특정 세대의 집단적 경험이 그 세대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대표 사례가 바로 586세대다. 이들은 과거 같은 연령대 집단보다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다. 민주화운동을 공유한 경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 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2024년 현재 한국 정치에서는 연령 효과보다 강력한 세대 효과가 작동하고 있다. 옛날에는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던 40대가 최근에는 민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30 남성의 탈진보 현상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 세대 효과 때문에 보수는 심각한 난관에 직면해 있다. 인구 지형상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2.7세, 보수 지지층의 나이는 진보 지지층보다 평균적으로 10∼20세가량 많다. 인구추계상 10년만 지나더라도 현재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인 60대 이상과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4050세대 인구수 차이는 약 240만 명에서 약 558만 명으로 벌어진다. 물론 그사이 작동할 연령 효과도 고려해야겠지만, 주먹구구로 계산했을 때 보수의 핵심 지지층이 훨씬 더 얇아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심지어 현재 4050세대의 인구수는 아래세대도 압도한다. 저출산 때문이다. 지역은 또 어떤가. 민주당은 과거 영호남 인구수 차이에 따른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20년 전부터 ‘전국 정당’을 추구해 왔다. 그렇게 오랜 기간 수도권 지지기반을 닦았던 게 오늘날 수도권 의석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영남 정당에 머무는 모양새다.

    종합하면 민주당은 현재 지지하는 세대의 인구수도 많고, 인구 절반이 사는 수도권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지역·세대·성별이라는 세 가지 균열 요인 중 지역·세대 두 지점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젠더갈등으로 인한 반사이익을 잠깐 맛봤을 뿐이다. 앞으로 총선이 두세 번만 더 치러지면 민주당은 지려 해도 질 수 없는 유리한 상황에 놓일 공산이 크다.

    주식에 비유하면 민주당은 장기 우상향하는 주식이 이재명이라는 악재를 만나 잠시 조정을 받는 상황이고, 국민의힘은 장기 우하향하는 주식이 한동훈이라는 호재를 만나 잠깐 반등한 상황이다. 인구구조나 균열 요인에 따른 펀더멘털은 민주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이 이번 총선에서 이겨도 결코 이기는 게 아닐 수 있다. 국민의힘이 ‘구조적으로’ 민주당과 맞설 수 있는 골든타임은 앞으로 1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사이에 새로 부상하는 청년층 남녀를 모두 끌어안고, 수도권과 충청·호남 등으로 지지기반을 넓히지 않는다면 보수정당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24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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