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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그룹, ‘뻣뻣한’ 남재준 경질 “내가 류길재 장관 만들었다”<정호성>

최순실 그룹, 국정원·대북정책에도 개입

  •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崔그룹, ‘뻣뻣한’ 남재준 경질 “내가 류길재 장관 만들었다”<정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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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崔그룹, 국정원에 ‘국내정치 개입’ 요구
  • ● 崔 비선 의혹 C국장, 국정원장과 독대
  • ● 남재준, 쌍욕하면서 “걔부터 잘라!”
  • ● 확정된 인사도 뒤집어버린 崔그룹
  • ● 국정원 인사, 박지만에게 “치고나가 3인방 잘라내라”
남재준 전 국가정보원 원장과 정호성 전 대통령부속비서관은 첫 만남에서 부딪쳤다. 2012년 대통령선거 무렵의 일이다. 당시 대선 후보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남 전 원장으로부터 국방·안보정책과 관련한 의견을 듣는 자리에 정 전 비서관이 배석자로 나왔다.

남 전 원장은 박 대통령에게 “한미동맹을 안보의 중심으로 삼아야 하며, 한중관계가 한미동맹의 장애물로 작용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보고했다. 그때 정 전 비서관이 불쑥 끼어들더니 느닷없이 통합군 얘기를 꺼냈다. “한국도 통합군 체제로 가야 한다”고 했다.

남 전 원장은 원론적으로는 통합군 체제를 지지했으나 국군의 현재 수준에서는 통합군 체제 도입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런 견해를 내비치자 정 전 비서관이 발끈했다. “보고를 받아봤는데, 합동참모본부 제도를 택한 곳은 미국 영향 아래에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다. 다 통합군인데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치고나온 것.

“정호성이나 나나 배석자일 뿐 의견을 낼 멤버가 아니었다. 질문을 받고 답하는 건 몰라도 직접 떠드는 건 말이 안 된다. 남 총장(남 전 원장)이 기가 막혀 응대를 못했다. 남 총장이 정호성한테 앞으로는 나를 통해 얘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정호성은 그 후 나와 연락을 끊었다. 남 총장이 (정호성의) 예의 없는 태도에 무척 황당해했다.”

박 대통령과 남 전 원장의 이날 대화 자리에 배석한 A씨의 설명이다. 남 전 원장과 ‘문고리 3인방’(정 전 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의 악연은 그후에도 이어진다.





“정호성이 다 한다”

“정호성 비서관이 다 정한다.”

대북정책과 관련한 일을 하는 인사들이 모이면 대화의 주된 화제는 ‘장관은 확실히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누가 결정하냐’는 것이었고, 결론은 정 전 비서관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대북정책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연설과 담화는 대부분 정 전 비서관의 검토를 거쳐 ‘박근혜의 언어’로 바뀐 후 세상에 나왔다. 통일·안보 관련 부처의 인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어김없이 ‘문고리 3인방’이 등장했다. 누구는 3인방 중 하나가 같은 대학 선배라는 이유로 천거해 장관이 됐다더라, 누구는 3인방과의 인연으로 승승장구한다더라는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국정 농단의 주범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하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의제와 일정을 제시하는가 하면, 국무회의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개성공단 폐쇄, 기무사령관 인선 등 안보정책에도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3인방은 밝혀진 것처럼 최씨가 수족처럼 부린 사람들이다. 정 전 비서관과 최씨의 통화녹음 파일에는 아무 직함도 없는 최씨가 정 전 비서관에게 고압적으로 지시하는 정황이 담겼다.

최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 PC에서 온갖 국정 개입 정황이 드러났을 뿐 아니라 “최씨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항상 30㎝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가 놓여 있었다.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자료인데 정호성 비서관이 거의 매일 밤 사무실로 들고 왔다”(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는 증언이 나왔다. 최씨가 ‘2년 내 북한 붕괴’를 떠들고 다녔다는 얘기에선 역술적인 냄새까지 풍긴다. SBS는 “통일 대박이라는 표현이 사실은 최순실 씨의 아이디어인 것으로 검찰이 잠정 결론 냈다”고 보도했으나 청와대는 이를 부인했다.  

“통일부 장관은 아무나 해도 되는 자리”라는, 류길재 전 장관의 퇴임의 변에 담긴 뜻을 짐작하기도 어렵지 않다. 정 전 비서관의 지인은 그가 사석에서 “내가 류길재 장관을 만들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류 전 장관은 11월 13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어제 집회를 방송으로 봤습니다. 정말 사죄드립니다. 저와 같이 불행한 국무위원이 다시는 이 땅에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대통령 퇴진을 외쳐야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국민이 국가를 걱정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하는 밤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국무위원 중 사과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장관 재임 시절 ‘무력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북한에 대한 식견은 물론 인품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는다.


차장 人事부터 ‘삐걱’

워싱턴의 유력 정보지 ‘넬슨리포트’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과 관련해 워싱턴 외교가에서 “지적 수준이 낮고, 전략적 세련미가 떨어지며, 미성숙하다”는 혹평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임기 내 사고만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깜’도 되지 않는 최순실 그룹이 정책과 인사에 개입하다 보니 외교·안보정책에서도 이런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시곗바늘을 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로 되돌려보자. 다음은 앞서 언급한 A씨의 얘기다.

“남 총장은 (정호성 전 비서관과 부딪히고) 김장수 씨가 대통령 안보실장에 내정된 것으로 발표되면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다. 남 총장이 국정원장이 된 것은 논리적 귀결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었다. 2013년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다. 핵실험을 안 했으면 남 총장에게 국정원장을 맡기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남 총장이 국정원장 내정 전화를 받은 게 핵실험 이틀 뒤다.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전적으로 신임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때 빛을 발하는 자리인데, 남 총장은 위임을 받은 수준이 미흡했다.”



“욕하는 것 처음 봤다”

‘위임받은 수준이 미흡했다’는 것은 청와대와 ‘보이지 않는 손’ 탓에 권한을 제대로 위임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에서 일한 전직 간부는 “차장 인사 때부터 남 전 원장의 말이 먹히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남 전 원장은 B씨를 차장으로 임명해 함께 일하려 했으나 이런저런 ‘저항’이 뒤따랐고, 그러다 박 대통령이 엉뚱한 인물을 임명해 당황했다는 것이다.

남 전 원장은 국정원장 내정 직후인 2013년 3월 초,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파견돼 있던 국정원 직원 C씨와 독대했다. 남 전 원장이 육사 25기, C씨는 육사 41기로 두 사람이 독대하는 것은 격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청와대 인사가 남 전 원장에게 C씨를 만나보라고 직접 요청했기에 새까만 육사 후배이자 부하 직원과 1대 1로 대화를 나눈 것이다. C씨가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한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일할 때 “어마어마한 위세를 보였다”고 여러 사람이 전했다.

“도대체 걔가 누구냐.”


남 전 원장은 C씨와 대화를 나눈 날 밤 11시께 측근 인사에게 전화를 걸어 C씨에 대해 물었다. 남 전 원장의 전화를 받은 측근은 이렇게 회고했다.  

“남 전 원장이 욕설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 사람이 쌍욕을 하면서 ‘걔부터 잘라’라고 했다. 법적으로는 국정원에서 파견한 것이니 소환해서 자르라는 거였다.”

이 인사는 남 전 원장에게 “당장 그렇게 할 일은 아니다”라며 달랬다. C씨는 2013년 5월 논란이 된 이른바 ‘국정원 정치 개입 문건’과 관련해 입길에 오르면서 국정원으로 복귀한다. 야권 등이 제기한 ‘반값 등록금’에 대한 정부의 대처 방안을 담은 문건의 보고 라인에 C씨의 이름이 있는 게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국정원은 “공식 문서가 아니다”라고 부인했으나 C씨는 이 논란의 여파로 국정원으로 복귀했다.

국정원 조직의 순리대로라면 C씨를 지방으로 내려보냈어야 하는데, 남 전 원장은 그를 국회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게 하면서 나뒀다. 한직(閑職)이지만 그에게 보직도 줬다. C씨는 2014년 8월 국정원에서 국내 정보를 분석·총괄하는 국내보안 요직으로 영전한다. 남재준 전 원장이 물러난 지 석 달 뒤다.



대통령 독대 못한 국정원장

국정원 주변의 증언을 종합하면 3인방은 “세월호 문제 해결 대책을 마련하라”고 국정원에 요구했고, 남 전 원장은 “국내 문제에는 개입할 수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전직 국정원 고위인사는 “남 전 원장이 세월호 탓에 경질됐다”고 단언했다. “남 전 원장이 3인방의 요구를 대통령의 뜻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 전 원장의 한 측근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남 전 원장은 직원들에게 ‘세월호 문제에 일절 관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고 이틀 후 경질됐다. 대통령은 세월호 때문에 밤잠 못 자며 시달리는데, 국정원장은 일절 관여하지 말라고 공언했으니 3인방 처지에서 보면 괘씸해도 이런 괘씸한 자가 없었을 것이다.”

국정원 국내 파트는 역대 정권의 수족 노릇을 했다는 오명을 썼다. 군사정권 때는 총선에 개입하는 게 당연시됐다. 이명박 정부 때의 댓글 사건도 비슷한 맥락이다. 앞의 국정원 전직 고위인사는 “남 전 원장 경질의 주체는 3인방”이라면서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도 처음엔 3인방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였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김 전 실장과는 얘기가 잘 통했는데, 남 전 원장을 경질할 때는 김 전 실장도 그를 두둔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 전 원장은 임명 초기 북한 정권 붕괴 등과 관련해 국정원의 목표를 보고한 뒤로는 박 대통령과 독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내외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북한을 상대로 공작을 하는 국정원장과 대통령이 정례적으로 독대하지 않은 것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내 뜻이 아니다.”

2014년 8월의 국정원 인사를 두고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가 원장으로 부임한 후 이뤄진 1급 간부진 인사 때 청와대가 특정 인물을 지목해 교체하라고 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 국정원 인사가 1주일 만에 뒤집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청와대 인사 압력

청와대가 교체를 요구한 인물은 총무국장으로 발령받은 K씨. 남 전 원장과 독대한 C씨와 마찬가지로 국내 정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국내 정보를 분석·총괄하는 업무를 맡게 되리라던 그가 총무국장으로 발령받은 것은 “K씨를 국내 정보 업무에서 배제하라”는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K씨를 퇴직시키라고 요구했다. 결국 K씨는 총무국장 발령이 취소되고 보직에서 물러나 대기하다 2014년 말 국정원을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K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친분이 있는 데다 정윤회 씨의 행보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3인방에게 찍혔다는 얘기가 나왔다. K씨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청와대를 나온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인연이 깊다. 조 전 비서관이 김성호 국정원장(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장 특보로 일할 때 K씨가 국정원장 비서관으로 호흡을 맞췄다. 조 전 비서관은 1994년 박지만 회장이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됐을 때 피의자와 담당 검사로 처음 만나 인연을 이어왔다. 박근혜 청와대의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발탁된 조 전 비서관과 국정원 국내 정보 분석 담당(1급)으로 일한 K씨는 직무 동선(動線)도 일부 겹친다.

K씨가 맡을 것으로 유력시되던 국정원 국내보안 요직은 국정원 2차장 산하 국내 파트가 수집한 주요 정보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이른바 비선 실세들은 K씨가 핵심 정보가 모이는 노른자위 직위에 있는 것을 용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K씨를 찍어낸 자리에 C씨가 임명됐다. C씨는 국정원에서 국회를 담당할 때 3인방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진다. C씨는 현재도 같은 직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일보’는 11월 14일 “국가정보원 간부가 안봉근 전 비서관을 안가에서 수차례 만나 최순실 씨에 대한 국정원 내부 정보를 전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면서 “국정원 직원을 통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도 ‘비선 보고’ 하고, 국정원 다른 직원들의 최씨 관련 조사를 차단한 정황도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지목한 간부가 바로 C씨다. ‘남 전 원장이 박 대통령 비선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되는 C씨를 여러 차례 자르려고 시도했으나 무산됐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절반의 진실이다. 남 전 원장은 초기에 한번 그를 자르려고 했으나 종국엔 보직을 줬다. 채널A는 11월 14일 “C씨가 국정원장을 무시하고 우병우 전 수석에게 직보했다” “C씨가 국정원장이 새로 임명될 때마다 살생부를 내밀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견제 세력 사라지다

전직 국정원 고위인사는 “이병기 원장이 취임하면서 3인방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고 말했다.

“이병기 원장의 청문회 준비 멤버에 C씨가 못 들어갔는데 친박 실세가 천거해 C씨가 뒤늦게 청문회 준비 멤버가 됐다. C씨는 이 원장에게도 남 전 원장한테 보인 것과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원장님 이래야 합니다, 저래야 합니다’ 하니 이 원장이 기가 막혀 했다. 그래서 결국은 C씨를 쳐내고 활용하지 않았는데 그 인사가 뒤집힌 것이다.”    

국정원, 경찰 등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에서 비선과 관련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13년 말부터라고 한다. 당시에는 최순실 씨가 아니라 정윤회 씨가 청와대를 드나든다는 말이 돌았다.

“3주에 한 번꼴로 청와대에 들어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박지만 회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박 회장의 일정 및 동선과 맞지 않았다. 박 회장에게 직접 확인해달라는 요청이 와서 박 회장을 만났는데 ‘나는 청와대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누구겠냐고 물었더니 박 회장은 ‘정윤회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 후 청와대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이 원대 복귀하는 일이 벌어진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사퇴설도 불거졌다. 이어서 터진 게 이른바 ‘십상시 문건’ 사태다.”  

박 회장이 국정원 고위층에 정윤회 씨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 것도 사실로 확인된다. 박 회장은 청와대에도 같은 뜻을 전했다. 조응천 전 비서관은 ‘정윤회의 박지만 미행’ 건에 관한 조사를 박관천 전 경정에게 지시한다.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처벌받은 박 전 경정이 “최순실 씨가 권력서열 1위, 정윤회 씨가 2위,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한 말이 다시금 주목받는 까닭이다. 조응천 전 비서관, 박관천 전 경정, K씨, 박지만 회장과 선이 닿는 인사들이 공직을 떠나면서 최순실 그룹을 파헤치거나 견제할 만한 사람이 모두 사라졌다.

최순실 씨 개입 의혹이 제기된 기무사령관 교체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지만 회장의 육사 37기 동기생인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2013년 10월 기무사령관으로 부임했다가 1년 만인 2014년 10월 3군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좌천된 후 지난해 군복을 벗었다. 최순실 그룹의 전횡을 인지하거나 견제할 ‘박지만 인맥’을 거세하는 차원의 경질성 교체였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정윤회 문건 재수사해야”

“대한승마협회 문제와 독도 방문 등 정윤회 씨의 활동을 추적한 정보를 수집한 주체들은 최순실 그룹에 목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검찰은 최순실 사건뿐만 아니라 정윤회 문건 사건도 재수사해야 한다. 최순실과 이혼하기 전 정윤회의 국정 농단 의혹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2014년 국정원 인사가 박지만 회장과 직접 접촉하는 등 ‘최순실 그룹’ 비선에 대한 경보음은 곳곳에서 울렸다. 박 회장과 면담한 것으로 지목된 당시 국정원 인사는 “정윤회 사건이 났을 때 박 회장이 내가 조언한 대로 분명하게 치고 나가서 3인방을 잘라내는 상황을 만들었으면 이렇게까지 밀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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