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에는 ‘교환’이라는 기술이 있다. 하나를 주는 대신 다른 것 하나를 받아오는 것이 그것이다. 독일과 일본 주둔 미군기지 이전관련 협상의 경우 쟁점마다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독일은 비용문제에 집중하고 상대적으로 ‘무분별한 시설확장 방지’ 측면에는 신경을 덜 썼던 반면, 일본은 환경적인 요소에 포커스를 맞춰 이전비용 부분에서는 미국측의 의사를 상당부분 수용했다.
이 기사에서는 쟁점별로 주둔국에 가장 유리했던 케이스 9개를 골라 비교하기로 한다. 이는 외국의 전례가 ‘한국이 미국측에 요구할 수 있는 수준’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중인 용산기지 이전협상의 주요 쟁점에서 일본과 독일의 최선사례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측이 내부적으로 설정할 ‘목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 9개의 포인트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누가 설계권을 갖는가】
기지이전이란 쉽게 말해 헌 시설 대신 새 땅에 새 시설을 지어서 이사하는 작업이다. 중요한 것은 새 시설을 어떻게, 어떤 규모로 지을 것이냐 여부. 이전비용의 규모 역시 여기에서 상당부분이 결정된다. 결국 새 기지의 ‘설계’를 누가 맡을 것이냐가 중요 쟁점일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열린 6차 미래동맹회의 직후 국방부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새 시설의 설계는 미국이 미국측 기준에 맞춰 맡기로 했으며, 이 설계에 따라 한국측이 자재를 구매해 새 기지를 짓게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측이 직접 업체를 선정해 건설까지 맡은 뒤 ‘계산서만 들이미는’ 방식보다는 분명 진일보한 것이지만, 앞서 설명한 주일·주독미군의 기지이전 사례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적용된 적이 없다. 세 경우 모두 설계권은 주둔국 정부가 행사했다. 기초조사부터 설계, 자재구매, 공사, 시험가동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주둔국 정부가 담당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례에 비하면 새 기지의 설계권을 미국측이 행사하도록 되어 있는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협상 논의에는 문제가 있다. 한국측이 설계의 적실성을 검토하는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 국방부의 설명이지만, 설계권 자체가 미국측에 있는 한 시설을 무분별하게 확대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자금을 부담하지 않는 측에서 시설을 설계할 경우 경제성에 신경 쓸 이유가 없어져 낭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불문가지다. 한마디로 설계과정에서 미국의 ‘장난’에 말려들 개연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6차회의 직후 몇몇 언론은 ‘정부 내에서 한국 쪽이 설계과정부터 시운전까지 모두 담당하는 ‘턴키(완성 인도)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실제 한미협상에서는 제대로 제기되지도 않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총리실 산하 주한미군대책기획단의 김동기 정책부장은 “집행과정마다 한국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턴키 방식’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지만, 일본과 독일의 선례를 따를 수 없는 까닭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어느 쪽의 건축기준을 따를 것인가】
설계를 할 때 어떤 기준과 규격에 따를 것이냐도 중요한 쟁점이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오산·평택에 들어설 새 미군기지의 경우 ‘미 국방부 기준’에 따르는 것으로 대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본 후텐마 대체시설과 독일 라인마인 대체시설의 경우 주둔국의 건축기준, 우리로 치면 ‘KS 규격’에 맞춰 설계하는 것으로 합의된 바 있다.
미 국방부의 건축기준과 KS 건축기준은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이 건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위면적 당 건축비가 두 배 이상 차이날 수도 있다는 것. 특히 미 국방부 건축기준은 9·11 테러 이후 대폭 강화되어 폭탄테러 등에 대비해 벽 두께 등이 이전규정보다 1.5배 이상 두꺼워졌다는 설명이다. 눈여겨볼 것은 1990년 합의각서에 ‘미국 표준(AS·American Standard)’로 되어 있던 것이 지난해 협상과정에서부터 ‘미 국방부 기준’으로 변경되었다는 점이다. 미 국방부 기준은 민간시설에 적용되는 AS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다. 지난해 있었던 이전협상을 두고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한 ‘개악(改惡)’ 주장은 이러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설계주체 및 건축기준 문제에 있어 일본이나 독일사례에 비해 불리한 협상안이 논의되고 있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한미간 용산기지 이전협상의 단추는 잘못 끼워져 있는 셈이다.
【기지 규모를 정하는 원칙은?】
설계 문제에서 살펴볼 또 하나의 쟁점은 과연 새 시설의 규모를 어떤 기본원칙에 따라 결정할 것이냐는 부분이다. 이는 건물은 몇 채를 짓고 방은 몇 칸을 만들 것인지, 건축면적은 얼마로 잡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키워드가 된다. 독일 라인마인기지 이전협상에 적용된 원칙은 이른바 ‘반사규칙’이었다. 구(舊)시설을 거울에 비친 것처럼 똑같은 규모로 새 시설을 짓는다는 원칙이다. 다시 말해 구시설에 건물이 50개였으면 50개를, 사령부 건물에 방이 60개였으면 60개를 짓는 식이다. 이 원칙이 100% 관철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그러한 컨셉트에 따라 설계가 진행되었음을 독일 정부측 자료는 설명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