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친이 vs 친박 4월 대란설

“친박 의원에겐 당협위원장 못 준다”(친이)

  • 송국건│영남일보 정치부기자 song@yeongnam.com│

    입력2009-03-10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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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이 vs 친박 4월 대란설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친박(親朴)’ 정치인들이 지난 2월2일 저녁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 모였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전 대표 캠프에 몸담았거나 지난해 4·9 총선 때 박 전 대표 진영에 가담한 이들이다. 박 전 대표의 57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는 지난해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다 친박 무소속, 또는 친박연대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한나라당에 복당한 인사들이 마련했다. 그들은 ‘여의포럼’이란 모임을 만들어 결속을 다지고 있다. 멤버의 수는 20여 명이다.

    박 전 대표가 다른 곳에서 친지들의 생일축하를 받고 여의포럼 축하연에 조금 늦게 나타나자 참석자들은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켰다. 그런데 케이크에 꽂힌 초는 달랑 3자루였다. 큰 초가 1자루, 작은 초가 2자루.

    박근혜 생일 케이크의 초 3자루

    한 참석자는 박 전 대표에게 “큰 초는 10년 단위, 작은 초는 1년 단위”라고 설명했다. 12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12년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선 승리를 위해 한마음으로 뭉쳐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의 뜻”이라고 했다. 박 전 대표는 환하게 웃었다.



    박 전 대표는 앞서 이날 낮엔 청와대에서 생일 케이크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의원들을 오찬에 초청한 자리에서다. 청와대 측은 “공교롭게도 오늘이 박 전 대표의 생일인 걸 알아서 케이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로서는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1979년 27번째 생일 이후 꼭 30년 만인 이날 점심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측이 마련한 생일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 자리에선 케이크에 꽂힌 초가 단 두 자루뿐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20살처럼 젊게 사시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박 전 대표는 “200살이라는 뜻이죠?”라고 농담을 던졌고, 이 대통령은 “아니, 200살까지 사시라는 이야기”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청와대 오찬은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이 자리는 2월 임시국회에서 벌어질 이른바 ‘2차 입법전쟁’을 앞두고 이 대통령이 여당 최고위원-중진의원 등 지도부에 국정운영에 꼭 필요한 법안들의 신속한 처리를 당부하기 위해 마련됐다. 당초 잡은 날짜는 1월20이었다. 하지만 초청장을 받아든 친박 진영에선 박 전 대표의 참석 문제를 놓고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중진급 온건파들은 “지금은 경제가 어려운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참석을 건의했다. 반면 소장 강경파들은 “이 대통령이 ‘속도전’을 독려하는 자리에 굳이 나갈 필요가 있느냐”며 반대했다.

    그러는 사이 이 대통령과 만나는 일정은 뚜렷한 이유 없이 1월말로 연기됐다가 2월2일로 넘어갔다. 청와대가 박 전 대표의 참석을 유도하기 위해 다분히 의도적인 ‘택일’을 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생일상을 앞에 놓은 이 자리에서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확연한 견해 차이를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중진의원들이 중심이 돼 금년 1년 힘을 잘 모아주면 정부가 열심히 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당의 적극적 지원을 당부했다. 이에 박희태 대표는 “대통령은 당의 정강과 정책을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적극 뒷받침한다는 당헌대로만 하면 ‘다난흥방(多難興邦·어려움을 겪고 나면 오히려 나라를 융성하게 할 수 있다)’을 이룰 수 있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정부가 추진하는 쟁점 법안에 대해 정부가 보는 관점과 국민들이 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다. 그런 문제에 대해 시간을 갖고 어떤 것이 옳고 그른가를 충분히 논의하고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일사불란한 속도전보다는 국민 공감대 형성이 먼저란 입장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결국 청와대는 공을 들여 박 전 대표로부터 ‘협조하겠다’는 한마디를 듣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 출범 1년이 지나도록 메워지지 않고 있는 서로의 간극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친이 vs 친박 4월 대란설

    지난해 7월11일 친박 무소속연대 의원들이 한나라당 입당을 선언하고 있다.

    친박의 합창 “사랑하는 박근혜~”

    박 전 대표는 청와대 오찬에 이어 여의포럼에서도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박근혜~”를 들었다. 하지만 ‘사랑’의 농도는 확연히 달랐다. 친박 정치인들의 박 전 대표를 향한 애정은 두텁기로 소문 나 있지만 지금은 사정이 더욱 각별하다. 친박 입장에서 보면 ‘위기상황’이어서 그만큼 박 전 대표를 구심점으로 뭉쳐야 살아남는다는 절박감까지 느낀다.

    친이 vs 친박 4월 대란설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의원.

    여의포럼 멤버이자 친박 진영의 ‘좌장’ 김무성 의원은 “지금까지는 가만히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했다. ‘여의포럼’, 잔류파들의 ‘선진사회연구포럼’ 등 친박 계열 모임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 1년 동안 그런대로 친이 세력과 균형관계를 유지해오던 친박 진영이 왜 이처럼 긴장하고 있을까. 해답은 이명박 정부 출범 1주년을 막 지나는 3월부터 시작될 정치일정에서 찾을 수 있다.

    3월초 이재오 전 최고위원 복귀, 4월 재·보선 및 원외 당원협의회 위원장 교체, 5월 원내대표 경선, 그리고 박희태 대표의 재·보선 출마로 있을지 모르는 조기 전당대회 등 친이-친박의 정면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휘발성 강한 일정이 줄줄이 놓여 있다.

    휘발성 강한 여권 일정 줄줄이

    이런 상황은 친이 입장에서도 비상령을 발동할 수밖에 없는 외적 요인이 된다. 최근 들어 친이 계열이 급속한 결집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집권 2년차를 맞아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돕자는 다짐이기도 하지만, 눈앞에 닥친 이런 현안들과 무관하지 않다. 4월쯤 여권에 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소문도 여기에 근거한다.

    당장 눈앞에 닥친 화약고는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이다. 그는 “귀국 후 조용히 지내겠다”는 메시지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여권 핵심부에 던진 끝에 ‘3월 귀국’을 허락(?) 받은 것으로 일반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는 관측도 나온다. 친이 핵심에서 ‘4월 대란’에 대비해 그를 긴급 차출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친이 중에서도 ‘이재오계’에서 추진했지만 다른 친이 인사들도 그런 필요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조기 귀국이 가능했다는 시각이다.

    이는 ‘대안부재론’을 근거로 한다. 현재 친이 진영에는 마땅한 구심점이 없다. 여당을 이끌고 있는 박희태 대표는 ‘월급 사장’ 이미지가 굳어졌고, 홍준표 원내대표는 여권 내에서도 적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따가운 여론으로 운신에 한계가 있다. 특히 지난해 6월 정두언 의원의 ‘권력 사유화’ 발언 파문을 겪은 이후 극도로 처신을 조심하고 있다. 성격상 ‘계파정치’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때 MB 진영의 ‘군기반장’으로 통하던 이 전 최고위원의 빈자리가 더욱 커졌고, 친박 진영과의 일전을 앞둔 지금이 귀국 적기인 셈이다. 김무성 의원이 이 전 최고위원의 조기귀국을 두고 “전쟁선포”라고 경계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명박 대통령,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이재오 전 최고위원, 정두언 의원은 서로 다시 만나며 뭉치고 있다. 이 시점에 이 대통령은 내각에 친정체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1·19 개각 등을 통해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 소장파 핵심 측근 3인방을 실세 차관급 자리에 포진시킴으로써 야당으로부터 ‘차관정치’의 부활이란 말을 들었다.

    이런 상황과 맞물려 주목되는 부분이 정몽준 최고위원의 행보다. 정 최고위원은 2월6일 정책연구소인 ‘해밀을 찾는 소망’ 개소식을 가졌다. 해밀은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이 연구소는 1년 전 문을 연 ‘아산정책연구원’(이사장 한승주)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치1번지인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냈고 앞으로 정책 개발과 정치 이슈를 발굴 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일종의 ‘대선 캠프’로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일찍 문 연 ‘정몽준 대선캠프’

    그렇다면 정 최고위원이 무엇 때문에 이명박 정부 임기가 아직 4년이나 남은 시점에 사실상의 대선 캠프를 꾸려 2002년에 이어 일찌감치 ‘대권 재수’에 나서는 모양새를 갖췄을까. 그는 최근 들어 정치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언론과의 접촉도 강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여권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흥미로운 설명을 했다.

    “친이 핵심에서 정몽준 최고위원에게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 안다. 이미 차기주자로 자리매김한 박근혜 전 대표가 너무 앞서나가면서 중요한 고비마다 태클을 거는 바람에 정국운영에 어려움이 있으니 정 최고위원도 (대권 행보에) 적극 나서서 대항마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박 전 대표의 독주를 어떤 식으로든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은 친이 진영에서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다. 그러나 친이의 경우 현재 뚜렷한 차기 주자가 부각되지 않은데다, 이 대통령의 임기 초반인 만큼 ‘후계자’를 내세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귀국해 친이의 구심점이 된다고 해도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와 경쟁하기엔 무리가 있다. 사사건건 친이-친박 대치가 이어질 경우 오히려 박 전 대표의 위상만 높아지고 여권의 내홍은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전 최고위원에게는 범(汎)친이 진영의 ‘군기반장’ 역할을 계속 맡기고 박 전 대표와 맞상대하면서 힘의 균형을 조절해나갈 인물은 다른 곳에서 찾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끝에 정 최고위원에게 넌지시 제의가 갔다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으로서도 굳이 사양할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 청와대 눈치를 보지 않고 일찌감치 대권행보를 할 수 있는 장(場)이 마련되는데다 하기에 따라선 실제로 친이계의 지지를 받는 후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정 최고위원은 2월8일 열린 ‘함께 내일로’ 모임에 이상득 전 부의장, 공성진 최고위원, 안경률 사무총장, 심재철 의원 등 친이 핵심들과 자리를 나란히 해 눈길을 끌었다.

    3월초로 예정된 이재오 전 최고위원 귀국이 친이-친박 내분의 도화선이라면 4월에 있을 원외 당협위원장 교체와 4·29 재·보선은 자칫 잘못 건드리면 실제 대폭발을 불러일으킬 뇌관에 해당한다. 원외 당협위원장 교체 문제는 그 자체가 친이-친박 갈등의 부산물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낙천한 친박 인사들이 탈당→무소속 혹은 친박연대 출마→당선→복당 과정을 거치면서 당시 ‘박풍(朴風)’이 몰아쳤던 영남을 비롯해 전국 19개 선거구에서 친박 의원과 친이 낙선자 간에는 ‘한 지붕 두 살림’이 시작됐다. 복당한 현역 의원은 당협위원장 자리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만 낙선한 대다수 당협위원장들은 올 4월말까지 보장된 1년 임기를 채우겠다며 버텼다.

    친이 vs 친박 4월 대란설

    경주 재선거 출마가 예상되는 친이계 정종복 전 의원(오른쪽)과 친박계 정수성 전 육군대장.

    친이, “친박엔 못 준다”

    그러나 4월이 되어가지만 친이 계열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이번에도 자리를 내놓을 생각이 없다. 같은 당 소속이면 현역 의원이 당협위원장을 맡는 관례도 소용없다. 자신과 맞붙었던 친박 현역 의원에 대한 묵은 감정, 2010년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 차기 총선 대비 등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까닭이다.

    현재 친이 계열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2월10일 영남권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모임을 열고 공동대응을 결의했다. 18대 총선에서 친박 무소속 후보인 이해봉 의원에게 패했던 친이 계열 권용범 대구 달서을 위원장은 “왜 현역 의원들에게 당협위원장을 내줘야 하느냐. 경선도 불사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총선 당시 친박 의원들을 따라 탈당하지 않고 한나라당에 남은 지역 인사들이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도부 차원에서) ‘모종의 조치’가 없으면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그러자 친박 현역 의원들도 발끈하고 있다. 영남권의 한 복당파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내 지방의회 의원들이 자신에게 패했던 원외 당협위원장에게도 여전히 줄을 대고 있자 “2월까지 분명한 입장을 정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협위원장이 못되더라도 당신들만큼은 절대 공천을 받지 못하도록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원외 당협위원장에 대한 압박이다.

    아울러 친박 의원들도 최근 삼삼오오 모임을 갖고 신임 당협위원장 선출 문제에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 친박 중진의원은 “친이 핵심 인사가 원외 위원장들에게 책임당원을 많이 확보해 놓으라고 지시했다는 말을 들었다. ‘경선’으로 몰고 가려는 것 같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2월11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선 이 문제를 둘러싸고 탐색전이 벌어졌다. 이해봉 의원은 “얼마 전 원외 위원장 추진협의회가 구성돼 많은 잡음과 정치적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창립대회를 보니까 국내에도 없는 소위 ‘정치실세’라는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고, 당에서 지원을 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내에 또 하나의 세력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일갈했다. 이 의원은 또 “현역 의원이 있으면 당연히 당협위원장은 현역 의원을 우선으로 하는 게 관행”이라고 못을 박았다. 이 의원이 거론한 정치실세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다. 원외 위원장들의 조직적 행동에 친이 핵심 인사들이 깊숙이 개입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자 이재오계의 핵심인 공성진 최고위원은 “원외 위원장 협의회는 자신들의 의견을 원내로 보내는 차원에서 결성된 것이지 분란의 소지가 있게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친이 핵심의 개입 의혹은 일축하면서도 ‘원외 위원장 세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두둔한 셈이다. 친이 계열 박순자 최고위원도 “사실 원외 위원장들의 활동이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경주는 완전 화약고

    이날 회의에선 4월 재·보선 이후 신임 당협 위원장 선출 방식을 다시 논의키로 하는 선에서 미봉됐다. 그러나 정치적 생사가 걸리다시피 한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친이-친박 대치가 날로 첨예해지고 있다. 친박 진영 일각에선 “이재오계를 중심으로 한 친박 의원들 미아 만들기”로 받아들인다. “친이 지역의 당협위원장 자리도 친이 것, 친박 지역의 당협위원장 자리는 친이 것”이라는 논리라는 것이다. 한 친박 초선 의원은 “지금 상태라면 큰 충돌이 불가피하다. 친이 측이 위원장 경선을 밀어붙일 경우 이는 우리보고 당을 떠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흥분했다.

    오는 4월29일 치러질 재·보궐선거도 또 다른 화약고다. 특히 전국적으로 4곳에서 실시되는 국회의원 선거 가운데 ‘친박연대’로 당선됐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한 김일윤 전 의원의 자리를 메울 경주 재선거는 완전 지뢰밭이다. 2월 중순 경주 재선거에 예비후보 등록을 한 출마예정자는 15명이다. 다른 곳의 평균 7명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 이 가운데 한나라당 공천 희망자만 9명이다. 여러 변수가 있지만 현지의 분석은 친이는 정종복 전 의원이, 친박은 정수성 예비역 대장이 대표할 것으로 본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간사를 맡아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지만 막상 자신은 본선에서 ‘박풍’에 나가 떨어졌다. 정 전 장군은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안보특보를 맡았으며, 재선거 출정식을 겸한 출판기념회에 박 전 대표가 직접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

    특히 정 전 장군은 “공천 여부에 상관없이 끝까지 간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어 친이-친박이 공천과정에서의 1차 격돌에 이어 재선거 본선에서 2차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정 전 장군이 아예 한나라당 공천을 포기하고 ‘친박 무소속’을 선언한 뒤 본선에 곧바로 출마할 것이란 말도 나돈다. 한나라당 공천을 희망하는 한 예비후보자는 “정 전 장군이 여론 주도층이 아닌 경로당이나 시장을 주로 돌며 이름을 알리고 있는 것을 보면 공천보다는 본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만일 경주 재선거가 친이 한나라당 후보와 친박 무소속 후보의 맞대결 구도로 현실화될 경우 여권의 내부 갈등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한나라당 지도부 입장에선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릴 선거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하지만 박 전 대표를 비롯한 당내 친박들은 지도부의 잇단 압력에도 팔짱만 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어느 쪽이 이기든 심각한 후유증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이 원외 당협위원장 문제, 5월 원내대표 경선과 맞물릴 경우 여권은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좌장’에서 ‘남자 박근혜’로?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시점에 친박 진영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그동안 흩어졌던 친이 계열이 급속히 재결집하는 것에 반해 친박 진영은 이전처럼 하나로 똘똘 뭉치지 못하는 이상기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김무성 의원이 친박 세력 결집을 강조한 것은 단합이 필요한 시점에 내부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감지한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몇 달 앞두고 출범했던 박근혜 캠프의 핵심 인물 가운데 일부는 그 후 박 전 대표와 거리가 멀어졌다. 내부적으로 경선패배 책임론과 같은 후유증이 있었던 데다 대선 본선과 18대 총선을 거치면서 여러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부 언론에서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하는 한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동향이나 생각 등을 질문받을 때마다 곤혹스러워한다.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박 전 대표와의 접근성이 떨어져 아는 것도 별로 없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럴 때마다 “최근엔 만나 뵙지 못했다”고 얼버무린다.

    심지어 좌장이라는 김무성 의원조차 박 전 대표와 관계가 소원해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그가 작심하고 ‘결집론’을 주창했음에도 박 전 대표가 “당의 중진으로서 개인 의견을 말한 것”이라고 의미를 깎아내려버린 데 따른 것이었다. 과거 같으면 김 의원의 말은 곧 박 전 대표의 의중이었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지난번 측근들이 완전히 뒤로 물러나 앉은 것은 아니다. 다만 힘이 빠진 것은 사실이고 그 빈 공간을 새로운 인물들이 채우고 있는 듯하다.

    한나라당 주변에선 꾸준히 곁에 있는 초선의 이정현·구상찬 의원 외에 3선의 허태열 최고위원, 재선의 진영 의원 등을 최근 들어 박 전 대표와 자주 독대하는 인물로 꼽는다. 특히 진 의원은 철저한 원칙론자라는 점에서 ‘남자 박근혜’라는 별명(?)도 붙었다고 한다.

    친박 진영의 새로운 실세로 부각되고 있는 한 초선 의원은 “한번 실패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4년 후를 맡길 수는 없다. 그들은 전략도 없었고, 의지도 약했다. 이제 우리가 하겠다”고 했다. 급속히 결속을 다지는 친이계와 분열상을 노출하는 친박계의 내부 움직임은 4월 한나라당 내분설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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