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28일 미 외교협회(CFR)가 발표한 ‘북한 급변 준비 (Preparing for Sudden Change in North Korea)’ 보고서.
하지만 지난해 8월경부터 김정일(67)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흘러나오면서 다시 한번 북한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전망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절대권력인 김 위원장의 유고(有故)는 북한의 지배구조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1월28일 미국 외교협회(CFR)는 ‘북한의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대비’라는 보고서 출간을 계기로 워싱턴 사무소에서 라운드테이블 토론회를 개최했다. 보고서 작성자인 폴 스테어스 CFR 선임연구원과 ‘벼랑끝 협상’ 등의 저서를 펴낸 바 있는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이 주제발표자로 참석했다.
스테어스 연구원은 김 위원장 유고를 대비하는 것은 늦출 수 없는 우선과제라고도 했다. 그는 “의학적으로 60세 이후 뇌졸중이 발생했을 경우 25% 정도는 1년 안에 사망하며, 5년 내에 사망할 확률은 50%를 넘는다”고 말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1994년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20년 이상 권력수업을 거친 뒤 넘겨받았지만 현재의 후계구도는 안개 속”이라며 “북한이 불안전하게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스나이더 연구원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이 중국에 대해 북한 급변사태 대비책을 공동마련하자고 제안했지만 중국이 거부한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대비책은 주변국의 협조 속에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테어스 연구원도 “북한 급변사태 대비는 공동 군사작전의 차원보다는 북한 내 권력의 순조로운 이양을 가능케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낫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스테어스 연구원과 조엘 위트 컬럼비아대 웨더헤드 동아시아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52쪽 분량의 보고서를 요약한 내용이다.
1. 북한의 변화 예상 시나리오
북한의 갑작스러운 변화 가능성은 여러 가지로 예상해볼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 북한의 변화 시나리오는 리더십의 변화를 뜻하는 ‘위로부터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① 관리된 권력승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를 지명했다는 징후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는다. 적어도 고(故) 김일성 주석이 20년 이상의 기간을 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세습을 준비한 것과 같은 방식의 후계지명 방식은 취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현재의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권력승계절차에 돌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명시적이지는 않다.
북한이 취해온 부자세습의 관례를 고려할 때 김정일 가문의 세 아들 중 한 명이 권력을 승계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장남인 김정남(38)의 경우 서출(2002년 사망한 성혜림의 아들-필자 주)이라는 한계가 있다. 차남인 정철(28)과 삼남인 정운(25)도 때때로 후계자 반열에 오른 것으로 언급됐다. 2004년 사망한 고영희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후계구도에 근접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많은 전문가는 이들이 나이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세 아들 중 한 명을 전면에 내세우되 장성택(63) 조선노동당 행정부장, 김정일의 개인비서이자 현재의 부인 또는 파트너로 알려진 김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후견인(caretaker) 역할을 하는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한다. 특히 김옥의 경우 현재 최측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김정일 위원장과의 개인적인 관계에만 의존하는 그의 파워는 결국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장성택의 경우 조직지도부 부부장, 행정부장 등을 역임하며 스스로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했고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라는 점, 군·당 주요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는 점 등이 인상적이다.
관리된 권력승계 방식의 나머지 한 가지 가능성은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다.
결론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를 지정한 상태에서 지도부가 바뀌는 ‘관리된 권력승계’의 경우에는 매끄러운 권력이양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재임하면서 1400명의 군 장성 중 1131명에 대한 승진인사를 단행했고 주택, 교육, 개인 자동차, 고급양주 등 많은 복지혜택을 제공했다는 점도 군부가 현상타파보다는 현상유지를 택할 가능성을 높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