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두운 지하방에 앉아 작은 백열등만을 켜고 앉아 창밖만 보고 있는 나를 아내는 매번 못마땅해 한다. “도대체 그놈의 생리는 한 달에 몇 번이나 하는 거냐! 이젠 폐경기가 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그런다. 그렇다. 남자에게도 나이가 들면 폐경기가 온다. 영혼의 폐경기. 크흐, 영혼의….
창밖으로 모과나무와 새가 보이는 집
내 아내는 몸도 튼튼하지만 마음은 더 튼튼하다. 도무지 계절과는 관계없는 동남아시아적 삶을 산다. 가끔 몬순바람이 불며 세찬 소나기가 올 때도 있지만 그건 잠시다. 그때만 피하면 된다. 바로 그친다. 그러다 보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매번 우울하다며, 인생이 허무하다며, 입맛이 없다며, 쫓아다니면서 맛있는 저녁 해달라는 나를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그러나 계절은 타라고 있는 거다. 그렇지 않다면 사계절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함께 아침방송에 출연한 후, 커피를 마시며 천하장사 이만기가 그랬다. 자기는 가을이면 낙엽 타는 냄새를 꼭 맡아야 한다고. 차 몰고 볏단 타는 곳을 일부러 찾아다닌다고 했다. 안 그러면 부인에게 꼭 짜증내게 된다고 그랬다. 세상을 뒤집어엎던 천하장사도 그러는데, 소심하고 귀 얇고, 뒤끝 긴, 나 같은 사람이 어찌 계절 변화에 무심하겠는가. 이런, 이야기가 딴 데로 샜다. 좌우간 우리집은 남 눈치 안 보고 음악도 듣고, 아이들이 쿵쿵거리며 뛰어도 돼 좋다.
가을 햇살 좋은 날은 정말 예쁜 새가 날아와 창밖의 모과나무 위에 앉아 있기도 한다. 그 뒤의 작은 언덕에는 꿩 식구가 자주 놀러 온다. 후다닥거리는 소리가 나 올려다보면 어미 꿩이 새끼들을 데리고 언덕을 기어올라간다. 우리집은 아주 먼 시골의 전원주택이 아니다. 우리는 분당과 용인 사이에 있는 산언저리에 산다. 다들 우리집을 부러워해, 서울의 30평대 아파트를 포기하면 언제든지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면 다들 당장 이사 올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형제약수터 앞에서 즐거워하는 필자의 둘째아들.
‘형제약수터’에 가면 ‘행복물’이 나온다
근처에 변변한 쇼핑센터나 장볼 곳도 없다. 분당이나 용인으로 장보러 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집값도 전혀 오르지 않고, 매매도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반상회 때마다 이웃들은 걱정이 많다. 그러나 어느 광고처럼 ‘집은 사는 곳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계속 그곳에 살 생각이라면 집값이 아무리 많이 올라도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최근 내게 지금의 이 집을 사랑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다. 다른 곳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아이들과의 특별한 일 때문이다. 집 뒤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등산로가 있다. 사실 등산이라고 하기엔 좀 뭐하다. 그렇다고 산책로라고 하기엔 땀이 제법 많이 나오는 길이다. 숲도 꽤 깊어 어두컴컴한 길이 계속된다. 가을에 송이버섯을 따러 오는 사람들 빼놓고는, 2시간 내내 사람을 거의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