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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 중국어선 쫓는 해경 1509 경비함 3박4일 동승기

“드럼통 치켜들고 삽 휘두르면 일단 후퇴할 수밖에요”

  • 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무법자’ 중국어선 쫓는 해경 1509 경비함 3박4일 동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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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 중국어선 쫓는 해경  1509 경비함 3박4일 동승기

파도가 높으면 배가 들썩여 단정 타기가 더 어렵다(왼쪽). 전탐자가 레이더를 보고 있다(오른쪽).

조타실의 경찰관 세 명이 저마다 망원경을 들고 어선에 붙은 허가번호를 확인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번호판이 제대로 보일 리 없다. 탐조등이 도는 그 짧은 순간에 한 척씩 확인해야 하는 식이다. 그러니 3, 4분이 지나도록 허가번호는 쉬이 파악되질 않는다.

조타실 배준 경위가 망원경으로 확인하곤 소리친다.

“어선번호 오-일-일-칠, 반복합니다. 오일일칠!”

조타실 뒤 조사실에서 EEZ 조업허가명부를 뒤지던 박주연 순경이 외친다.

“허가 있습니다. 출항신고도 했습니다!”



이번엔 김선훈 순경이 소리친다.

“어선번호 오-이-일-이! 오이일이!”

허가 있는 배냐고 함장이 묻자 이번에도 박 순경이 ‘허가 있음’을 확인한다.

이동 중인 배에 탐조등을 잘 비추라는 지시가 연이어 내려진다. 5분이 지났지만 10척 중 5척의 허가번호만이 파악된다. 어선들이 첩첩이 떠 있는데다 멀리 있어 탐조등을 비추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무법자’ 중국어선 쫓는 해경  1509 경비함 3박4일 동승기

박경조 경위를 죽음으로 몬 그 17톤급 목선. 해경이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수거한 뒤 인데도 여전히 무기가 될 만한 것이 눈에 띈다.

고개 돌린 채 담배 피우던 청년

중국 어선의 폭력 시비가 한창 예민한 문제로 불거져 있었기 때문일까, 함장은 끝내 단정을 바다에 내리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 다섯 척 모두 허가번호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어선 가운데 한 척에 ‘멈추라’고 중국말로 방송한다. ‘계류하라’는 지시가 이어진다. 불리할 게 없다고 판단해서였는지 지시를 받은 배는 계류를 위해 순순히 경비함으로 다가왔다.

갑판장으로 뛰어내려가자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요호어 35059호가 보인다. 멀리서 볼 때는 작았지만 가까이 오니 놀이동산의 바이킹만큼 크다.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데도 수산물시장에서 나는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등어 썩은 냄새다. 옆에 서 있던 박래혁 순경이 코를 벌름거리며 “이 정도면 향긋한 것”이라고 말한다.

“양쯔강 쪽에는 이미 중국 어선들이 고기를 다 긁어가서 여기로 오는데, 이 배는 조업 나온 지 얼마 안 됐나 봐요. 청소도 꽤 잘돼 있고. 이 정도면 냄새 나는 것도 아니죠. 지난번에 36시간 호송했을 때는 정말이지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니까요. 코가 제일 빨리 둔감해지지만, 어선에 갈 때마다 그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집니다.”

꾀죄죄한 내복을 입고 눈을 껌뻑껌뻑 하는 중국 선원 10여 명이 선실로 사라졌다 다시 갑판으로 올라왔다 한다. 복장만 다를 뿐 영락없는 서울역 노숙자들이다. 경찰관들이 선장을 경비함으로 데려간 게 착잡했던지 갑판 한켠에서 담배를 무는 이도 보인다. 배 생활에 찌들어 보이는 청년이 고개를 돌린 채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이곤 이내 꽁초를 바다에 던진다.

선장을 조사했지만 이제 막 조업을 시작한 배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돌려보낸다. 빨간 줄이 그어진 누런 내복을 입은 선장은 경찰들의 질의에 주눅이 들었는지 몸이 굳어 있다. “중국에서 박 경위 사건을 들었다”는 그는 출항 직전 당국으로부터 “한국 경비함이 조사를 하거든 잘 응하라” 는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박 경위 사건으로 한국 정부가 격렬히 항의한 데 따라 중국 측이 취한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한국 정부에 사과한 바로 다음날에도 인천 앞바다에서는 한국경비함과 중국어선 사이에 폭행 사건이 있었다.

유자망 조업은 위법성 파악하기 어렵다

EEZ 내에 들어온 모든 중국 어선은 해경의 검색 대상이다. 불법 어선은 물론이고 조업허가를 받은 합법 어선 역시 고기를 기준치 이상으로 잡은 건 아닌지, 적재량을 속이지는 않는지 등 총 15가지 항목을 확인해야 한다.

단정을 내리기 위한 준비에 5분, 단정을 타고 중국 어선으로 가는 데 5분, 선장을 제압하는 데 5분, 조타실 조사와 어선 검색에 5분, 선장을 압송해 경비함으로 돌아오는 데 5분이 걸린다고 쳐도 어선 한 척 검색에는 최소 20분이 소요된다. 파도가 높고 주위가 어두우면 단정을 중국 어선에 대기가 어려워 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진다. 그러니 ‘시범 케이스’를 잘 골라 검색하는 수밖에 없다.

단정을 내리지 않고 중국 어선에 경비함에 계류하도록 지시한 뒤 검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15분 이상 걸리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한 척을 검색하는 동안 위법사항이 있는 다른 어선들은 모두 도망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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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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