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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 마지막 회

인간이기에 틀릴 수 있다

오류는 나의 것!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인간이기에 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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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순간에도 오류는 발생한다.
  • 물론 오류를 피하는 게 좋지만, 오류가 없는 사유만 건강한 사유는 아니다. 명제만 있는 사유는 골동품이다.
  • 질문하는 사유, 의심하는 사유, 창조하는 사유가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
인간이기에 틀릴 수 있다

영화 ‘패왕별희(覇王別姬)’에서의 항우(項羽, 오른쪽). 사마천은 항우를 천자의 역사를 기록하는 ‘본기’에 넣어 두고두고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어른들은 늘 인생이 하루 같다는 말씀을 하시지만, 아직 그럴 나이가 못 되어서 그런지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2년 동안 한 달이 이토록 빠를 수 있음은 분명히 알게 됐다. 오랜 추억이 서린 ‘신동아’의 귀한 지면임에도 연재의 압박은 예외가 아니었다. 데이비드 H 피셔라는 좋은 학자의 안내도 있었고 그동안 이모저모 모아온 자료도 있었지만, 그걸 매달 일정 분량으로 가공하는 게 내겐 녹록지 않은 작업이었다. 역사 공부에서 어떤 오류가 생길 수 있는지, 어떻게 피해갈지는 역사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전문가라도 언제나 닥치는 숙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매듭을 지으려니 빠진 자료, 못한 말이 줄줄이 떠오른다. 또 나의 무능을 자책할 수밖에 없게 됐다. 역사학의 기록과 서술이라는 두 축 중에서 역사를 탐구-서술-논쟁하는 과정을 축으로 진행하다보니 일단 ‘서술’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따라 정작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그 순간에 발생하는 오류는 거의 다루지 못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본고에서 조금 언급해두고자 한다. 말하자면 보강이다.

역사 공부의 지위

역사학(역사 공부)은 분과학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학문에 공통된 양식이자 방법이다. 언뜻 보면 역사학은 이과대, 문과대, 어문학, 인문학으로 나뉜 대학에서 인문대학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분과학문의 하나일 뿐이다. 분과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은 조금 왜소하다.

한편 역사학은 교양수업으로 철학과 함께 개설되기도 하면서 특별한 지위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것은 교양이라고 표현될 만큼 역사학이 뭔가의 베이스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베이스란 이런 것이다.



역사학의 한 분야로 경제사, 정치사, 문화사가 있지만, 개별 학문 차원에서 봐도 경제학엔 경제학사(史)가 있고, 정치학엔 정치학사(史)가 있다. 심지어 물리학에도 물리학사(史)가 있고, 언론학에도 언론학사(史)가 있다. 이는 역사[史]가 모든 학문의 공통된 양식(Form, 형식)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양식의 공통성 때문에 역사는 모든 학문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존재하는 것들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바꿀 수 없는 절대적 양식(형식)에서 연유한 것이겠는데, 역사학에서 변화를 설명하는 방법, 인과를 설명하는 방법, 사료를 비판하는 방법은 각각의 개별 학문에서 여전히 유용하게 쓰인다. 물론 다른 학문의 방법을 역사학에서 가져오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학의 양식과 방법이 갖는 보편적 기여 때문인지, 필자가 ‘신동아’에 연재하는 동안 다른 분야 전문가들에게서 연재에서 보여주는 오류의 사례들이 해당 분야에서 도움이 됐다는 격려를 들었다. 언론계의 기자들이나 의학, 경제학, 철학 등에 종사하는 분들이었다.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시민들의 호응도 있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공감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인간의 조건에 있다. 지난 호에서도 오류는 ‘나만은 예외겠지’ 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정말 그렇다. 건강한 시민은 자신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류를 범해도 자책하거나 합리화하기 전에, 즉 오류에 치이기 전에, 아니 잠깐 자책도 하고 합리화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방향을 바꿔 그 오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도 “잘못을 저지르면 고치기를 망설이지 않았다[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고 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저지를 오류도 적어진다. 왜 오류를 범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오류를 저지르는 일이 훨씬 많지 않을까. 알았다면 저지르지 않았을 오류가 내 주변에 더 많이 널려 있지 않을까.

실제로 학생들에게 내가 연재하는 글을 ‘역사학개론’ 시간에 함께 읽도록 권한다. 필자도 배워본 적 없는 학습 방법이니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몇 번 하고 나면 글과 생각이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나이 들어가는 역사학도가 역사 공부의 오류를 줄이게 된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이것도 ‘과즉물탄개’다.

한발 나아가 공자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 자체라기보다,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을 두고 잘못이라고 한다[過而不改, 是謂過矣]”고 했다. 오래된 지혜는 새길 필요가 있다.

유지기의 ‘사통(史通)’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나 하면, 코앞에 두고도 멀리서 찾는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다. 역사학의 오류를 논하면서 정작 내가 번역한 유지기(劉知幾)의 ‘사통(史通)’을 소개할 생각은 못했다는 것이다. 실력이 부족한 내가 번역하기엔 너무 값진 책이어서 출간하면서도 다소 민망했지만, 앞으로 널리 읽혔으면 하여 짧게 나의 서문을 소개해둔다.

‘사통’은 뭐니뭐니해도 인류 최초의 ‘역사학개론’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역사서의 범주, 사관제도의 역사, 역사서에 담기는 기록의 종류, 역사서의 장단점, 분류사의 서술과 특징, 역사 사실의 왜곡과 오류에 대한 사료 비판에 대한 종합적인 관찰과 서술이다. 특히 역사서와 사학사를 다룬 일부를 빼면, ‘사통 내편’ 후반, ‘사통 외편’ 중후반 등 거의 모든 논의는 사료 비판에 할당되어 있다. 공자도 사마천(司馬遷)도 그의 비평을 피하지 못하였다. 학부 때부터 역사학을 전공한 나 역시 유감스럽게도 이런 사료 비판 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그것만으로도 유지기의 ‘사통’이 갖는 가치는 충분하다.

‘사통’은 또 다른 지평을 열어준다. 동아시아 인문학을 받쳐온 두 축은 경(經)과 사(史)였다. 그 한 축이었던 역사[史]라는 말은, 기록을 남기고(Recording), 기록을 보존하고(Archiving), 그것을 통해 역사를 서술하고 이야기하는(Histori-ography) 세 영역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다. 현대 역사학은 이 중 주로 마지막 역사 서술에 국한되어 왔다. 학문이 분과(分科)로 발달한 결과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만이 아니라, 일상 쓰는 일기도,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사진도 역사이며, 무엇보다 보관하고 있는 행위 자체가 역사이다. 유지기는 ‘사통’을 통해 인간 존재로서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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