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호

[르포] 포항지진 2年 “여가 전라도 포항이라도 가만있을 끼가”

  • 조규희 객원기자

    playingjo@gmail.com

    입력2019-11-18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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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 텐트 거주 이재민 아직도 200여 명

    • “지진 전 산이 우는 소리 지금도 들려”

    • 집값 50% 떨어져… 상가 공실률 24.7%

    • 집은 비었어도 재산세는 ‘꼬박꼬박’

    • 민생 문제가 지역·이념 갈등으로 비화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금이 간 시계가 오후 2시 29분 31초에 멈춰 있다. 멈춰 선 시계 위로 깊은 한숨만 쌓인다. 경북 포항시 흥해읍의 시간은 2년 전인 2017년 11월 15일 그 시간에 멈춰 있다. 1978년 지진 관측 이래 두 번째로 큰 5.4 규모 지진이 발생한 바로 그날. 

    이재민 205명은 지진 발생 이후 세 번째 겨울을 흥해실내체육관 3.3㎡ 남짓한 1인용 텐트에서 맞고 있다. 성인 남성이 누우면 온전히 발을 뻗지 못할 만큼 좁은 텐트가 체육관 1층, 2층에 설치돼 있다. ‘난민보다 더한 이재민’이라는 문구가 붙은 텐트 옆을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탁한 먼지와 뒤섞인다. 

    “산이 무너질라카믄 ‘우웅웅’ 하고 운다카대. 우리 집에 가면 그 소리가 자꾸 나는데 어찌 들어가겠나.” 

    “집에 가 가만 앉아 있어도 ‘두두둑 두두둑’ 자꾸 보르꾸(벽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서 들어가 있을 수가 없어.” 

    포항지진 주택 피해는 공식적으로 5만6568건(전파 671건·반파 285건·소파 5만4141건·기타 1471건)이다. 이는 공장과 상가의 피해를 제외한 수치로 804가구 203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사망 1명, 부상 117명.



    “9000만 원으로도 수리 못해”

    경북 포항시 흥해읍 주민들은 지진 발생 2년이 지난 현재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경북 포항시 흥해읍 주민들은 지진 발생 2년이 지난 현재도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건물 파손 등 재산 피해도 문제지만 이재민들의 트라우마와 건강이 더욱 염려된다. 지진 발생 초기 6개월여간 병원비가 지원됐으나 현재는 끊긴 상태다. 텐트에서 거주하던 한 이재민은 최근 뇌종양 판정을 받고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체육관 벽면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했으나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차가운 바닥도 이재민을 고통스럽게 한다. 화재 위험 탓에 전기장판 사용이 사실상 금지된 상황에서 포항시에서 제공하는 핫팩 2개에 의존해 밤을 보낸다. 체육관에 비치된 컵라면을 인근 가게에서 소주로 바꿔와 텐트 안에서 마시고 잠을 이룬다는 이재민도 있다. 

    7세, 4세 아이들을 키우는 36세 전업 주부 K씨는 “지진 이후 체육관에서 지내다보니 아이에게 아토피 피부염이 생겼다. 공기가 좋지 않아 아이들이 감기에 자주 걸린다.” 

    K씨는 낮에는 체육관에서 지내다가 밤에 금이 간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집에 가는 이유를 묻자 “아이들 건강상의 문제도 있지만 새벽에 아이가 울면 주변 분에게 피해가 가니 집에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들은 쿵쿵 소리가 들린다거나 마늘 찧는 소리에도 놀라 달려와 ‘지진 난 것 아니냐’며 운다”고 했다.

    집은 비었어도 재산세는 ‘꼬박꼬박’

    이재민 205명이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왼쪽). 이재민들은 3.3m2 남짓한 1인용 텐트에서 잠을 청한다. [지호영 기자]

    이재민 205명이 경북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왼쪽). 이재민들은 3.3m2 남짓한 1인용 텐트에서 잠을 청한다. [지호영 기자]

    주택 피해를 전파, 반파, 소파로 나눴는데 이마저도 지진 피해가 아닌 홍수 피해 기준이다. 포항시 차원에서 전파주택에 한해 최대 1400만 원을 지원했으나 하루아침에 집이 없어진 상황에서 1400만 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마음을 다잡고 집을 수리하려고 해도 벽에 금이 가고, 구조 자체가 뒤틀려 지원금으로는 엄두를 못 낸다. 

    한 이재민은 “전파 판정을 받아 900만 원을 받았다. 수리업자를 불렀는데 9000만 원으로도 수리를 못 한다더라. 건물 자체가 위험한데 이 집만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반파, 소파 판정을 받은 이재민도 사정은 비슷하다. 건물 외벽 곳곳에 금이 가 틈이 벌어져 있는데 들어가 살라니 이재민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옆 건물이 완전히 기울어졌는데도 20m 거리의 다른 건물은 거주 가능 판정을 받기도 했다. 

    거주 가능 진단을 받은 아파트의 일부 입주자들이 보기에는 들어가 살 수 없는 상황인데도 재산세 등 각종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했다. 한 이재민은 “저리 집은 비어 있어도 재산세 내라고 고지서가 꼬박꼬박 날아온다”며 “다 쓰러져가는 집이지만 내라는 대로 다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아파트 단지에는 건물을 둘러싸고 안전망이 설치돼 있다. 군데군데 흉물스럽게 벌어진 외벽과 뒤틀린 창틀이 보인다. 학교를 파한 아이가 안전망 아래를 걸어가며 부모와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 나 지금 친구네 가서 게임하고 와도 돼요?” 

    벽돌 하나라도 떨어지면 찢질 것 같은 안전망 아래에는 시민의 안전을 지켜줘야 할 정부의 손길은 보이지 않았다. 

    한 초등학교는 가건물을 설치했다. 가건물 뒤로 학교 공사가 한창이다. 초등학교 2학년 P양은 “여기 사는 거 무섭지 않아요. 그때 학교가 좀 깨졌는데 그래서 부수고 다시 짓는 거래요”라면서 수줍게 웃었다. 

    포항의 중대형 상가(330㎡ 이상) 공실률은 24.7%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상가 4곳 중 1곳은 비었다는 뜻이다. 포항시 흥해읍의 공인중개사 B씨는 “지진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기본적으로 30% 폭락했으며 정말 급한 매물은 최대 50%까지 낮춰서 거래가 이뤄진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재민 중 그래도 돈이 있는 사람들은 시내에 가까운 새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은 근방에 50% 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사거나 그곳에 전세로 들어간다. 그런 분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사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지진 발생 직후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등이 잇따라 포항을 방문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재민들은 원래의 삶으로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자꾸 물으면 내 입에서 욕 나온다”

    흥해실내체육관에 설치된 이재민용 텐트들. [지호영 기자]

    흥해실내체육관에 설치된 이재민용 텐트들. [지호영 기자]

    “여가 전라도 포항이라도 가만있을 끼가” “이번 정권에서 생긴 일인데 왜 안 도와주나.” “포항시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이렇듯 민생 문제가 지역 갈등, 이념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11월 10일 ‘비서실장·안보실장·정책실장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안전이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과제” “국민 안전이 최고의 민생”이라고 했다. 청와대와 포항의 거리만큼 이재민들에게는 이 말이 와닿지 않는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포항지진특별법 제정도 답보 상태다.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3월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 물 주입으로 촉발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실상 천재가 아닌 인재임을 시사한 것이다. 여야는 특별법안 5건을 발의했으나 아직껏 산자위 법안소위도 통과하지 못했다. 한 이재민은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 천년, 만년 해 처먹고(먹으려고) 저 지랄하는데 무슨 그런 거 해주겠나. 우옛든 윗대가리들에 잘 보여 갖고, 공천받을라고 하겠지. 여기 어느 놈이 신경 써. 국회의원이고 지랄이고…. 자꾸 물으면 내 입에서 욕 나온다.”

    이강덕 포항시장 “소매업 매출 20.8% 급감”

    포항시는 지진 발생 이후 인구 감소, 관광객 감소, 아파트 가격 하락, 상가 매출 하락 등 전방위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4년 포항시장에 당선돼 2018년 연임에 성공한 이강덕 포항시장이 지자체 선에서 지진 극복 방안을 강구하면서도 정부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 지진 발생 후 2년간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인재로 드러난 11·15 지진과 관련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최일선의 기초단체장으로서 국책사업(지열발전소)이라는 이유로 사업 추진과 관련해 깊이 고려하지 못한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시민들께도 송구스러운 마음이 가슴 한 편에 자리하고 있다.” 

    - 포항시 차원에서 추산한 경제적 피해액은. 

    “지진 당시 자연지진 기준으로 846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으나 지난해 한국은행 포항본부 발표에 따르면 직·간접 피해액이 332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일부 전문가들은 14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 지진 발생 이후 경제지표는. 

    “지진 이후 포항 지역경제가 상당히 힘든 상황에 빠져 있는 게 사실이다. 소매업 매출이 20.8%나 급감했으며, 자영업 점포 평균 공실률도 9.4%에 달한다. 지역 상권이 매출 감소로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 

    - 관광객도 줄었다던데. 

    “관광객이 크게 줄어든 것도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포항운하만 봐도 연평균 35만 명을 넘어서던 방문객이 지난해 10만 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 부동산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아파트 가격 하락 등 부동산 경기침체도 심각한 상황이다. 전용면적 85㎡ 기준 최고 1억 원 넘게 가격이 하락했다. 지진 피해 지역과 포항시 전체의 부동산 가치 하락 규모가 최소 2조 원이 넘는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포항시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나. 

    “포항시민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서만 신속하고 효율적인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동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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