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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

2030에서 58년 개띠까지 ‘뉴트로’로 대동단결

10대는 새것, 30대는 향수, 50대는 NEWTRO

  • 장민지 웹 평론가·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mingi.jang@gmail.com

2030에서 58년 개띠까지 ‘뉴트로’로 대동단결

  • ● ‘2020년 원더키디’의 해가 밝았다!
    ● ‘시조새’도 대통합하는 팬덤(fandom)
    ● 양준일, 1020에겐 NEW·5060에겐 NEWTRO
    ● 스타크래프트, DDR에 드라마 ‘온달왕자들’까지
    ● 제작비 제로에 누군가에겐 ‘신선한’ 엘도라도
‘사바나’는 ‘회를 꾸는 ,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KBS가 2020년 새해를 맞아 유튜브 채널 ‘KBS아카이브:옛날티비’를 통해 과거 방영된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했다. [GettyImage]

KBS가 2020년 새해를 맞아 유튜브 채널 ‘KBS아카이브:옛날티비’를 통해 과거 방영된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했다. [GettyImage]

내 나이 30대 중반, 1989년 처음 방영된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본 기억은 희미하다. 단 하나 기억나는 건 그때 당시 2020년은 마치 먼 미래 같았다는 것이다. 과거에 묘사된 2020년은 우주탐사 도중 조난당한 아버지를 찾고, 성간 여행을 위한 거대한 우주선이 등장하며,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현실화된 시기다. 그뿐인가. 초등학교 때 질리도록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본 ‘빽투더 퓨처(Back to the Future·1985)’ 시리즈는 언젠간 나도 날아다니는 보드를 타고, 타임머신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주기까지 했다. 

원더키디의 해 2020년. 우린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유튜브엔 과거 음악 프로그램을 다시 중계하는 채널 ‘온라인 탑골공원’이 흥행하고, JTBC ‘슈가맨’에 출연한 ‘리베카’의 가수 양준일은 1990년대 GD(지드래곤)라 불린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여전히 유효한 과거에 대한 ‘열망’을 본다. 그렇게 과거에는 미래를 상상해 대더니 이제는 과거를 소환한다. 심지어 과거의 콘텐츠가 내다봤던 (이제는 현재가 된) 미래를 다시 들여다본다. tvN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JTBC ‘슈가맨’, 심지어 영화 ‘타짜’의 아이언드래곤(철용)까지. 

우리는 왜 과거를 발굴하고 그 콘텐츠를 다시금 소비할까. 마치 새롭게 발견되는 듯한 과거의 기억은 어떻게 2020년에 재구성되는가.


10대에서 ‘시조새’ 팬까지

가수 송가인이 2019년 10월 28일 서울 도봉구 창동 플랫폼 61에서 열린 ‘미스트롯 전국투어 시즌2’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가수 송가인이 2019년 10월 28일 서울 도봉구 창동 플랫폼 61에서 열린 ‘미스트롯 전국투어 시즌2’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팬덤(fandom) 안에서 시조새란 연령대가 높은 팬들을 지칭한다. 물론 이 단어가 가치중립적으로만 사용돼 온 것은 아니다. 팬덤 내부에서 나이 많은 팬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하는 데 쓰인 적도 왕왕 있어서다. 이는 그 자체로 팬덤 안에서 세대 간 분리를 조장한다. 시조새 외에도 연령대가 높은 팬들을 지칭하는 단어는 여럿 있다. 이처럼 높은 연령대의 팬들을 걸러내기 위한 도구는 팬 커뮤니티 내부 곳곳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말줄임표를 남발하거나, 연령대 높은 팬이 자주 사용하는 문장들을 조롱하는 식이다. 이는 콘텐츠 소비에 대한 열망이 높은 나이 든 팬들의 설 자리를 잃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시조새로 불리는 세대의 대중문화 소비 열망은 어마어마하다. 나훈아, 조용필, BTS(방탄소년단)와 미스트롯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초월한 팬덤의 열망은 타오르는 용광로와 같았다. 송가인을 트롯의 여왕자리에 올린 주체는 다름 아닌 50대 60대의 열정적인 팬클럽이었다. MBC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실제로 들여다본 팬덤의 행동 양상은 팬 커뮤니티가 10대와 20대의 전유물이 아닌, 그야말로 세대를 대통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현상은 디지털 네이티브, 즉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을 접한 세대가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떼어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은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으며, 콘텐츠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문화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한 세대다. 또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등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감수성이 태어날 때부터 예민한 세대다. 그렇다 보니 주류 문화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주체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익숙한 세대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들은 과거의 콘텐츠를 현재의 시대에 맞춰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손쉽게 다룰 줄 아는 이용자층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들 세대는 과거와 현재를 모두 경험하고 이해하면서 그 사이를 연결하는 데 능하다. 이들은 노년이 돼서도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이를 타인과 공유한다. 말하자면 이들이야말로 2020년의 ‘원더키디’들이다.


시대 앞서 나가던 양준일, 지금은 NEWTRO

최근 온라인 탑골가요 열풍이 불면서 ‘탑골GD’라는 별명을 얻은 양준일(왼쪽). 1998년 처음 출시된 다중역할수행목적게임(MMORPG) 리니지의 광고. [뉴스1]

최근 온라인 탑골가요 열풍이 불면서 ‘탑골GD’라는 별명을 얻은 양준일(왼쪽). 1998년 처음 출시된 다중역할수행목적게임(MMORPG) 리니지의 광고. [뉴스1]

‘노스탤지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처럼 사람은 본능적으로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노스탤지어는 흘러간 과거, 돌아오지 않을 시간에 대한 감각을 의미한다. 과거는 퇴색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tvN ‘응답하라’ 시리즈에 대한 인기가 보여줬듯 때로 추억으로 미화하기 마련이다. 덕분에 ‘레트로(Retro)’라는 단어는 이름을 바꾼 채 여러 방식으로 콘텐츠 소비자에게 다가갔다. 물론 이때의 ‘과거’는 현재 시대에 맞춰 재구성된 ‘과거’다. 

그러나 오늘날 ‘복구된 과거’는 ‘원본’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디지털 미디어가 보급된 역사가 20년이 넘었고 그간 많은 데이터가 아카이빙(archiving)을 거쳤다. 덕분에 그대로 꺼내볼 수 있는 자료가 방대해졌다. 이는 과거에 어렴풋이 기억하던 것을 재구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현상을 자아냈다. 과거의 방대한 자료를 다시금 찾아 포스팅하거나, 혹은 이를 재활용해 콘텐츠를 만드는 2차 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십수 년 전 콘텐츠에 대한 제작과 유통, 소비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뤄지게 된 셈이다. 

즉 신기술 덕분에 수집·발굴된 ‘과거’는 새로운 형태로 조직돼 온라인 공간에 전시된다. 이는 한편으로는 과거이나 또 한편으로는 현재다. 오래전 수집가들은 영화 프린트를 수집하거나 음반을 사 모으는 방식으로 자신의 수집 욕망을 채워왔다. 오늘날의 수집가들은 희소한 콘텐츠에 자부심을 갖고 과거 데이터를 그대로 복구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에 선별해 올린다. 그들은 과거의 콘텐츠를 디지털화하고 포스팅하는 작업을 지속한다. 

오늘날 10대, 20대에게 1990년대 인기를 끈 ‘가요톱10’ 같은 프로그램은 새로운 콘텐츠다. 기억에 없으니 향수할 수도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매력을 갖는다. 이를 발굴해 낸 30대와 40대에게는 과거의 향수이자, 자신의 수집 및 발굴 욕망을 충족시키는 콘텐츠다. 이는 50대와 60대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레트로는 과거의 향수(RETRO)이자 현재에 맞는 방식으로 전시되는, 굉장히 새로운 것(NEW)이다. 그야말로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콘텐츠, 뉴트로(NEWTRO)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JTBC ‘슈가맨’ 시리즈는 뉴트로 콘텐츠의 복구와 전시, 이용 방식을 그대로 활용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진행자들은 과거의 가수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10대들에게 이 노래가 현재 재발매된다면 인기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한다. 최근 출연한 ‘리베카’의 양준일은 ‘30년을 앞서간’ 희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2019년 온라인에서 인기를 구가한 인물이다. 그는 활동 당시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했다. 그러나 현재 그는 유튜브의 과거 영상으로 순식간에 ‘탑골 GD’로 소환되고, 슈가맨에 등장하고, 팬미팅을 열었으며 심지어 광고까지 찍었다. 

양준일을 소비하는 방식은 철저히 현재적이다. 지금 유튜브엔 그의 팬미팅 직캠(직접 찍은 동영상)과 직찍(직접 찍은 사진)이 차고 넘친다. 팬클럽은 그가 입국할 당시 그를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만들고 지하철 광고도 실었다.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온달 왕자들

그뿐인가. 현대적인 방법으로 과거를 소비하는 세대는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송가인의 찍덕(사진 찍는 덕후)과 직캠러 중에는 50대와 60대가 많다. 그들은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스타를 빛나게 할 방법을 찾아 나선다. 달리 말하면 과거는 10대와 20대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가고, 30대와 40대에겐 흘러간 향수를 자극하며, 50대와 60대에게는 현재의 팬덤 활동을 배울 수 있는 계기를 준다. 이것이야말로 세대 대통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임도 예외일 수 없다. 스타크래프트와 리니지에, 심지어 DDR에 이르기까지 1980년대생들이 어릴 적 인기 끌던 게임이 오늘날 다시 소환됐다. 2000년대에 태어난 10대 사이에도 ‘80년대생들의 게임’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그뿐일까. 요즘 OTT(Over The Top Service·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영화·교육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에는 이미 잊힌 과거의 드라마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나 또한 예외일 수 없어 10대 때 즐겨 보았던 ‘온달 왕자들’(2000) 1부를 심심풀이로 틀었다가 130부까지 전부 보고 말았다. 그야말로 중독적인 ‘과거 훑기’다. 그때는 몰랐던 새로운 걸 30대가 돼서야 발견한 기분이었다. 

‘온달 왕자들’의 경우 주인공인 ‘여씨 형제들’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형제들 앞에는 돌연 ‘식당 사장님’이 나타나 후원자를 자처한다. 식당 사장님은 여씨 형제들 중 한 사람의 어머니다. 가히 막장 집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죽은 형제들의 아버지는 평생 세 여자를 만났다. 그러다 보니 형제 간 어머니가 각기 다르다. 20년 전 서울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온달 왕자들’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2020년 이른바 ‘막장 드라마’의 흥행 방식과 소름 돋을 만큼 똑같다. 과거에서 발견하는 ‘현재’다. 

‘과거의 소환’은 현재 온라인 콘텐츠 산업 생태계와도 무관치 않다. OTT는 다자간 경쟁 구도에 돌입했다. 콘텐츠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을 정도로 방대하다.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콘텐츠 소비자 ‘타게팅’을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 새롭게 투자에 나서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모든 세대를 만족시키는 신규 콘텐츠를 내놓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아카이빙돼 있으며, 젊은 세대에겐 새롭고, 나이 든 세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제작비는 들지 않는 과거의 콘텐츠를 다시 소환하는 것이다. 거기다 오늘날 콘텐츠 소비자는 자신들이 원하는 ‘장면’ 즉 쇼트폼(short-form)을 소비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필요한 부분만 떼어놓고 시청하는 셈이다.


제작비는 제로에 누군가에겐 익숙한

저간의 사정을 고려해 보면 과거의 콘텐츠는 캐기만 하면 되는 황금 땅이나 다름없다. 완결까지 다 나와 있는 데이터를 잘 정리해 전시하기만 하면 된다. 확실하고 명확한 엔딩이 존재하고, 제작비는 제로에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누군가에게는 익숙해 매력적인, 그 무엇. 이것이 바로 엘도라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돌아오지 않는 무엇,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명확히 알고 있는 ‘과거’라는 시간은 다시 겪을 수 없기에 이상적이다. 그야말로 ‘팩트’가 존재하는 ‘판타지’인 셈이다. 바꿀 순 없지만 돌아올 수 없기에 다가오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와는 달리 정박(碇泊)된 감각을 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잔하다. 그러니 다시 현재를 돌아볼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지금도 우리의 시간은 과거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아 2020년 2월호

장민지 웹 평론가·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 mingi.j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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