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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인정받은 버마 민주화운동가 8인의 꿈

“한국의 민주화 역사는 버마 국민의 희망입니다”

  • 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난민’ 인정받은 버마 민주화운동가 8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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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인정받은 버마 민주화운동가 8인의 꿈

주한 버마대사관과 국회 앞에서 시위하는 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노동부국장 저 모 아웅씨.

그러나 기대가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난관은 불법체류자 단속. 1999년 한국에 망명한 운동가 한 사람이 출입국관리소에 체포된 것이 시작이었다. “민주화운동 경력 때문에 버마로 추방당하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때 강제추방당한 얀 나임 톤씨는 중간기착지인 태국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해 한국으로 재입국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민주주의 국가는 모두 천국인 줄 알았거든요. 한국도 불과 20년 전에 겪은 일이니 버마가 얼마나 끔찍한 상황인지 잘 알거라 믿었던 거죠.”

‘난민 신청’ 문제로 고민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도움이 컸다. 자칫 신청이 기각되면 신분이나 위치만 노출되어 추방당할 수도 있었다. 매일같이 시민단체 관계자나 민변 변호사들과 대화한 끝에 결국 21명 모두 난민 신청을 하기로 결론 내린다.

조사과정은 혹독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그냥 한국에서 살고 싶어서 민주화운동가라고 주장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지만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는지 보여주겠다”는 말밖에는 할말이 없었다. 아침에 눈뜰 때마다 땅 밑으로 꺼질 것 같은 기분이 이어지는 나날이었다.

한국은 ‘버릴 수 없는 카드’



그로부터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2005년, 난민 신청을 한 21명 가운데 7명이 신분을 인정받았다. 5명은 중도에 포기했고, 9명은 신청이 기각됐다. 자격이 의심스럽다는 이유였다.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다시 버마에 들어가도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었지요. 조사과정이 철저했다면 이의가 없겠지만, 2000년 5월 처음 난민 신청을 한 후 겨우 서너 차례 조사받았을 뿐입니다. 시간이 없을 때는 10분 만에 조사가 끝나기도 했지요.”

여건이 좋은 유럽 등 다른 나라로 재망명하거나 버마 국경지대로 가서 활동하자는 의견이 이어졌지만, 한국은 ‘버릴 수 없는 카드’였다. 각국으로 망명한 정치인사들은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버마민족민주동맹’의 나라별 지부를 만들어 행동하는데, 미국이나 일본에는 이미 활동인원이 충분한 상황이었다. 그들이 간다고 해서 보탬이 될 것이 없었다. 아시아 민주화 역사의 상징인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버마 군부독재 타도’를 호소하는 일은 그들의 몫이었다.

다시 1년이 지난 2월3일, 행정소송 끝에 8명도 난민자격을 얻게 됐다. 축하의 말을 건네자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법무부 장관이 항소할 수도 있고 아직 마웅 마웅 저씨는 난민 인정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기쁜 일도 조심스럽게 말하는 모습에서 그들이 겪은 그간의 마음고생을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이 한국에서 벌이는 활동은 다양하다. 1999년 설날을 맞아 모인 자리에서 “한국 내 버마인과 한국 정부를 상대로 민주화운동을 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그해 8월8일 서울 명동에서 8888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를 연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NLD 지부가 설립되자 활동이 본격화됐다. 현재는 주한 버마대사관과 국회 앞 시위, 한국 인권단체에 버마 실상 알리기, ‘밀레니엄 윈도’라는 잡지 발행에 주력하고 있다.

“버마에 남은 민주화운동가들은 태국과 가까운 국경지대에 피신해 있습니다. 거기엔 주거지도, 교육시설도 없어요. 그곳 아이들에게 매달 30만~50만원씩 보내기 운동도 합니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등 도와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같은 나라 출신이라고 해서 모두 그들의 뜻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버마 노동자들 가운데는 “왜 여기까지 와서 불온서적을 만드느냐”며 피하는 이들도 있다. 숙소를 같이 쓰는 친구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다. 자신들까지 민주화운동을 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으니 삼가해달라는 이야기였다. 서운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국에 온 이들의 처지를 무시할 수도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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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 사진·지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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