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의 과제-3조 달러의 행방’이라는 책을 보면 여러 궁금증이 풀린다. 그러나 속이 시원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진다. 세계를 불행하게 만든 미국의 ‘전쟁 경제’ 정체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전쟁을 일찍 끝내는 것. 오바마 대통령의 긴급 과제이기도 하다.
저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와 린다 빌메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교수의 권위만으로도 이목을 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는 노벨상이라는 브랜드 가치에 편승하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학자로 알려졌다. 세계은행(IBRD)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부총재를 지내며 현실 감각을 익힌 그는 주류 경제학자이면서도 약소국, 빈민층 등 비주류에게 눈길을 돌렸다. 박제된 이론에만 매달리지 않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문장력이 뛰어나 신문 칼럼, 저서를 통해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선다. 2001년에 낸 저서 ‘세계화와 그 불만’은 35개국에서 번역돼 100만부 이상 팔렸다. 재정 전문가인 빌메스 교수도 ‘뉴욕타임스’등에 기고하는 칼럼으로 명쾌한 논리력을 인정받았다.
미군 사상자만도 6만2000명
서문은 도발적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명백히 끔찍한 실수였다”고 시작한다. 미군 4000명이 숨졌고 5만8000명이 다쳤다. 부상자 대다수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군 7300명이 부상을 당했다. 10만명 이상의 참전용사가 전장에서 돌아왔다. 그들 중 상당수는 전쟁공포증에 시달린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철권정치는 막을 내렸다. 그런데도 이라크 국민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 전쟁 이전보다 악화됐다. 도로, 학교, 병원, 주택 등이 파괴됐다. 주민들은 물, 전기 부족으로 생활이 피폐해졌다. 종파 간 폭력사태도 끊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얼 위해 전쟁을 벌였는가. 이라크에 민주화, 평화, 번영을 줄 것이라던 개전 이유는 헛된 선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군의 이라크 점령이 장기화하면서 전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도 큰 문제점이다.
저자들은 경제학자답게 전쟁과 관련한 비용을 꼬치꼬치 따진다. 물론 전쟁으로 빚어지는 인류의 고통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저자들은 “그러나 진정한 전쟁 비용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우리는 믿는다”면서 “다시는 무모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부시 행정부는 전비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범했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전쟁을 신속히 끝내면 비용이 별로 들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다.
2003년 3월19일,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공격했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다스리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어 이 지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응징한다”는 명분이었다. 미국은 세계 평화의 수호자임을 과시했다. ‘충격과 공포’로 명명된 군사작전은 TV로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이미 오랜 전쟁 탓에 허약해진 이라크는 단숨에 투항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전망은 빗나갔다. 미군은 5년 넘게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다. 3년8개월간 지속된 제2차 세계대전, 3년1개월의 6·25전쟁, 4년간의 남북전쟁보다 더 긴 기간이다. 더 큰 문제는 이라크 상황이 오히려 악화됐다는 점이다. 이라크는 더욱 황폐화했고 이라크 안팎 국가에서 반미 감정이 고조됐다. 여러 나라에서 미국이 세계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이라크를 방문해 샅샅이 뒤졌으나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했다. 미국이 전쟁 명분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라크 국민 70% 이상이 미군이 이라크에서 얼른 떠나기를 바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인식된다. 전쟁으로 인한 이라크 국민 사망자 수는 적게는 10만명, 많게는 70만명이다. 이라크 밖으로 피신한 난민은 200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