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호

대륙사관으로 바라본 우리 역사

  • 이성규│단국대 몽골학과 교수 sglee@dankook.ac.kr│

    입력2009-04-01 17: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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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사관으로 바라본 우리 역사
    몽골에 가 보기 전에는 몽골은 한국보다 위도가 높고, 해발 고도가 높으니 당연히 산에 나무가 빼곡하게 차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 보니 해발 2000~3000m가 넘는 높은 산꼭대기에도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란 고사성어가 실감났다. 홍산문화(紅山文化)라는 말을 듣고 막연히 붉은 산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중국 내몽골 적봉시(赤峰市)에 가서 홍산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왜 홍산문화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정훈 기자는 추측보다는 기자정신에 입각해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본다. 역사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자기 입에 맞추어 설명하는 일부 역사가들과는 다른 사람이다. 어떤 역사가들은 입신양명을 위해 역사기록마저 왜곡했고, 지금도 그러한 일은 지속되고 있지만 저자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조선일보’의 김종래 기자가 생각난다. 그 역시 기자로 출발해 이제는 몽골 유목민 연구의 대가가 되었다. 특히 몽골 유목민과 칭기즈 칸에 대한 날카롭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칭기즈 칸에 대한 한국인의 뿌리 깊은 인식을 한꺼번에 바꾸어버렸다.

    1990년 3월26일 몽골과 한국이 수교하기 이전에 몽골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좋지 않았다. 고려를 침략해 황룡사 9층탑을 태운 야만적인 사람들로 치부돼 약탈자, 살인마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동양이 낳은 세계적인 정복자, 알렉산더보다 위대한 대(大)정치가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한 사람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와 인식을 바꾸는 데 김종래 기자는 큰 역할을 했다.

    칭기즈 칸이 잔혹한 정벌자가 아닌 위대한 정복자란 평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연구 논문 속에 잠자고 있었고 어느 누구도 들추어보지 않았다. 그렇게 장롱 속에 묻혀 있던 사실들을 저널리스트들이 끄집어내어 새롭게 평가한다. 물론 그 평가는 시대정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뿌리, 홍산문화

    ‘신동아’의 이정훈 기자 역시 김종래 기자와 같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출간한 ‘발로 쓴 反 동북공정’은 말 그대로 필자가 몸소 한국, 일본, 중국 등지를 사계절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며 조사한 내용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광명일보’기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제국이 일본과 청이 벌인 전쟁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역사를 가르친 중고등학교 역사 선생님 대다수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역사 교육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노라면 대한제국의 탄생과 일본의 만주 경영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속 시원한 설명이 결코 남의 연구 업적에서 나온 것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조사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글도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이유가 궁금한 사안에 대해서는 해당되는 사료나 사람, 관련 학자를 찾아 그 궁금증을 풀었기 때문일 것이다.

    홍산문화가 우리 문화의 뿌리라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이미 오래전에 람스테트(Ramstedt)가 홍산문화를 근거로 알타이학설을 세웠고 우리는 한국어가 알타이어의 하나라고 믿고 있다. 홍산문화가 없으면 알타이어족도 성립되지 않는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의 한-터키 축구의 추억도 없어진다.

    그런데도 홍산문화가 우리 문화의 뿌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주저한다. 특히 역사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역사학자들이 더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참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바깥세상을 모르는 이치와 다름이 없다. 이 기자는 홍산문화에 대해 전문가 이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람스테트도 생각하지 못한 알타이어족의 성립배경을 고고학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단군(檀君)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단군조선이 있었다는 것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단군조선을 신화(神話)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고구려 동명성왕이 단군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엄연히 있는데도 단군을 부정한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앞장을 섰던 육당(六堂)도 단군을 인정하고 중국 벽화에도 단군을 상징한 그림이 나오는데 여전히 인정하기를 주저한다. 우리 역사에서 단군의 존재가 왜 중요한지, 북한의 단군에 대한 연구 실태가 어떤지에 대해 저자는 그림을 곁들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구려 이야기에서 이정훈 기자는 고구려 성(城)의 치(雉)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강(江)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압록강을 통한 고구려의 국가 경영은 앞으로도 연구되어야 할 과제다. 그리고 태자하와 혼강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사관(史觀)은 매우 중요하다. 사관에 따라 한 인물이 충신이 되기도 하고 역적이 되기도 한다. 이 기자의 사관은 뚜렷하다. 반도사관(半島史觀)이 아닌 대륙사관(大陸史觀)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반도사관으로 보면 우리의 울타리는 매우 좁다.

    그러나 대륙사관으로 보면 우리의 활동무대는 매우 넓다.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한족과 달리 만리장성 이북에서 활동한 우리 선조들은 매우 활동적이며 자유분방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에 싸우고 분열도 잦았다. 중국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해 이간질하고, 나아가 자신들의 역사에는 동일 민족의 내부 분쟁을 다른 민족 간의 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중국의 역사왜곡을 냉철하게 분석, 비판하고 우리 민족이 번영하기 위해서 소아병적인 단일민족 사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창한다.

    큰형님 노릇할 때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은 모두 다민족국가였고 연방국이었다. 남북이 갈라진 현 시점에서 이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우선 남북이 하루빨리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자면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단군이다. 단군은 우리 민족의 시조이자 만주족, 몽골족, 돌궐족, 일본족의 조상이다.

    단군이념으로 통일한다면 우리 민족은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과거 일본이 만주와 조선을 대신해 큰형님 노릇을 했듯이 이제 한국이 북한, 만주, 일본, 몽골, 투르크를 대표해 큰형님 노릇을 할 때가 되었다고 이 기자는 말한다.

    홍산문화에서 시작해 하가점 하층문화, 능하문화,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에 대해 이 책은 논리 있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를 중국의 탐원공정, 단대공정과 대비시켜 설명해 설득력이 있다. 단원마다 사진 자료와 도표들이 제시되어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학자와 저널리스트는 모두 진실을 추구한다. 그러나 학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불변의 진리를 추구한다. 반면 저널리스트는 시대정신에 따라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진리를 추구한다. 학자들의 이야기를 즐겨 듣는 저자는 저널리스트의 재빠른 판단과 학자들의 철저한 고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간다. 저널리스트와 학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이기에 재미가 있으면서도 학문적 갈증을 해소해주는 힘도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검증

    이 책의 마지막 장은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환단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유포되었는지에 대해 이 기자가 몸소 조사한 내용이 나온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내용을 보고 있으면 약간은 황당무계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렇다고 무조건 버릴 것도 아니다. 삼국유사의 기이편도 일연선사가 이미 그때도 믿기지 않아 기이(奇異)라고 했으나 최근 자료 조사와 고고학의 도움으로 삼국유사의 기록이 사실임이 하나하나 증명되고 있다. 이처럼 환단고기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역사서도 하나하나 검증해야 한다는 이 기자의 말은 올바른 판단이다. 이 일은 정부 차원에서 하루속히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국학에 관심이 높아졌다. 나라가 어려워지면서 국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구한말에도 있었던 현상이다. 그러나 당시 통치자들이 어리석어 국학을 지원하지 못해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 이제 구한말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이 기자가 이야기하는 대통일은 고사하고 소통일도 하기 어려운 처지다. 언제 북에서 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대범하게 나가야 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은 20세기의 패권국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4대 패권국의 틈바구니에서도 우리는 세계 10대 부국으로 성장했다. 당장은 홍산문화와 하가점문화가 우리와 친숙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꿈을 가져야 한다. 꿈이라도 가져야 희망이 있다. 꿈마저 없으면 죽은 국민이다. 꿈을 가지고 희망을 향해 나아가면 언젠가는 이정훈 기자가 말한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다.

    ‘발로 쓴 反 동북공정’이정훈 지음/ 지식산업사/ 576쪽/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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