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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읽는 우리 근대문학

슬픔과 감상, 수탈의 담배

안서 김억

  • 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슬픔과 감상, 수탈의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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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계급의 슬픔을 담은 담배

일제강점기에 담배와 관련해 가장 널리 불리던 노래는 ‘담바고타령’이었다. 이 노래는 근대요로서 전국적인 노래라고 할 만큼 널리 퍼져 있었다. 구전되던 노래라서 이본이 여럿인데, 그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담백고야 담백고야

동래 울산 물에 올라

이 나라에 건너온 담백고야



너는 어이 사시 따슨 좋은 땅 버리고 이 나라에 왔느냐

팔도강산 유람하러 왔느냐

그렇다면 돈이나 뿌리고 가겠구나

빨리 돈주머니 풀어 금은전을 던져라, 돈은 주지 않고 담배씨만을 던져주는도다

이 풀잎 말려 잘게 썰어놓고

길다란 담뱃대에 채워 한 모금 빨면

오색구름이 연기 끝에 놀고

두 모금 빨면

청룡황룡 뛰어나와 눈앞에 논다 하네

어이구 어이구 이 담백고야

슬픔과 감상, 수탈의 담배

1920년대 일제강점기 당시의 담배들.

조선 착취의 도구

이 노래는 담배가 박래품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러한 사실을 일본의 식민지 침략에 빗댄다. 특히 이 노래는 일제가 조선인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담배가 이용된다는 점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이 노래에서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토지와 노동력을 정신을 마비시키는 담배와 교환한다.

일제강점기에 이 노래가 널리 유행한 것은 이 노래가 일본의 침략에 대한 소극적 저항의 방편인 탓도 있었다. 경술국치 이전에는 자국의 연초를 조선으로 수출하는 데 집중하던 일본은 1914년에 연초세령을 공포하면서 제조 연초에 대해 소비세를 부과하고 연초 제조지역과 제조공장을 허가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9개 지역 48개 제조공장에만 연초 제조가 허용됐다. 이로 인해 영미 연초회사는 중국으로 물러나고 영세한 조선인 연초 제조업자들도 대거 몰락했다. 이에 맞서 조선인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저항을 시도했다. 재배업자, 판매업자, 제조업자 가릴 것 없이 세금 탈루나 탈세 등을 시도했고, 때로는 조세 수탈에 대한 불만과 총독부 정책에 대한 거부를 직접 항거로 나타내기도 했다.

당시 각종 제조공장 가운데 직공 수가 가장 많았던 연초공장의 노동자들은 1910년 단체를 결성하고 민족적 차별대우와 저임금에 대해 치열하게 저항했다. 1919년 용산 스탠다드무역회사, 동아연초주식회사, 조선연초주식회사의 조선인 연초직공들은 임금인상, 민족적 차별대우 철폐, 8시간 노동제 실시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에 일제는 조선인의 저항을 진압하면서 1921년 7월 연초전매제를 실시했다. 이에 따라 연초재배업, 연초제조업, 연초판매업 등 연초업의 모든 부문이 일제의 통제를 받게 됐다.

저항 의지를 담은 담배

허가 없이 담배를 재배하거나 판매하면 처벌을 받았고, 타인에게 판매하지 않는 ‘자가용(自家用) 연초’의 재배마저 금지했다. 심지어 어떤 지역에서는 연초의 사적인 이용을 통제하기 위해 담배쌈지와 연죽(煙竹)을 압수하는 일도 있었다. 당연히 초기에는 전매제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았지만, 전매 수입은 조선총독부의 재정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에 일제는 철저한 통제를 통해 저항을 무력화했다.

이처럼 이 시기 연초 관련 산업에는 민족 문제와 계급 문제가 중첩돼 있었다. 당시 계급주의 문학의 선봉에 섰던 비평가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라는 작품에서 화자의 동생 ‘영남’이는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산다. 임화가 영남이를 하필 연초공장 노동자로 설정했던 것도 연초공장이 당대의 계급 문제를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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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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