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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옷 잘 입히는 남자’ 정윤기 인트렌드 대표

“스타에게 사람들의 꿈을 입혀요. 그러면 유행이 만들어지죠”

  •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옷 잘 입히는 남자’ 정윤기 인트렌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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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발적이고 섹시한 김희애(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청순하면서도 세련된 주부 오연수(드라마 ‘달콤한 인생’), 감각적인 방송작가 송윤아(드라마 ‘온에어’)와 댄디한 프로 갬블러 이병헌(드라마 ‘올인’)이 빛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옷 잘 입히는 남자’  정윤기 인트렌드 대표
아무리 이해 불가한 것이라도 ‘이게 유행이에요’라고 말하면 말이 되는 세상이다. 신기하다. 바지 위로 나온 ‘빤스고무줄’이 몰상식하게 보이다가도 ‘트렌드’라고 하면 그 순간 과연 개성 있게 보이고 무지 유행스럽게 보이는 거다. 모든 것을 용서할 수밖에. 유행이라는데.

그래서 ‘트렌드가 트렌드’라는 말이 나온다. 트렌드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트렌드 분석이 비즈니스가 된다. 유행을 창조하는 소수가 예술가를 대신한다. 끊임없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트렌드의 행렬은 조증 걸린 시대의 징후다. 불안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유행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 이해하고 싶어한다.

대한민국의 그 많은 유행이 도대체 어디서 시작되어 불꽃놀이처럼 사람들의 화려한 욕망을 밝혔다가 사라지는지 궁금하다면, 주저없이 나는 스타일리스트 정윤기(39·인트렌드 대표)를 연구해보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그는 잡지나 광고,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델이나 배우에게 옷을 입히는 패션 스타일리스트일 뿐이다. 봄가을 새로운 옷을 선보이는 디자이너도, 트렌드효과를 계산하는 경제학자도 아니다. 그러나 무슨 무슨 경제연구소에서 수억원을 써가며 설문조사를 하고 분석해 발표하는 각종 트렌드 분석 결과를 신기하게도 그는 ‘그냥’ 안다.

‘옷 잘 입히는 남자’  정윤기 인트렌드 대표

스포츠스타 박태환에게 정윤기가 클래식 수트를 스타일링한 ‘에스콰이어’표지.

대중이 원하는 스타일을 아는 사람



누구에게 무엇을 입히고 어떤 네트워킹을 활용하고, 어느 매체를 통해 ‘노출’하면 ‘대박’이 될지 안다. 그건 거의 본능처럼 보인다. 그는 메가트렌드니 나노트렌드니 하는 용어나 ‘다이아몬드꼴’ 트렌드 확산 모형 따위에 아무 관심도 없지만, 다이아몬드와 그보다 훨씬 더 비싼 스타들의 속성을 매일 먹는 열무김치와 배추김치 맛만큼이나 잘 알고 있어서 나노와 메가 규모의 유행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그는 아역 탤런트 이미지를 갖고 있던 김혜수에게 관능적인 드레스를 입혀 여배우로 바꿔놓았고, 어설프던 ‘레드 카펫’을 영화제의 꽃으로 만들었다. 이후 그는 대종상을 비롯한 모든 영화제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들에게 옷을 입혀왔다. 아니 그가 스타일링한 스타들은 언론과 네티즌의 주목을 받는다.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주인공을 맡은 40대의 김희애에게 란제리 룩과 아찔한 하이힐을 스타일링해 대한민국 아줌마들에게 잠재해 있던 욕망을 드러내보인 것도 그였다.

그의 옷을 보면 유행의 속성은 물론 사람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다른 스타일리스트들이 전위적이고 독창적인 패션 비주얼을 만들어내려 한다면, 그는 ‘지금’ 대중이 되고 싶어하는 워너비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달콤한 인생’의 오연수, ‘온에어’의 송윤아와 ‘올인’의 이병헌, 그리고 차승원, 정우성과 이정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스타에게 그가 입힌 옷과 헤어스타일과 애티튜드(태도)는 즉각적으로 트렌드가 되고 신드롬을 일으킨다. 그가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에게 슬쩍 걸쳐준 백과 구두는 종종 그 다음날 ‘솔드아웃’ 돼 업계의 화제가 된다.

무엇보다 그는 한국에서 스타 마케팅을 보여준 최초의 스타일리스트이며 지금도 스타 마케팅에서 절대적인 파워를 갖고 있다. 1998년 그가 설립한 스타일링&홍보회사 ‘인트렌드’(내 안에 트렌드 있다!)는 랄프로렌, 도나카란, 마놀로블라닉 등을 포함하여 38개의 클라이언트를 갖고 있는데, 루이비통, 토즈 등 한국 법인 안에 자체 홍보팀을 가진 다국적기업들도 스타 마케팅이 필요할 땐 그를 찾는다. 약간 과장하면- 현장에서 그의 모습을 본다면 그다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결국 그는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 100여 개를 ‘혼자’ 홍보한다.

덧붙이자면 그는 한국 최초의 남성 스타일리스트다. 1993년 ‘스타일’이라는 단어가 의류업계에서만 쓰이던 시절, 의상학을 전공한 그는 파리 연수에서 돌아와 광고대행사를 찾아갔다. 첫 번째 관문은 광고기획자에게 스타일링이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광고의 콘셉트에 맞는 옷을 모델에게 입힘으로써 광고효과를 최대한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이라면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어쩔 셈인데” 라고 말할 만한 것을 그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

“머리를 파랗게 염색한, 새파랗게 어린 남자가 다짜고짜 졸라대니 황당했을 거다. 광고회사 AD는 한참을 웃더니 그럼 전자회사 광고를 해보라고 했다. 모델은 박지윤이었다. 의상에 대한 아이디어는 넘치게 많았지만, 옷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의상 협찬에 대한 개념도 없을 때였다. 결국 어머니에게 ‘사업자금’ 500만원을 빌려 필요한 옷을 다 사버렸다.”

광고는 단숨에 업계의 화제가 됐다. 마침 수입자유화를 통해 국내 상륙을 시작한 명품 브랜드와 라이선스 패션지들이 그의 감각을 눈여겨봤고, 그는 패션 화보의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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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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