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9월11일 중국 언론에 첫 보도가 나온 후에도 우리 식품관리 당국은 눈만 껌뻑거린 채 “우린 중국으로부터 분유를 수입한 적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10여 일이 지난 9월22일 뒤늦게 중국산 유제품 식품 전반에 대한 시험검사를 시작한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10월6일에야 모든 검사를 마무리했다. 그 결과 중국산 분유로 만든 과자 10개 품목에서 멜라민이 검출됐고, 분유 원료인 락토페린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됐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헛갈리고 분통이 터졌다. 우유와 분유 빙과류에 대한 안전관리는 농수산식품부(이하 농림부)가, 과자와 같은 유제품 함유 가공식품에 대한 지도단속은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 산하 식약청이 하도록 규정된 식품관리 안전체계 때문이었다. 복지부에 물으면 농림부에 물어보라 하고, 농림부에 물으면 복지부 소관이라고 하는 식. 10월 초 시작된 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윤여표 식약청장은 “분유가 농림부 소관으로 신경이 덜 쓰인 부분이 있다”고 말해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의 빈축을 샀다.
멜라민 파동으로 식약청은 올 국감에서 시쳇말로 박살이 났다. 그런데 그 지휘감독기관인 복지부의 국감장 분위기는 의외로 조용했다. 진지한 비판과 대화의 장이었다고 할까. 그 이유는 8월6일 취임한 전재희(全在姬 · 59)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의 전향적인 피감 태도 때문이었다. 전 장관은 민주당 의원들의 멜라민 사태 늑장 대처 지적에 대해 “늑장 대응을 인정한다. 국민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고, 식품안전관리 일원화에 대해선 “식약청을 통해 일원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당당히 말했다. 사안마다 잘못한 내용을 스스로 지적하며 에두르지 않고 정확하게 답하는 장관의 태도에 의원들은 도리어 말문이 막힐 지경.
“에누리 없이 말하자”
국감이 한창이던 10월10일 오후 5시 서울시 종로구 계동 복지부 장관실에서 전 장관을 만났다. 국감, 각종 행사 등 장관의 바쁜 일정 때문에 인터뷰는 예상시각보다 1시간가량 늦게 시작해 저녁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첫 복지부 장관 인터뷰이자 전 장관 부임 후 첫 단독 인터뷰. 이번 정권 들어 여론이 들끓는 큰 사건이나 이슈가 있는 부처의 장관이 인터뷰를 회피하거나 뒤로 미루는 게 상례였지만 전 장관은 달랐다. ‘멜라민 국감’으로 피곤에 절어 있는 상태에서도 “매 맞을 건 맞아야지”라고 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행정고시 합격자이자 지역구(경기도 광명을) 3선 의원인 전 장관은 한나라당의 제3정조위원장과 정책위의장을 지낼 만큼 ‘기획통’으로 소문이 나 있다. 지난 대선과정, 이명박 후보의 보건복지 공약 중 일부는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차분하고 강인한 ‘철녀(鐵女)’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말 속에는 서민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왔다.
▼ 이번 국감에서 정치인답게 노련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노련한 게 아니고 솔직했을 따름이죠. 제 신조가 ‘에누리 없이 말하자’입니다. 사실대로 말하고 지킬 수 있는 말만 하라는 거죠. 사람인 이상 실수도 할 수 있으니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얘기하고 고쳐나가자, 그리고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국정감사가 행정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국회의원으로서 국정감사를 많이 해보지 않았습니까? 국정감사에서 비판을 하고 대안을 제시하려면 어떤 사안은 몇 달씩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를 겸허히 수용하면 우리의 허점을 발견하고 그 대안을 찾을 수 있죠. 결국 행정이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 국감에서 멜라민 파동과 관련해 두 가지 늑장대처를 인정한다고 하셨는데요.
“언론에 보도됐을 때 바로 멜라민 함유 의심 식품에 대한 시험검사에 들어가지 못한 것과, 검사에 들어가면서 중국산 분유 첨가물로 만든 식품에 대해 즉각 판매중지를 못한 것입니다. 수거 작업은 계속됐지만 판매중지를 하지 못했지요. 제 생각에도 그 두 가지는 정말 잘못한 대처입니다.”
▼ 장관이 말씀하신 언론보도가 중국 언론입니까. 한국 언론입니까.
“중국 언론이든 한국 언론이든 식품에 위해 우려가 있다는 보도가 났으면 그 보도의 진위를 확인할 것 없이 바로 수거검사에 들어가는 게 정도(正道)죠. 그런데 우리 식약청은 중국에서 확인보도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렇게 된 겁니다. 시간을 놓친 게 잘못이죠. 그런 취지에서 그 다음 언론에 보도된 락토페린 건과 중국 채소(상추) 건은 보도 즉시 사후 처리가 이뤄졌습니다. 보도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식품에 대한 위해 우려가 제기되면 언론보도든, 소비자 고발이든 재빨리 그 위해 여부에 대해 검사부터 하는 게 순리입니다.
판매중지도 그래요. 관련 제품이 워낙 많다 보니 검사에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그러면 판매중지를 시켜놓고 검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던 거죠. 늦었던 겁니다. 문제 제품도 실제 수거에 나서보니까 체계를 좀 더 정교화해야겠더군요. 어떤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겠습니다. 수거대상에는 제조업체, 수입업체, 유통업체 등이 있는데요. 제가 생각할 때 큰 업체들은 괜찮은데 작은 구멍가게 같은 곳들이 문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