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외 3대 과제
여권과 일부 언론에선 박영준 전 비서관과 김 처장을 묶어 ‘MB 정권의 투캅스’로 일컫기도 했다. 의형제로 불릴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가 돈독하고 두 사람 모두 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데다 이 대통령으로부터도 큰 신뢰를 받고 있는 소장파 실세라는 의미다. 박 전 비서관과 김 처장이 영입한 상당수 선진국민연대 출신자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정부 부처, 공기업의 요직에 앉았다. 그런 김 처장이 비교적 대중에게는 덜 알려진 민주평통 사무처장을 맡게 되어 그 배경에 궁금증이 일었다. 김 처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민주평통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안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김 처장은 △민주평통이 대북사업의 중추적 창구 역할을 맡는 일 △1만 7000여 자문위원으로 구성된 민주평통 조직을 균형 있고 조화롭게 구성하는 일 △한민족 통합을 이끄는 국민운동 중심체로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기구로 탈바꿈 하는 일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김 처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동서대 일본어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엔 정치권과 인연이 없었다고 들었는데요. 학교에서 대선후보 캠프로, 이어 공직으로 이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 대통령의 측근인 박영준 전 비서관과는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중 대학에서 특강을 많이 했어요. 서울시장 정무보좌관이던 박영준 전 청와대 비서관이 기획한 사업인데 여론의 반응이 좋았고 인지도 상승효과도 컸죠. 그때 이 대통령이 첫 번째로 특강을 한 곳이 동서대학교입니다. 당시 나는 이 대학 학생처장이어서 특강 행사를 조율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비서관을 처음 알게 됐어요. 이 대통령의 창조적 리더십, 도전정신, 인간적 매력에 매료됐어요. 또한 박 전 비서관이 추진력과 재능이 뛰어나고 신의가 있는 사람으로 보여 그때부터 친분을 쌓게 됐어요. 그쪽에서도 제 일처리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네트워크의 귀재’
▼ 그렇더라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정치에 투신하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나는 테뉴어(tenure·정년보장) 교수도 일찍 됐고 32년 만에 지방대 교수로는 처음으로 ‘전국대학교학생처장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됐어요. 교수로서 이룰 만큼은 이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차에 특강을 계기로 이 대통령을 알게 된 뒤 어느 날 이 대통령으로부터 호출이 왔어요. MB를 만나러 서울로 가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한 끝에 ‘MB를 돕는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봉사이며 주님이 주신 나의 숙명’이라고 결심한 거죠.”
▼ 대선 땐 이명박 후보 비서실 네트워크팀장을 맡았더군요. 민주평통행(行)은 자원(自願)한 건가요.
“대선 당시 박영준 전 비서관과 함께 선진국민연대를 조직화하면서 ‘네트워크의 귀재’라는 별칭을 얻었어요. 다행히 대선에서 승리했고 이후 인수위원으로 활동했어요. 언론의 인사 하마평만 보면 나는 국무총리 빼고 웬만한 공직은 다 해본 셈이 되는데요. 실제로는 ‘인수위원까지 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죠. 정치인이 되겠다는 뜻은 없었으니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듯 다시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려 했죠. 그런데 어느 날 이 대통령이 부르더니 ‘민주평통에 가서 좀 도와주어야겠다. 대통령과 국민이 소통이 잘 안 된다고 하는데 들은 여론을 내게 가감없이 전달해주고 국정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하라’고 했어요. 이리하여 민주평통 사무처장을 맡게 된 겁니다.”
1981년 설립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대통령의 평화통일 노력을 돕기 위해 헌법이 정한 대통령 산하 자문기구로 현재는 이명박 대통령이 의장이고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수석 부의장이다. 민간인 출신 1만 7000여 자문위원 조직과 정부기관인 사무처로 구성돼 있는 범민족적 통일기구 성격이다. 대통령에 대한 대북정책 자문 및 건의, 통일 및 남북 현안에 대한 여론 수렴 등이 주요 업무다. 48개 중앙 행정기관중의 하나인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의장인 대통령에게 직접 업무를 보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