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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의 정치경제학

세금으로 전기요금 보조? 잘사는 사람이 더 큰 혜택

  • 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전기요금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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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의 전기요금 통제, 선의는 좋지만 부작용만 초래”
  • ●“발전 연료 값 올랐는데 전기요금 묶는 것은 정책적 포퓰리즘”
  • ●전기요금 올려 전기 사용량 줄여야 저탄소 녹색성장 가능
  • ●82년이래 소비자물가 207% 상승, 전기요금은 고작 5.5% 인상
  • ●어정쩡한 한전 선진화 방안, 전력산업 구조 개편 의지 없어
전기요금의 정치경제학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통제하기 위해서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쓰면서 이 정부가 시장경제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본다.”

9월8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출석한 가운데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나온 지적이다. 정부의 추가경정 예산안을 심의하던 중이었다. 내용으로만 본다면 야당 의원이 국무위원을 상대로 ‘호통’을 치고 있다고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이 발언의 주인공은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이다.

유 의원은 한전과 가스공사의 상반기 요금 동결에 따른 손실분의 50%를 보조금으로 지원하겠다는 정부 정책을 물고 늘어졌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에 대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옳지 않지만 올해처럼 유가가 배 이상 뛴 상황에선 단기적으로 불가피한 정책”이라고 빠져 나갔다.

유 의원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 의원은 “그게 옳은 정책이면 (두 회사의 손실분) 100%를 다 주지 왜 50%만 보조해주느냐”면서 “보조금을 50%만 준다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받아쳤다. 강 장관은 이에 대해 “50%는 두 회사의 경영 효율화를 통해 흡수하고 나머지 50%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타협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 의원은 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잘못된 정책이 포함된 추경안을 통과시키는것은 옳지 않다면서 9월12일 예결특위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날 예결특위는 의결 정족수 충족 논란이 일었고, 이날 추경안을 통과시키려던 한나라당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추경안은 결국 9월18일 두 회사에 대한 보조금이 삭감된 채 통과됐다.



정부는 당초 상반기 전기요금을 동결하면서 한전에 연료비 상승분 1조6699억원의 절반인 8350억원을 재정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었다. 가스공사에도 상반기 손실분 8400억원의 50%를 지원할 계획이었다. 도시가스 도매요금의 90%를 차지하는 천연가스(LNG) 도입 비용이 상반기에만 24% 상승했지만 요금 인상을 틀어막으면서 가스공사 손실이 늘었기 때문.

그러나 추경안이 삭감되면서 두 회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 비율은 손실의 40%로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두 회사에 대한 손실 보조금은 각각 6680억원과 3380억원으로 확정됐다. 나머지 60%는 두 회사가 자구노력을 통해 해소할 수밖에 없게 됐다. ‘공룡’ 공기업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데 대한 여론의 따가운 시선과 야당의 반대를 의식한 한나라당이 한발 물러선 결과였다.

두 회사에 대한 보조금 지원은 정부가 6월8일 고유가 극복을 위한 민생대책회의에서 약속한 데 따른 것. 그러나 두 회사에 대한 보조금은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3300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났을 때도 보조금 지급은 없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정부 보조금에 대한 법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9월8일 예결특위에서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나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법상 가능하다고 봤지만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있어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법 시행령을 개정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은 오히려 정부의 ‘과오’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됐다. 정부가 4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의결한 것은 6월 중순 국무회의에서였다. 반면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은 8월6일이었다. 두 회사에 대한 정부 보조금의 법적 근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뒤늦게 법석을 떨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으론 두 회사의 자구 노력과 경영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9월8일 예결특위에서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한전이 퇴직금, 수당, 이익금 등 모두 2488억원이나 부당·과다하게 지급했고, 다른 조사에서는 한전이 접대비를 가장 많이 사용한 공기업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날 예결특위에선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일부 의원이 “한전의 재무제표상 이익잉여금이 25조9983억원이나 되는데 왜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느냐”고 따진 것. 그러나 이는 기업 회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발언이었다. 한전 관계자는 “이익잉여금으로 매년 발전소 및 송·배전망을 건설하는 데 6조~7조원씩 썼기 때문에 현금이 그만큼 남아 있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보조금을 지원받는 한전이나 가스공사 쪽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발전 연료비가 오른 만큼 전기요금을 적절히 올리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를 보조금 지급이란 1회성 땜질 처방으로 넘어가려 하기 때문이다. 한전 관계자는 “유연탄 가격이 지난해 평균 t당 68달러에서 올해 130~150달러 수준으로 올랐다”면서 “내년에 도입 가격에 반영되면 10% 정도의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생기는데, 내년에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가스공사 관계자도 비슷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세계 에너지 가격은 기본적으로 변동이 심한데 그럼 그때마다 보조금을 지급해줄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에너지 가격은 도입 단가에 연동해서 책정하면 거의 모든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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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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