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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독배를 마실 수는 없다!

제2장 연이은 수소폭발 세계를 긴장시키다

  • 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혼자서 독배를 마실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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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독배를 마실 수는 없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비등수로 단면도.

원전 최강국 일본의 원자력발전소에서 격납용기가 터지는 폭발 사고가 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스리마일 섬-2호기 사고를 통해 자본주의 원전은 완벽한 격납용기로 말미암아 안전하다는 신화가 있었는데 원전 최강국 일본이 이를 깼다는 것인가? 정녕 지구 최후의 날은 다가온 것인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후쿠시마 제1발전소는 특이하게 설계됐다. 한국이나 프랑스는 경수로를 주로 운영하기에 비등수로에 대한 정보가 없는 편이다. 비등수로는 미국과 일본에서 많이 제작됐다. 미국과 일본이 많이 지었다고 해서 비등수로를 최고로 보면 안 된다. 세계 원전의 대세는 경수로다. 경수로는 비등수로보다 경제적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통계에 의하면 2011년 7월 4일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동되는 상업용 원전은 440기다. 이 중 가장 많은 노형이 271기가 가동되는 경수로이고, 다음이 88기의 비등수로다. 가동 중인 세계 원자로의 61.6%가 경수로란 사실은 경수로가 가장 안전하고 경제적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 한국은 월성원자력본부에 있는 중수로 4기를 제외하면 전부(17기) 경수로를 운영하기에 1기도 없는 비등수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고리 1호기보다 더 오래된 후쿠시마 1호기

경수로 발전소는 돔형 지붕을 가진 원통 모양의 건물(원자로 건물)을 짓고 그 안에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을 집어넣는다. 그리고 원자로에서 타고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터빈 건물에 만든 거대한 수조(水槽, pool)에 집어넣는다.



화덕에서 금방 꺼낸 연탄재는 뜨겁다. 그와 마찬가지로 원자로에서 타고 나온 사용후핵연료도 매우 뜨겁기에 물을 담은 수조에 담아 냉각시키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연탄재와 달리 열이 오래 지속되니 수십 년간 수조에 담가놓는다.

비등수로 개발 초기 GE는 원자로를 둘러싼 격납용기를 작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격납용기 위에 사용후핵연료 수조를 설치하도록 설계했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의 1호기는 한국 최고(最古)의 원전인 고리 1호기보다 7년 앞선 1971년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그러니까 사고를 당했을 때 후쿠시마 제1발전소 1호기의 나이는 만 40세였다. 이 원전을 건설한 1960년대엔 일본(도쿄전력)도 기술이 없었기에 GE에 모든 것을 맡겼다.

원전 설계는 상업운전을 하기 10년 전쯤에 하니, GE는 이 원전을 1950년대 말이나 1960년대 초 설계한 것으로 추청된다. GE가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라고 하지만 1950~60년대에는 지금의 한국 대기업보다 기술 수준이 낮았다. 안전에 대한 기준도 허술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일본은 미국의 군정을 받다가 1952년 독립했으니 1950년대와 60년대엔 미국에 대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미국이 하는 것은 무조건 수용했다. GE는 일본의 자연재해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1호기를 해발 10m의 낮은 곳에 지어 이후 원전도 낮은 곳에 건설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호기의 비상발전기를 지하에 설치하도록 설계한 것도 GE로 봐야 한다. 그리고 수십 년간 별탈 없이 1호기가 운영됐으니 GE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은 일본도 1호기 선례에 따라 비상발전기는 지하에, 격납용기는 얇게 지었을 것이다.

경수로도 미국에서 설계한 원자로다. 경수로는 웨스팅하우스와 밥콕앤드윌콕스, 컴버스천엔지니어링에서 설계했다. 그런데 밥콕앤드윌콕스 사는 그들이 만든 스리마일 섬-2호기가 노심 용융 사고를 내는 바람에 문을 닫았다. 컴버스천엔지니어링은 경수로 기술을 한국에 전수하고 웨스팅하우스에 합병됐다. 미국의 경수로 회사들은 하나같이 터빈 건물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를 설치했다.

혼자서 독배를 마실 수는 없다!

한국의 울진5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사용후핵연료도 뜨겁기 때문에 물에 넣어 냉각시킨다.

격납용기와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는 완전히 분리돼 있어야 한다. 격납용기는 유사시 모든 방사성물질을 품고 있어야 하니 공기가 새나가는 틈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려면 경수로 원전처럼 원자로 건물은 단독으로 짓는 것이 좋다.

GE도 격납용기와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가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설계해 건설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 시설은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 이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고로 확인됐다.

한 구조물 안에 두 시설을 짓다 보면 전기나 수도 등 공동으로 사용하는 설비는 서로 연결해줘야 한다. 격납용기가 밑에 있고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가 위에 있다면 격납용기 안에 있는 가스를 빼내는 관은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두 시설 사이에는 미세하지만 연결되는 통로가 생긴다. 사람들은 없다고 믿었지만 구멍이 존재한 것이다. 그 틈으로 수소가 빠져나가 수소폭발을 일으켰다.

후쿠시마 제1발전소 1호기가 폭발했을 때 핵폭발이 일어났다고 한 것은 잘못이다. 핵연료는 핵폭발을 하지 못한다. 핵폭발은 100만 분의 1초 이내에 모든 핵분열이 끝났을 때를 의미한다. 원자로에 들어가는 핵연료는 3년 동안 핵분열을 한다. 100만 분의 1초 이내로 일어나야 할 핵분열을 3년으로 연장하기 위해서 취한 조치가 저농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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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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