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인 지망생 100만명 시대’라고 한다. 그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지만 대중문화의 위상이 높아졌음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10년 전 처음 신입생을 맞은 동아방송예술대학은 이듬해 교육인적자원부 방송특성화대학으로 선정된 이후 지금까지 명실상부 ‘실습 중심 전문 방송인 교육기관’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일찍이 대중문화의 저력을 내다보고 기반을 닦은 것이다.
동아방송예술대학은 1997년 ‘방송문화산업을 선도할 정예 방송인력 양성’을 목표로 개교했다. 개교 당시 이름은 동아방송전문대학. 이듬해 교명(校名)을 동아방송대학으로 바꿨으나, 최근 방송제작뿐 아니라 방송연예 및 예술 분야 학과 비중이 높아진 것을 반영해 개교 10주년을 맞는 올 초 동아방송예술대학으로 새출발했다.
학교에 들어서자, 최근 치러진 KBS 개그맨 공채 시험에 합격한 재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먼저 손님을 맞는다. 여느 대학이라면 그 자리에 각종 고시 합격자 명단 또는 대학평가 순위와 취업률을 내세운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을 것이다. 이 대학이 방송 분야에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대학임을 입구에서부터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동아방송예술대학은 1998년 처음 방송특성화대학으로 선정된 이후 지난해까지 계속해서 방송특성화대학으로 선정됐다.
대학 캠퍼스는 언제나 싱그럽다. 녹음이 짙어져가는 동아방송예술대학의 캠퍼스는 더 그랬다. 화려하되 요란하지 않고, 풍성하되 난삽하지 않은 조경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대학 건물들을 아늑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인조잔디구장이다. 본관 앞에 펼쳐진 잔디구장에서 편을 갈라 축구하는 학생들의 함성이 캠퍼스 구석구석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광고홍보계열 정은경 교수에 따르면 ‘학교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이 학교의 기본 철학이다. “지방 대학에 다니는 학생 대부분이 수업만 듣고 학교를 떠나는데, 장차 ‘방송’ 일을 할 학생들이라면 학교에서 ‘즐거움’을 경험해봐야 즐거움을 창조해낼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다. 학교 조경에 남달리 신경을 쓰는 것도, 인조잔디구장을 마련한 것도 그저 보기만 해도 즐거운 학교를 만들고, 학생들이 어떤 형태로든 즐겁게 놀아보도록 멍석을 깔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아방송예술대학은 방송국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학생의 잠재된 끼가 흘러넘치도록 자극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방송사 사장 출신의 하영석 동아방송예술대학장은 “웬만한 공중파 방송사에 버금가는 종합스튜디오와 주조정실, HD카메라를 비롯한 각종 방송장비와 송출장비까지 갖춰 가끔은 대학이 아니라 방송사에 근무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고 말한다.
“기본기가 돼 있다”
대학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종합TV스튜디오에선 마침 영상제작계열 학생들의 ‘카메라워크’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선 학생들이 돌아가며 스테디 카메라를 몸에 부착한 채 이동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크레인에 카메라를 매달고 촬영하는 지미집(Jimmy Jib)을 작동하고 있었다. 종합TV스튜디오는 3대의 디지털 EFP(Electronic Field Production) 카메라와 1대의 스탠더드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초대형 스튜디오로 쇼, 드라마, 연극 등 규모가 큰 제작실습이 가능하다. 종합TV스튜디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정실에는 디지털 스위처, 디지털 영상 효과 장비(DVE), 문자발생기, 편집기가 연결돼 있다.
“손에 힘주지 말고, 모니터 보고, 왼발, 오른발….”
스테디 카메라 워크를 지도하는 장병민 교수는 KBS 영상제작국에서 ‘미녀들의 수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낭독의 발견’ 등을 제작하고 있는 ‘현역’이다. 장 교수는 “동아방송예술대학 시스템이 웬만한 외주제작사보다 나은 수준”이라며 “제작실습 환경은 최상”이라고 평했다. 1998년부터 이 대학에서 강의한 장 교수는 “졸업 후 방송국에 진출한 제자들이 촬영, 음향, 편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대체로 ‘기본기가 돼 있다’는 평을 듣는다”며 뿌듯해했다.
종합TV스튜디오의 절반 규모(45평)로 시트콤, 간담회, 뉴스 등을 제작실습하는 소형 스튜디오는 모두 4개인데, EFP카메라와 크로마키 보드가 있어 화상합성을 통한 생동감 넘치는 화면 연출이 가능하다.
표정이 살아있는 공연예술계열 학생들.
그 밖에 마스터 테이프를 제작할 수 있는 종합편집실, FX제작 및 아날로그와 디지털 영상 동시 편집이 가능한 특수영상편집실, 각종 영상과 음향자료를 기초 편집해 종합편집을 준비하는 가편집실과 개인편집실도 충분히 갖춰놓았다.
학교측에 따르면 이들 방송 기자재는 개교 당시 MBC 미디어텍에서 직접 설비했고, 1000억원가량의 예산이 들었다. 방송국에 버금가는 학교 시설 덕분에 최근 개교 10주년 기념 CF도 자체적으로 제작했다. 개교기념일인 5월28일엔 ‘안성시민과 함께하는 열린음악회’를 여는데, “가수만 외주이고 나머지는 모두 학교 기자재와 인력으로 소화한다”는 게 학교 관계자의 얘기다. 교내 행사뿐 아니라 지역 행사에도 동아방송예술대학 장비와 인력이 수시로 동원된다. 매년 가을 열리는 ‘안성 바우덕이 축제’를 비롯한 여러 지역 행사 무대 주위엔 늘 동아방송예술대학 학생들이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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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제작계열 ‘카메라워크’ 수업.
학생들은 지금 ‘촬영 중’
사정이 이렇다보니 캠퍼스 곳곳의 학생 상당수가 방송장비를 들고 뭔가 ‘작업 중’이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일단 말을 걸면, 아니 카메라를 들이대면 탁구공처럼 통통 튀었다.
“콘셉트가 뭐죠?”
방송장비를 어깨에 둘러멘 학생에게 사진 촬영에 응해줄 것을 부탁했을 때 나온 반응이다. “그냥 이쪽에 서서 얘기하는 것처럼 해봐요”라고 말하는 기자가 오히려 머쓱해진다. 나중에 사진 촬영에 응한 다른 학생들도 갑작스럽게 ‘데뷔’하는 양 신나하고, 무엇보다 ‘OK 사인’을 기다리는 모델처럼 열심이었다. 그리고 사진 촬영이 끝난 다음엔 사진 기자의 카메라를 스스럼없이 만지고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들이 모두 방송연예과 학생인 것도 아니다. 정은경 교수는 “뭘 하나 한다 하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우리 학생들 특징이라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자연스러워한다”고 귀띔한다.
“이렇게 지내다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인턴십’이 필요 없죠. 우리 대학 출신은 직업인으로서의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른 편이에요.”
방송사 수준의 실습기자재와 더불어 방송 및 예술 현장 경험을 전수해줄 수 있는 교수진 또한 동아방송예술대학의 강점이다. MBC 정치부장, 뉴욕특파원, 베이징 지사장, 대전MBC 사장을 지낸 하영석 학장을 필두로 지상파 방송국과 관련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인사들이 교수진에 대거 포진해 있다. 연기자 송옥숙·이영후·이재용씨, 뮤지컬 음악감독 김혜진씨가 예술분야의 대표적인 ‘현업’ 교수이며, 방송연예과 김상준 교수는 KBS 아나운서 출신이다. 영상제작계열 금웅명 교수는 KBS와 SBS PD를 지냈고, 방송극작과 홍용락 교수는 SBS 드라마 PD 출신이다.
방송연예과 2학년 문종형군은 “TV 드라마 등에서 활약하는 연기자 교수님 강의는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동아방송예술대학은 끼 있는 학생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데 가교가 될 만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Illinois State University, Normal), 시카고 예술대학(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중국광파학원(Beijing Broadcasting Institute), 러시아 게르첸교육대학, 쉐프킨연극대학, 모스크바 부기크영화대학과 학위협정 및 학사교류협정을 체결해 학생 교류의 길을 열어놓았다. 최근엔 졸업생 2명이 시카고 예술대학에 편입해 유학을 떠났다.
1997년 개교 당시 9개 학과 720명이던 입학정원은 2007년 16개 학과 1152명으로 늘어났다. 한 해 졸업생 800여 명. 동아방송예술대학에서 꿈을 키운 졸업생들이 방송·영화·공연·광고 분야에 고루 진출해 있다. 우선 가수 이정, 개그맨 유세윤·유상무·장동민, 드라마 ‘주몽’의 ‘오이’로 주목받은 여호민 등 연예계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최근 여러 대학이 ‘특별전형’으로 ‘연예인 모시기’에 나서고 있지만, 동아방송예술대학은 그렇게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 대학 관계자는 “영상음악과 인기가 특히 높다”며 작곡가로도 꽤 인지도가 높은 인기 가수가 두 번이나 영상음악과에 지원했다 낙방했다고 귀띔한다.
‘DIMA 엔터테이먼트’
대중에게 노출되는 직업이다보니 연예인 졸업생이 두각을 나타내지만, 화면이나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스태프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졸업생이 더 많다는 게 학교측의 설명이다. 하영석 학장은 “얼마 전 졸업생으로부터 한 공중파방송국에서 프로그램 제작방식을 놓고 제작진 사이에 다툼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양쪽 다 우리 대학 출신이라 서로 사과하고 웃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 정도로 우리 학생들이 각 분야에 두루 진출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송예술 분야는 ‘취업률’을 파악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 개그맨이나 연기자는 물론 영상 제작 스태프도 ‘프리랜서’가 많다. 물론 방송국에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길이 없진 않지만, 벽은 높고 문은 좁다.
학생회관 노천 카페에서 교내 방송(DBS)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학생들.
“드라마, 영화, 뮤지컬 모두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데, 몇몇 스타급으로의 ‘쏠림’ 현상 때문에 관련 산업이 왜곡되고 있어요. 촬영 스태프나 작가 발굴은 외면하니 외적 성장, 소위 ‘대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춥고 배고픈 사람이 많죠. DIMA 엔터테인먼트가 그런 관행을 깨는 시작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영석 학장은 “종합뮤지컬 작품을 올려볼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연기자, 작가, 음악 감독, 무대연출, 음향, 조명 모두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고, 그 준비 과정 및 공연 실황의 녹화와 생중계도 가능하니 도전해볼 만하다 싶다.
기자가 동아방송예술대학을 찾기 바로 며칠 전, 경북 영주 동산고 학생 30여 명이 인솔교사와 함께 이 대학을 견학했다. 기자보다 앞서 이 학교를 돌아본 학생과 교사는 하 학장과 학교 관계자들에게 “동아방송예술대학은 꿈의 대학”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특목고 입시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다지만, 모든 학생이 특목고를 징검다리 삼아 소위 명문대 진학을 꿈꾸는 건 아니다. 문화예술인으로 끼를 발산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도 많다. 그런데 이들의 간절한 꿈은 흔히 ‘바람 들었다’고 폄훼된다. 동아방송예술대학은 지난 10년의 성과를 발판 삼아 그러한 편견을 깨는 데 앞으로 10년을 투자할 계획이다.
“끼 있는 젊은이를 제대로 된 문화예술인으로 성장시키는 게 우리 대학의 존재 이유입니다. 꿈에 부풀어 둥실 떠다니는 게 아니라, 속이 꽉 차서 기회가 왔을 때 꿈의 나래를 활짝 펼 수 있도록 교육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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