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자고 밥 못 먹어”
“임금체불 만연”
“경력 필요해 견뎌”
“영화에 대한 열정에 먹칠”
무전기를 꼭 쥔 한 영화제 스태프의 손.
2018년 하반기 국내 한 영화제에서 해외초청 코디네이터로 근무한 김모(여·25) 씨의 말이다. 김씨는 “영화제의 역사는 스태프 착취의 역사다. 상당수 국내 영화제가 제대로 된 임금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모품으로 사용”
보통 1~2주간 개최되는 국내 영화제는 수개월 단위로 고용된 스태프에 의해 운영된다.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강도 높은 노동, 야간근무, 임금체불을 견뎌야 한다는 점이다. 몇몇은 심야근무에 대한 수당을 지급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한다. 한 영화제 관계자는 “영화제 스태프는 영화제를 전전하며 소모품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영화제 스태프는 영화에 대한 높은 이해와 외국어 능력을 비롯한 다양한 실무 역량을 요구받지만 고용기간은 5~9개월에 그친다. 모 영화제 스태프로 일한 한 청년은 5년 영화제 스태프 경력을 쌓는 동안 입사와 퇴사를 7번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다수 영화제에서 해외초청 프로그램을 맡은 양모(26) 씨는 “영어에 능통한 고급인력임에도 적은 돈만 받는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 차례 영화제에서 일한 박모(25) 씨는 “늘 예상 이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장모(28) 씨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뒤 경험을 쌓기 위해 영화제 스태프로 일했다. 장씨도 “하루 12시간 일하기도 했다. 소모된다고 느끼는 스태프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청년유니온’의 2018년 9월 조사에 따르면, 34명이 영화제와 맺은 근로계약 97건 중 87.6%는 실업급여 지급 요건인 7.5개월을 못 채웠다. 이 37명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3.5시간에 달했다. 시간외수당을 전부 또는 일부 지급받지 못했다는 주장도 30건이나 나왔다.
2018년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종사한 계약직 인원 149명은 야간근로수당 등 1억2400만 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영화제 측은 “대책을 논의했다. 시간외수당에 관한 대비책 마련이 미흡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영화계 계약직 종사자들은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즈음에 열린 몇몇 영화제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찍히면 끝”
나현우 청년유니온 기획팀장은 “화려한 무대 뒤에서 충격적인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 팀장과의 대화 내용이다.-영화제 노동 실태가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스태프의 증언은 있는데 핵심 물증은 없다. 영화제에서 야근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근로시간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 체불임금 규모도 잘 잡히지 않는다.”
-스태프는 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나?
“‘찍히면 끝’이라고 여긴다.”
나 팀장에 따르면, 한 국제영화제의 계약직 직원이 임금체불을 영화제 측에 항의하자 영화제 측은 “싫으면 그만두라”고 말했다고 한다.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최저임금이 인상된 2019년엔 과연 ‘영화제의 스태프 착취’ 논란이 잠잠해질까?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담당 허만섭 강사·신동아 기자) 수강생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