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진 “닻별은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 같은 존재”
‘따로 또 같이’ 하는 박서진과 닻별의 선행
박서진 “사랑받은 만큼 돌려드리자는 마음”
신선한 감동과 잊지 못할 추억 선물
‘덕질’로 마음의 병 고치고 삶의 활력 충전
[타조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 데뷔 8주년을 맞은 박서진의 공식 팬카페는 회원 수가 3만 명에 육박한다.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팬을 통칭하는 팬덤 이름은 ‘닻별’. 별자리 카시오페이아의 우리말로, ‘박서진이 가장 빛나는 별이 되도록 언제 어디서든 박서진을 응원하겠다’는 팬들의 각오와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카페지기인 박서진을 대신해 실질적인 운영을 총괄하는 닻별 ‘로마’(팬카페 닉네임)는 “2017년까지 4000~5000명 수준이던 회원 수가 최근 3년새 급격히 늘었다”며 “2017년 KBS ‘아침마당’에서 방송한 ‘꿈의 무대’라는 경연 코너에서 5연승을 한 것이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꿈을 이뤄내고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박서진 가수의 삶에 감동받은 사람이 많다. 따뜻하고 순수한 인간미와 멋진 장구 퍼포먼스, 뛰어난 노래 실력에 반해 박서진 가수를 손주처럼, 아들처럼 보살피고 지켜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팬카페에 모였다”고 전했다.
‘따로 또 같이’ 하는 박서진과 닻별의 선행
닻별은 2018년 열린 팬카페 정모 당시 쌀 2500kg을 삼천포 경로당 등에 박서진 이름으로 기부했다. 기부 규모가 커 쌀 화한을 1t, 500kg 등으로 나눠서 설치했다(왼쪽). 박서진과 닻별은 2020년 3월 1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에 코로나19 피해 지원 성금 3000만 원을 기탁했다. [박서진 공식 팬카페 제공]
박서진은 쌀을 기부해 소외계층을 돕는 선행을 자주 한다. 닻별도 2018년 열린 제7회 팬카페 정기모임(정모) 때 쌀 2500kg을 삼천포 경로당 등에 박서진 이름으로 기부했다. 물품만이 아니라 팬카페에서 성금을 모금해 기부하는 선행도 꾸준히 함께 하고 있다. 9월 13일 현재까지 완료한 성금 기부는 모두 9건. 세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서진과 닻별은 2019년 2월 20일 모금액 1000만 원을 박서진의 고향인 사천시 인재육성장학재단에 기부했다. 2020년 3월 1일에는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에 3000만 원을 기탁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민들의 생계와 방역을 도왔다. 같은 해 8월 3일엔 서울 세브란스병원 어린이 환자에게 치료비 1000만 원을 지원했다. 닻별은 지난해 8월 25일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수재민을 돕기 위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5456만3000원을 기부했다. 그해 9월 28일에는 세브란스병원 어린이 환자에게 1000만 원을 지원해 치료를 도왔다.
박서진과 닻별은 공식 팬카페를 매개로 기부 활동을 함께 한다. 2020년 8월 25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5456만3000원을 기부한 증서. 닻별이 2021년 8월 20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2000만 원을 후원한 증서. 닻별은 2020년 9월 세브란스병원 어린이 환자 치료비로 1000만 원을 후원했다(왼쪽부터).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제공,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공, 박서진 공식 팬카페 제공]
팬카페 회원들에게 선행에 적극 동참하는 이유를 묻자 “착한 일을 많이 하는 박서진에게 선한 영향을 받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서진은 가요계의 동료 선후배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할 만큼 선행을 습관처럼 실천하는 가수로 유명하다.
9월 초순 박서진을 전화로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그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사람이 많아지며 일이 갑자기 늘어 바쁘게 보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며 “불가피하게 전화로 인터뷰하게 됐다”고 양해를 구했다. 경남 삼천포의 사투리 억양이 묻어나는 정겨운 말투에 듣던 대로 배려심이 남다른 청년이었다.
“사랑받은 만큼 돌려드리자는 마음”
- 선행을 많이 하는 가수로 정평이 나 있더군요. 언제부터 나눔 활동을 펼쳤나요.“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스물한두 살 때부터예요. 사랑을 받은 만큼 돌려드리자는 생각으로 나눔 활동을 해요.”
- 그동안 한 나눔 활동을 생각나는 대로 떠올린다면.
“제가 다닌 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불우한 환경의 ‘애기(어린이)’들에게 학용품이랑 패딩 같은 걸 기부했어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동에도 꾸준히 기부하고 있고…. 갑자기 기억하려니 생각이 잘 나지 않네요(웃음).”
박서진은 기억하지 못해도 닻별은 잊지 못한다. 충청 지역 닻별 ‘금산아씨’는 7월 SBS 교양 프로그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에서 박서진이 펼친 도시락 나눔 봉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선행으로 꼽았다. 그는 “박서진 가수가 닻별과 함께 닻별이란 이름이 새겨진 도시락을 포장해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직접 찾아가 전달하는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라마다’는 “천사무료급식소나 병원 환자들을 찾아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무료 공연을 하고 불우한 학생들에게 직접 싼 선물꾸러미를 전달한 일도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며 흐뭇해했다.
전라 지역 ‘엘크’는 “박서진 가수가 소리 없이 행하는 재능기부는 언제나 감동”이라며 “몇 년 전 외할머니가 입원한 요양병원에서 무료 공연을 펼쳐 환우들을 즐겁게 해주고, 고모가 사는 시골 동네를 찾아가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강원 지역 ‘예쁜누나’는 “모교와 교회 등 자신이 도움받은 곳에 잊지 않고 후원하는 모습도 아름답다”고 말했다. 인천 지역 ‘황신영’과 부산 지역 ‘안나’는 “박서진 가수는 정모나 콘서트 때 화환 대신 쌀을 받아 결식아동이나 독거노인을 돕는다”며 “닻별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고백했다.
박서진이 이처럼 선행을 습관처럼 하게 된 데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어릴 때부터 트로트를 좋아한 소년은 사천 일대에서 트로트 신동으로 유명했다. 2007년과 2011년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트로트 가수로서의 자질과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집안에는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형 3명 중 2명이 갑상선암과 만성신부전증에 걸려 많이 아팠어요. 형들을 치료하기 위해 배도 팔고 집도 팔고 그러다 보니 빚이 점점 불어났어요. 아픈 형들은 2009년 49일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죠. 그러고 나서 엄마가 하혈을 했어요. 병원에 갔다가 암 판정을 받으셨죠. 그 당시 엄마가 아빠와 함께 뱃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셨는데 암에 걸려 더는 일할 수 없게 됐어요. 아빠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제가 고등학교를 자퇴했죠.”
트로트 가수를 꿈꾸면서도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어부가 된 삼천포 소년의 이야기는 2011년 9월 KBS ‘인간극장’을 통해 알려졌다. 방송이 나간 후 도움을 주는 곳이 생겨났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그중 하나다.
“‘인간극장’을 보고 재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반찬과 도시락을 보내주시고 옷도 주시고 물품 쪽으로 많이 후원해주셨어요.”
- 선배 가수 장윤정 씨가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 치료비를 대줬다고 들었어요.
“2011년 ‘스타킹’에 나갔을 때 장윤정 선배님이 패널로 출연했어요. 선배님은 어머니가 아프셔서 제가 뱃일을 하게 된 사연이 먼저 소개되고 나서 선배님과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죠. 선배님은 제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어머니 치료를 돕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마음만으로도 감사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스타킹’ 작가님이 계좌번호를 물어보시더군요. 당연히 출연료를 주시려고 그러나 보다 했죠. 나중에 보니 출연료가 아니었어요. 장윤정이란 이름으로 큰 금액이 입금됐더라고요.”
그는 못다 한 학업을 나중에 검정고시로 마쳤다며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 도와준 분들 덕분에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닻별은 없어선 안 되는 공기 같은 존재”
- 집안의 우환과 가난이라는 역경을 견디며 얻은 깨달음은 뭔가요.“어릴 때 부모님이 돈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빚쟁이들이 돈 받으러 집에 쳐들어오곤 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마음이 아팠어요. 나는 열심히 살아서 돈 때문에 굶는 일은 없게 하자고 각오를 다졌죠.”
- 불우한 아이들을 돕는 것도 그런 마음의 발로인가요.
“가난해서 학교에 수학여행비를 못 내고 급식비도 못 낸 적이 많아요.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저 같은 상처를 받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런 생각으로 지금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동을 후원하고 있어요. 정기 후원은 아니고 큰 금액이 생길 때마다요.”
그가 트로트 가수를 꿈꾸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노래자랑에 나간 것이 계기가 됐다. 장윤정의 ‘짠짜라’를 부르는 자신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박수 받고 환호받는 트로트 가수가 되리라 마음먹었다”고 한다. 8년 뒤인 2013년 그는 경남 울산 지역방송인 JCN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8세에 가수의 꿈을 이뤘다. 우승 상금 1000만 원으로 ‘꿈’이라는 싱글앨범을 내고 가요계에 데뷔한 것이다.
앨범만 내면 방송 출연 제의가 줄줄이 들어올 줄 알았던 그는 아무도 찾지 않는 현실의 냉혹함에 살 길을 모색했다.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하고 길거리 공연도 하고 밤무대에도 섰다. 다른 트로트 가수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고자 스물한 살 때부터 장구를 쳤다. 장구를 배운 건 그의 가수 인생에 신의 한 수가 됐다. 장구를 신나게 치는 가수로 독보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박서진은 ‘장구의 신’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장구의 신’은 그가 친형처럼 따르고 좋아하는 선배 가수 박구윤이 지어준 별명이다.
-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에 일부러 나가지 않았다던데.
“출연 제의가 여러 번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키지 않았어요. 팬들도 있고 방송 활동도 많이 하는 저보다는 무대에 설 기회가 절실한 분들이 오디션에 참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출연 제의를 계속 거절했죠.”
“후회되지 않느냐”고 묻자 그가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오히려 ‘미스터트롯’ 결선에 진출한 가수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트로트가 더 발전하고 사랑받게 됐다. 그들과 함께 활동하며 내가 설 무대도 덩달아 많아지고 트로트의 격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스터트롯’과 같은 시기 방영되던 기성 가수들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나는 트로트가수다’에 출연해 3차례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4라운드 경연을 마치고 자진 하차해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박서진의 진가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장구의 신’ 말고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갖고 싶나요.
“노래 잘하는 박서진, 트로트를 정말 맛깔나게 부르는 박서진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 팬덤 규모가 3년 전보다 6배나 커졌어요 ‘닻별’은 가수 박서진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힘들 때마다 팬들의 응원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닻별은 제게 없어서는 안 될 공기 같은 존재예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고 저를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존재요. 그래서 닻별에게 항상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요. 그보다 더 좋은 말을 못 찾았어요(웃음).”
여기서 잠깐, 닻별을 위해 박서진에게서 직접 수집한 ‘TMI(Too Much Imformation)’를 공개한다. 어린이 박서진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고춧대를 뽑아 칼싸움을 즐기던 개구쟁이”였다. 노래방 애창곡은 딱히 없다. “불렀을 때 맛있다는 느낌이 들어” 노래방에 가면 나훈아나 이미자 노래를 주야장천 부르는 습관이 있다. 라이벌로 여기는 가수는 없다. 친한 동료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바로 임영웅, 진해성, 박구윤 등 여러 명이다. 좌우명은 ‘받은 만큼 베풀자’. 박서진은 “닻별이 나를 언제 어디서든 빛나도록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처럼, 나도 닻별이 언제든 응원하고 싶은 자랑스러운 가수이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초심을 지키며 항상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신선한 감동과 잊지 못할 추억 선물
2019년 7월 장맛비가 퍼붓는 와중에도 박서진을 응원하기 위해 대구 달성 화원 공연장을 찾은 닻별. 이날 박서진은 비에 젖은 노란 우비로 ‘깔맞춤’하고 ‘떼창’으로 자신을 응원하는 닻별에게 ‘노란 단무지’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박서진 공식 팬카페 제공]
경기 지역 ‘양정자’는 “갱년기 우울증을 심하게 앓던 2016년 여름, 병문안을 온 동생이 울가수님(박서진)의 공연 영상을 보여줬다.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 종일 그의 노래를 들으며 우울증을 극복했다”며 박서진을 “종합비타민이자 만병통치약”이라고 표현했다. 대구 지역 ‘중산맘’은 “2018년 직장을 갑자기 그만두면서 상실감에 젖어 있을 때 친구따라 가요교실에 간 것이 계기가 됐다”며 “내가 예전에 ‘인간극장’에서 본 성실하고 순수한 소년 어부가 어느새 반듯하게 자라 많은 팬을 거느린 청년이 된 모습을 보고 바로 팬카페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박서진이 펼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로 2019년 7월 대구 달성군 화원유원지에서 열린 야외 공연을 떠올리는 이가 많았다. 서울 지역 ‘순여리’는 “장맛비가 억수로 퍼붓던 그날, 팬덤 색인 노란색 우비를 단체로 입고 눈물, 콧물, 빗물을 흘리면서 응원했다”며 “왕자님(박서진의 또 다른 애칭)이 자신의 노래 ‘밀어 밀어’를 떼창으로 부르는 닻별의 모습을 보고 ‘노란 단무지’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2016년 덕후가 된 경남 지역 ‘양파링’도 대구 달성 화원 음악회를 첫손에 꼽으며 “빗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마음으로 열렬히 응원한 닻별의 모든 순간이 감동 그 자체였다”며 “이날 닻별과 가수가 함께 선보인 환상의 하모니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부산 지역 ‘오렌지’는 “2018년 6월 2일 진행된 고성 전국노래자랑 녹화 무대는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라며 “부산에서 고성까지 달려가 찜찔방보다 더 뜨거운 뙤약볕을 4시간 동안 견디며 온몸이 땀범벅이 되도록 자리를 지켜낸 끝에 열렬한 응원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 지역 ‘벗꽃’과 강원의 ‘예쁜누나’도 “땡볕에서 고생한 끝에 볼 수 있었던 이날의 무대가 잊히지 않는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덕질’로 마음의 병 고치고 삶의 활력 충전
[타조엔터테인먼트 제공]
토크 참여자들은 박서진이 남긴 감동 어록을 떠올리며 ‘최애’와 함께한 시간을 추억했다. 전라 지역 ‘미켈란’은 “대전에서 열린 첫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서 ‘세상이 온통 눈물뿐이었다. 온통 절망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닻별이 찾아와 줬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졌다. ‘벅차오르는 심정과 떨리는 마음으로 지금 이 시간을 시작하겠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웅장한 북소리가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에 사는 닻별 ‘주나’는 “얼마 전 박서진 가수가 공식 유튜브를 통해 사연을 받아 직접 읽어주고 신청곡도 불러줬는데 내 사연이 당첨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고 사연도 읽어줘 듣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나중에 진행한 선물 추첨에서도 내가 당첨됐다. ‘미국으로 물건을 보내본 적이 없다. 어찌 보내야 하냐’며 고민할 땐 그가 너무도 귀여워 보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황신영’은 “닻별이 가수님의 심장이고 양부모님이라는 말을 했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특히 ‘누나가 제일 예뻐요’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심쿵’했다”고 털어놨다.
‘순여리’는 “1%의 팬들이 99%의 화력으로 응원해 줘 지금의 박서진이 있는 것”을, ‘엘크’는 “닻별만 믿고 닻별과 함께 간다”를 심쿵 멘트로 꼽았다. 팬들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는 의미가 담긴 “관에 들어갈 때까지 어디 가시면 안 된다”는 박서진의 ‘호소’는 여러 닻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박서진을 열렬히 응원하고 꾸준히 선행을 펼치는 ‘덕질’은 닻별 개개인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 “사는 게 즐거워졌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사랑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즐겨 쓰게 됐다” “마음의 병이 치유됐다” “무기력하던 삶에 활력이 생겼다”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 등이 토크에서 나온 답이다. 박서진에게 바라는 점을 묻자 닻별은 한마음으로 소망하고 다짐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순수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와 오래오래 함께해요. 맞잡은 손 놓지 않고 박서진 가수가 어디서건 항상 빛나는 별이 되도록 평생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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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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