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력 사업 정체 및 실적 악화, 그룹 위기 고조
제조업·엔터·물류·유통… 시너지 내기 어려운 사업군
CJ제일제당, 경쟁자 반도체 ‘슈퍼 을’ 되는 동안 식품업 머물러
‘온리원’ 됐지만… 엔터·미디어, 글로벌 원가 상승에 위기
4개 사업군 ‘회전문 인사’, 사업 다른데 경영 방식 같아서야
新사업 하거나, 글로벌 넘버원 더 만들거나
지난해 11월 3일 서울시 중구 필동 CJ인재원에서 열린 고(故) 손복남 고문 1주기 추모식에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유가족을 대표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CJ그룹]
회의 장소는 이 회장이 고인과 어린 시절을 보낸 집터(서울시 중구 필동로 26)에 세워진 CJ인재원. 이재현 회장은 “그룹의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온리원(ONLYONE)’ 정신을 되새기는 책임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라며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위기에 직면하면 과거를 떠올리며 반성하듯 희수의 CJ그룹은 초심을 떠올린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다짐은 2021년 11월 이 회장이 2010년 ‘제2의 도약 선언’ 이후 11년 만에 개최한 사업 비전 설명회에서 했던 다짐을 반복한 것이다. 당시에도 이 회장은 “세상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정체의 터널에 갇혔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70주년을 맞은 CJ그룹이 대외 행사도 생략하고 비상 경영 회의를 했다는 건 CJ그룹 성장이 정체 상태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지난해 주력 계열사인 CJ제일제당의 성장이 둔화하고 CJ CGV, CJ ENM이 적자를 이어가는 등 그룹 내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해 CJ그룹의 실적이 주춤했던 이유는 주력 계열사인 CJ제일제당과 CJ ENM의 실적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CJ대한통운, CJ프레시웨이, CGV의 실적은 호조였지만 그룹 전체 매출의 46%를 차지하는 CJ제일제당의 실적이 나빠졌다.
제3의 도약, 추상적 전략 外 길 안 보여
올해도 실적에 반전이 일어나기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CJ그룹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2조1542억 원에서 올해 1조9733억 원으로 8.3% 감소할 전망이다. CJ제일제당은 해외 식품사업 호조에도 국내 소비 둔화, 바이오 업황 악화로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0.8%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CJ CGV와 CJ ENM은 올해 영업적자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위기감은 ‘2024년 임원인사’에서도 드러났다. CJ그룹은 이례적으로 늦은 올해 2월, 2020년 이후 최소폭(19명의 경영리더 승진)으로 인사를 단행했다. 소폭 인사로 위기 해결이 되지 않았는지 3개월이 지난 5월까지 계열사 대표들의 후속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2022년 10월부터 CJ ENM을 이끌던 구창근 대표는 정기 인사 발표에서 유임돼 임기가 2026년 3월인데도 불구하고 올해 3월 일신상 이유로 사임했다. 최근 성장세를 보이던 CJ프레시웨이의 정성필 대표도 역시 일신상 이유로 갑작스럽게 사임하고 안식년에 들어갔다. CJ그룹 계열사 대표들의 잦은 이동은 그룹 내 위기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CJ그룹은 성장통을 겪고 있다. CJ그룹 스스로 홍보하듯 2020년 이후 CJ그룹은 제3의 도약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온리원(Onlyone)’이라는 추상적 전략 외에는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 CJ그룹은 CJ제일제당이라는 제조업 기반의 기업으로 출발해 ‘식품’ ‘바이오’ ‘물류·유통’ ‘엔터·미디어’ 등 ‘CJ그룹 4대 사업’이라고 불리는 포트폴리오를 갖추면서 국내 유일의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홍보한다.
각각의 사업 영역에서 추상적 시너지는 있을 수 있지만 직접적 사업 시너지는 약해 보인다. 마치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때 합병 승인을 위해 주주들을 설득하며 “건설, 의류, 식음료 등을 합쳐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할 수 있다”고 ‘억지 시너지’를 주장한 것과 같다. 이런 이유는 CJ그룹의 태동이 제일제당으로 대표되는 제조업을 기반해서 이뤄졌지만 199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이후 확장된 사업 영역은 식품제조업과 무관한 엔터, 미디어, 물류, 유통 등으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 세계 1위 올라섰지만 변화 더뎌
CJ그룹의 모태가 된 CJ제일제당은 삼성그룹과 국내 산업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51년 삼성물산을 세워 무역업으로 어느 정도 자본을 축적한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은 이내 제조업 진출을 고민했다. 1953년 4월 호암은 부산대교 옆에 있는 삼성물산 사무실 한쪽에 제당회사 설립을 위한 사무소를 설치했다. 공장 설립 자금 18만 달러를 정부 협조로 특별 대부받고 상공은행으로부터 2000만 환을 대출받았다.부산 전포동에 부지를 확보하고 제당설비 일체를 일본에 발주해 1953년 8월 1일 현 CJ제일제당의 모태인 ‘제일제당 공업주식회사(제일제당)’를 설립했다. 한국에 최초로 설립된 생산 공장이다. 공장이 완성되고 순백의 정제당이 쏟아져 나온 날이 1953년 11월 5일이다. 이병철 회장은 이날을 제일제당 창립기념일로 제정했다. 제일제당은 삼성이 근대 생산 기업으로 면모를 갖춰가는 데 첫걸음이자 상업 위주로 시작한 기업이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한국 경제사의 주요한 변곡점이기도 하다.
CJ제일제당은 제조기업으로서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CJ제일제당과 일본 아지노모토와 간 경쟁의 역사가 단적인 예다. 이병철 회장은 1953년 제일제당을 설립할 때 아지노모토의 기술과 사업모델을 토대로 했다. 우리에겐 미원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아지노모토는 1907년 스즈키 사부로스케 회장이 설립한 ‘스즈키 제약’에서 시작됐다. 스즈키 사장은 회사 창립 후 1년 뒤인 1908년, 다시마에서 새로운 맛을 내는 물질인 ‘글루타메이트’를 분리하는 데 성공한 이케나 기쿠나에 도쿄대 교수를 방문한다. 글루타메이트를 이용해 음식 맛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가루인 글루탐산나트륨, 즉 MSG를 개발할 목적이었다.
MSG의 잠재력을 알아본 스즈키 사장은 이케나 교수와 협력해 MSG를 ‘아지노모토(味の素, あじのもと·맛의 근원)’라는 상품명으로 판매해 큰 성공을 거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년 뒤인 1946년에는 사명 자체를 아지노모토로 변경하고 본격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아지노모토가 개발한 MSG는 1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세계 조미료 업계의 선두 주자로 군림하고 있다. 아지노모토는 미국·유럽 등에 공장을 세워 MSG를 생산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55년 대상의 ‘미원’, 1963년 CJ제일제당의 ‘미풍’ ‘다시다’ ‘맛나’ 등 다양한 조미료에 MSG가 첨가된다.
CJ제일제당은 1953년 설립 이후 아지노모토의 아성에 도전해 오다 2019년 매출액 12조7668억 원을 기록하며 아지노모토의 매출(12조6400억 원)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CJ제일제당의 아지노모토에 대한 도전은 1977년 시장에 진출한 식품 조미 소재 ‘핵산’부터다. MSG 시장보다 글로벌 시장규모는 더 작지만 2014년 이후 아지노모토를 꺾고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다.
CJ제일제당은 이를 기반으로 핵산 트립토판 등 주요 사료용 아미노산 시장에서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를 확보하고 있다. 아지노모토가 최초로 미생물 연구와 발효를 시작했지만 뒤늦게 뛰어든 시장에서 삼성이 소니를 제쳤듯 CJ제일제당도 아지노모토를 꺾고 기술력으로 당당히 앞서가고 있다.
다만 CJ제일제당이 매출액으로는 아지노모토를 앞서기 시작했지만 제조 기술과 R&D 역량의 확장 부분에선 아쉬운 부분이 있다. 아지노모토는 MSG를 만들던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산업에 핵심적인 ‘마이크로 절연 필름(ABF·Ajinomoto Build-up Film)’ 개발에 성공하며 첨단 산업 분야로 사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처리장치(CPU) 등 마이크로컨트롤러의 배열 회로가 점점 미세하게 배열되면서 회로 간 전류 흐름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마이크로 절연 필름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아지노모토는 아미노산 연구를 기초로 MSG를 개발했고, ABF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 또한 아미노산 화학을 기반으로 만든 수지 복합체다. ABF는 인텔·AMD·엔비디아·ARM 등에서 생산되는 대다수 반도체 제품 회로에 반드시 들어간다. 특히 아지노모토가 독점 공급을 하고 있다 보니 반도체 품귀 현상을 빚는 시기에 아지노모토는 ‘슈퍼 을’ 취급을 받고 있다.
이재현 뚝심이 일궈낸 문화콘텐츠 ‘온리원’
1995년 이재현 CJ그룹 회장(당시 제일제당 상무)이 드림웍스SKG와 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CJ그룹]
삼성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하기 1년 전인 1995년 이재현 당시 제일제당 상무와 누나인 이미경 제일제당 이사는 미국 제작사 드림웍스 SKG에 투자하기 위해 미국 LA행 비행기에 오른다. 드림웍스 SKG는 할리우드 거장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 월트디즈니 영화사 대표 제프리 카젠버그, ‘음반업계의 마술사’ 데이비드 게펜이 함께 만든 제작사다.
1995년 8월 이재현 회장은 제일제당 내에 현 CJ ENM의 전신이 된 ‘멀티미디어사업부’를 신설하며 문화콘텐츠 사업 영역 개척을 시작한다. 식품사업에 주력하던 제일제당이 문화산업으로 눈을 돌린 것은 당시로선 엉뚱한 선택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재현 회장이 미국의 신생 영화제작사 드림웍스SKG에 당시 제일제당 연간 매출의 20%에 달하는 3억 달러(약 3000억 원)를 투자하고, 1998년에는 국내에 생소했던 멀티플렉스(복합영화상영관)를 가장 먼저 도입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향후 국내에 누구도 하지 않지만 ‘글로벌 넘버원’까지 갈 수 있는 사업 분야를 찾고 있었다. 1995년 드림웍스에 투자하면서 이 회장은 “자동차, 철강, 중공업, 화학 등은 이미 국내의 다른 대기업들이 많이 하고 있다”며 “우리가 적어도 아시아 글로벌 넘버원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업 분야는 바로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 회장의 의지와는 달리 당시 국내 문화산업의 현실은 척박했고 주변의 시선은 싸늘했다. 이 회장이 의지한 것은 이병철 회장의 “문화가 없으면 나라가 없다. 문화는 그것이 창조되고 수용돼 모든 국민의 것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가르침과 본인의 확고한 신념뿐이었다. 시련은 계속됐다. 문화 사업이 본격화한 시기가 하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때와 겹친 탓에 문화 사업은 돈만 잡아먹는 애물단지가 됐다. 당시 삼성그룹과 대우그룹도 영화산업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IMF외환위기의 파고를 견디지 못하고 사업에서 철수했다.
그럼에도 이재현 회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CJ제일제당은 1997년 음악 전문 채널 Mnet을 인수한 데 이어 이듬해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인 CGV 강변을 열었다. 2006년엔 종합 엔터테인먼트 채널 tvN을 개국했고, 2009년 글로벌 음악 시상식 MAMA를 개최하기 시작하며 영화 사업뿐 아니라 음악, TV채널 등 문화사업의 다각화를 진행했다.
2011년엔 CJ그룹 내 CJ미디어, 온미디어, CJ엔터테인먼트, 엠넷미디어 등으로 다각화된 문화콘텐츠 사업을 하나의 독립된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만든 CJ ENM을 출범시켰다. CJ ENM의 출범이 즉각적 시너지를 내거나 수익화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출범한 지 2년이 지난 2013년 영업이익률은 3.4%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2014년에 분할된 넷마블의 게임 부분의 성과를 빼고 나면 적자였다.
이재현 회장의 뚝심은 결국 빛을 봤다. 1995년 시작한 문화콘텐츠 사업은 20여 년의 꾸준한 투자를 기반으로 201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한국 최초로 개봉 전 167개국 선판매라는 기록을 남기며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이어 2014년 영화 ‘명량’이 관객 1761만 명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이듬해인 2015년 ‘베테랑’이 1300만 명의 관객을 모으는 성공을 거두며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CJ그룹의 1000만 관객 영화는 인수합병한 시네마서비스 작품을 포함하면 9편에 달한다.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이 20년 이상 문화콘텐츠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국내 문화콘텐츠 산업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투자·운영 체계화다. 더 큰 성과는 글로벌 진출이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의 저력을 알리는 기회였다. ‘기생충’은 국내에서 1000만 명을 돌파하는 동시에 2019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20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올랐다.
특히 CJ ENM은 해외시장 공략에 가장 적극적이다. 2022년 미국 대형 스튜디오 엔데버 콘텐트를 인수하며 그간 한국에서 만든 완성된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거나 파는 방식에서 현지에서 직접 영화제작에 참여, 현지화된 작품을 통해 성과를 내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현지에서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유통까지 자체 프로덕션 시스템과 유통망을 확보해 더 안정적인 글로벌 콘텐츠 전진기지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대표적 예가 올해 개봉한 ‘패스트 라이브즈’다. 한국계인 셀린 송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패스트 라이브즈’는 올해 영국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는 ‘기생충’에 이어 두 번째 아카데미 노미네이션이다.
1995년 이재현 회장이 문화콘텐츠 사업을 시작할 때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적어도 아시아 글로벌 넘버원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업 분야는 바로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말은 가시적 결과로 나타났다. CJ그룹에서 CJ의 정신이라고 얘기하는, 모든 면에서 항상 최초·최고·차별화를 추구하는 ‘온리원(Onlyone)’ 정신은 이 회장이 문화콘텐츠 사업 시작부터 글로벌화까지 이뤄낸 경험에서 추구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패러다임 변화 필요한 엔터, 글로벌 확장 시도하는 물류
K-콘텐츠의 성장과 글로벌화는 콘텐츠 산업 전반에 제작 원가 상승이라는 문제를 가져왔다. CJ ENM도 마찬가지로 제작 원가가 글로벌 수준으로 높아지며 비용이 증가한 반면 대부분 매출은 여전히 내수시장에서 발생하면서 급격한 수익 악화가 발생하고 있다. 2019년 이후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서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해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한국 콘텐츠를 활발하게 제작하게 된다.콘텐츠 평균 제작비는 크게 올랐지만 국내 방송광고 시장 단가나 시청자 수는 그와 비례해 늘어나지 않고 있다. 사실 CJ그룹은 문화콘텐츠 사업에 대한 지속적 투자를 위해 CJ ENM 출범 초기엔 넷마블의 게임 부분을 합쳤다가 2014년에 분할한 후 2018년 7월 CJ오쇼핑을 CJ ENM과 합병하면서 상호를 변경했다. 이후 2021년 TV홈쇼핑(CJ온스타일), 인터넷쇼핑몰(CJ몰), T커머스(CJ오쇼핑플러스)에서 사용하던 각 브랜드를 CJ온스타일로 통합했다.
CJ그룹에서는 과도한 비용으로 인한 CJ ENM의 수익성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 2022년 소방수로 구창근 대표를 보냈으나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손실이 146억 원을 기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매출액도 4조3684억 원으로 전년 대비 8.8% 하락하며 실적이 더 악화됐다. 결국 구창근 대표는 올해 3월 개인 사정으로 사퇴했다. CJ그룹의 30년 가까운 문화콘텐츠 사업에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CJ ENM이 설립되던 2011년은 CJ그룹의 한 축인 대한통운을 인수한 해이기도 하다. 대한통운의 인수 역사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설립된 대한통운은 1968년 동아그룹 계열사로 편입됐으나 동아건설의 부도로 법정관리를 받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1983년 동아건설과 함께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했지만 동아건설의 부도로 리비아 정부의 대수로 공사 중단에 따른 손해배상금 요구 등 위기를 맞은 것.
2008년 대한통운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면서 법정관리를 벗어났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연이어 인수하며 무리한 M&A를 진행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진행한 초유의 M&A는 결국 승자의 저주가 됐고,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도 3년 만에 매각 절차를 밟게 됐다. 2011년 2월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 등 매각 주관사들은 포스코, 삼성, 롯데 등 입찰 참여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혀왔던 10개사에 인수안내서를 발송하고 본격적으로 매각 작업에 들어갔다.
초반에는 포스코, 신세계, 롯데 등이 큰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마감된 대한통운 예비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포스코, 롯데, CJ뿐이었다. CJ그룹은 예비입찰 마감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많은 전문가 사이에선 ‘열외’로 분류될 정도로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포스코-롯데 양강 싸움에 CJ그룹은 잘해봤자 완주하거나, 입찰 들러리 정도의 존재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CJ그룹이 대한통운을 인수한다면 그룹 내 물류사인 CJ GLS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있을 뿐이었다.
당시 국내 택배사 한 관계자는 “당시만 하더라도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사실 CJ가 대한통운을 합병한다면 택배업계의 ‘힘의 재편’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타 업체에서는 상상하지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던 일”이라고 회상했다. 또 본입찰 마감 4일 전 가장 강력한 인수 후보이던 포스코가 삼성SDS와 컨소시엄을 맺고 본입찰에 참여한다는 뉴스가 나왔고, 다음으로 강력했던 롯데그룹이 입찰을 포기하면서 당시 언론에서는 ‘포스코 무혈입성’과 같은 헤드라인의 기사를 내보내며 포스코의 인수를 기정사실화했다.
반전은 이재현 회장의 베팅이었다. CJ그룹은 대한통운의 인수 가격을 주당 20만 원으로 써내면서 약 19만 원을 써낸 포스코 컨소시엄을 제쳤다. 당시 업계 안팎에서는 기대와 함께 승자의 저주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재현 회장은 삼성그룹과 그룹을 분리한 이후 타 그룹들과 차별화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사업으로 문화콘텐츠 사업에 이어 물류사업을 선택한 것이다.
CJ대한통운 글로벌 물류망. [CJ대한통운]
해외 진출을 위한 투자와 M&A로 취약해진 재무구조는 2021년 강신호 대표가 수장이 돼 개선을 이뤄냈다. 올해 2월 인사에서 강신호 부회장은 다시 CJ제일제당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 후 수장을 맡았다. 최근 글로벌 이커머스의 성장으로 국제배송 수요가 늘어나자 배송·반품·교환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초(超)국경 택배가 시장규모만 100조 원에 이르는, 물류산업의 블루오션으로 꼽히면서 이에 대한 글로벌 전략을 준비하고 있다.
마치 ‘비비고’ 비빔밥처럼…
CJ그룹은 1995년 독립 경영 시작, 이듬해 삼성그룹으로부터 그룹 분리를 거쳤다. 2011년까지 CJ제일제당에 근거해 생활문화기업으로 확장기를 거치며 식품·바이오의 기초를 다졌고,이후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대한통운 인수를 통한 물류·유통산업 진출과 CJ ENM을 통한 엔터·미디어산업까지 4개의 산업군을 완성했다.문제는 이 이후다. 이미 2021년 이재현 회장은 대내외적으로 그룹 성장의 정체를 의식하며 ‘제2의 도약’을 외쳤지만 성장 정체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CJ그룹의 4개 사업군은 제조업 기반인 CJ제일제당을 제외하면 이재현 회장이 일궈낸 사업들이고, 제조업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이들은 ‘온리원’ 정신에서 얘기하듯 남들이 하지 않으면서, 최소 아시아 글로벌 넘버원이 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4개의 사업군은 사업 간 시너지를 내기 어려운 사업 구조를 갖게 됐다. 물론 K-콘텐츠의 글로벌화가 ‘비비고’ 같은 K-푸드 홍보가 돼 매출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이러한 홍보 혜택은 다른 경쟁사들의 제품에도 도움을 주는 등 직접적·독보적 수혜를 보는 것에 한계가 있다.
CJ그룹의 임원 인사를 보면 그룹의 대표적 인물들이 4개 사업군을 돌면서 ‘회전문 인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4개 사업군이 전혀 다른 업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경영을 비슷하게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사업구조에서 성장의 한계를 뚫는 길은 새로운 사업군을 하나 더 개척하든지 아니면 그 사업군에서 확실한 글로벌 넘버원을 만드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현재 CJ그룹의 고민은 이 지점에 있다.
지난해 11월 CJ그룹은 고 손복남 CJ그룹 고문을 기리며 CJ인재원의 메인 교육홀을 ‘손복남 홀’로 헌정했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겸허(謙虛)’ 등 고인이 계승한 기업가 정신을 전파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금 CJ그룹에 절실한 것은 겸허의 정신으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것뿐이 아니다. ‘비비고’의 비빔밥과 같은, 기존 사업군 간 융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