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인요한 의원(당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위원장)이 혁신위원회 활동 종료를 알리며 밝힌 소회다. 이날 혁신위원회는 10월 23일 출범 45일 만에 조기 해산을 알렸다. 원래 종료일보다 17일 당겨 활동을 마감했다.
‘당내 주류 희생’ 권고안을 두고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은 끝에 백기를 든 것이 이른 해산의 이유로 평가됐다. 청년 공천 확대, 20% 컷오프, 과학계 인사 중용 등 혁신위가 제시한 여섯 가지 혁신안 가운데 이른바 ‘대사면’ 외엔 관철한 것이 없어 ‘빈손’으로 끝났다고 지적받기도 했다.
씁쓸함을 남긴 채 퇴장한 인 의원은 혁신위 활동이 끝난 후 정계와 거리를 뒀다. 그러다 올해 3월 국민의힘 위성정당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며 정계에 복귀했다. 22대 총선에 힘을 보태달라는 부름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인 의원은 국민의미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함께 선거를 지휘했다. 총선 전날인 4월 9일엔 “범야권에서 200석을 얻으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개헌이 이뤄질 것”이라며 “대한민국이 바람직스럽지 않은 방향으로 갈 것으로 확신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번에도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인 의원은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8번을 부여받아 국회 입성에 성공했지만 여당은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모두 합쳐 108석 획득에 그치며 참패했다. 이제 인 의원은 22대 국회에서 당내 혁신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192석 거야(巨野)와 맞서야 하는 처지가 됐다.
‘외부인’ 시각에서 ‘내부 혁신’ 이뤄달라
인 의원은 4대째 한국과 연을 맺고 있는 귀화 한국인이다. 그의 외증조부는 한국에서 선교 및 봉사활동을 했다. 특히 조부는 3·1 운동을 지원하고 해외에 알리는 공로를 세웠다. 그의 아버지 휴 린튼은 6·25 전쟁 참전용사로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인 의원은 1959년 전북 전주시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국면엔 광주에 몰래 들어가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고 시민군의 영어 통역을 맡기도 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된 후엔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해 한국 의료 향상에 기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3월 21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특별귀화 1호다.
유년 및 청소년 시절을 호남에서 보내서인지 호남에 대한 애정이 깊다. 2006년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생각의 나무)이라는 저서를 출간할 정도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여러 번 밝혔으며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16대 대선에서도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으며 참여정부 출범 후엔 대북정책 자문을 맡기도 했다.
북핵 문제 등 대북정책과 관련해 진보 진영과 이견을 나타내면서 정치 노선을 보수로 변경했다. 18대 대선에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했다. 하지만 탄핵 국면에선 탄핵에 찬성하는 등 중도적 성향을 나타냈다. 지난해 혁신위원장을 맡게 된 것 역시 이러한 그의 행보와 관련이 깊다. ‘외부인’ 시각에서 내부 혁신을 이뤄내길 주문받은 셈이다.
인 의원은 혁신위원장 임명 당시 “국민의힘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때 이루지 못한 그의 목표는 22대 국회로 넘어왔다. 쉽지 않은 싸움이다. 결국 내부로 진입하지 못한 채 ‘주변인’으로 그칠 수도 있다. 거야의 공세도 견뎌야 한다. 한 여당 관계자의 말이다.
“총선 참패 이후 당내 개혁 요구가 강한 건 사실이지만 인 의원이 주축이 되긴 어려울 것 같다.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도 있는 상황이고, 같이 선거를 지휘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도 떠난 터라 우군(友軍)이 돼줄 사람이 없다. 당내 기반이 있던 인물도 아니다. 거대 야권과 투쟁을 이유로 내부 결속이 중시되다 보면 자칫 ‘거수기’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스스로의 ‘개인기’에 기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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