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말따행따 이재명’ 팬덤 키우려고 애쓴 윤석열·김건희

[강준만의 회색지대] 정치 팬덤이 정당 먹어버린 민주당의 비극③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입력2024-06-0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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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덤 일탈에 대해선 李야말로 ‘말따행따 지도자’

    • “내 말 안듣는다”며 기만적 레퍼토리 반복한 李

    • 개딸 닮아간 민주당 의원들, 탄핵 중독에 이르러

    • 친명계의 한동훈 향한 욕설에 지지자들 환호

    • 권리당원 권한 대폭 확대로 완성된 ‘개딸 민주당’

    • 결국 이재명 팬덤 확대에 일조한 윤석열과 김건희

    [Gettyimage]

    [Gettyimage]

    2023년 10월 23일 구속 위기를 넘기고 당무에 복귀한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단결과 단합’을 외쳤다. 그는 “민주당이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단결하고 단합해야 한다”며 “(체포동의안 처리) 그런 문제로 우리 역량을 소진하고 시간을 보낼 만큼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단결과 단합 위에,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충분한 혁신을 통해 국민의 기대에 맞춰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를 전한 한겨레 기사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지난달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뒤, 일부 친명계 의원과 강성 당원들 사이에선 ‘가결 투표한 의원 색출·징계’ 요구가 들끓었다. 그런데 이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 심판’을 하려면 당내 화합이 우선이라며 여기에 확실히 선을 그은 것이다.”

    이재명은 지도자다운 대인배의 풍모를 보인 걸까. 그럴 리가. 5일 전 광운대 교수 진중권이 예견한 “굿 캅(Good Cop), 배드 캅(Bad Cop)” 전략이었다. 이재명은 화합의 메시지를 내면서 통합을 강조하지만, 다른 친명 지도부는 징계를 언급하며 비명을 견제하고, 이재명의 팬덤은 비명계가 주눅 들고 위축되게끔 괴롭히면서 압박을 가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진 셈이었다.

    이재명 팬덤의 ‘살해 협박 현수막’ 사건

    2023년 10월 23일, 단식 농성 이후 35일 만에 당무에 복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익표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2023년 10월 23일, 단식 농성 이후 35일 만에 당무에 복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홍익표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10월 24일 민주당 의원 이원욱의 지역구 사무실이 있는 경기 화성시 동탄 시내에 비명계 의원들 사진과 함께 ‘민주당 내의 검찰독재 윤석열의 토착왜구 당도5 잔당들’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붙었다. 사진은 윤영찬·이원욱·박용진·박광온·설훈·김종민·이상민·송갑석·조응천 의원의 얼굴에 깨진 수박을 씌워 합성한 것이었다. 현수막엔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를 백 번 천 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라는 문구도 있었다. 한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안 그래도 살해 협박이 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일까지 있었는데, 아랑곳 않고 공개적으로 플래카드까지 내거니 더 불안하다”고 했다.

    이 현수막을 붙인 이재명 지지자들은 이원욱 사무실 앞에서 ‘응징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이원욱 넌 역적이다” “이원욱은 민주당에서 꺼져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동탄을 쪽팔리게 만드는 이원욱은 동탄을 떠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심지어 사무실에 난입해 30분 가까이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한 여성은 “왜 사무실에 이재명 대표 사진을 하나도 안 붙인 거냐. 이원욱 이 자식아, 니가 민주당 국회의원이냐”라며 욕설을 쏟아냈다.



    10월 26일 비명계 의원 조응천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재명 지지자들의 그런 만행에 대해 “이런 행위야말로 당의 통합을 저해하는 굉장히 심한 행위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왜 아무 얘기도, 제지도 안 하고 그냥 놔두냐”며 “말로만 왈가왈부하지 말자며 포용하는 것처럼 하면서 시간은 우리 편이다, 고사(枯死·말려 죽이기) 작전하는 거냐”고 반문했다.

    바로 이날 이재명이 국회에서 전·현직 원내대표단과 함께한 도시락 오찬 자리엔 현 원내대표 홍익표를 비롯해 전 원내대표 김태년·우상호·우원식·윤호중·이인영·홍영표·박광온·박홍근이 참석했다. 공개로 진행된 모두발언에서 이재명은 “분열은 필패이고 단결은 필승이라는 각오로 저부터 솔선수범하고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사진 촬영을 진행할 때만 해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비공개로 전환된 뒤 강성 권리당원들이 비명계 의원들에게 “해당 행위를 하는 쓰레기” 같은 욕설 문자메시지를 쏟아내는 데 대한 이재명 책임론이 제기됐다. 홍영표는 “의원들에 대한 테러 수준에 가까운 공격을 당에서 방치해선 안 된다”고 했으며, 친명계 지도부가 유튜브에서 동료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사례도 지적하면서 “그런 데에 일단 출연 자체를 안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재명은 ‘말따행따 지도자’

    그러나 이재명이 그런 요청을 들을 리 만무했다. 그는 전날 최고위원 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를 “말 따로 행동 따로, ‘말따행따 정부’”라고 비판했지만, 적어도 팬덤의 일탈에 대해선 그야말로 전형적인 ‘말따행따 지도자’였다. 이재명은 전·현직 원내대표단과 함께한 도시락 오찬 자리에서 “당내 ‘통합’ 얘기를 꺼냈다가 나도 ‘문자 폭탄’을 받았다”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 등등에 대해서 한번 세보니까 벌써 6번인가, 8번인가 공개적으로 촉구를 했다. 그런데도 내 말을 듣는 것도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데, 왜 자꾸 이런 기만적 레퍼토리를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4월호에 쓴 글에서 지적했듯이, 이재명은 강성 지지자들의 행패에 대해 부드러운 자제 당부를 가끔 하긴 하지만, 그건 마음에도 없는 하나 마나 한 시늉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재명이 ‘재명이네 마을’ 이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팬덤을 대상으로 한 일체의 선전·선동을 중단하면 간단히 해결될 텐데 왜 마음에도 없는 하나 마나 한 자제 당부를 반복한단 말인가. 팬덤이 그런 당부를 듣지 않는다고 해서 이재명이 추가적으로 더 강한 메시지를 낸 적이 있던가.

    이재명 대표는 공개적으로 친명계와 비명계의 ‘단합’을 강조하면서도 2023년 10월 27일 당시 대전 대덕에 총선 출사표를 던졌던 친명계 박정현 전 대덕구청장을 최고위원으로 지명했다.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박정현 최고위원. [뉴시스]

    이재명 대표는 공개적으로 친명계와 비명계의 ‘단합’을 강조하면서도 2023년 10월 27일 당시 대전 대덕에 총선 출사표를 던졌던 친명계 박정현 전 대덕구청장을 최고위원으로 지명했다.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박정현 최고위원. [뉴시스]

    “저부터 솔선수범하고 앞장서겠다”고? 이재명이 공개적으로 ‘단합’을 강조한 건 10월에만 세 번째였지만, 이 또한 전형적 ‘말따행따’ 발언이었다. 그 말을 한 다음 날인 10월 27일 이재명은 비명계 의원 송갑석의 사퇴로 공석이던 지명직 최고위원 자리에 전 대전 대덕구청장 박정현을 임명했다. 박정현은 이재명이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의 일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음에도, 그다음 날인 24일 친명 유튜브 ‘박시영TV’에 출연해 “그렇게 행동(가결)한 것에 대해서 용납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 ‘원외 친명계’ 인사였다. 게다가 그는 비명계 의원 박영순의 지역구인 대전 대덕에 총선 출사표를 던진 인물이었다.

    비명계에선 “박 최고위원의 지명은 통합이 아니라 동지의 가슴에 비수를 들이대는 행위”(이원욱)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역시 비명계인 윤영찬은 박정현 발탁 이전부터 “당내 현역의원이 있는 곳에서 최고위원을 뽑는 것은 누가 봐도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고 당내 분란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경계했다.(결국 대전 대덕엔 박정현이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이원욱에 대한 살해 위협 현수막 사건에 앞서 윤영찬의 지역구(경기 성남 중원)에도 “윤석열 대통령에 부역했다” “이 대표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린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윤영찬은 10월 20일 해당 현수막을 건 당원 A에 대해 중앙당 윤리심판원에 징계를 청원했다. 그러나 당 지도부는 이에 대해 침묵했다. 이에 비명계 의원 이상민은 26일 페이스북에서 “너무 부끄럽고 소름 끼칠 지경”이라며 “이 대표는 수수방관하고 있을 건가. 아니면 즐기고 있는 건가. 통합? 헛웃음이 난다”고 썼다.

    “개딸은 준동을 막아야 할 ‘파쇼’다”

    대표적 비명계 인사로 강성 당원들의 지속적 공격에 시달린 이원욱·조응천 전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 이준석과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22대 총선 경기 화성을과 남양주갑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준석 공동대표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대표적 비명계 인사로 강성 당원들의 지속적 공격에 시달린 이원욱·조응천 전 의원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 이준석과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2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22대 총선 경기 화성을과 남양주갑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치고 이준석 공동대표와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11월 8일 비명계 의원 김종민은 KBS 라디오 ‘최강시사’에 출연해 개딸들이 이재명 비판하는 모든 의원은 다 돌아다니면서 낙선시키겠다고 사진을 붙이고 다니고, 지역구 가서 공격하고 꽹과리 치고 플래카드 건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다음에 친명 유튜버들이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사람은 당선시키고 이 사람은 떨어뜨리자는 운동을 한다”며 “요새는 마을 이장 선거도 이 정도로 불공정한 선거는 안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런데 지도부가 이를 가만 놔두고 있다”며 “이런 사람들 공천 배제를 시키든가 아니면 당직에서 이거를 징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선거 준비와 관련해 김종민은 도덕성의 경우 “당대표 사법 방어하고 방탄 정당 되고 돈봉투 감싸고 코인 감싸고 내로남불 정당이 돼버렸다”고 했고, 당내 민주주의의 경우엔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는 건 OK, 나머지는 다 수박, 나머지는 다 배신, 역적이 된 정당을 국민들이 어떻게 지지하느냐”고 지적했다.

    11월 9일 조응천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저는 민물고기로 담수에 들어왔는데 지금 (당이) 소금물이 돼서 숨을 쉴 수가 없다. 당 상황이 질식할 지경”이라면서 “(당을 바꾸기 위해) 12월까지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이후로는 탈당 등 이탈을 감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질식할 지경의 당 상황’에 대해 “당내 패권주의, 사당화, 팬덤 정치”를 꼽으며 “당내 민주주의가 완전히 와해됐다”고 했다.

    이어 조응천은 “이재명 대표가 (당대표가) 된 이후 1년 반 이상 우리 당은 사당화의 길로 계속 가고 있다”며 “총선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대표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좀 다른 목소리를 내면 그냥 ‘너는 역적’ ‘너는 수박’ 그런 분위기가 (당 안에) 꽉 차 있다”고 말했다. 그는 “끝까지 민주당을 정상적인 정당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겠다”면서도 “그래도 끝까지 (그대로) 간다면 이게 과연 길인가, 접어야 되나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을 주도했던 전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함운경은 ‘신동아’(2023년 12월호)에 기고한 “개딸 방치하면 곧 중앙당사 점거하는 날 올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의 학생운동권 경험을 거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0년대 초반 학생운동권에서는 전두환 군사정권을 ‘파쇼’라고 했다. (…) 한동안 쓰지 않아 잊힌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개딸’들의 수박 색출과 테러 위협 때문이다. 특정 열혈 지지자들을 ‘빠’라고 하는데 공공연한 수박 색출과 정치생명을 끊어버리겠다는 테러 위협을 일삼는 ‘빠’들을 과거 ‘파쇼’에 빗대 우리는 ‘빠시즘’이라고 칭한다. 그것은 결국은 파시즘이다.”

    이어 그는 “그런데 다수파에 속한 의원 누구 하나 나서 개딸을 나무라지 않는다. 당 지도부가 나서 당내 분란을 일으키는 이른바 개딸 당원을 제명 처리하거나 징계를 내려 테러 행위를 막아야 함에도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오늘은 지구당사 앞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위협하지만 내일은 중앙당사를 점령하고 온갖 요구를 걸며 당 운영을 마비시킬 수 있다. 이를 명분으로 개딸 우두머리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욕심을 채울 것이다. 점잖게 충고해서 끝날 일이 아니다. 한때 어깨 걸고 같이 싸웠던 옛날의 동지에게 보내는 충고다. 개딸들은 양념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준동을 막아야 할 ‘파쇼’다.”

    탄핵으로 정권 잡은 민주당의 탄핵 중독

    개딸이 민주당 의원을 닮아가는 건가 아니면 의원들이 개딸을 닮아가는 건가. 11월 9일 민주당은 소속 의원 168명 전원 명의로 이재명의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는 수원지검 2차장검사 이정섭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발의했으니 말이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이정섭의 직무는 그 즉시 정지되기 때문에 이재명 수사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의 체포동의안 부결에 총력을 쏟았던 민주당이, 이제는 수사 검사 탄핵이라는 초유의 방식으로 더 강력한 방탄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은 탄핵소추안에서 이정섭이 “권한을 남용해 불법행위를 했다. 그 불법성이 매우 막중해 직을 박탈함이 타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문제 삼는 그의 비위는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위장전입, 스키장 리조트 이용 도움을 받은 청탁금지법 위반, 처가가 운영하는 골프장 직원 등에 대한 범죄 기록 조회 등이었다. 민주당 안에서도 “이게 탄핵 사안인가” “검찰이 수사하고 징계하면 된다”는 비판이 나왔었다. 하지만 원내대변인 윤영덕은 이날 의원총회가 끝난 뒤 “이견은 없었다”며 “나쁜 짓 하면 반드시 처벌받거나 징계된다 이런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탄핵안은 ‘처럼회’ 소속 의원 김용민이 대표 발의했으며, 개딸들은 연일 검사 탄핵을 서두르라고 압박했다. 대검은 이날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의 반복적인 검사 탄핵은 제1당의 권력을 남용해 검찰에 보복하고 수사와 재판을 방해하려는 정치적 의도”라며 “사법을 정치화하려는 시도로 다수에 의한 법치주의 파괴”라고 했다. 이어 “탄핵은 공직자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된다”며 “민주당의 탄핵 주장 사유는 의혹이 제기된 단계이거나 재판 절차에서 다뤄지고 있는 사안으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재명의 팬덤 정치에서 이성과 논리는 설 땅이 없었다. 이재명의 강성 지지층은 국회의장 김진표의 휴대폰 번호가 명기된 글을 SNS를 통해 살포하며 이정섭 등에 대한 탄핵안의 신속 처리를 압박했다. 9일 본회의 종료로 탄핵안이 처리되지 못하자 10일 김진표가 본회의를 열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들은 “김진표는 대통령에게 넘어간 2중대”라고도 했다.

    민주당은 이정섭 탄핵안을 철회하고 11월 30일에 다시 발의하기로 했다. 국회법상 탄핵안은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이 지나면 자동 폐기된다. 국민의힘의 반대와 국회의장의 해외 출장으로 72시간 내 본회의 개최가 어려워지자, 탄핵안을 낸 지 하루 만에 없던 일로 만들고 나중에 재발의하겠다는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사상 초유의 사법 방해이자, 극한의 ‘꼼수 정치’”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이재명 방탄 5종 세트’라며 “방탄 출마·방탄 당대표 당선·방탄 국회·방탄 단식·방탄 탄핵”이라고 했다.(이정섭 탄핵안은 12월 1일 가결됐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 9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송영길의 선전포고’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한동훈을 “반드시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 9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송영길의 선전포고’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한동훈을 “반드시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박근혜 탄핵 덕분에 정권을 잡았던 민주당은 그 달콤한 기억을 잊지 못한 채 아예 탄핵에 중독된 것처럼 보였다.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던 전 민주당 대표 송영길은 11월 9일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법무부 장관) 한동훈을 반드시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말이다. 그는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나. 이 어린놈이 국회에 와서 (국회의원) 300명 자기보다 인생 선배일 뿐만 아니라 한참 검찰 선배를 조롱하고 능멸하고”라며 “이런 놈을 그냥 놔둬야 되겠나. 내가 물병이 있으면 물병을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했다.

    이에 한동훈은 11일 입장문을 내고 “어릴 때 운동권 했다는 것 하나로 사회에 생산적 기여도 별로 없이 자그마치 수십 년간 자기 손으로 돈 벌고 열심히 사는 시민들 위에 도덕적으로 군림했다”며 “고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수십 년간 후지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에 ‘위장 탈당’의 주인공인 민주당 의원 민형배는 13일 한동훈을 향한 막말을 ‘XX’로 표기한 글을 페이스북에 써 올리며 송영길 지원 사격에 나섰다.

    송영길의 욕설에 감명을 받은 걸로 보이는 민형배는 “어이없는 XX네, 정치를 누가 후지게 만들어”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에서 “정치를 후지게 한 건 한동훈 같은 XX들”이라며 “자기 본분이 뭔지 알면서도 그걸 개무시하고 정치에 끼어들어 물 흐리고 판 어지럽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XX’에는 자슥 사람 인간 분들 집단 가운데 하나를 넣고 싶은데 잘 골라지지 않는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라고 했다. ‘XX’가 ‘인간이 아닌 것’을 표기했다는 의미였다.

    이날 한동훈보다 연 나이로 2살 어린 ‘처럼회’ 소속 의원 유정주도 페이스북을 통해 “그닥 어린 넘(놈)도 아닌, 정치를 후지게 만드는 너는, 한때는 살짝 신기했고 그다음엔 구토 났고 이젠 그저 #한(동훈) 스러워”라는 글을 올렸다. 다음 날엔 유정주보다 한 살 어린 김용민이 “야당이 정치적 계산으로 탄핵을 남발한다”는 한동훈의 발언을 보도한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금도를 지키지 못하면 금수(禽獸)다. 한동훈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금수의 입으로 결국 윤석열 대통령을 물 것”이라고 적었다.

    이들의 욕설은 그 자체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국의 장관에게 ‘어린놈’이니 ‘XX’니 ‘금수’니 하는 욕설을 내뱉어도 괜찮다고 믿는 그들의 정신상태, 그리고 이런 정신상태에 대해 쏟아지는 지지자들의 환호였다. 어디 그뿐인가. 민주당은 스스로 ‘탄핵중독당’이라는 걸 과시하려는 듯, 11월 28일 방송통신위원장 이동관에 대한 두 번째 탄핵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엉뚱하게 ‘검찰청법 규정’에 의해 탄핵한다고 써냈다. 이정섭 탄핵안에 있는 부분을 아무 생각 없이 ‘복붙(복사해 붙여 넣기)’ 하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민주당은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정략에 찌들어 탄핵 제도를 오·남용하는 민주당의 탄핵 중독을 스스로 폭로한 사건이었다.

    팬덤정치의 강화·고착을 위한 당헌 개정

    11월 27일 민주당이 당무위를 열어 권리당원의 권한을 대폭 확대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했는데, 그 핵심 내용은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 투표에서 권리당원과 대의원의 표 반영 비율을 기존 60대 1에서 20대 1 미만으로 고쳐 권리당원 투표 비중을 높이고, 선출직 공직자 평가 하위 10%인 현역의원의 경선 득표 감산 비율을 20%에서 30%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재명은 당무위가 끝난 뒤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1인 1표제에 대한 열망이 매우 큰 건 사실인데 단번에 넘어서기는 어렵다”며 “지금은 비율을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개딸 요구에는 못 미치지만 이번 개정이 궁극적으로 대의원제 폐지로 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개딸들은 대부분 권리당원이기 때문에 사실상 민주당을 명실상부한 ’개딸 민주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비명계는 “이재명 사당화”라며 반발했다. 이원욱은 당무위 개최 소식이 전해지자 페이스북에 “얼마나 갈 거라고 이러는지, 권불삼년 화무십일홍이라 했거늘”이라고 썼다. 김종민은 전날 국회 토론회에서 “사실상 대의원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이라며 “일부 유튜버의 목소리, 팬덤을 갖고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당내 민주주의 포기 선언”이라고 했다. 비명계는 “왜 하필 지금이냐”고도 했다. 전당대회는 이재명의 대표 임기가 끝나는 2024년 8월에 열리는데 지금 투표 비율을 조정하는 의도가 뭐냐는 것이다. 당 안에서는 총선 공천을 앞두고 개딸 눈치가 보여 누구도 반대하지 못한다는 점을 노렸다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 중앙위원회는 12월 7일 이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날 중앙위 투표 방식마저 ‘꼼수’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당헌 개정 사안은 당대표 선출법과 관련된 당헌 제25조, 내년 총선 공천 룰을 바꾸는 당헌 제100조 두 건이었는데, 각 안건에 찬반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닌 ‘두 안건 개정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찬반을 대답하게 했기 때문이다. 즉 ‘모두 찬성’이거나 ‘모두 반대’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한 수도권 비명계 의원은 “어차피 중앙위원회 구성이 당 지도부 입맛대로라 당헌 개정은 예상했었다”면서도 “투표 방식을 보고 뭐 이런 온갖 꼼수가 다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 당헌 개정은 팬덤 정치의 강화·고착을 위한 것이었으니, 이재명은 문재인을 확실하게 압도하면서 ‘한국 팬덤 정치의 아버지’로 불려도 좋을 업적을 이룬 셈이었다. 중앙위원회 토론 과정에서 비명계 의원들은 “민주당 꼴이 나치당을 닮아가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반발하긴 했지만, 너무 점잖았다. 사실 돌이켜보건대, 비명계는 이때 결사적으로 싸웠어야 했다. 현역의원 페널티를 강화한 개정은 2024년 4·10 총선 경선에서 비명계 의원들을 대량 탈락시키는 ‘꼼수’가 되니 말이다.

    2월 7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KBS 신년 대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2월 7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KBS 신년 대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죽도록 좋아하거나 죽도록 미워하는 것의 차이

    이런 일련의 ‘이재명 사당화’ 작업은 민주당이 4·10 총선에서 대패할 가능성을 높여준 자해(自害)였지만, 이재명에겐 윤석열이 더 큰 사고를 쳐줄 거라는 기대감, 즉 믿는 구석이 있었던 걸까. 민주당이 당무위를 열어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한 11월 27일 뜻밖의 사건이 터져 나왔으니 말이다. 그건 바로 윤석열 부인 김건희의 명품 백 사건이다.

    이 사건을 기획하고 실행한 주체는 서울의소리라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서울의소리는 김건희의 코바나콘텐츠 사무실에서 목사라는 최재영이 김건희에게 명품 백을 전달하는 장면을 손목시계로 몰래 촬영토록 한 영상을 1년 2개월간 묵혔다가 바야흐로 총선 국면으로 접어든 11월 27일에 터뜨렸다. 명품 백보다 더 심각한 건 “저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끊어지면 적극적으로 남북문제 (해결에) 나설 생각”이라며 “우리 목사님도 한번 크게 저랑 같이 일하자”는 김건희의 발언이었다. 이는 과거에 “내가 정권 잡으면” 운운했던 김건희의 발언을 상기시키면서 “윤석열 위에 김건희가 있다”는 세간의 설을 확인시켜주는 효과를 냈다.

    12월 8일 동아일보 대기자 이기홍은 “이 나라 보수는 ‘김건희 리스크’를 더 이상 안고 갈 수 없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여사는 하루빨리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관저를 떠나 서초동 자택 등 사가(私家)로 거처를 옮겨 근신해야 한다. (…) 윤 대통령은 특별감찰관을 조속히 임명해 확고한 의지를 피력해야 한다.”

    12월 21일 법무부 장관 한동훈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명되자, 다음 날 이기홍은 “특검 정면 돌파해야 윤석열도 살고 한동훈도 산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대통령을 설득해 ‘총선 후 특검론’을 관철”하고 “특별감찰관 임명도 설득”해야 한다며, “그럴 자신과 의지가 없다면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게 좋다”고 했다.

    명품 백 사건은 희대의 악랄한 정치공작이었지만, 그건 ‘김건희 사건’이라기보다는 ‘윤석열 사건’이었다. 김건희가 그런 일을 당하게끔 또는 하게끔 방치해 온 장본인이 윤석열이었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한동훈이 이 사건에 대해 가장 현명한 진단과 처방을 내린 이기홍의 말대로 했더라면 반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윤석열은 김건희보다 더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고, 한동훈은 올바른 문제의식과 시도는 있었을망정 윤석열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줄 자신과 의지도 없이 선거판에 뛰어들었다는 걸 우리는 곧 보게 된다.

    민주당이 ‘이재명의 민주당’이 됐듯이 이제 정치는 곧 팬덤 정치를 의미하는 세상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2024년 4·10 총선을 결정한 건 윤석열·김건희에 대한 증오·혐오였다는 진단이 맞다면, 윤석열·김건희는 사실상 ‘이재명 팬덤’을 키우기 위해 애썼다고 말할 수 있다. 팬덤을 싫어한다는 사람들마저 이른바 ‘안티팬덤’의 일원으로서 팬덤 정치에 일조한 게 아니고 무엇이랴. 누군가를 죽도록 좋아하거나 죽도록 미워하는 것의 차이가 무어 그리 대단하겠는가. 아니 누군가에 대한 증오·혐오의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그 누군가를 깨부숴 줄 사람의 팬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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