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천문학적 기업 상속세에 임직원 시름도 깊어진다

  • 김형민 아시아경제 기자

    입력2024-06-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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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 최대주주 상속세율, 할증 붙으면 최고 60%

    • 삼성 12조, LG 9900억, 효성 4000억, 한진 2700억 원

    • 오너가 상속세 갈등·기업 지배구조 변화에 임직원 불안↑

    • “상속세 최고세율 너무 과해, 전체적 조율 필요한 시점”

    [Gettyimage]

    [Gettyimage]

    제22대 국회가 5월 30일 임기 4년을 시작하는 가운데, 재계의 관심은 상속세 개편 여부로 모이고 있다. 재계는 세율 감축이나 납부 방식의 변경 등 상속세 개편을 통해 기업 오너 일가의 상속세 부담이 낮아지길 기대한다. 이는 2022년 3월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공약이기도 해 재계에선 현실화에 대한 기대가 꽤 컸다.

    윤 대통령 당선 후 기획재정부가 상속세 납부 방식을 현행 상속세에서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는 구체적 방안까지 발표하면서 변화를 목전에 둔 것으로도 보였다. 하지만 상속세 개편은 유권자에게 민감한 현안인 탓에 총선 이후로 미뤄지는 양상을 보였다. 4월 총선 이후 국회가 거야(巨野)로 구성되면서 야권이 정부의 개편안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줄지 사실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황이 어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가 곧 어느 시점에는 상속세 개편 절차를 밟을 것이란 전망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재계는 물론 대중도 상속세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 어떤 식으로든 정부와 국회는 응답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는 2000년 1월 1일 개편 이후 24년간 단 한 번도 고치지 않았던 상속세율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최근 우리 경제가 침체되면서 기업들의 오랜 고심거리였던 상속세 부담을 줄여 영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줘야 한다는 인식이 맞물려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는 통계 지표도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반도체,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각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경쟁국보다 현저하게 높은 것으로 확인된 상속세율이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더해지면서 개편 요구는 더욱 뜨거워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도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상속세는 개편돼야 한다는 인식에는 공감하는 것으로 전해져 논의의 장이 열릴 것이란 기대가 있다. 다만 주로 근로자, 저소득층으로부터 지지를 많이 얻는 야권의 성격상 손을 봐야 하는 상속세 구간이나 방식에서는 정부와 이견을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1세대 경영인들 별세, 상속세 논쟁 수면으로

    상속세는 최근 5~6년 사이 ‘1세대 경영인’들이 잇달아 유명을 달리하면서 논쟁이 촉발됐다. 2018년 5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2019년 4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2020년 8월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 같은 해 10월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지난해 8월과 10월에는 각각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과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이, 지난 3월에는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우리 곁을 떠났다. 대부분 우리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그룹사들을 키워 현 위치에까지 오르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1세대 선구자들이다.

    재계는 이전까지 높은 상속세율로 겪게 될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다가 그룹 회장들의 별세로 큰 액수의 상속세를 떠안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문제의식이 생겼다. 선대 회장들이 남긴 유산 대부분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대다수 오너 일가는 우리 세법이 정한 상속세율 구간 중 가장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다. 우리 세법은 유산이 1억 원 이하면 세율이 10%, 1억 원 초과~5억 원 이하면 20%, 5억 원 초과~10억 원 이하는 30%, 10억 원 초과~30억 원 이하는 40%, 30억 원을 초과하면 50%다. 오너 일가 대부분은 이 가운데 50%가 적용되는 대상이다. 최대주주가 기업을 승계받으면 평가액 할증평가 20%가 가산되기 때문에, 할증이 붙으면 상속세율은 최고 60%까지 껑충 뛰는 경우도 있다.

    이때 추산되는 상속세 규모는 일반인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에 이른다. 이건희 회장 별세 후 삼성그룹 일가가 짊어진 상속세는 12조 원이었다. 구본무 회장이 별세한 LG그룹은 9900억 원, 조양호 회장이 떠난 한진그룹은 2700억 원인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근래인 효성그룹의 경우에는 조석래 명예회장의 별세 후 납부해야 하는 상속세가 약 4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갈등과 불안의 씨앗이 된 상속세

    임종윤·종훈 형제와 송영숙·임주현 모녀 간 대립으로 치달은 한미약품그룹 일가의 경영권 분쟁도 상속세가 시발점이었다. 임종윤(왼쪽)·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4월 21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임종윤·종훈 형제와 송영숙·임주현 모녀 간 대립으로 치달은 한미약품그룹 일가의 경영권 분쟁도 상속세가 시발점이었다. 임종윤(왼쪽)·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이 4월 21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재산의 일부 기증 등 여러 경로를 통한 세액 감면, 일정 기간을 정해서 상속세를 나눠서 내는 ‘연부연납’ 제도 등이 마련돼 있다. 그럼에도 오너 일가는 상속세를 책임지고 완납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세 모녀는 함께 상속세 9900억 원 가운데 LG CNS 지분에 대한 몫으로 산정된 108억 원이 부당하게 산정됐다며 용산세무서장을 상대로 불복소송을 제기했지만 4월 4일 패소했다.

    임종윤·종훈 형제와 송영숙·임주현 모녀 간 대립으로 치달은 한미약품그룹 일가의 경영권 분쟁도 상속세가 시발점이었다. 임성기 회장이 별세한 후 한미약품그룹 일가에 부과된 상속세는 약 5400억 원. 이에 쓸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모녀가 OCI홀딩스와 통합을 추진했고 이에 따라 형제와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오너 일가들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 지분을 파는 경우도 발생해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4월 삼성전자 지분 524만7140주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하기 위한 절차를 밟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분 양이 일반인이 가늠하기 힘든 수준으로 일반적 방식으로는 매각이 힘들어 블록딜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총 매각 규모는 4467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 가운데 이 사장은 이 돈을 상속세 납부에 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조현상 효성 부회장도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효성중공업 보통주 16만817주를 팔아 약 670억 원을 확보했다. 정확한 사용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상속세 납부에 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한 기업 오너들의 지분 매각은 오너 본인은 물론 기업 임직원의 삶에 영향을 미칠 행보여서 불안한 마음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분 매각은 곧 기업에 대한 현 오너들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경우에 따라선 최대주주가 변경될 여지가 생길 정도의 매각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기업 구성원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오너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새 오너가 기업에 입성하면 보통의 경우 조직개편과 구조조정이 가장 먼저 이뤄진다. 이때 임직원들은 퇴사, 권고사직 등으로 자신이 오랜 기간 쌓아 올린 커리어를 박탈당하는 일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대기업에선 흔치 않은 일이지만, 중견·중소기업 경우에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오너가 경영을 포기하는 일이 속출해 임직원들의 생업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이를 감안하면 상속세 부담은 단순히 기업 오너만의 일이 아니라, 임직원 등 기업 구성원 전체의 문제로 번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상속세 부담에 따른 오너 또는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는 기업활동의 연속성을 깨고 장기적으론 기업 미래를 불안케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은 오너 일가가 오랜 기간 경영권을 영위할 때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행태를 보일 때가 많다. 한 사람이 이끌던 그룹사를 그의 경영 방식과 철학을 잘 알고 있는 자손들이 물려받아 경영하는 일련의 과정은 기업이 장기적 플랜을 가지고 그들만의 사업 특색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한다. 이때 기업은 큰 리스크 없이 발전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안정적으로 제 역할을 해내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획일적 감축은 우려, 미세한 조정은 가능”

    2022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1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268인 찬성 214인 반대 27인 기권 2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2022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1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268인 찬성 214인 반대 27인 기권 2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상속세가 “풀기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강조한다. 조정을 하더라도 아주 세밀하고, 치밀하게 논의하고 진행해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상속세의 기본 책무는 나랏일에 쓰이는 세수를 확보하고 부의 재분배를 통한 사회의 공평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무너뜨리지 않고 국민들도 수긍할 수 있는 합당한 개편을 이뤄내야 하는 과제가 정부와 국회에 있다.

    우선은 소득계층, 기업 유형별로 조정이 필요한 지점을 세분화해 획일적 개편은 반드시 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세밀하지 않은 개편은 특정 기업에 이중 삼중으로 혜택을 줘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어서다. 특히 ‘가업상속공제’를 받고 있는 중소기업의 상황은 개편 때 참조해야 한다.

    가업상속공제는 별세한 피상속인이 생전에 10년 이상 경영한 중소기업을 상속인에게 정상적으로 승계한 경우 최대 600억 원까지 상속 공제를 해줘 가업 승계에 따른 상속세 부담을 크게 경감해 주는 제도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상속세 부담으로 문을 닫는 경우를 방지하고 이를 통해 중소기업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제도의 취지가 있다.

    최대 600억 원까지 공제해 준다면 현재로서도 상당한 규모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 상속세 개편으로 세율까지 대폭 낮아지면 조세 형평성에 문제가 생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우리 중소기업에는 성실하고 근면한 사장님도 많지만, 아직도 일각에는 직원들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는 ‘악질 사장’들이 있다. 이들도 상속세 개편으로 혜택을 받아 대대손손 가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우리 국민이 용납할 수 없고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막아야 하는 폐해다.

    현재의 상속세 제도와 관련해 백주선 법무법인 융평 대표변호사는 “상속세 문제는 전체적으로 우리 조세가 공평하게 형성돼 있느냐의 관점으로 먼저 접근해야 할 것이라 보는데, 현재 우리 상속세 부과 체계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보기는 또 어렵다”고 진단했다. 다만 “상속세 최고세율이 실질적으로 너무 과해서 이제는 구간을 좀 낮추거나 전체적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겠다는 국민의 의사가 확인됐다는 전제하에 미세한 조정은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정부와 국회도 큰 대립 없이 함께 잘 논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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