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호

국민이 국가 지킨 영웅 일상적으로 추모하는 나라

[백승주 칼럼] 핵잠수함보다 중요한 호주의 안보 寶劍 ‘The Last Post’

  •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前국회의원

    입력2024-05-3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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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군사 지도자들, 중국 도전에 동맹국 공동 대응 호소

    • 오커스(AUKUS) 안보협력으로 부상한 호주의 군사력

    • 호주 전쟁기념관서 매일 심금 울리는 ‘The Last Post’

    • 추모 시설은 미래 국가 에너지 만드는 발전소

    ‘The Last Post’ 세리머니는 오스트레일리아 전쟁기념관 명예의 전당에서 매일 열린다. [Gettyimage]

    ‘The Last Post’ 세리머니는 오스트레일리아 전쟁기념관 명예의 전당에서 매일 열린다. [Gettyimage]

    5월 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사령관 취임식이 있었다. 사무엘 파파로(Samuel Paparo, Jr) 미 해군 대장이 새 사령관으로 취임했다. 그의 취임사가 국내외 안보전문가의 귀와 눈을 끌었다. 그는 “세계는 중국의 걱정스러운 행동과 급속한 군비증강에 직면해 있다. 중국의 침략적이고 팽창주의적 주장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러시아, 북한 그리고 폭력적인 극단주의 단체들도 평화와 안정,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지키기 위해 동맹국과 파트너, 합동군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태평양 지역 군사·국제 정세에 대한 파파로 사령관의 인식과 대응 방향은 미국의 전략적 인식과 대응 방향이기도 하다. 취임식에 참석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도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대만해협, 동중국해, 남중국해는 물론 태평양 도서국가들 사이에서 중국의 우려스러운 행동을 볼 수 있다”고 중국을 직격했다. 오스틴 장관 역시 중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 방향으로 “동맹, 파트너들과 연계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라는 공동 비전을 진전시키고 있다”면서 파파로 사령관의 대응 방향을 함포사격 수준으로 엄호 지원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지금 2년 이상 2.5차 수준의 세계전쟁 포성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가 직접 전쟁을 하고 미국 등 나토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거의 1·2차 세계대전 수준, 2.5차 세계대전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하마스 간 충돌을 넘어서는 큰 전쟁을 예고하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평화에 대한 도전이 여러 갈래로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 군사 지도자들은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도전을 직시하고, 동맹국들에 공동 대응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남사군도 등에서 진행되는 중국과 주변국 간 마찰을 미국 당국은 유의미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적 판단과 대응에 가장 발 빠르게 호응하는 국가가 호주다. 어떤 측면에서 호주는 미국의 전략적 대응을 활용해 글로벌 외교대국으로 가는 길을 개척하며 아스팔트를 깔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호주가 닦는 길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커스 안보협력과 호주의 선택

    오커스(AUKUS)는 미국·영국·호주 3국의 안보협력을 말한다. 2021년 9월 15일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워싱턴에서 개최한 3국 정상회의에서 미국·영국·호주 간 삼국 안보협력에 합의했다. 오커스 안보협력은 크게 두 가지 필러(Pillar·핵심 콘텐츠)로 구성, 추진되고 있다. 첫 번째 필러는 미국이 보유한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영국과 협력해 호주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잠수함 기술이전을 직접 발표했다. 미국이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외국에 제공하기로 방침을 수립한 것은 1960년대 영국 이후 약 60년 만이다. 미국은 핵잠수함 기술과 잠수함에 탑재되는 몇몇 첨단 탐색기 제작 기술 등의 해외 유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일부 내용은 미국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오커스의 두 번째 필러는 해저로봇 기술, 인공지능, 극초음속, 양자 기술, 사이버, 전자전 기술 등 첨단 군사기술 분야에서의 3국 간 협력을 확대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현존 전력은 동맹 태세로 공유하고 더 나아가 미래 첨단 전력 증강 노하우를 공유하자는 초강력 협력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호주는 오커스 안보협력을 통해 안보·외교 대국으로 가기 위한, 다음 몇 가지 이정표를 분명히 했다. 첫째, 글로벌 및 로컬 차원에서 진행되는 진영 대결 구도에서 미국 진영에 가담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주변국이 이를 의심하면 낭패를 당할 것이다”라는 대외정책 광고판을 만천하에 게시한 셈. 이는 미국과 호주의 군사동맹에 대해 중국 등 다른 나라가 절대 의심하지 않도록 대외정책 방향을 명확히 한 것이다. 향후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해 개입하는 아태 지역 분쟁에 미국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기도 하다. 대만-중국 간 충돌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둘째,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을 줄이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엄청난 예산 소요가 수반되는 원자력 잠수함 건조 기술을 이전받는 등 독자 군비를 강화하는 이유는 종국적으로 미국에 대한 군사적 의존을 줄여나가겠다는 국가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핵추진잠수함뿐만 아니라 재래식 군비를 강화할 계획도 발표했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우리나라와 장갑차, K9자주포 협력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해군력 증강을 위한 대규모 함정 획득 사업도 벌이고 있다. 1901년 독립한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세계사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도약하기 위한 안보정책을 선택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호주 당국은 호주 안보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의 도발 준비에 소요되는 시간, 역으로 그 징후를 파악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10년 정도로 추정한 종래의 판단을 크게 수정해 3~4년으로 단축한 것으로 알려진다.

    마지막 나팔소리의 울림

    2021년 9월 15일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워싱턴에서 개최한 3국 정상회의에서 오커스(AUKUS) 안보협력에 합의했다. [뉴시스]

    2021년 9월 15일 당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워싱턴에서 개최한 3국 정상회의에서 오커스(AUKUS) 안보협력에 합의했다. [뉴시스]

    필자는 4월 오커스를 통한 외교 강국의 길을 가고 있는 호주를 직접 방문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당국으로부터 전쟁기념관 명예의 전당에서 진행되는 ‘The Last Post(마지막 나팔소리)’ 행사에 참석해 줄 것을 권유받아서다. 군대에서 마지막 나팔소리는 하루 일과가 끝났으니, 취침을 시작하라는 명령 성격의 시그널이다. 장례식과 추도식에서 들을 수 있는 ‘The Last Post’는 망자의 영면을 기원하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상징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전쟁기념관 명예의 전당에서 ‘The Last Post’ 세리머니는 매일 오후 4시 30분 호주 국가(Austraian National Anthem)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트럼펫의 가슴 아픈 선율이 혼령들을 애도하고 참석자들의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마음이 더 깊어지도록 돕는다. 특별 초청된 내외 방문객은 준비한 화환을 명예의 전당 연못 앞에 헌정한다.

    의식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위해 순직한 병사의 스토리를 소개하는 데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에서 10만3000명 이상의 호주 국민이 호주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순국했다. 명예의 전당에는 그들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름 중 한 분에 얽힌 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런 다음 송가를 낭송하고, 마지막 기둥을 울리는 것으로 세리머니가 끝난다.

    행사에는 호주의 수도 캔버라를 방문한 국내외 인사가 참석한다. 필자가 참가한 그날도 백악관 고위층, 미군 장성 등 주요 인사가 행사에 참가하고 헌화했다. 가족 및 지인 요청을 받고 큐레이터의 검증을 거쳐 순국한 행사 주인공이 선정된다. 선정된 주인공의 히스토리와 스토리는 학예사들의 검증을 거쳐 작성되며 행사 당일에 낭독된다.

    ‘The Last Post’ 행사에 참가하면서 필자는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째는 1901년 독립한 호주가 20세기 세계전쟁에 참가해 10만3000명이나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이다. 6·25전쟁 기간 중에도 1만7000명이 참전해 약 340명이 사망하고 1200명이 부상한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 영국과 함께 세계사의 한 축이 되는 과정에서 호주 장병 10만3000명이 호주 역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오늘 호주 국민이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무기를 든 호주인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는 글귀가 마음을 울린다.

    둘째는 휴머니즘이다. 10만3000명 영웅의 히스토리를 등가적으로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매일 ‘The Last Post’ 세리머니를 할 때마다 순국 당시 계급이나 역할과 관계없이 이들 중 한 명의 스토리를 소개함으로써 명예의 전당에 새겨진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영웅으로 추앙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살아서는 계급도 역할도 있었지만 죽어서는 같은 영웅으로 대접받는 것이다. 순국한 모든 이를 한 명씩 세리머니에 소개하려면 300년 넘게 걸릴 듯하다.

    셋째는 영웅에 대한 냉정한 검증이다. 가족이 영웅으로 소개해 줄 것을 호주 당국에 요청할 기회를 주며, 영웅의 스토리는 학예사들이 진실을 바탕으로 철저히 검증하고, 검증된 내용을 국민과 공유하는 절차를 거친다.

    군사력과 애국심의 시너지

    미국이 보유한 핵추진잠수함. [위키피디아]

    미국이 보유한 핵추진잠수함. [위키피디아]

    미국이 핵추진잠수함 건조 기술을 호주에 이전하는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호주의 군사 근육은 매우 튼실해질 것이다. 호주가 핵추진잠수함 건조 기술을 이전받기 위해 대학에 관련 전공 학생 3000∼4000명을 증원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오커스 관련 전공 학생을 늘리려는 정부 방침과 계획에 반발하는 뉴스는 본 적이 없다. 미국과 영국만 갖고 있는 핵추진잠수함을 건조·운영하게 되면 호주는 군사적 위엄뿐만 아니라 국제적 영향력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호주 정부의 군비증강 노력보다는 ‘The Last Post’ 세리머니가 만들어내는 애국심이 호주를 외교대국으로 이끄는 데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호주 전쟁박물관은 4억~5억 달러 예산으로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큰 예산 배정을 국회가 쉽게 동의해 주느냐고 호주 당국에 물었다. 안보·대외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회와 정부와 국민 사이의 견해차가 크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초당적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호주는 이미 4세대 전쟁 승패의 관건이 될 정신 전력, 지도자의 정치적 의지라는 명제를 안보 태세 구축에 접목하고 있는 것이다.

    국토 면적과 경제력을 고려할 때 호주는 머지않아 외교 강국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핵추진잠수함보다는 ‘The Last Post’가 만들어내는 애국심이 호주를 대국으로 만드는 기초 에너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1788년 대영제국이 범죄자 유배지로 호주 지역을 선택한 지 113년 만인 1901년, 호주는 독립했다. 인구 2700만 명인 호주가 1인당 국민소득은 영국보다 이미 2만 달러 이상 많은 부국이 됐다. 이제 호주는 오커스 동맹을 발판으로 세계 중심 국가의 길을 내딛고 있다. 미국·영국과의 동맹이 디딤돌 구실을 한다. 19세기 말 일본이 영국 등 유럽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러시아를 견제하고 청나라·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대외정책과 유사한 그것을 추진하고 있다. 오커스 동맹, 오커스 협력은 일본이 참가하는 자커스(JAUKUS) 동맹으로 확대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최근 열린 한국과 호주 간 ‘외교·국방 2+2’에서 우리나라의 필러2 참가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호주의 선택을 눈여겨봐야 한다. 진영 대결이 심화하면 심화할수록 모호한 입장이 차지할 공간은 줄어든다. 이는 현실주의적 국제정치의 시작이고 끝이다.

    호주 국민의 애국심을 창조하는 공장 역할을 하고 있는 ‘The Last Post’와 유사한 추모 시설, 의식 행사는 우리나라도 꽤 여럿 갖고 있다. 국민이 일상적으로 나라를 지켜낸 영웅을 추모할 수 있는 문화, 의식혁명이 필요하다. 도시 주변 구릉, 높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만 하는 추모 시설을 도심으로 과감하게 옮겨보자. 호주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추모 시설은 대체적으로 도심에 있다. 각급 지자체, 광역자치단체장들의 결심으로도 가능하다. 도시 주변 구릉, 높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만 하는 추모시설은 일상적 추모 기회를 빼앗는 부작용이 있다. 추모 시설은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 국가 에너지를 만드는 발전소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핵잠수함보다 건강한 애국심이 강대국을 만든다. 호국의 달에 순국선열의 명복을 빈다.

    백승주
    ● 1961년 출생
    ● 부산대 정외과 졸업, 경북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 국방부 차관, 20대 국회의원
    ● 現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국민대 석좌교수, 한중안보평화포럼 회장
    ● 저서 : ‘백승주 박사의 외교이야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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