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형 GA, 10년 만에 보험업계 다크호스 浮上
압도적 규모의 경제, 출범 3년 만에 흑자 전환
‘설계사가 일하고 싶은 회사’… 정착률 58.5 → 65.8%
새 회계제도 도입 호재, 성장잠재력 무궁무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화생명 본사.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는 보험사에 소속된 ‘전속 설계사’와 자회사나 독립법인이 운영하는 GA 소속 ‘비전속 설계사’로 나뉜다. 전속 설계사는 설계사가 소속된 보험사 상품만 취급하는 반면 GA 소속 설계사는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보험업계에서 자회사형 GA를 처음으로 시도한 곳은 푸르덴셜생명(현 KB라이프생명)이다. 푸르덴셜생명은 2004년 9월 지브롤터마케팅을 설립해 제판분리를 시도했지만 지브롤터마케팅은 예상만큼의 실적을 내지 못했고 전속 채널과 갈등을 지속하며 모회사에 흡수합병됐다. 푸르덴셜생명은 2009년 푸르앤파트너즈를 설립해 자회사형 GA에 재도전했지만 푸르앤파트너즈 역시 지브롤터마케팅처럼 2년 만에 청산됐다.
이후 다수 보험사가 자회사형 GA에 도전했으나 본사와 자회사로 설계사를 나눠 판매 경쟁을 하는 이해 상충 문제가 불거졌다. 본사의 수익을 나눠 갖는 데 지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일부 자회사형 GA는 보험사 퇴직자나 저능률자를 중심으로 꾸려져 순수한 독립 채널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었다.
게다가 2010년대까지만 해도 자회사형 GA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전속 채널과 판매 상품이 크게 다르지 않아 경쟁력이 떨어지고, 자회사형 GA가 다른 회사의 상품을 얼마나 팔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자회사형 GA 실험은 실패”라는 말이 정설처럼 여겨진 이유였다.
상황이 달라졌다. GA가 대형화하면서 보험사의 GA 의존도가 높아졌고, 전속 설계사보다 GA 설계사가 더 다양한 상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강점으로 부상했다. 보험사로서는 판매비용을 절감하고 모집수수료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GA 설립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이런 이유로 보험사들은 속속 자회사형 GA를 설립했다. 현재 자회사형 GA를 운영하는 보험사는 생명보험사 12곳과 손해보험사 5곳 등 총 17곳이다.
출범부터 경쟁사 압도, 한금서 ‘규모의 경제’
지난해 9월 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화생명 본사에서 열린 ‘한화생명금융서비스 투자유치계약 체결식’에서 여승주 한화생명 대표이사 부회장(왼쪽 끝), 이경근 한화생명금융서비스 대표이사(왼쪽 두 번째), 이강행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오른쪽 끝), 김민규 한투PE 대표이사(오른쪽 두 번째)가 계약 체결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화생명]
한금서는 출범 첫해 1681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설립 초기 비용을 투입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이듬해인 2022년에도 482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으나 첫해보다 적자 폭을 크게 줄였고, 지난해엔 당기순이익 689억 원을 내면서 출범 3년 만에 흑자를 보는 데 성공했다.
한금서는 흑자 전환을 계기로 주주 환원과 미래 투자가치 제고를 위해 올해 3월 말 첫 배당도 실시했다. 이때 한금서는 전환우선주(CPS) 형태로 지분 11.1%를 보유한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를 대상으로 약 15억 원을 배당했다.
한투PE는 지난해 9월 한금서에 1000억 원을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다. 한화생명은 한투PE와 전략적 협업을 바탕으로 내년까지 한금서를 1조 원 규모로 키워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때 한금서와 한투PE는 한금서의 지분가치를 8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IPO가 계획대로 추진된다고 가정 할 경우 2026년 기준 한금서의 시가총액은 약 1조7000억 원이다. 한금서가 첫 배당을 진행함에 따라 IPO 가능성에 대한 투자시장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한화생명 역시 한금서의 시장 경쟁력에 힘입어 지난해 신계약 연납화보험료(APE)가 2022년 대비 52%, 보장성 APE는 114% 대폭 증가했다. 지난해 신계약 계약서비스마진(CSM)은 2조5000억 원을 달성했다.
한금서는 출범할 때부터 규모에서 기존 대형 GA들을 압도했다. 당시 이동한 설계사 수만 1만900여 명이기 때문이다. 같은 해 하반기엔 설계사 이탈로 인해 설계사 수가 1만7743명으로 줄어들기도 했지만, 이 시기 GA코리아의 설계사 수가 1만3842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금서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한금서는 이에 그치지 않고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조직 규모를 더 불렸다. 2021년 480여 명의 설계사를 보유한 리노보험대리점을 인수했고 지난해엔 대형 GA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는 피플라이프를 인수했다. 피플라이프 소속 설계사 수는 지난해 말 기준 4108명으로, 이들까지 합치면 한금서의 올해 설계사 수는 2만6717명으로 추정된다. 최근 한화생명은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IR)에서 설계사 수를 3만 명 이상으로 확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한금서가 출범 당시 세웠던 목표이기도 하다.
설계사 중심 전략·인프라 주효
GA영업의 근간은 설계사다. 한금서는 ‘설계사들이 일하고 싶은 회사’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았다. 제판분리 이전 전속 설계사는 다양한 상품 판매에 목말라 있었다. 경쟁력 있는 생명보험 상품과 손해보험 상품을 통합 컨설팅할 때 소득이 오르고 고객만족도도 높아지기 때문이다.한화생명은 2021년 4월 제판분리 후 한금서 설계사가 경쟁력 있는 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적시에 상품을 출시했다. 한금서는 대형 9개 손해보험사와 제휴해 생·손보 통합 컨설팅이 가능하도록 지원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금서 설계사들은 제판분리 이전 대비 2배 가까이 높은 소득 창출이 가능해졌다. 설계사 정착률도 지난해 65.8%를 기록해 2022년(58.5%) 대비 7.3%포인트 신장했다.
한금서는 시스템과 플랫폼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한금서의 대표 플랫폼은 ‘오렌지트리’(영업지원 플랫폼)와 ‘오렌지터치’(고객관리 플랫폼)다. 오렌지트리는 한 번의 로그인으로 제휴 보험사 영업시스템에 접속하고 입력한 고객 정보를 제휴 보험사와 바로 연계해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여러 제휴 보험사에 일일이 접속해 고객 정보를 관리해야 했지만 오렌지트리를 도입해 설계사들의 번거로움을 해소했다.
오렌지터치는 신입 설계사도 손쉽게 고객관리를 할 수 있도록 ‘모바일 AI비서’ 역할을 한다. 기본 기능인 명함·스케줄 관리는 물론 설계사와 고객의 반응 데이터(콘텐츠 수신율 등)를 분석해 맞춤으로 고객을 관리할 수 있다. 일방향 고객관리가 아닌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인 셈이다. 한금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한금서 설계사들이 오렌지터치를 활용해 고객과 접촉한 이력이 많을수록 신계약 체결 성공률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인프라와 고능률 설계사를 위한 우대 제도도 한금서의 경쟁력이다. 한금서는 설계사의 차월·역량·직책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을 지원한다. 중소 GA의 경우 대개 제휴 보험사가 제공하는 교육을 조율해 지원하기 때문에 체계적 프로그램 수강이 어려울 때가 많다. 한금서는 설계사 기본 교육뿐 아니라 시장 확대를 위한 재무설계 역량을 갖추고 설계사가 자립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맞춤형 교육을 지속한다.
고능률 설계사 대상 우대 제도로는 한금서 소속 설계사 가운데 상위 3%를 대상으로 하는 ‘ACE Club(에이스 클럽)’이 있다. 에이스 클럽은 업적·리크루팅·팀장 부문으로 나눠 선발하며 학자금·저축보험·연 2000만 원의 복지카드 지원(택1)을 기본으로 실제 임직원과 유사한 수준의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잠재력 무궁무진, 한금서 질주 지속 전망
또 전속 설계사를 통한 개인생명보험 가입은 2012년 말 49.1%에서 지난해 6월 25.4%로 ‘반토막’ 난 반면 같은 기간 GA를 통한 가입은 24%에서 32.1%로 늘었다. 장기손해보험 또한 전속 설계사를 통한 가입 비중은 42.7%에서 27.8%로 낮아졌으나 GA를 통한 가입 비중은 42.9%에서 44.4%로 늘었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가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경영공시’에 따르면 대형 GA는 2022년 63개에서 지난해 70개로 7개(11.1%) 늘었다. 소속 설계사는 17만8766명에서 19만8517명으로 1만9751명(11.0%) 증가했다. 대형 GA 신계약 건수는 생명보험은 2022년 250만 건에서 지난해 327만 건으로 77만 건(30.6%) 늘었다. 같은 기간 손해보험은 1120만 건에서 1304만 건으로 184만 건(16.5%) 증가했다.
보험업계는 GA가 성장을 거듭하는 요인으로 지난해 새 회계제도(IFRS17) 적용을 꼽는다. 이로 인해 보험사들이 보험계약마진(CSM) 확보에 유리한 보장성 보험을 판매하는 데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고 바라본다.
IFRS17에선 저축성 보험보다 보장성 보험이 보험계약마진(CSM)을 확보하는 데 좋다. CSM은 보험사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한 지표로 IFRS17 도입 이후 중요도가 높아졌다. CSM은 미래 예상 이익을 계약 시점에 부채로 잡고 이를 보험계약기간에 상각해 당기순이익으로 인식한다. 저축성 보험은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를 나중에 무조건 보험금으로 돌려줘야 한다.
보장성 보험은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도 있고, 지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위험 발생 시에만 보험금이 지급돼 재무 부담이 적다. 예컨대 가입자가 뇌출혈 진단비 2000만 원을 보장하는 보험에 가입한 경우 가입자가 실제 뇌출혈 진단을 받으면 보험사는 2000만 원을 지급해야 하지만 가입자는 평생 뇌출혈 진단을 받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보험사로선 2000만 원을 아낄 수 있게 된다. CSM은 계약 기간이 긴 상품의 판매 비중이 높을수록 회계상 이익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보험사들은 보장성 보험을 위주로 GA 설계사에 주는 시책(판매촉진비를)을 집중하고 있다.
한금서 사례처럼 최근 자회사형 GA는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전속 채널을 통째로 떼어내 ‘완전 제판분리’를 이루겠다는 것이 핵심 목표다. 또 공격적 채용과 M&A 등 막대한 자본을 들여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자체 수익을 확보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다. 단순히 모회사의 상품을 많이 파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여전히 업계에선 설계사를 통한 대면 영업이 강세다. 이 때문에 GA의 성장잠재력은 아직 무궁무진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제 자회사형 GA를 두고 “실패한 모델”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