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권력의 궤도 이탈 막을 개헌 논의, 어느 때보다 절실”

헌법학자 김진한 변호사의 제언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4-06-0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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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는 게 법

    • “법정은 당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됐습니다”

    • 개헌의 핵심, 대통령중임제와 결선투표제 도입

    • 재판을 재판하라, 법원에 대한 헌재의 견제 기능

    • 정의의 여신이 든 칼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 좋은 법은 베껴도 좋은 주인은 베낄 수 없다

    김진한 _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12년간 재직한 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를 거쳐 독일 에를랑엔의 프리드리히 알렉산더대학에서 독일과 미국의 헌법재판을 비교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태식 기자]

    김진한 _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12년간 재직한 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를 거쳐 독일 에를랑엔의 프리드리히 알렉산더대학에서 독일과 미국의 헌법재판을 비교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태식 기자]

    한 여성이 법정 앞에 앉아 있다. 민사소송 피고인으로 재판에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고 온 것이었다.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그는 담당 공무원(서기)에게 자신이 도착했음을 알리고 명단에 이름을 썼다. 법정 안이 혼잡하자 그는 문 밖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기로 한다. 재판이 시작되면 당연히 자신을 부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다린 지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갔을 무렵 그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다시 법정 안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재판은 불출석으로 처리돼 패소했다는 결과만 전해 들었다.

    법정이 열리는 날 판사들은 여러 사건을 한꺼번에 재판한다. 수십 개의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에 앞서 진행되는 다른 사건의 재판을 지켜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관행이다. 그런데 판사가 호명해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패소는 당연해 보였다. 그때까지는 그게 법이었다. 1970년대 독일 뮌헨에서 있었던 일이다.

    재판을 받으러 갔던 여성은 억울했다. 상소했지만 상급법원들도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여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연방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1976년 겨울, 지금까지 당연했던 관행이 뒤집어졌다. 헌법재판소가 뮌헨 법원의 재판이 그 여성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은 그 여성이 아니라 오히려 법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판사가 재판을 시작할 때 당사자를 호명하고 ‘출석했습니까’라고 하는 것은 단지 재판을 시작한다는 절차가 아니라, 당사자에게 ‘이 재판의 주인공은 당신이고 재판부는 당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입니다. 그런데 재판의 주인공이 자리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찾아야죠. 직원을 법정 밖으로 보내거나 구내 스피커를 활용해 찾으려는 적극적 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법원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여러 사건을 묶어 재판하고, 당사자에게 통지한 시간이 아니라 법원의 편의에 맞춰 시작되는 재판이라면 더욱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형식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 판단을 한 법원 대해 스스로 왜,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지 잊어버렸다고 질타합니다.”

    시민은 말할 권리가 있고, 권력은 경청할 책임이 있다

    김진한(56)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자신의 두 번째 책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지와인)를 쓰면서 가장 먼저 1976년 독일 판례를 떠올렸다. 재판받을 권리라는 절차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재판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임을 선언한 중요한 판례일 뿐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4년 대한민국 법원은 여전히 ‘호명할 때 자리에 없으면 불출석, 곧 패소’의 관행으로 운영되고 있다. 언젠가 이러한 관행이 잘못이라는 판단이 내려지겠지만 대한민국 헌법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있다.



    법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들에게 김 변호사는 “재판관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라며 “시민은 말할 권리가 있고, 권력은 그것을 경청해야 하며 그것이 적법 절차”라고 설명한다. 물론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적법 절차의 보호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권력은 법을 아는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냉담하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김진한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12년간 재직하며 미국 노터데임대학 로스쿨에서 국제인권법 석사 과정을 마치고, UC버클리대학과 미국 연방사법센터에서 연방대법원 사법심사 제도를 연구했다. 이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교수로 미래의 법조인을 양성하다가 2015년 여름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무작정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 헌법재판소의 모델이 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헌법재판제도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지 6년 만에 에를랑엔의 프리드리히 알렉산더대학에서 독일과 미국의 헌법재판을 비교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자타 공인 헌법과 헌법재판 실무 전문가지만, 헌법과 사랑에 빠진 헌법학자로 불리기를 원한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젊은 날 법 공부에 대한 확신이 없어 흔들릴 때에도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읽으면 유독 가슴이 뛰었다. 1987년 체제와 함께 출범한 헌법재판소가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요지부동이었던 권력이 헌법에 복종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를 흥분케 한 것은 ‘다수의견’보다 ‘반대의견(소수의견)’일 때가 많았다. 지금은 비록 ‘반대의견’일지라도 언젠가 ‘다수의견’이 될 날이 오지 않겠는가.

    “헌법은 ‘국가권력을 제약하고 길들여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약속의 규범이며 모든 권력과 법 위에 존재하는 ‘최고의 법’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헌법에는 강제 수단이 없다. 헌법으로부터 기원하는 모든 법들이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정작 헌법은 갖고 있지 못하다. 그 효력을 거부하는 권력에게 복종을 강제할 수 있는 물리적 수단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헌법은 최종적 효력을 국민에게 의존한다.”(김진한 ‘헌법을 쓰는 시간’)

    “헌법은 제정에 의해 존재하는 법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내용 그대로 실현돼야 한다고 믿을 때 비로소 존재하고 효력을 발휘한다”는 게 김 변호사의 생각이었다. 2017년 ‘헌법을 쓰는 시간’(부제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의 6가지 원칙’)을 펴낸 이유이기도 하다.

    2017년 대통령 탄핵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막 새 정부가 출범한 이 시기는 대한민국이 1987년 체제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대로 넘어갈 절호의 기회였다. 7년 전 그는 개헌 논의를 정치세력에만 맡기지 말고 시민들이 논의에 직접 참여해 “스스로 괴물로 변해가는 권력을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헌은 무산됐고 코로나 팬데믹을 거쳤고, 그사이 여당과 야당이 다시 바뀌었다. 윤석열 정부 3년차. 국면 전환이 필요한 정치세력은 슬슬 각자의 이해타산에 따라 개헌 카드를 꺼내 든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은 ‘개헌 저지선(개헌을 막기 위한 최소 100석) 사수를 호소했고,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은 ‘임기 단축 개헌’으로 대통령을 압박한다. 그의 두 번째 책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는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싸우는 척만 하는 정치인들

    2015~2021년까지 독일에서 좀 더 객관적으로 한국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동안 달라진 게 뭔가.

    “대통령 탄핵 국면을 지나면서 정치판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 같다. 힘을 더 가진 쪽이 상대를 압도하고 제압하려 든다. 입법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만 남았을 뿐 실질적 토론과 조율을 발견하기 어렵다. 쟁점을 설명하고 토론을 이끌어야 할 언론도 스포츠 중계하듯 싸움의 결과를 예측하고 분석하는 데에만 매달리고 있다. 법을 수단으로 한 힘의 대결로 치닫는 게 안타깝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분노할 지점을 잘 알고 이것을 부각해 자기편을 결집하는 데 이용할 뿐이다. 대화와 타협은 오히려 자기편을 응집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진짜 싸움은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싸우는 척만 하고 있다는 건가. 진짜 싸워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고령자 운전 사고가 늘고 있으므로 일정 연령(예를 들어 70세 이상)이 지나면 운전면허증을 회수하는 법을 만든다고 하자. 만일 한 정당에서는 노인의 신체와 사고 능력을 감안해 운전면허를 박탈해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고, 다른 정당에서는 노인 역시 이동의 자유를 누려야 하므로 운전면허를 유지해야 한다는 당위가 옳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사실 상대방이 주장하는 당위도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각자 자신의 당위만 옳고 상대방 당위가 틀렸다는 주장만 한다. 입법자는 여러 당위의 문제를 조정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을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헌법의 여러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반영해야 하고, 상충하는 이익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강도와 속도를 조절해야 하며, 때로는 별도의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진짜 싸워야 할 부분이다. 특정 연령이 지나면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더 자주 하도록 하거나 면허 갱신을 위해 신체 반응 검사를 도입하는 식의 대안이 제시된다면 양쪽 다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자신의 당위만 내세우며 상대가 틀렸다고 비난하기 바쁘다. 사안의 실질에 관해 토론할 의지 자체가 없다. 독일 정치에서 자주 거론되는 말이 자흐폴리틱(Sachpolitik)이다. 실질, 구체, 객관을 의미하는 ‘자흐’를 ‘정치’와 결합한 것인데 실질적 과제 해결에 집중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우리 정치에선 자흐폴리틱이 실종됐다.”

    김진한 변호사. [홍태식 기자]

    김진한 변호사. [홍태식 기자]

    우리는 대통령제를 제대로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개헌이 무산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당시 야당의 반대도 극렬했지만 개헌을 주도하는 세력이 왜, 어떤 부분을 개정할지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정치적 어젠다, 이상적인 목표, 이른바 진보적 진영이 요구하는 것들을 모조리 개헌안에 담고자 했다. ‘차별금지법’도 못 만드는 상황에서 성적소수자 보호까지 기본권 조항에 넣고자 하는 식이다. 법률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헌법 조항에 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들의 선명성, 자유에 대한 헌신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헌법 개정이 이뤄질 수 없다.”

    정치권이 개헌 카드를 남발함에도 개헌은 꼭 필요한가.

    “헌법은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권력의 기계 장치’다. 사실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기본권 조항 같은 것은 종잇조각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헌법이라는 기계장치로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권력의 실패를 경험했다. 기계장치가 고장 났다면 고쳐야 하지 않겠나.”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하면서 ‘대통령 중임제’를 주장하는 까닭은 뭔가.

    “애초에 대통령 단임제로 규정한 것은 독재에 의한 장기 집권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늘날 단임제의 장점은 퇴색하고 정치적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 재선 가능성이 없는 대통령은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임덕을 맞는다. 임기는 5년인데 실제 자신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2~3년이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까만을 생각한다.

    권력은 지속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그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헌법의 작동 방식이다. 최고 권력이 추락과 부상을 반복하는 현상은 곧 기계장치가 고장 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헌법은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하는 것 못지않게 대통령이 부여받은 권한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번 연임을 허용하는 대통령 중임제는 독재 가능성을 차단하면서도 국가정책의 연속성을 위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30%도 안 되는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된다며 패배한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유권자의 투표가 왜곡되지 않고 더 정당성을 확보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다.”

    의원내각제는 고려 대상이 아닌가.

    “의회를 중심으로 한 권력구조란 다른 정당과 손잡고 정부를 구성하는 방식인데, 지금처럼 정치세력 간에 극단적 대결 구도하에서는 위험한 선택이다. 의회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문화에서 정부 구성 자체가 안 될 수도 있다. 아직은 우리에게 익숙한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게 낫다. 어쩌면 우리는 대통령제를 제대로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사법독재? 범죄 혐의 정치인이 결백 호소하는 장치일 뿐

    대통령 중임제 외에 지금까지 나온 개헌안에서 미흡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흔히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정작 그 권력을 어떻게 제한할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헌법은 권력의 기계장치라고 했는데 각각의 톱니바퀴가 엮여 돌아가면서 견제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권력이 지나치게 크다고 해서 그 권력들을 잘라버리면 전체가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그보다는 다른 톱니바퀴를 키워서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중 하나가 사법부다. 지금 우리의 사법부는 지나치게 왜소하다.”

    검찰독재에 이어 사법독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임기 및 정년 연장에 다수 국민이 동의할 수 있을까.

    “여러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결백을 호소하는 방법 중 하나로 ‘사법독재’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독재는커녕 짧은 임기는 이들이 새로운 공직에 대한 유혹을 가져올 뿐이다. 현재 우리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의 임기(6년, 연임 가능)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짧을뿐더러 짧은 임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 권력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이들이 수시로 바뀌면 법률의 위헌성, 헌법의 해석 등 중요한 법 해석이 쉽게 변경될 가능성도 높아져 법적 안전성과 신뢰도 측면에서 문제가 생긴다. 법의 수호자라면 ‘종신 직분’의 신념을 갖고 당당하게 법을 선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강산이 한번 바뀔 만큼’의 기간, 즉 최소 12년 이상으로 늘리고, 정년도 75세로 연장할 필요가 있다.”

    1987년 헌법재판소 제도가 도입된 이래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금지됐는데 이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사법부의 지나친 엘리트주의, 법 해석 만능주의, 대법원 판례에 대한 맹신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면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법부는 법률 해석과 종전 판례를 적용하는 데 그쳐 시대의 변화와 유리된 판단을 계속해 왔다. 법원의 독립성은 보장되고 강화돼야 하지만 동시에 법원의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를 경계하고 통제해야 한다. 사법부가 우리 공동체의 헌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판단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헌법이라는 공리 위에서 토론과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 사법부가 내린 헌법 판단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일관되지 않을 때 공동체의 여론이 아무런 기준 없이 갈라지고 패거리 싸움으로 번진다. 이때 법원의 판단이 헌법 가치에 일관되게 부합하도록 자극할 수 있는 것이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의 역할이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면 대법원 위에 헌재가 있는, 사실상 4심제가 될 거라는 우려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규모나 예산으로 볼 때 모든 대법원 재판을 대상으로 재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기본권과 헌법을 위반한 중요한 법 해석에 대한 극히 제한적 통제만 가능하다. 많은 재판을 심사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가장 중요한 헌법적 쟁점을 가지고 있는 사건에 한해 심사해야 한다. 나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일부 재판에 대한 통제를 지렛대로 삼아 사법부 재판이 헌법과 기본권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영점’을 재조정하는 제도라고 설명한다.”

    사법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다. 대법관의 임기를 늘리는 것 외에 대법원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우리 대법원은 전원재판부에 회부되는 사건이 너무 적다. 실제로는 소부(대법관 4명으로 구성)에서 대부분의 판단을 한다. 그렇다고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의 대법관 인원을 늘릴 생각도 없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처럼 소수의 대법관이 판단을 내리는 것을 이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은 아주 중요한 사건들만 골라서 9명의 재판관이 전원합의로 판단한다. 그것을 모델로 하는 우리 대법원은 아주 많은 사건을 판단하는 대신 소부로 나누어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나오는 판례가 99%다.

    독일의 경우 대법원이 한 곳이 아니라 분야별로 5곳이 있고, 판사 숫자도 300명가량 된다. 이들이 실질적인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리고 동시에 합리적 판례도 만들어낸다. 우리 대법원도 단일 재판부를 고집할 게 아니라 분야별로 1, 2, 3개 부로 나누어 3부 체제로 운영한다면 좋은 판례를 만들면서도 대법원의 권위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봐주기 처벌이 미래를 망치는 이유

    2023년 7월 20일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에 마련된 고 채수근 상병 빈소에서 해병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2023년 7월 20일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에 마련된 고 채수근 상병 빈소에서 해병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2023년 7월 19일 경북 예천의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에 대해, 야당은 특별수사검사 도입을 주장하고, 정부는 공위공직자수사처가 수사 중이나 기다리자고 한다. 특검이 꼭 필요한가.

    “이 사건은 실제로 두 개로 나누어 판단해야 한다. 첫째,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에 간 젊은이가 나라를 지키는 것과 상관없는 수해 구조 작업에 투입됐고, 굉장히 위험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안전장치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투입됐다가 사망했다면 이 죽음에 대해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둘째, 해병대 수사단장은 사단장을 포함한 8명의 지휘관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고자 했으나 해병대 사령관은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에 대한 죄명을 제외하라고 지시했고, 수사단장이 이를 거절하자 이번에는 수사단장이 집단 항명 수괴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입건된 것이다. 누가 압력을 넣었나. 첫 번째 사건은 경찰이나 검찰 조사를 통해 밝혀질 수 있다고 보지만, 두 번째 사건은 최고 권력이 개입된 정황이 있어 외부적 수사나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공수처가 수사를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누가 수사를 맡을 것이냐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처벌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우리 사법부의 판단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편이다. 교육도 잘 받았고, 사회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고, 좋은 미래가 보장돼 있는데 어쩌다 한 번 실수했다면 굳이 처벌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필요가 있을까. 한 번 더 기회를 주어 사회에 기여하도록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을 텐데 굳이 형사처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처벌이 과거 행위에 대한 판단에 그친다면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봐주기’가 장차 그런 범죄가 발생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엄한 처벌에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채 상병 순직 사건에서 책임을 져야 할 지휘관에게 죄와 벌을 면해 준다면, 장래에 그런 일이 다시 생길 것을 초래하는 행위가 된다. 처벌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섣부른 ‘봐주기’가 다른 사람들의 미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 신화 속 법과 정의의 여신은 저울과 칼을 들고 다닌다. 정의의 여신이니까 칼로 악한 사람을 혼내 주려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는 저울에 주목해야 한다. 나쁜 짓을 저지른 범죄자가 있다면 여신은 그 사람을 저울에 올려놓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한 나쁜 행위를 저울에 올려놓는다. 그 반대편에는 처벌을 올려놓고 처벌과 행위가 균형이 맞을 때까지 저울질을 한다. 처벌이 무거우면 칼로 깎아내고, 행위가 무거우면 저울에 추를 더 올려놓는다.

    정의란 복수와 응징이 아니라 나쁜 행위에 대해 적정한 처벌을 하는 것이다. 이 저울질을 ‘형량(衡量)’이라고 한다.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를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형량’이다. 김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진짜로 다퉈야 할 부분은 ‘형량’이고, 찾아야 할 것은 ‘균형점’이라고 말한다.

    “법의 주인이 되는 길은 우리 삶을 규제하고 있는 수많은 법에 대해 질문하고, 더 좋은 법을 상상하고,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려는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법은 베낄 수 있어도 좋은 주인은 베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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