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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체제 경쟁이다

[책 속으로] 차가운 평화의 시대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체제 경쟁이다

차가운 평화의 시대. 최계영 지음. 인문공간. 316쪽. 2만2000원

차가운 평화의 시대. 최계영 지음. 인문공간. 316쪽. 2만2000원

자유무역으로 대표되는 지금까지의 국가 간 경쟁은 글로벌화에 따른 동반 경제성장이 가능한 윈윈 게임이었다. 그러나 기술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제로섬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기술 패권 경쟁은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국을 고립시켜 제압하려는 정글의 법칙 속성까지 보인다. 무엇보다 기술 패권 시대의 경제정책은 경제 영역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정치, 외교, 국방 정책까지 결합돼 상대국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려는 경향마저 나타난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단행된 화웨이에 대한 제재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자산 동결, 그리고 은행 간 국제결제 통신을 위한 SWIFT 퇴출은 경제정책이 군사·안보 정책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세계 1, 2위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영향력 증대를 통해 상대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기술 패권 경쟁은 현재까지는 ‘냉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중 양국이 직접 충돌하는 대신 중요 기술 분야에서 상대국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우위를 점하고, 그 같은 우위를 바탕으로 지정학적 우세와 궁극적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패권을 행사하려는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지켜나가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차가운 평화의 시대’의 저자 최계영 박사는 “기술 패권의 핵심은 기술이고, 기술은 세계가 어떤 가치와 체제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기술 블록으로 나뉘는 미래 세계의 국경은 기술과 경제를 넘어 정치와 군사, 나아가 사회체제의 경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기술 패권 경쟁은 궁극적으로 사회체제 간 경쟁으로 치닫게 될 것이란 얘기다.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 20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조 의지를 재확인하는 한편 경제 안보 강화를 위한 양측 대화 채널 구축에 합의한 이유가 무엇에 있겠는가. 저자는 “약자에게는 좋은 친구가 없다”며 “한국과 미국은 서로 간에 줄 것과 받을 것이 있기 때문에 좋은 친구로서 서로 윈윈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에 우리의 국익을 확보하고 키우려면 압도적인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만이 살길이다.




나는 朝鮮民畵 천재 화가를 찾았다
김세종 지음. 아트북스. 428쪽. 3만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작가는 죽어서 ‘작품’을 남긴다. 그러나 작품에 낙관과 같은 일체의 흔적이 남지 않은 그림의 경우 ‘작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백성이 그린 그림’이라는 뜻의 민화(民畵)는 작품을 그린 작가가 분명치 않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정통 회화로 여겨지지 않았다. 20년 넘게 민화를 수집해 온 컬렉터인 저자는 무명의 떠돌이 작가가 그린 그림 정도로 치부됐던 민화를 ‘민화도 회화다’라는 관점으로 접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그려진 ‘조선민화’ 40여 점의 작품을 ‘조형 유전자’ 감식을 통해 두 명의 천재 민화 작가의 존재를 실증해 보였다.





낫이라는 칼
김기택 시집. 문학과지성사. 150쪽. 1만2000원

현대인의 일상을 포착해 그 안에 내재된 소외와 단절을 성찰해 온 김기택 시인이 인간 중심의 세계를 허물고 사물의 고유한 상태만이 남은 세계를 66편의 시로 그려냈다. 이번 시집의 시적 공간을 표명하는 ‘구석’은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장소와 사물을 나타낸다. 김기택의 시에서는 사물이 화자가 된다. 타인이 구축한 지배 질서의 세계가 아닌 모두가 사물조차 자신만의 고유함을 되찾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들여다보고, 기다리고, 그 자리에 머물렀음에도 시인은 “아직 쓰지 않은 시, 어딘가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시”에 대해 생각하다가 “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에 대해 상상한다.



신동아 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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